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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쯤 전이었나.
한 시간 후에 만나기로 한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서점을 찾았고,
그 곳에서 이 책 '연을 쫓는 아이'를 만났다.
밝은 빛을 등지고 어두운 어딘가를 훔쳐보는 아이의 뒷모습이 담긴
표지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었고, 서점에 앉아 한시간 가량을
빨려들 듯 읽었으면서도 왜 사지 않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돈이 만원도 없었나? -.-
이후 제목도 저자도 생각나지 않으면서도 이 책이 늘 읽고 싶었는데
얼마전 서점에 갔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반갑던지.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목이 메이고 가슴이 벅차올라 무슨 말부터 써내려가야 할 지조차
잘 모르겠다.
이 책은
부유한 아프가니스탄인인 아미르와 그의 친구이자 하인인 핫산의
이야기로서 아미르의 성장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은
아미르가 그토록 사랑받고 싶어했던 아버지 바바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하인이었던 알리의 세대부터 내려와 핫산의 아들인
소랍의 세대까지 이어지는 사랑과 이해와 용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바의 사랑 하나를 위해 모든 것에서 등을 돌리는 아미르의 모습은
비열하지 않고 안타까웠다.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과 칭찬이 모든 것에 우선하던 시절을
누구나 겪었으며, 그것을 얻기 위해 비록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비열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는, 다들 한번씩 겪어보지
않았던가.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
세대를 뛰어넘어 결국은 지켜지는 그 약속에
몇 번이나 목이 메이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55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이 책이 이렇게 쉽게 읽힐 수 있는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피폐한 전쟁폐허로만 인식했던 아프가니스탄도
부유하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풍속과 경관을 가진 나라였음을
곳곳에서 발견하는 재미.
이후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으로 날아가 치열한 이민생활을
해내면서 겪게되는 안락함과 조국의 처참한 현실을 입체감있게
비교할 수 있는 재미.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헐리우드의 기독교적 윤리도 우리나라의
유교적, 혹은 불교적 윤리도 아닌 그 옛날 가장 번성했을
시절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슬람 문화에서 배우는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깨닫는 재미.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쩌면 작가의 자전적 실화소설이 아닐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현실감 넘치는 주인공의 내적갈등이 꼭 나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
가슴 한켠이 계속 따끔거리고, 결국은 용기 있게 대처해내는
주인공을 통해 나의 죄까지 씻어내리는 듯한 착각의 재미까지.
이 책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다.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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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시험을 치르고,이겨내야만 하는 고난이 있다.
그리고 또 갈림길에서 고민도 하고,나에게 최선인 결정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의 결정이었는지 또는 그것이 나를 시험에 들게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그 일의 결과가 나타날때쯤에야 나자신을,그 상황을 돌아볼수 있을것이다.
물론,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것이 대체적이라고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선택이 그르지는 않았는지, 혹 그른 선택을 했더라도 그 잘못을 바로 잡으려 노력은 했었는지, 그것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은 했는지.
사실 난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냥 이란이나 이라크처럼 중동에 위치한 전쟁을 치르는 가난한 나라일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요근래 들어 탈레반이니 시아파니 하는것들을 알게되면서 내가 가진 정보가 조금 추가 되었다.
보통 이런류의 소설들을 보면 내가 태어나지 않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나타내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책에서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시대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래서 더 빠져들수 있었고, 공감할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나 싶다.
연을 쫓는 아이.
이 말에 모든것이 함축되어 있는것 같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전에는 왜 연을 쫓는 아이일까 의아했는데 지금은 이 책을 말하라 하면 딱 이말이 먼저 생각난다.
아마 우리네 인생도 이러지 않을까 싶다. [인상깊은구절] 어쩌면 하산은 바바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내가 치러야만 하는 대가이자 내가 죽여야만 하는 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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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통해 할레드 호세이니를 알게 되었다. 그 책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저자가 그곳에 살고 있는 약자인 차별받는 여자들의 힘든 삶의 이면을 그렸다. 반면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 남자들의 성장과정을 통해 남자들의 우정, 내면적 갈등과 극복과정, 세대간 및 인종간 갈등 문제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모티프로 사용되고 있는 연싸움과 떨어진 연을 쫓아가는 놀이는 주인공인 아미르에게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고 있다. 강한 마초적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 바바와 아버지 눈엔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유약한 문학소년인 주인공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로 등장한다. 자기의 친구이자 하인인 하산의 도움으로 연싸움에서 우승하고 2등한 연을 주워 시합의 전리품을 모두 챙겨 아버지의 사랑을 얻는 계기가 되지만, 그것은 커다란 고통의 추억이라는 댓가를 치르고 난 후에야 그의 것이 된다. 연을 좇아가던 하산이 자신이 주은 연을 지키기 위해 친구들에게 말 못할 일을 당하지만, 주인공 아미르는 거기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도망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러한 잘못은 결국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 친구이자 하인인 하산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게 되고, 결국 모함까지 하면서 집에서 쫒겨나게 하는 치명적 잘못으로까지 이어진다.
아버지를 따라 파키스탄을 거쳐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면서 예민하고 불안정했던 소년 아미르는 소년시절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고 희생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를 통해 한 인간으로서의 성숙과 이해의 과정을 그려 나가고 있다. 저자 자신의 자서전적 성장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몇가지 측면을 생각하게 만든다.
먼저 이 책의 배경이 되고 있는 저자의 고국 아프가니스탄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슬픈 현실이 이 소설의 배경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련의 아프칸 침공을 계기로 자신의 삶 자체를 거부당하는 사람들, 생존은 위해 파키스탄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망명하는 슬픈 모습, 수니파 파쉬툰인 주인공 아미르와 시아파 하자라인 하인 하산을 둘러싼 인종적 갈등과 모순, 전통을 중시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자식세대간의 갈등문제 등이 박진감있게 전개된다.
연을 쫓던 12살 소년이 겪었던 심리적 갈등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한 주인공의 모습은 그대로 독자들에게 감정이입되어 자신의 성장과정을 돌아보게 만든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가슴 아파하고 울고 있는 마음속의 아이들을 이제 어른이 되어 있는 나 자신에게서도 만나게 된다.
이 책이 호세이니의 첫번째 장편소설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첫번째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잘 쓰여졌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독자를 몰입시키는 저자의 능력이 탁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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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거 같다. 읽어보면 참 좋은데. 소설은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는 게 매력이다. 읽기 전까진 내 의식의 티끌만큼도 차지하지 않고 있던 그 곳도 여기와 다르지 않음을 그 사람도 나와 같음을 깨닫게 한다. 여타의 교양서가 지식이나 생각을 바로 전달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여운을 준다. 오랜만에 읽은 <연을 쫓는 아이>가 그렇다. 1인칭 소설이다. 나-아미르-가 주인공이다. 사실 난 1인칭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은데, '나'를 통해서만 세상을 접하다보니 시야가 좁고 답답하다. 극의 전개가 단조롭다. 긴 소설엔 맞지 않는다. 이런 류의 얘기였는데, 솔직히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면서 뭐 대단한 걸 아는 것처럼, 원래 내 생각인 것처럼 그리 여겨왔다. <연을 쫓는 아이>는 제법 긴 소설인데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가 없다. 물론 1인칭 서술에 따른 불만스러운 부분-전적으로 개인적인 지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아니었어도 이렇게 재밌었을까? 미국 서부 어느 지역이 배경이었다면, 글쎄, 그저 그렇고 그런 성장소설 아니었을까 싶다. 그만큼 아프가니스탄이란 독특한 배경이 작품의 밀도를 높였다고 본다.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첫 영어 소설이라는 설명에 걸맞게 작품 곳곳에 스면든 아픈 역사와 고유 문화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빛을 발한다. 비록 지금은 떠나있지만 작가의 수구초심, 향수가 느껴진다.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알리는 데도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작품에 나온 역사적 사실이나 문화 따위를 수업시간에 배웠다면 얼마나 머리 속에 남아 있을까? 우리 기준으로 따지자면, 시험에 안 나오는 부분이라고 건너뛰진 않았을까? 공산정권이 들어선 뒤 소련이 침공하고 친미정권이 들어선 뒤 미국의 공습을 받는, 아이러니라고 하기엔 너무 참혹한 비극의 땅, 오랜 내전과 종교, 인종 갈등까지 더해져 수십 년 동안 무수한 사람이 죽은 곳이지만 누군가의 그리운 조국이자 고향이 아프가니스탄이었다. 그나마 소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p.374. 주인공의 어머니 소피아 아크라미의 말. 잠재된 불안을 느꼈다.
1975년 겨울. 주인공 인생의 변곡점이다. 아미르는 친구이자 형제인 하인 '하산'이 자신에게 줄 연을 쫓아 갔다가 '아세르'에게 붙잡혀 잔인하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외면한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도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산에게 누명까지 씌워 떠나 보내지만 '하산'은 아무런 원망 없이 떠난다. 이 트라우마는 평생 주인공을 따라 다닌다. 훗날 하산의 아들 '소랍'을을 만날 때까지. 어린 날의 아픈 기억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거운, 삶의 장면장면에 불쑥불쑥 끼어들어 불편함을 환기시키는 그런 트라우마 하나씩 없는 사람 있을까? 모두 있다고 믿고 싶다. 나 역시 있다. 30년 가까이 흐른 일이지만 난 아직도 털어놓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미르는 훗날 '라힘 칸'과의 대화, 아세르와의 재회로 트라우마를 걷어낸다. 그리고 하산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하산의 아들 소랍에게 소리친다.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인연은 그렇게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아미르는 하산을 '영원히' 잃고난 뒤에야 깨달았다.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가 누구인지. 나에게도 나를 위해 '연을 쫓는' 하산이 있을까? 난 누구의 하산일까? 내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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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굴곡진 역사를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 주인공 아미르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겪는 성장통과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이 박진감 넘치게 펼쳐진다.
아프가니스탄의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하인 하산과 어릴적 친한 친구처럼 지내게 된다. 하지만 연날리기 대회를 한 그날 부터 둘은 점점 사이가 멀어지게 되고 결국 주인공은 아픔을 간직한채 이별을 하게 되고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벌이지고 주인공은 미국으로 망명을 하게되고.... 시간이 흘러...다시..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는 ....내용..
책은 두께가..상당히 많아서...처음에..좀 거북스러웠지만 책을 읽는 동안은 영화를 보는듯한 그림이 눈앞에 펼쳐졌다.
전쟁이 일어나기전의 고요한 나라와...전쟁으로 인한 피해들.. 요즘 우리나라의 긴박한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한반도의 긴장감이 도는 시기에 만약 우리도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아버지를 잃고..어머니를 잃고...남편을 잃을 것이다. 부와 명예따위는 땅에 떨어지고..그저 살아남기위한 생존 그 자체만 남겨 질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전쟁 ,,,그 이해 안되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끝에 새 희망을 이야기 한다. 결국은 아직도 살아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하기에..
책은 뒤로 갈수록 강렬하고...가슴벅찬 감동이였다. 이 기회에..영화로도 나온 연을 쫓는 아이를 한 더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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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시대 때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슬람문화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속하면서 많은 세월동안 핍박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변방문화라기 보다는 서구사회에서는 이교도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슬람권 특히 아프카니스탄이나 이란, 이라크 등 중동지역은 중세 십자군 전쟁 이전부터 기독교 사회와 많은 충돌을 일으켰다. 이러한 현상이 지금까지도 계속 되어 오고 있다. 이 책은 이제껏 지금껏 접해본 서양문화에서도 생소한 아프카니스탄을 배경으로 하고 작가 역시 그 지역 출신 미국 이민자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미국 이민자이지만 철저히 그 나라 사람의 눈으로 글을 썼다는 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일반적으로 성장소설을 보면 살던 주변 환경이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 더군다나 좋았던 생활에 대한 추억보다는 기억하기 조차도 싫은 일은 언제까지나 마음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많은 세월을 거치거나 살아가면서 두 가지 형태로 그 기억을 치유하려 한다. 즉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시 기억에 대한 죄책감으로 부딪히거나 회피를 하는 것 같다. 주로 회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주인공은 부딪히면서 발전해 나간다. 성장기에 있어서 안 좋은 기억을 어떻게 바꿔가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지만, 이 책에서처럼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것을 깨우쳐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과 처음부터 감싸려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커다란 보물이다. 옛말에 평생 단 한명의 진정한 친구를 만나는 사람은 그 인생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한다. 과연 주위에 그러한 친구가 나에게도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그 친구에게 그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는지.... |
| 강렬하다.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났고, 마음이 아팠고 이렇게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에 즐거웠다. 이 책의 막막한 두께 때문에 시작하는 걸 주저했던 날들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너무나 단숨에 읽어내려 갔기에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이 책을 몰랐던 그 때로 돌아가 다시 책을 잡고 싶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감싸안는 사랑의 화신 하산도 멋지지만 역시 주인공은 질투심 많고 어리석고 잘못을 저지르고 그렇지만 죄책감을 느낄 줄 알고 그 잘못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아미르이다. 지극히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존재 그래서 연민을 일으키는, 나와 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장해나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프카니스탄이라는 이국적인 풍경과 한 인간의 성장기가 조화롭게 잘 엮어들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공감을 불어일으키는 소설이다.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 대를 이어 전하는 말 몇 번이고 되새기게 하는 절절한 말이다. 나만 힘들다고 나만 아프다고 나만 바라봐달라고 그렇게 자기 속에 갖혀있던 아미르가 자신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손을 내미는 순간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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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과 책의 소개에 실린 글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5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은 정말 이 책을 읽는 대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다. 책이 무겁고 두껍다는 선입견은 그 책을 시작하는데 아주 커다란 제약이 되기는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줄어드는 분량에 점점 안달이 날 지경이 된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성장소설의 백미라고 불리우는 연을 쫓는 아이.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들었지만 이제서야 읽었다. 많이 늦었지만,정말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읽은 것이. 더불어 할레드 호세이니의 또다른 장편 '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반드시 읽으리라 다짐을 한다. 그렇다면, 전작이 되는거겠지? ^^
작가의 이름도 낯설고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나라도 생소하다. 끊임없이 전해지는 전쟁의 소식만이 아프카니스탄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종교와 인종차별문제.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전세계의 가장 큰 아픔들이 고름이 되어 있는 곳.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국가를 사랑할 시간조차도 허락받지 못하고 있었다. 소련의 침공. 그 후 벌어지는 인종차별의 아픔들. 911테러이후 무자비하게 이루어진 미국의 침략. 그 들은 세계사의 가장큰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프카니스탄에도 평화로운 시기가 있었다. 소련의 침공이 있기 전. 모든 것이 평화롭던 그 시기에 두 아이가 태어났다. 모든 것을 가진자 아미르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 하산. 그들의 운명은 태어날 때 부터 정해져 있었다.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고질적인 인종차별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을 날리는 아이와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연을 쫓는 아이로 생을 살아가게 된다. 한살 터울인 아미르와 하산. 어린시절 엄마의 부재로 인해 두 아이는 한 유모의 젖을 먹고 마치 형제처럼 자라게 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이름난 부자였던 아버지 바바로 인해 부족함이 없던 아미르. 그에게 하산은 친구이자 동생이자 동지였다. 하산 또한 아미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충실한 하인이자 동생이자 친구였다. 하지만, 그 들 사이에는 아주 고약한 운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연을 날린다는 것과 연을 쫓는 다는 것은 결코 같은 행위가 아니다. 두 사람에게 주워진 똑 같은 연이었지만 그 속에는 신분과 운명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무서운 존재가 자리잡고 있었다. 아미르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하산 역시 그 운명에 순응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하산의 약속은 마치 길고 질긴 연줄과 같이 평생토록 아미르의 발목을 잡게 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연날리기는 겨울철 최고의 놀이이자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래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부각 할 수 있는 최고의 등용문이다. 모든것이 남자답지 못하지만 연날리기 만큼은 자신있는 아미르. 아미르를 위해서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연을 잘 쫓을 수 있는 하산. 두 사람의 조합은 아프카니스탄 최고의 파트너였다. 어느 해 겨울. 마침내 아미르는 마지막 경쟁상대의 연마저 어디론가 날려버린다. 이제 남은 것은 전리품인 마지막 연을 쫓는 일 뿐. 연을 쫓는 일에는 비범한 재주를 가진 하산은 어느 누구보다 먼저 연을 쫓는데 성공한다. 두 사람은 드디어 연 날리기로 얻을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다. 연과 함께 찾아온 환희는 그 후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아픔으로 바뀌게 된다. 아미르를 위해 연을 쫓던 하산은 평상시 두 사람을 눈에 가시처럼 생각했던 아세프 일당에게 붙잡혀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그 모습을 목격하게 된 아미르는 공포감에 휩싸여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게 되고, 그 사건이후 커다란 죄책감에 시다릴게 된 아미르는 형제와도 같던 하산과의 이별을 선택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가장 훌륭한 연줄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 두 사람은 결코 연을 날리지도 연을 쫓지도 못하게 된다.
아미르에게 하산은 치유하지 못할 불치병이었다. 평생을 마음의 병으로 안고 살아가는 아미르. 연을 날리던 소년에게 찾아온 아픔처럼, 아프카니스탄도 이제는 더 이상 평화로운 땅이 아니었다. 소련의 침공과 계속된 탈레반에 의한 내전으로 죽음과 공포의 땅으로 변하게 된다. 살기위해 고국 아프카니스탄을 떠나 미국으로 가게 된 아미르와 아버지 바바. 아프카니스탄 최고의 부호이자 존경받던 인물 바바는 낯선 땅 미국에서는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자유의 도시 미국에서 아미르는 나름대로의 성공을 하게 된다. 소설가로서의 지명도와 함께 사랑도 찿게 된 아미르. 이젠 더이상 하산에 대한 죄책감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지 않아도 되며,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아미르에게 먼저 찾아온 것은 자유로움이 아닌 과거속에 뭍혔던 진실과 그에대한 속죄의 기회였다. 그건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더이상 하산을 만날수는 없었지만 아미르에게 나타난 것은 하산과 똑같이 생긴 그 의 아들 소랍이었다. 끊어진 연줄의 매듭을 찾아 아미르는 죽음의 땅 아프카니스탄으로 돌아온다. 소랍을 찾기위해. 그에게 자유를 선물하기 위해. 아니였다. 아미르는 지울 수 없는 자신의 과거앞에 당당히 무릎꿇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건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다. 하산 과 아미르 사이에 맺여졌던 질긴 운명은, 그의 아들 소랍에게 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 자신에게 무한한 사랑과 영광을 주었던 하산이었다. 하지만, 영광스러운 줄을 끊어버린 사람은 바로 아미르 자신이었다. 그는 이제 그의 아들 소랍을 통해 어디선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연 줄을 다시 이어주고자 한다. 칼날이 되어 버린 연 줄. 운명보다 질 긴 연 줄에 의해 손바닥이 베어 피가 철철 흐르기도 한다. 때론 도저히 풀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꼬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미르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영혼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소랍의 손을 결코 놓지 않는다. 두 사람은 과연 오래 전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넓은 하늘에 자신들의 연을 날릴 수 있을까 ? 그렇다면 그 순간 연을 날리는 사람은 누구이고, 연을 쫓는 사람은 누가 될 것인가?
두툼한 분량을 정신없이 읽었다. 그리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눈물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아미르,하산,소랍,바바,라힘 칸 ... 이 들이 만들어 간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푸른 하늘 높이 떠 있는 연을 바라보자. 스스로 날고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늘고 긴 실에 매달린 채 바람에 몸을 의지하고 있을 뿐이다. 순간의 실수로 인해 그 줄이 끊어졌다면 주저없이 연을 쫓아가도록 하자.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해 보자.' 내 잘못으로 니가 이렇게 먼 곳 까지 날아왔구나. 미안해!!!' 그리고, 다시 줄을 이어 연을 날리면 된다. 그러지 못하면 평생 그 연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오랜시간 마음 속 깊이 후회를 가득 안고 연을 그리워 할 지도 모를일이다. |
![]() '아프가니스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오사마 빈 라덴, 탈레반, 부르카, 그리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도시와 참담한 모습의 사람들이다. 생각만해도 가슴 아픈 그런 이미지들. 그래서 처음엔 일부러 이책을 피했다. 전쟁으로 얼룩진 아프가니스탄의 아픈 상처들을 만나기가 못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주변의 추천에 결국 졌다. 그렇게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두 편을 만났다. 조금 늦었지만 이야기가 전해주는 감동의 크기는 다르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두 여인의 굴곡진 삶을 그려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먼저 읽었고, 뒤어어 그의 데뷔작이자 두 소년의 우정과 배신, 속죄와 용서를 다룬 <연을 쫓는 아이>를 만났다. 그리고 극심한 아픔 속에서 피어나는 한줄기 희망을 전하는 그의 이야기는 단숨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196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두 소년이 태어났다. 카불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인 아미르와 그곳 하인의 아들인 하산이다. 하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핍박받는 민족인 하자라인에 언청이다. 한 해의 텀을 두었지만 같은 집에서 태어났고, 둘 다 엄마가 없는 공통점을 지닌 두 소년은 어린시절부터 늘 모든 것을 함께 하며 자란다. 둘은 마음이 잘 맞는 멋진 친구이자 형제 같은 사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언제나 주인과 하인이라는 신분 차이가 존재했다. 그것은 그들의 우정, 정확히 말하자면 하산에 대한 아미르의 우정을 온전치 못하게 했고 바로 거기에서 불행이 시작된다. 남자다움을 나타내는 거의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바바는 아들 아미르를 사랑하지만 자신과 달리 연약하고 책만 좋아하는 아들이 내심 못마땅하다. 그런 바바의 마음을 잘 아는 아미르는 바바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름 노력하지만 매번 결과가 좋지 않아 그를 실망시킨다. 그러다 해마다 열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전통 축제인 연날리기 대회가 다가오고, 연날리기 만큼은 자신있는 아미르는 대회에서 꼭 우승해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아들이 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아프가니스탄의 전통 연날리기 대회에서는 연줄이 끊어지면 그 연을 쫓아가 잡아오는 독특한 풍습이 있다. 특히 연싸움의 결승에서 아쉽게 져서 가장 마지막으로 줄이 끊어진 연을 잡는 것은 대회 우승 만큼이나 최고의 영예로 치는데, 아미르의 최고의 파트너인 하산은 연을 쫓는 데는 단연 최고다. 바바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미르의 연은 최후의 승자가 되었고, 마지막으로 줄이 끊어진 파란 연을 잡기위해 하산은 연을 쫓아 달려갔다. 그리고 바로 그날 두 소년의 우정을 갈라놓고 영원히 이별하게 만든, 그리고 평생동안 아미르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한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난다. <연을 쫓는 아이>는 유년시절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평생을 죄책감에 실렸던 한 소년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속죄하는 과정을 통해 용서의 치유력을 보여주는 가슴 뭉클한 성장 소설이다. 소년 아미르로부터 시작된 하산의 비극은 아프가니스탄의 상처많은 역사와 맞물리면서 점점 더 커지고 끝내 그의 아들 소랍에게까지 고통을 준다. 아미르는 또한 아무에게도(심지어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평생동안 하산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상처는 감추고 외면할수록 점점 더 깊어져 큰 아픔을 주는 법이다.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그것을 꺼내보이고 아픔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비밀과 하산의 소식에 망연자실하던 아미르는 소랍을 만나기 위해 카불로 떠나고, 하산에 대한 죄책감을 하산을 꼭 닮은 소랍을 통해 풀어낸다. 그렇게 아미르와 하산은 아미르와 소랍으로 이어지고, 상처입은 영혼들은 서로를 향한 '용서'와 진심이 담긴 '이해'로 더디지만 조금씩 그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그래서 먹먹하게 이어지는 절망 끝에 피어나는 한 줄기 희망은 더욱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또한 할레드 호세이니는 자신이 자라고 성장했던 사랑하는 조국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애정을 책 속에 한껏 담아낸다. 아름다운 도시 카불의 모습들, 정이 많은 사람들, 번화한 거리, 연날리기 대회와 연을 쫓아가는 전통놀이 등은 오사마 빈 라덴이나 탈레반, 부르카 등으로 각인되었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인상을 단박에 바꿔주었다. 사실 그의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아프가니스탄이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곳이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었다. 자신의 조국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책의 곳곳에 묻어났다. 더불어 소년이 자라면서 변해가는 카불의 모습은 아프가니스탄이 지나온 아픈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파쉬툰인의 오랜 집권과 점점 더 심해지는 하자라인에 대한 차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내란, 탈레반의 집권, 미국의 공습 등 녹록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가 아미르의 성장과 함께 소설속에서 이어진다. 상처로 너덜너덜해진 아프가니스탄의 역사가 우리와 참 많이 닮아있어 가슴이 짠했다. 그저 탈레반이 집권한 불쌍한 나라였던 아프가니스탄이 같은 아픔을 가진 친구처럼 느껴졌다. 아미르가 소랍을 받아들이는 것은 좁게는 그의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하산에 대한 속죄를 하는 것이고, 넓게는 파쉬툰인과 하자라인이 모두 아프가니스탄인임을, 민족을 넘어 그들은 같은 '아프가니스탄인'임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용서와 이해, 그리고 사랑.. 그것들이 모든 문제를 푸는 진정한 해결점임을 호세이니는 아미르와 소랍을 통해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게, 그리고 이책의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상처와 용서, 이해와 치유로 엮어진 성장소설인 <연을 쫓는 아이>는 묵직한 두께 만큼이나 진한 감동을 전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무관심했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관심을 심어준 책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접한 사람은 그의 마력에 빨려들어 다른 책을 집어들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랬고, 내 주변의 사람들 또한 그러했으니. 할레드 호세이니의 두 작품 모두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은, 놓치면 후회할 작품이다. 꼭 읽어보시길! - 사진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방금 전에 했던 생각에도 내 마음이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랍의 방문을 닫으면서 용서라는 것이 그런 식으로 싹트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들을 모아서 짐을 꾸린 다음 한밤중에 예고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 (53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