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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가 내리꽂히듯 청년이 되어버린 소년
"단두대가 내리꽂히듯 청년이 되어버린 소년" 내용보기
낯설다. 이 책의 첫장을 펼쳐들었을 때 제일 먼저 느낀 점이었다. 이제까지 읽었던 "성장소설"은 좀 더 감상적이었고 회고적이었다. 그러나 수오는 당돌하고 영리하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수오의 정신세계를 끊임없이 성장시킨다. 시대의 기록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소년의 기록. 그러나 수오의 자서전은 매력적이다. 흔히 있는 소년들끼리의 싸움을 승리 또는 패배가 아닌 악마의 엉
"단두대가 내리꽂히듯 청년이 되어버린 소년" 내용보기
낯설다. 이 책의 첫장을 펼쳐들었을 때 제일 먼저 느낀 점이었다. 이제까지 읽었던 "성장소설"은 좀 더 감상적이었고 회고적이었다. 그러나 수오는 당돌하고 영리하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수오의 정신세계를 끊임없이 성장시킨다. 시대의 기록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소년의 기록. 그러나 수오의 자서전은 매력적이다. 흔히 있는 소년들끼리의 싸움을 승리 또는 패배가 아닌 악마의 엉덩이를 핥았던 기억으로 회상하는 소년은 어딘가 비틀어진 욕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사춘기, 고뇌하던 우리들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 불완전한 존재의 갈등. 아직 고등학생인 나로서는 반가운 모습이기도 했다. 수오는 영리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소극적이다. 폭력에 대해서는 반항보다 굴복을 택하고, 후에 그런 자신의 모습이 수치심을 느낀다. 그래서 친근하다. 좀 더 과장된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과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수오는 점점 청년이 되어간다. 사진을 통한 세상의 재조명, 정아와 홍전도사를 보면서 느꼈던 욕망, 또래 혹은 형뻘인 남자아이들에게서 느끼는 동경과 질투, 그리고 기호아저씨가 보여주는 예술적 시각. 정아는 죽고, 개누깔은 결국 평범한 반항아가 되었고, 영후와 광철은 여전히 자조적인 비웃음을 띠고 있었으며, 기호아저씨의 봄은 가버렸다. 소설 내내 등장하는 수오의 자괴감은 내가 겪고 있는 어떤 성장의 고통과 흡사해서, 나는 좀 더 쉽게 그의 고통에 접근할 수 있었다. 누구나 안고있는 고통의 종류는 다른 것이겠지만, 결국 그 본질은 닮아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일테니. 나는 수오의 모습에서 익숙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 신을 따르지만 결국은 자기자신의 고통을 신에게 떠넘기는 행위일 수 밖에 없는 수오의 태도. 그래서 수오는 광철을 주저없이 이단이라고 지칭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YHWH-야훼-여호와, 아무도 모르는 하느님의 뜻을 왜곡하고 있는 수오 역시도 결국은 이단이다. 본문 중 계속 등장하는 성경-중세의 기록, 그리스-로마신화의 이미지도 소설의 어떤 형이상학적 사상을 표현하는 데 큰역활을 한다. 목차만 보아도 괴수 리바이어던, 녹슨 뇌룡, 연금술사의 지하실, 뮤즈의 어머니는 누구인가(까지 1부)나 코페르니쿠스의 망성대, 신곡으로의 여행, 마침내 나팔을 부는 마녀, 결국 나로 하여금 애가를 부르라 하였구나(까지 2부)처럼 다분히 철학적인 소재들로 채워져있다. 서로 상반되던 두 성경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요한복음 21:15)와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마가복음 14:71)라고 예수를 부정하던 베드로. 림보의 문 교회에서, 끝까지 정아의 장례식을 지켜보지 못한 수오를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다. 아니, 이해할 수 있다. 뼈가 녹아서 간신히 고개를 돌리던 정아와 기호아저씨의 갑작스러운 죽음. 한꺼번에 몰아닥친 죽음이라는 또 하나의 삶을 겪으면서 수오는 단두대가 내리꽂히듯 청년이 되어버렸다. 수오는 어떤 유년에 대한 기록임과 동시에, 우리를 되돌아보는 또 하나의 창이기도 하다. 매력적인 성장기 속에서 나도 조금은 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상깊은구절]
우주적 관념의 광대한 배경 속에 작디작은 그러나 너무도 인간적인 상황의 한계를 절감하는 밤이었다. 그것이 그 밤 첨탑 속에서 이룩한 그의 변명이었다. 계속해서 하늘가에 번개가 찢어지고 있었다. 그의 신앙은 그렇게 세속적 절망과 충돌하며 아름다운 불꽃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중에 그의 일기장 속에서 그 첨탑은 '코페르니쿠스의 망성대(望星臺)'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첨탑에서의 고독을 누린 만큼 그는 그 비유를 사랑하였다. 낮에는 성직자로 십자가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밤이면 바로 그 십자가보다 높은 망성대에 올라 이단의 논리인 지동설을 꿈꾸었던 코페르니쿠스의 운명적 배신을 소년은 동경하기 시작하였다. (160P)
k**********d 2005.09.02.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