| 왜 단테인가? 책을 옮긴 옮긴이가 번역 후기에서 질문하고 대답했던 물음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현실과 중세의 암흑에서 막 벗어나기 시작할 무렵 신곡이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탈리아 피렌체 사람인 단테를 어떤 식으로 연관지어야 할까? 그리고 단테의 일생과 문학작품에서 나타난 그의 사상이 현대들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던 물음이다. 물론 나에게 이 책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문학작품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데다가 책의 구성이 신곡이라는 단테의 대표작품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나가기에 더욱 벅참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생소한 토스카나 어와 몇번을 읽어도 외워지기는 커녕 헷갈리기만하는 이상한 이름들 때문에 나의 무지함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모두 읽고 난 지금의 심정은 복잡하기도 하지만 뿌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중세 유럽인들의 사고방식과 그들 내면에 깔려있는 세계관이라든지 인생관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감이 잡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푸코가 쓴 장미의 이름이라든가 바우돌리노와 같은 책을 읽을 때도 그랬고, 미학에 관련된 책을 읽을때도 중세부분만 나오면 딱딱하고 재미없고 칙칙한 느낌에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혼란함에 정신이 없었고 복잡한 이름들과 당시 유럽의 생활양식과 사고수준에 대한 나의 무지로 인해 금방 책을 덮었었다. 그런데 단테라는 한 인물의 일생을 그의 문학작품인 새로운 인생과 신곡이라는 작품을 통해 해석하고 연구한 이 책을 읽으면서 중세와 또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유럽에 대한 나의 상식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왜 단테인가?라는 질문의 개인적인 답은 중세를 이해할 수 있고 또한 근대로 넘어오는 과도기속에서 보여지는 한 인간의 사랑과 정열 그리고 사상, 관념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단테라고 하면 역시 신곡이라는 대 서사시를 남긴 사람이라는 것이 일차적인 생각이다.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순례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테는 그 시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간접적으로 작품속에 투영시킨다. 물론 신곡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은 역사적인 인물들이고 또한 단테와 친분이 있거나 단테와 동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단테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입을 빌어 자신이 경멸하는 죄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런 과정에서 단테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이상적인 정치형태, 가장 효율적인 사회제도 그리고 도시시민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등을 넌지시 비친다. 또한 그 스스로가 유명한 시인이었기에 다양한 문학적 논의도 활발하게 전개되어 나간다. 물론 중세를 지배하던 신의 개념을 탈피한 인간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이상에 대한 에피소드도 상당부분 나타난다. 작가도 이야기 했듯이 단테에 대한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자료가 매우 빈약하다. 하지만 우리가 단테를 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곡이라는 작품이 단테의 일생을 거름으로 만들어졌기에 신곡을 읽으면 단테의 일생을 읽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곡의 내용을 잘 곱씹으면 단테가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파악이 가능해진다. 피렌체에서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던 단테는 강력한 연설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문학적인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는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피렌체 최고의 정치기구인 6인 최고 행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때는 1300년, 피렌체는 대규모 성벽공사와 도로정비등을 통해 근대 도시로 이행하고 있었다. 또한 이탈리아 전역이 그랬듯이 대부분의 도시들은 자치적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잘게 쪼개진 도시 국가들은 쉽게 반목과 대립을 반복하며 그들의 능력을 소진하고 피렌체도 예외가 아니어서 교황을 지지하는 겔피당의 분열로 인해 피렌체에서 영구추방된다. 평생 정치적으로 강력하고 능력있는 군주를 통해 통일된 이상사회를 꿈꾸게 되는 단테의 정치적 성향은 바로 전술한 일들때문이었으리라. 죽을때까지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단테는 볼로냐와 라벤다등을 전전하며 신곡을 쓰기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진정 피렌체를 사랑했고 다시 돌아가기를 열망했다. 단테를 논한다면 베아트리체를 꼭 짚고 가야한다. 단테가 자신이 9살때 처음으로 보고 그 순간 이후 평생동안 사랑했던 베아트리체는 신곡에서 천상의 여인으로 화하여 천국편에서 등장한다. 실제 단테가 문학을 시작하게 된건 베아트리체 때문이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을 분출할 곳이 바로 시였고 칸초네였다. 단테가 말했듯이 자신의 문학은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되었고 그 사랑을 표현하려는 노력에서 그의 문학은 점점 성숙해져갔다. 물론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고 단테는 젬마라는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4명이나 두게되고 베아트리체 또한 다른 사람과 살게 되지만 요절하고 만다. 단테가 사후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신곡이라는 작품을 쓰게된 이유도 하늘에 있는 베아트리체를 염두해두었으리라. 내 소망과 내 의지가 영원히 회전하는 수레바퀴처럼 사랑에 의해 움직였다. 태양과 다른 모든 별들을 움직이는 바로 그 사랑 신곡의 천국편을 마무리 짓는 이 시에서 세상에 움직이는 모든것 아니 움직이는 세상을 지배하는 힘의 원천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단테는 깨닫게 되고 매우 기뻐한다. 그의 문학은 베아트리체에서 시작하고 신곡의 천국편에서도 베아트리체와 함께 천국을 여행하면서 마치게 되는데 이는 바로 단테가 지닌 가장 본질적인 사상은 베아트리체라는 여인으로 대표되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단테의 사랑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고 그런 사랑은 결국 인간을 이롭게 하는 정치 사회제도에 대한 단테의 사고방식을 형성했으며 그 사랑은 중세 천년을 갈무리하는 위대한 문학작품인 신곡을 탄생시킨 것이다. 피렌체를 사랑하면서도 결코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는 그 방랑속에서 진정 피렌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일찍 세상을 떠난 베아트리체를 통해 숭고한 사랑을 배웠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랑을 통해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단테만의 세계상을 그려냈으며 현실에서 그 가능성이 너무도 낮기에 천상이라는 영역을 신곡에서 창조해 낸 것이다. 그가 상상한 천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유토피아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의미가 퇴색하고 인간성 자체가 황폐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단테가 새롭고 의미있어 보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