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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은 기독교인이 반드시 알아야 하고 또 항상 쓰는 말이면서도 성령님이 누구신지 잘 몰랐습니다. 더구나 한국교회에선 솔직히 말해 성령님에 대한 관점이 너무 다양해 건전하다 혹은 믿을 만하다는 책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신학적이거나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오히려 헷갈리게 만든 적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토저라는 믿음직한 필자가 성령님에 대해 명쾌히 지적하는 걸 읽으면서, 전통적인 그리고 한국교회의 보편적인 신앙정서를 가진 사람으로서 성령님의 의미와 하시는 일, 그리고 그러한 성령님을 모시고 충만한 삶을 사는 참된 비결까지, 이 책이 설명을 해주는군요! 그동안 감정 위주의 기복적인 성령론이나 이론적인 성령론에 치우쳐 있었다면, 올바른 성령님 이해를 위해 토저의 글이 매우 유익 했습니다. [인상깊은구절] 성령충만은 '정상에서 벗어난 어떤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이 '특별한 것'임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주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비정상인 것은 아니다. 절대 다수가 병자인 지역에서는 건강한 사람이 특별한 사람인 것이 사실이다...본문 77쪽에서 |
| 근래에 읽은 책 가운데 보기 드물게 강력한 메시지를 가진 책이다.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보수적이지 않나, 과연 이런 메시가 현대인들에게 먹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저자의 논리적이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는,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힘이 있다. 과연 우리는 성령님과 세상 속에서 얼마나 타협하고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데 익숙해 왔는가를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자그마한 책자이지만 강력한 힘이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이책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메시지는 세상과 연합하지 말라는 것이다. 책을 펴면 “세상과 연합하지 마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한다. 세상과 교회의 연합은 실상 불가능한데도 세상과 서로 양보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선으로 착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하지만, 성경 전체는 교회와 세상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중간지대는 없다. 주님은 교회와 세상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용인하지 않으신다. 한쪽에는 하나님을 아는 ‘우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예수님을 모르는 ‘그들’이 있다. 이 두무리 사이에는 아무도 건널 수 없는 너무나 큰 도덕적 심연이 가로 놓여있다. 우리가 우리의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세상을 거부해야 한다. 세상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양다리 걸치지 마라! 두번째는, 성령님과 사로잡힌 삶을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색을 하고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영이 아닌 다른 영에게 사로잡히기를 진정으로 원하는가? 그 영이 당신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그분이 당신의 삶의 완전한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님이 당신의 삶의 주인이 되시기를 진정으로 원하는가? 세상의 편한 길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성령님과 동행할 준비가 되었는가? 이러한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성령님과 동행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고, 그것은 당신의 것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포기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작은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움켜쥐고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전부를 잃고 있다. 성령충만을 받으려면, 첫째 당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둘째,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넷째,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을 받겠다는 열망으로 가득해야 한다. 셋째,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하여 저자가 자신의 삶과 신앙을 통하여 제시하는 조언이다. 1. 성령님은 살아계신 “인격체”이다. 성령님은 비인격적 힘이나 맹목적인 에너지가 아니다. 2. 예수님께 점점 더 몰두하라. 예수님을 높여라.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셨을 때 성령님이 오셨다. 이것이 원리다. 3. 의 가운데 행하라.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는 건전하게,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는 의롭게,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4. 당신의 생각을 ‘깨끗한 성소’로 만들라. 하나님의 우리의 생각이 어떠하냐에 관심이 많으시다. 당신의 생각은 당신의 마음과 기분과 태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하나님은 그것을 당신의 일부로 간주하신다. 그러므로 당신이 성령님과 친해져서 가까이 지내기 원한다면 당신의 생각을 잘 지켜야 한다. 5. 성경이 성령님을 무엇이라고 가르치는지 연구하라. 성경이 아닌 다른 책들을 너무 많이 읽지 마라.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이 되자. 혼자 묵상하라. 넷째, 성령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 성령님은 누구신가?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다. 우리 가운데 존재하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다. 그분은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인격체’이시다. 성령님은 누구신가? 성령님은 예수님이시다.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시다. 성령님은 도덕적 불이요, 영적 불이요, 지적 불이요, 의지의 불이요, 감정의 불이시다. 이 모든 영역을 지배하신다. |
| 사실, 토저 시리즈가 나올때는 꽤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수도 있을것이다 라고 생각하였는데, 그렇게까지 대단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그 어떤 이론보다 정확하고 명확하게 신앙과 세태를 집어내었으며, 기독교의 세속화와 부정적 요소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람은 1963년에 작고하였다는 사실이, 그 시대에 벌써 작금의 문제를 지적해내었다는게 너무 놀라웠다. 어쨌든 간에, 이 사람은 성경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살아있는 언어로 매우 강력하게 전달하는데 정평이 나있다. 이 시리즈 1편인 예배인가 쇼인가란 책의 제목에서 알수있듯이 세상과 타협하고 더 넓은 길로 가려는 신앙적 퇴보들에 대해 한치의 두려움도 갖지 않고 적확히 비판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 - 종교에 있어서, 특히 기독교에 있어서 문제는 신앙과 세상의 논리, 도덕, 가치와의 양립할 수 없는 요소에 대한 화해와 타협이었다. 서로 공존하고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자유주의자의 주장은 적어도 기독교 역사상 성공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약간의 허용과, 관대함, 유연한 대처 방식은 신앙의 후패와 퇴보를 가져왔고, 급기야 정체성을 잃게하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이신 성령님에 대해 명확하고, 정확한 이해를 하라고 역설하고 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삶 가운데, 명백한 주인이 되시고 늘 우리와 함께 계신, 우리가 특별한 노력이나 간구를 통해 얻을 은혜가 아닌, 그 은혜 자체인 것을 주장한다, 성령을 부어주소서가 아니라 언제나 처음부터 우리와 늘 함께 하신 분이었고 다만 우리의 영이 그 분을 받아들일수 없는, 우리 가운데 죄와 불순종의 문제가 있을 뿐이었다.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대로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대로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가 문제가 되는것은 자의식과 나름의 가치관대로 생각하다, 잘못된 사고와 옳지 못한 길로 가는 우를 범하게 된다. 말은 쉽지만 그렇게 되기가 힘들기에, 늘 겸손히 성령과 동행하며 그에 뜻을 따르는 삶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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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관한 책이다. 나의 신앙적 배경(고신)이 더욱 성령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왜곡을 가져 왔다고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이 진지하게 성령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고 말씀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기울이지 않은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성령에 관한 적지 않은 책들이 나와 있지만 내가 제대로 읽어 본 책이 기억이 안나는 이유는 아마도 나의 관심에서 성령이란 단어는 배제 되어 있었을 것이다. 막연히 성령을 받는다는 말은 무엇인가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이고 아무에게나 일어나는게 아닌 특별한 은사처럼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 권위있는 저자로 믿어지는 A.W.토저 목사님의 책이 우리의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나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성령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세우게 해 준다.
이 책에서 저자의 논조는 명확하며 분명하다. 어떤 사실을 복잡한 이론과 사상들을 내세워 설명하려 하지 않고 말씀에 근거하여 단순한 결론을 도출해 낸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오해와 문제를 만들어 내기 보다 오히려 더 설득적이고 독자로 하여금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저자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그들이 성경의 교훈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분명한 교훈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한다. 나 역시도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아는 것이 명확한 하나님의 말씀에 단순한 순종을 못하게 하고 여러 빠져나갈 변명들만 만들어 내는 모습이라는걸 새삼 깨닫게 된다.
토저는 이 책에서 말하기를 성령은 특별한 사람 그 누군가가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사람들이 누구나 받아야 하는 구원의 보편적인 내적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싸움은 세상과의 싸움인데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란 물질적이고 육적인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내제해 있는 영적인 싸움 임을 알아야 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영을 받아 무장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구원받았지만 아직도 무지하여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어리석은 열정으로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을 온전히 구하지 않고 지내고 있는건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 때, 이 영적인 싸움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성령하나님의 온전한 임재임을 깨닫게 될때 우리는 부르짖을 것이다. '성령 하나님 나에게 임하여 주옵소서'
저자는 이렇게 거듭난 신자에게 성령 충만은 가외로 하나 더 얹어주는 것이거나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더 좋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분의 전체 계획상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성령충만을 위한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있는데 첫째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둘째는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하며 셋째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고 넷째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 조언은 성령 충만을 오해 하게 만드는 확실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우리의 마음 가짐을 얘기하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그럼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몇가지 생각들을 전해주고 있는데 첫째로는 종교생활에 감정이 개입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편견 때문이며 둘째는 광신적 신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도 왠지 성령충만을 생각하면 내 자신이 주체할 수 없는 행동들로 인해 나중에 부끄러움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하여 성령충만을 구하는 기도를 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저자는 성령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 중 한분이시고 성자 예수님과 똑같이 인격적인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세번째는 성령의 능력이 없는 설교자에게서 계속해서 성령의 능력에 관한 설교를 들으면서 성령의 능력에 대한 부재를 계속해서 경험하면서 그 맘이 무의식적으로 냉랭해 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고 표현할 때 인간이 가지는 한계를 늘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분인지' 우리의 한계로 말씀해 주실 수 없기 때문에 종종 '자신이 무엇과 같은지' 를 말씀해 주신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성령에 관한 비유를 말씀에서 찾아 보면 주로 '불'로 설명된다. 구약에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신약에서는 오순절 다락방에 임하셨던 성령 하나님을 불로 표현했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불이 가지는 한가지 신앙적 통찰이 떠오르게 되는데 구약이든지 신약이든지 말씀에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때 하나님의 영이 온전히 그 영혼을 사로잡는다는 표현을 많이 본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불 같은 영이 그 사람의 영에 들어가 옛 사람, 그리고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죄악의 영들을 불로 깨끗히 태워 없애 버리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불로 상징되는 성령이 충만이 임하게 되면 나는 없어지고 온전히 그분의 뜻대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그 영혼을 통해 하나님의 영이 흘러 넘치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어째튼 토저는 이 책에서 불로 상징되는 성령님이 어떤 불의 속성을 가지시는지 적고 있는데 거룩한 영으로 불리는 성령은 '도덕적 불'이시고 우리의 예배를 진정한 영적 차원으로 끌어 올려 주시는 '영적 불' 이시며 인간의 유한한 지식을 하나님의 신령한 지혜의 차원으로 보게 하는 '지적 불' 이시며 적극적으로 결심하여 그 분의 뜻을 선택하게 하시는 '의지의 불' 이시고 우리에게 진정한 순수한 기쁨을 맛보게 하시는 '감정의 불' 이시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세상이 주는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늘에서 주어지는 진정한 힘인 성령의 충만을 구하여 받아 진정한 능력을 발휘하며 세상에 영향력을 끼지며 살아갈 것을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성령하나님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책이라고 여겨지고 누구나 부담없이 읽고 성령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규장스러운(?) 편집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책을 읽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안내자의 역활을 해 줄 규장다운 책이다.
나와 같이 성령에 대해 막연한 오해와 두려움, 그리고 성령충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무지가 있는 독자라면 한번 읽어 봄직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1~2시간정도만 정독하면 읽을 수 있으니까 모두 도전해 보시라... |
|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충만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대해 잘못 이해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러한 때 토저의 책을 접할 수 있게 됨을 고맙게 생각한다. 성령에 대한 바른 지식과 성령충만을 간구하고 사모하게 해 주는 귀한 책이라고 본다. 성령의 역사는 오늘도 일어날 수 있으며 성령충만은 오늘의 성도들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성령충만을 받아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은데 받으면 더 좋은것이 아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은데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다. 성도라면 반드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길 수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며 복을 받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 이후에도 성령의 역사는 계속 일어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순종하고 간구하는 거룩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다. 교회에서도 성령을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성령의 충만을 성도들이 받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토저는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한,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한 목사들이 성령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도자들이여 성령의 충만을 받자. 성령충만이 우리의 심령에 충만하도록 기도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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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리더십은 이 시대의 대세이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되어 우리 앞을 지나고 있다, 이제 이 흐름을 타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목회자요, 성도들의 욕구에 눈감고 있는 무능한 자요, 심지어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이기도 하다. 또한 리더십이 없어 교회를 부흥시키지 못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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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에 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구입해서 읽어본 책이다. 강렬하면서도 정확하게 성령님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 있다. 개인적으로 토저의 광팬이 되게 만든 책.. 크리스찬은 결코 타협해서는 안되며 더럽혀져서도 안된다. 거룩하신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위해...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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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누군가가 추천했던 책이 토저의 책이였다...그후에 나는
토저의 책이라면 거의 찾아 읽게되었다
그러던중 성령님에 관해 알고싶었는데 이 책을 찾았다
메세지 한마디 한마디가 힘이있고 정곡을 찔렀다...
그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았던 것은
성령님에 관한 31가지 묵상이였다...
그리 길지않은 메세지이지만
정말 이렇게만 묵상한다면 매일을 성령과 동행하며 살수있지 않을까...
이해하기 조금 힘든 성령에 대해
명쾌하게 그 의미와 성령의 행하심을 전해주는 책이다
우리는 성령을 이미 받은자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일깨워준 책!! [인상깊은구절] 세상과 동행하지말고 성령과 동행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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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성령님이다
[미니 느낀점] 이 시대의 선지자라고도 A.W. 토저는 1982년부터 1959년까지 시카고에 있는 남부 동맹교회에서 목회를 하였던 당대 복음주의 의양심으로 널리 인정된 인물이라고 한다. 난 사실 이 책을 통해 이분을 알게 되었고 궁금해서 이 분을 검색해본 결과이다. 어떤이들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도 부르고 또 어떤 이들은 선지자라고도 불렀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느낀 목사님은 참 깨끗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흔히 성령하면 이렇다할 정의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흔히 찬양집회나 기도원을 가면 분위기에 취해 열기가 뜨거워지고 때론 그 열정이 성령의 역사라는 착각을 많이 한다. 그러나 토저씨는 감정적 흥분이나 느낌은 성령님이 아니라고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성령 충만은 사람들이 기획하여 열정적인 분위기를 조정한다고 해서 역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나 또한 동감한다. 어렸을때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던 나는 왜 신앙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채 교회에서 자라왔다. 동네가 때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교회가 때론 모임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성장하면서 나의 신앙 또한 사춘기를 맞이한다. 한마디로 뜻도 모르고 다니는 교회가 싫어졌다. 엄마의 의지대로, 어렸을때부터 다녔으니까 하는 맹목적인 이유로 교회를 계속 다닐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나를 안타까워 하셨던 믿음 좋은 우리 엄마는 나를 수시로 기도원이며, 신앙서적이며, 간증테잎등을 주시며 믿음을 키우길 바라셨다. 하지만 늘 그때뿐이었다. 기도원에 갔다오면 성령충만으로 가득했지만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나의 신앙은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사실 처음부터 나는 믿음이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엄마로부터 받은 믿음이 아닌 나의 마음으로부터 뿌리내린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사실 믿음의 뿌리가 없어 늘 나무가 뽑힌채 신앙이 죽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의 정원에 신앙의 뿌리를 내린 뒤부터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태풍이 몰아쳐도 나는 고난중에 하나님을 찾았고 애통중에 하나님께 울부짖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세상의 일부분이였고 사회생활과 신앙의 중간지점에서 아직도 신앙의 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상과 철저히 담을 쌓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난 사실 아직도 정답을 모르겠고 내가 느끼면서 정답을 찾아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책속의 말] 믿음이 곧 순종이 될 때 비로소 그것이 참믿음이 된다.
만일 당신이 성령님과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의 것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포기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작은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움켜쥐고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전부를 잃고 있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성령님과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기 않은 것이다.
두려움은 육신에서 나오는 것이요, 공항은 마귀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두려워하지도 말고 공황에 빠지지도 마라.
성령충만한 생활을 하려면 물고기가 물 안에서 살듯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한다.
인간 마음속 깊은 질병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온 의지에 기인한다. 태양은 중심으로 공전하던 행성이 태양에서 떨어져 나오면 슬그머니 외계에서 찾아온 낯선 별의 인력에 끌려 그 별을 중심으로 다시 공전을 시작하게 된다. 사탄은 "내 뜻대로 살겠다."라고 선언하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그런 그가 인류에게 감염시킨 질병은 불순종과 반역이다.
"너희는 스스로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었지만 내 안에서 구원을 찾을 수 있다."
행복은 우리의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가 조화를 이룰 때 생기는 내면적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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