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목숨이‘누군가의 죽음에 빚진’(「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시인의 눈은 겹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이가 파악하는 생이라는 것도‘애(愛)와 증(憎), 삶과 죽음의 자웅동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어느 것 하나로는 심장은 뛰지 않’으니 ‘사랑도 죽이고 싶을 만큼의 똑같은 전압이 아니었다면 너와 나와의 온몸에 저릿저릿 피를 흐르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생은‘제 몸에 꼭 맞는 관(棺) 속에 누운 건전지가 죽을 힘으로 피워내는 아름다운 불꽃’(「생,(生)」)입니다. 그런 만큼 시인은 ‘바로 옆에 있는 꽃에게로 가기 위해서도 죽음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며 자신의‘ 시는 다생(多生)의 내 죽음의 기록인지도 모른다’(「自序」)고 말합니다. 잔디에게 덜 미안한 날 천변 잔디밭을 밟고 사람들이 걷기 운동을 하자 잔디밭에 외줄기 길이 생겼다 어쩌나 잔디가 밟혀죽을 텐데 내 걱정 아랑곳없이 가르마길이 나고 그 자리만 잔디가 모두 죽었다 오늘 새벽에도 사람들이 그 길을 걷는데 멀리서도 보였다 죽은 잔디싹들이 사람의 몸 속에 푸른 길을 내고 살아있는 것이 푸른 잔디의 것이 아니라면 저 사람들의 말소리가 저렇게 청량하랴 걷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얘기소리에서 싱싱한 풀꽃 냄새가 난다 그제서야 나는 잔디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주고 비켜서 있거나 아예 사람 속에서 꽃피고 있음을 안다 그렇듯 언젠가는 사람들도 잔디에게 자리를 내어준다는 것도 알겠다 죽음이 푸른 풀잎처럼 반짝이는 순간도 이렇게는 있다 생의 진실을 알아버린 겹눈의 시인에게 잔디의 죽음은‘사람의 몸 속에 푸른 길을 내고 살아 있는 것’이 됩니다.‘죽음이 푸른 풀잎처럼 반짝이는 순간도’ 되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저 주검이, 저 죽음이 아름답다면 / 이 살아있음이 아름답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역설’(「누란의 미녀 - 비단길 3」)을 노래합니다. 복효근 시인에게 그 역설은 '꽃가루 분분 이 혼음, 혹은 혼융의 푸르른 시간’(「소나무의 탓」)으로 나타나는데 ‘큰 등 연못가 배롱나무가 / 명부전 쪽으로도 한 가지 뻗어 / 저승 쪽 하늘까지 밝히고 나서 / 연못 속 / 잉어의 뱃속까지를 염려하여 / 한 잎 한 잎 / 물 위에 뛰어드는데 / 그 아래 수련이 그 비밀을 다 알고는 / 떨어지는 배롱꽃 몇 낱을 / 가만 떠 받쳐주’(「배롱꽃 지는 뜻은」)는 것처럼 자연 현상에서도 찾아지고, 다음과 같은 사람의 일상에서도 찾아집니다. 목련꽃 브라자 목련꽃 목련꽃 예쁘단대도 시방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송이만할까 고 가시내 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 빨래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 내 다 알지 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 눈부신 하냥 눈부신 저…… 하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것에 경탄하는 마음이 어우러짐은 물론 자식에 대한 사랑과 이제 막 활짝 피는 딸아이의 수줍음이 절묘하게 하나로 결합되었습니다.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의 경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사이에 있는‘틈, 사이까지가 하나였음을’(「틈, 사이」) 보여줍니다. 그러고 보면 빈번하게 나타나는 관능에 대한 묘사는 생의 절정, 생과 사의 혼융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라 하겠습니다. 실제로 관능만큼 생과 사의 자웅동체인 것이 있겠는지요. 그러니까 ‘매화 한 송이는 / 저 산 하나와 그 무게가 같고 / 그 향기는 저 강 깊이와 같은 것이어서 / 그냥 매화가 피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 어머, 산이 하나 피었네! / 강 한 송이가 피었구나! 할 일’(「매화 찬(讚)」)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