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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없는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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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변할 수 없다는 것, 그때 증명된 것은 진리가 아니라 무능력이다. -니체” 1517년 아메리카 원주민이 그들 자신의 사회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성 제롬 수도승단의 질문에 백인 식민주의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원주민들의 손자 대에 가서나 자립생활이 가능할지 몰라도 현재의 원주민들은 악덕에 깊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그들은 에스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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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변할 수 없다는 것, 그때 증명된 것은 진리가 아니라 무능력이다. -니체”


1517년 아메리카 원주민이 그들 자신의 사회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성 제롬 수도승단의 질문에 백인 식민주의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원주민들의 손자 대에 가서나 자립생활이 가능할지 몰라도 현재의 원주민들은 악덕에 깊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그들은 에스파냐 사람들을 회피하고, 보수 없이 일하기도 하며 때로는 그들 자신의 소유물들을 남에게 모두 주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의 귀를 잘라 버렸을 때도 그들은 그 친구들을 버리는 법이 없다. 따라서 원주민들은 자유로운 동물로 남아 있기 보다는 인간의 노예가 되는 편이 더 낫다. 『슬픈 열대』”
자연을 정복하려는 백인들을 두려워하고, 일한 것만큼 돈을 받아야 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것을 남들과 같이 소유하고, 백인들이 죄인으로 여겨 귀를 자른 ‘죄수’마저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 이처럼 백인들이 ‘악덕’이라고 말하는 것을 끊임없이 저지르는 원주민은 미개하고, 게으르며, 언젠가는 백인이 되어야만 하는 야만적인 종족일까. 마찬가지로 원주민을 ‘개선’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가치를 폭력적으로 그리고 회유를 통해 강요하는 백인들은 숭고한 자기희생정신으로 가득 찬 ‘성인’이었을까.

 

서양의 고대인들은 지금과는 달리 시간을 순환하는 것으로 여겼다. 가령 차고 기우는 모습으로부터 나타나는 탄생과 죽음, 부활의 순환을 보여주는 달에 대한 숭배는, 고대인들의 시간관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기독교의 등장으로 이러한 관념은 해체된다. 최후의 심판으로 귀결되는 종말론은 시간이 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시작과 종말, 그리고 신의 목적을 갖는 직선적인 것이란 사고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후에 서구적 진보 관념의 기초가 되는 직선적인 시관관념에서는 직선의 왼쪽 끝에는 기원의 의미가, 오른쪽 끝에는 목적의 의미가 부여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시간이 인식될 때, 그것은 ‘발전’과 ‘진보’를 최고의 가치로 평가하는 근대적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서구의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일종의 목적으로 간주하고는, 자신들과의 유사성, 동일성의 정도에 따라 다른 사회를 평가하였다. 즉 자신들과 얼마나 비슷한지 여부에 따라 발전정도를 가늠했으며, 자신들과 많이 ‘다른’ 사회는 언젠가는 자신들과 비슷해져야 되는 운명을 지녔다고 생각한 것이다.

 

클라스트르는 자신들만이 최고로 발전된 존재이므로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을 따라야만 된다고 착각하는 서구와, 미개하기 때문에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원주민사회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서구인들이 원주민사회에 비해 문명화 되었다고 자부하는 부분은 바로 ‘국가(권력)의 존재’와 ‘노동과 소유’일 것이다. 그러나 원시 사회는 결코 서구에 비해 불완전하였기 때문에 국가형태로 나가지도, 잉여생산물을 소유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그들의 사회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즉 권력의 독점을 통해 타인을 지배하고 생산물의 축적을 통해 권력을 가지려는 의지를 효과적으로 차단한 사회이다.
원시사회에서의 추장은 전제군주와는 달리 명령을 내리는 자가 아니며, 부족민들 역시 복종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추장은 군사적인 능력, 말 잘하는 능력, 베푸는 능력을 갖춘 자들 중에서 선출된다. 하지만 군사적인 권력은 평화 시에 소멸되고, 추장의 말은 명령이 아니므로 그의 말 또한 공허한 헛소리에 불구하므로, 결국 베푸는 능력에 의해 추장의 실존이 결정되는 것이다. 원주민사회에서 추장은 부족민들에게 끊임없이 봉사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실행할 경우에만 존재할 수 있는, 집단의 여론에 의해 좌우지되는 권위와는 먼 존재이다. 그래서일까 오직 베푸는 능력을 통해서만 권위가 인정되는 남비콰라(Nambikwara)족의 “전부 바닥났어! 더 이상 줄 것이 없어! 누구든 내 대신 추장을 해봐라!”는 추장의 외침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아비폰(Abipones)족의 추장 역시 이렇게 말한다. “만일 내가 그들에게 명령을 하거나 힘을 행사하거나 한다면 그들은 그 즉시 내게 등을 돌릴 것입니다. 나는 그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지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마지막 한명까지도 지배하려는 권력추구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 모겐소(Morgenthau)의 명제까지 갈 것 없이, 어떤 추장은 부족의 주인으로 군림하려는 망상을 가졌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추장은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서만 자신의 명성과 위신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원시사회의 추장은 권력 없는 추장이다! 더 이상 부족에게 봉사하는 추장이 아니라, 추장에게 봉사하는 부족을 바라는 추장의 말로는 비참하다. 푸시웨(Fousiwe)추장의 경우 그의 부족민들에게서 버림받고, 자신의 영광을 위한 전투에서 홀로 고립된 상태로 죽음에 이르렀다.

 

원주민들에게는 필요이상의 것을 생산하여 저장하려는 욕구 역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저장하는 것이란 도덕적 차원에서도, 경제적 차원에서도(자연의 저장량이 고갈될 수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도(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이 나타날 수 있다) 비난받을 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의 노동시간에 잘 반영되어 있다.
농업에 생활을 기초한 투피-과라니(Tupi-Guarani)족은 토지를 4-6년간 경작한 뒤에 지력의 고갈이나 기생식물의 생장 등의 이유로 경작지를 옮겨 다녔다. 새로운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 돌도끼와 불을 이용하여 땅을 개간하는 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는데, 부족의 남자들은 1-2개월가량 이 작업에 집중한다. 씨뿌리기, 추수하기와 같은 농사의 나머지 부분은 하루 3시간가량의 여성 노동을 통해 충족되었다. 다시 말해 이들 부족의 남자들은 4년마다 2달만 일한 것이다! 나머지 시간은 남자들이 놀이라고 여겼던 사냥과 어로, 음주와 축제를 하는데 쓰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척박한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잉여생산물을 갖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돌도끼를 사용하던 남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서구인들이 돌도끼보다 10배나 효율이 좋은 철도끼를 주었을 때, 아마도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우리들은 이전과 같은 시간동안 일해 열배 더 생산하여 재산을 늘리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그것으로 동일한 시간을 노동해서 10배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10분의 1 시간을 노동해서 동일한 물량을 생산했다. 마찬가지로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보로로(Bororo)족은 인디언 보호국 관리들이 총을 주고 그걸 사용하여 사냥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총은 장식용으로 집 안에 걸어두고 계속하여 원시적인 도구로 사냥을 했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충분히 필요 이상으로 생산할 능력이 있을 때조차도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것, 소비할 것보다 많이 생산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의 삶을 상상할 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하루하루 기아에 허덕이며 먹을 것을 찾아 정글을 헤매는 모습을 그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 상상력의 빈곤이다. 실제로 원주민들은 에너지의 충족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노동만을 행했고, 그 외의 시간에는 그들 자신의 삶을 아름답고 즐겁게 꾸미는데 사용하였다. 사실 『성경』에서조차 신은 아담에게 노동을 형벌로서 부과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클라스트르는 원시사회는 ‘최초의 풍요 사회’라고 말한다. 하지만 최초의 풍요 사회는 최초이자 최후의 풍요사회로 남을 듯 하다. 정신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생산해내고, 다시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만 하는 현대판 노예들. 풍요속의 궁핍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과연 우리들은 자신이 원주민보다 ‘풍요’로우며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원주민들은 정치적으로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승리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언제나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원시사회는 오늘날 국가를 유지하려는 메커니즘 이상으로, 국가의 발생을 저지하려는 고도의 노력을 취한 사회인 셈이다. 맑스가 우리들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일컬었다면, 원시인들의 역사는 국가에 대항하여 싸우는 투쟁의 역사정도 되지 않을까. 우리의 오해처럼 그들의 사회는 단지 ‘국가가 없는 사회’가 아닌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그 자체이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자연 상태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의 욕구와 의지를 군주에게 위임하고 그의 통치에 따르는 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푸코는 이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홉스의 전쟁 안에는 전투가 없고 유혈도 시체도 없다. 요컨대 그것은 역사적이고 실질적인 전쟁이 아니라 표상 게임이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결국 자연 상태에 대한 사람들의 엇나간 상상으로 인해 국가는 정당화되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가치로 둔갑하게 된다.
단순하다고해서 미개한 것은 아니며 복잡하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굳이 국가를 통해서만 우리들의 삶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지금의 삶보다 국가가 없을 때 더 잘 살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클라스트르는 서구의 진보론적 도식을 깨고, 국가에 대한 환상도 여지없이 깬다. 하지만 기억하자. 우리 시대의 가치와 사상, 문명과 같은 것들을 무조건 악한 것으로 치부하고 과거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나쁜 원시사회-좋은 근대사회의 이분법에 기초한 백인 식민주의자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음을. 오죽했으면 인류학자 코치아라(Cocchiara)는 “미개인은 발견되기 전에 이미 발명되었다”고 했을까. 중요한 것은 국가를 넘어선 국가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를 넘어선 상상력을 가질 때 가능하다.

 

YES마니아 : 로얄 a*****e 2007.06.03. 신고 공감 8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국가란 자연스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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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기원은 무엇인가? 일종의 작은 공동체들로부터 시작하여, 부족 공동체를 이루고, 부족공동체가 발전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인가? 우리는 쉽게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인류학자들의 연구는 그러한 사실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그의 저서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에서 남미의 수 많은 원주민들을 연구조사한 결과, 그들이 국가를 만들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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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기원은 무엇인가? 일종의 작은 공동체들로부터 시작하여, 부족 공동체를 이루고, 부족공동체가 발전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인가? 우리는 쉽게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인류학자들의 연구는 그러한 사실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그의 저서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에서 남미의 수 많은 원주민들을 연구조사한 결과, 그들이 국가를 만들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성이 어떤 후진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클라스트르는 그들이 어떤 선진성을 갖기에 국가를 만들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많은 매체를 통해 그들의 후진성에 대해 생각하며, 그들에 대해 어떤 불쌍한 동정심을 갖는다.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태도에 단호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그들은 권력의 생태에 대해 선험적으로 잘 알고있는 것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어느 하나에 집중되면 차별과 폭력을 낳고, 그런 사회는 평등한 인간의 사회를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생산성에 대한 문제도 그러하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먹고살만한 시간 이상을 일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게으름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삶의 가치를 잘 실현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삶은 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어느사회가 보다 선진화된 사회인가?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에서 스스로의 인생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 아니면, 삶을 위한 노동을 행하는 인디언들? 생각해 볼 문제이다. 


물론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절대적인 진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행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그것은 그들의 삶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류학자와 클라스트르 처럼 좋은의미를 부여하든, 아니면 대다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쁜의미를 부여하든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최소한 나쁜의미를 부여하는 태도를 중지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 편견은 과거 선진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의 침략으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y******4 2012.05.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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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본질 국가는 곧 권력인가? 사회는 곧 국가인가? 교과서적으로 말한다면 국가와 권력은 동일선상에 있으며 사회는 인류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곧 권력이 행사되는 장이다. 홉스의 말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가 야만이었다면 계약에 의한 권력과 복종의 관계는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토대이다. 하지만 클라스트로는 이런 모든 사고를 전복한다. 추장은 권력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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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본질

국가는 곧 권력인가?

사회는 곧 국가인가?

교과서적으로 말한다면 국가와 권력은 동일선상에 있으며

사회는 인류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곧 권력이 행사되는 장이다.

홉스의 말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가 야만이었다면

계약에 의한 권력과 복종의 관계는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토대이다.

하지만 클라스트로는 이런 모든 사고를 전복한다.

추장은 권력을 가지지만 전시에 한정될 뿐이고

악과 죽음과 질병과 비참함만이 있었을 것 같은 인디언의 밀림지대는

여유와 신화가 숨쉬는 사람의 공간이다.

그들의 국가에 대한 대항은 생각보다 진지해서 문자조차 거부한다.

그들 사이에도 불합리함은 분명히 있지만 그런 모든 것들은 그들의 사회가

지속되기 위한 이성적 선택이다.

나는 다소간 아나키즘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이 책을 선택했지만

혼돈이상의 무엇을 찾지는 못했다. 물론 나의 무지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매력적인 사회가 그토록 비참하게 서구의 총과 균과 쇠에게 무너진 것은

답답함 이상의 고통과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나는 아타우알파 유팡키의 노래나 들으면서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의미없는 노동을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의 안락한 중산층의 생활도

포기해야 한다는 강박때문에...

인류학에 대한 무지때문에 개념조차 정확히 잡지 못한 상태에서

읽어본 책이지만, 그래서 어떤 장은 지루하기도 했지만 신화아닌 신화의 세계로

초대하는 책이었음을 밝혀둔다.

y***1 2007.11.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