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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0. 18. 완독.
미국은 모든 권력이 민중에게 있다는 그 전제 덕분에 틴생했지만, 우리의 표준화된 역사는 그 근본적인 원칙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109쪽)
아주 무서운 말이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것이다. 여하튼, 레이 라파엘은 미국의 탄생과 관련된 ‘표준화된 역사’에 있어서 ‘왜곡’되어 있는 것들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하워드 진은 이를 잘 표현하였다. “레일 라파엘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최고의 우상파괴자임을 보여준다. 그는 미국 건국신화의 역사적 뻔뻔스러움을 낱낱이 밝히면서, 신화가 아니라 진실에 근거한 새로운 애국심을 보여준다.”(책 표지)
저자는 말한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나쁘지만 그 결과는 더욱 나쁘다. 역사를 보는 관점은 과거와 현재의 정치 과정에 대한 인식을 형성한다. 학생들은 왜곡된 역사서를 통해 정치 사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문법’을 배우고 내면화시킨다.(7쪽)
그렇다면 왜곡된 역사에 의하여 내면화되는 것은 무엇인가?
발명된 과거는 선량한 시민을 육성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 반대다. 언뜻 보기에 그것은 우리를 영웅적으로 행동하도록 격려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우리의 힘을 빼앗아간다. 그것은 인민의 주권, 미국 독립의 추동력이 된 그 혁명 정신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우리는 지도자들이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여기고 막연히 그들을 추종하게 된다. 또한 그것은 평범한 시민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것은 다시 오지 않는 과거에 대한 수동적인 향수를 품게 하며, 군국주의를 조장하고 전쟁을 미화한다. … 우리나라는 공동의 산물이며 수많은 헌신적인 애국자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15쪽)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리라.
즉,
미국을 건국한 것은 개인들의 영웅적 행위가 아니라 단결의 힘을 깨우친 민중의 결집된 혁명적 행동이었다.(16쪽)
영웅주의 역사관이냐 민중주의 역사관이냐 등의 논란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술은 사실대로이어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그러한 ‘역사적 사실’도 정말 있는지 조차 다투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전통적 이야기들이 되풀이되어 결국은 왜곡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수많은 개개인 또한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권면하는 것이리.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인으로 몰리는 것을 원하고 있지 않는다.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이요, 주체가 되고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미국혁명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혁명 자체가 아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엘리스를 비롯하여 멋쟁이 건국자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그 수많은 아메리카인들을 주변부로 강등시킴으로써 역사를 오해하고 위험한 전례를 만들었다. 과거의 보통 사람들은 주변인으로 내몰면 오늘의 보통 사람들도 그렇게 되게 마련이다.(171쪽)
이에 저자는 미국의 탄생과 관련된 여러 전설들, ‘혁명의 전령, 폴 리비어’, ‘몰리 피처’, 혁명가 샘 애덤스’, ‘세상을 뒤흔든 총성: 렉싱턴과 콩코드’, ‘포지 계곡의 겨울’, ‘제퍼슨의 독립선언문’, ‘건국 시조들: 가장 위대한 세대’ 등에서의 사실을 이야기하고, 전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추측해 나간다. 그 과정과 판단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이다.
[인상깊은구절] 역사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대하는 태도, 즉 그것이 실제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고 믿는 태도는 마치 미술관의 그림을 사진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340쪽) 이야기를 통제하는 사람은 역사를 통제한다. 이것은 강력한 메시지다. 이야기를 무시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조작을 끝내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미국 혁명의 주체들처럼 지나친 권위에도 전할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341쪽) |
| 이 책을 읽으면서 미처 모르고 있던 많은 것을 깨닿게 된다. 독립전쟁의 실제적인 모습들, 영국과 식민지와의 관계의 발전 양상. 프랑스 혁명에 버금가는 독보적인 인권의 선언으로 여겨지는 독립선언이 나오게 된 실제의 상황. 미국이 동부해안을 벗어나서 대륙의 내부로 진출하게 되는 과정... 일부는 앍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그 내용을 더욱 진지하게 알 수 있게되고, 일부는 전혀 모르고 있던 내용을 알며 또한번 사기를 당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다는 말인가. 누구나 자신의 역사를 합리화 한다. 우리의 역사는 나쁜 역사이다라고 가르치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독일의 유대인에 대한 사죄가 지나친 감이 있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현재 독일이 주변국과의 필요에 의해서 일부러 사용하는 제스쳐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냉혹한 국제관계를 이해하려면 그 정도의 융퉁성은 있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