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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이란 조국에 대한 열정과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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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문학 하면 우리는 흔히 루쉰(魯迅)을 떠 올리고, 그를 떠 올릴 때마다 그의 대표작 [아Q정전]을 생각한다. 아마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국어 교과서에 등장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근대 계몽소설로 알려진 [아Q정전]을 대할 때마다 나는 심훈의 [상록수]를 생각했다. 사실 [아Q정전]과 [상록수]는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근대 계몽소설이라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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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문학 하면 우리는 흔히 루쉰(魯迅)을 떠 올리고, 그를 떠 올릴 때마다 그의 대표작 [Q정전]을 생각한다. 아마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국어 교과서에 등장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근대 계몽소설로 알려진 [Q정전]을 대할 때마다 나는 심훈의 [상록수]를 생각했다. 사실 [Q정전] [상록수]는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근대 계몽소설이라는 한 범주 안에 넣다 보니 그렇게 각인되지 않았나 싶다.

 

루쉰의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이며, 루쉰은 필명이라고 한다. 1881년 중국 절강성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시절 부유하게 보냈으나,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빈곤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 일본으로 건너가 의학을 공부하지만, 러일전쟁 중 동포들의 비참한 삶을 보고 중국에 필요한 것은 의학보다도 정신개조, 그리고 정신개조를 위해서는 문학이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알고서 중국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해서 1918년 신청년이란 잡지에 발표된 [광인일기]는 중국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 받고 있다. 또한 1921년 말에 [신보] [Q정전]을 연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작품이 루쉰의 작품 중 유일한 중편소설이자 대표작이 되었고, 중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지금은 세계적인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내가 처음 [Q정전]을 읽은 것이 언제인지, 그리고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오래되어 희미했지만, 그 작품을 읽고서 결코 웃어 넘길 수만은 없었다는 기억이 있다. 아마 [상록수]의 내용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영신의 죽음과 영신을 향한 동혁의 사랑이 상록수처럼 영원하리란 것을 알아채고 가슴 아파했었다는 기억처럼 말이다.

 

1900년대 초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었지만 중국 또한 봉건사회의 잔재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농민들은 자신들의 무지와 몽매로 인하여 압박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자각하지 못할 때이었다. 그렇기에 그러한 농촌에서도 가장 비천한 날품팔이꾼 아Q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장마을에서 가장 비겁하면서도 구차하게 살고, 허구한날 남에게 모욕을 당하면서 살아가지만, 허풍에 영웅심리가 강한 아Q는 자기만의 방법인 정신승리법으로 자기도취에 빠져 살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봉건시대에서 반봉건시대로 넘어오는 어정쩡한 시기, 일반 민중들이 고달픈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Q는 자신이 당한 것을 자신보다 약한 이에게 분풀이 하지만, 그것도 그렇게 만만치는 않다. 지주에게 착취당하고, 관리에게 핍박 받는 봉건시대 하층민들에게 있어 화풀이 상대는 항상 자신보다 더 약하고 비참한 사람이지만 아Q보다 더 약하고, 더 비참한 사람은 미장마을에는 없는 듯 하다. 매일 품을 팔아 돈을 손에 쥐면 술에, 노름에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기에 급급한 아Q는 어느 날 혁명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겁을 먹고 움츠러들자 자신이 혁명군임을 자처하고 떠 벌이고 다닌다. 그러나 막상 혁명군에게 조영감댁 재물을 약탈한 일당 중 하나로 오인 받아 처형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변명 한마디 하질 못한다.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중국대륙은 신해혁명의 불길이 솟구치는 사회변혁기이었지만 일반 민중에게 있어 혁명이란 변발을 자르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루쉰이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게으르고, 비겁하고, 자존심은 강하지만 자신의 생명조차 보존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중국민중들의 어리석음을 아Q를 통해 보여주고 이를 깨우치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억압받고 핍박 받으면서도 정신승리법이란 자기 기만으로 현실에 순응하고 마는 민중들의 패배의식을 깨우치려 했던 것 같다. 소설을 읽고서 자신들의 무지를 깨우치는 중국인들, Q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짓고, 쓴웃음을 짓지만 사실은 아Q의 모습이 자신들의 모습이란 걸 알고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작품이 발표되고 나서 루쉰의 명성은 대단해졌다고 한다. 그만큼 중국인들은 루쉰이 아Q를 통해 그들을 깨우치려 했던 것을, 루쉰의 중국민중에 대한 사랑을 느꼈던 것이다. 한 작가가 작품을 통해 민중을 계몽한다는 것, 그것도 직접적인 화법으로 자신들의 치부를 그대로 내보이는 것은 열정과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 작품이 시간이 흘러도 고전으로 남을 수 있고
, 또 후대사람들에게도 많은 깨우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루쉰은 [Q정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현대에 들어와 새로운 양식과 기교를 동원한 수많은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시간이 흐른 후, 어느 작품이,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작품이 고전으로 남을지 궁금해진다.



k*****1 2011.10.06. 신고 공감 11 댓글 21
리뷰 총점 종이책
아Q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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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고古문학들이 높은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단연 그 시대의 가치관과 생활상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람들이 이런 문학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썼는지 아닌지는 뒤로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근래들어 장르와 형식을 막론하고 쏟아지는 소설들 중에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후대 들어 이런 '문학적 가치'를 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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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고古문학들이 높은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단연 그 시대의 가치관과 생활상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람들이 이런 문학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썼는지 아닌지는 뒤로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근래들어 장르와 형식을 막론하고 쏟아지는 소설들 중에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후대 들어 이런 '문학적 가치'를 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루쉰(1881년 9월 25일~1936년 10월 19일)

 

루쉰(1881~1936)은 처음부터 문학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작가가 된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어릴적에는 부유했으나 집안의 몰락으로 빈곤까지 경험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후, 문학의 길을 선택했다. 한때는 일본으로 유학가서 의학을 공부하기까지 하였으나 자신의 민족(중국인)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정신의 개조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정신을 개조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문학이라고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비교적 뒤늦은 나이에 시작한 작가의 길이었으니, 데뷔도 늦다. 1918년에, 그러니까 그의 나이 37세, [신청년]에 그의 처녀작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잡는다. 그 이후로 발표하는 작품들을 통해 그는 점점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다. 루쉰은 필명이다. 그의 본명은 저우수런(중국어간체: 周树人, 정체: 周樹人, 병음: Zhōu Shùrén)으로, 자는 예재(豫才)이다.

 

'광인일기'는 중국에서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받을만큼 그 당시에 있어서 매우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루쉰의 작품을 하나라도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의 작품은 덤덤하지만 날카롭다. 감정을 배제하고 필요한 문장들로만 구성된 소설에서는 우매한 중국인의 실상이 그대로 공개된다. 그리고 '우매한 중국인'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아큐정전이다.

 

'아큐정전'은 루쉰의 작품중 유일한 중편소설이자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문학이다. 저자는 아Q(아큐; 아퀘이)를 통해서 중국인의 자기기만성과 우매함, 순박함과 비도덕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큐는 허풍쟁이이고 자존심이 세며 남들에게 영웅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길 원하지만, 모든 이들이 무시하는 중국인 최하층에 속하는 날품팔이 일꾼이다. 모든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여도 자기만의 '정신승리법'으로 스스로를 기만하고 다시 자존감을 회복한다. 아마 루쉰이 중국인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은 이 '정신승리법'일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중국인들은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줄 알았던 '정신승리법의 생각 메커니즘'이 실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고, 이 때문에 계몽하지 않은 중국인의 단체적 우매함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이 특이한 생각 메커니즘은 '광인일기'에서도 매우 자세히 드러난다. 말 그대로 광인狂人이 쓴 일기인 만큼 자신의 생각 전개과정을 매우 상세하게 기술하는 형식의 작품이다. 이를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어느정도는 지니고 있는 이 '피해망상적 생각법' 즉, 내 안에 내재한 광인의 모습에서 뜨끔할 수 있다.

 

아큐정전을 보고 프랑스의 로맹 롤랑은 '애처로운 아Q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라고 말할만큼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아큐는 애처롭다. 그건 아큐가 애처로운게 아니라 우매한 중국인의 애처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루쉰은 소설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직접 표현한 적은 없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그의 중국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어린 사랑은 말년의 루쉰을 '중국의 고리끼'라고 평가하도록 만들었다. 100년이나 된 작품이지만 시대에 뒤지지 않는 깔끔한 문체는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도 질리지 않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


h******0 2009.06.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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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가 심해 쉽게 읽기에는 어려운 책
"은유가 심해 쉽게 읽기에는 어려운 책" 내용보기
한마디로 너무 어렵다. 너무 은유가 심해 뒤에 나와 있는 해설을 읽고서야 작품의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어쩌면 번역상의 문제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겨우 두장 밖에 되지 않는 『일견소사(一件小事』>라는 작품은 무척 감동적으로 다가 왔기 때문이다. 인력거를 타고 가던 주인공이 겪게 되는 아주 짧은 이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동화를
"은유가 심해 쉽게 읽기에는 어려운 책" 내용보기
한마디로 너무 어렵다. 너무 은유가 심해 뒤에 나와 있는 해설을 읽고서야 작품의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어쩌면 번역상의 문제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겨우 두장 밖에 되지 않는 『일견소사(一件小事』>라는 작품은 무척 감동적으로 다가 왔기 때문이다. 인력거를 타고 가던 주인공이 겪게 되는 아주 짧은 이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동화를 읽는듯 했는데, 그 온갖 군더더기가 잘려 나간 이 작품은 작가의 절제된 자기 통제력이 손에 잡힐 듯 보여지는 수준작이었다. 그리고 ‘고독자’도 노신의 작가적 성향을 잘 드러내 주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두 작품 말고 나머지는 사실 읽어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경우에 따라 똑같은 부분을 두세번 읽어 보기도 했지만 결국 작가가 말하려는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적도 있다. 내 이해력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번역이 잘못된 것일까?

[인상깊은구절]
"아무것도 아닐세 어서 가세" 하지만 인력거 꾼은 들은체도 않고 손잡이를 내리면서 노파에게 손을 내밀어 팔을 잡고 일으켜세웠다. "괜찬으십니까, 할머니?" "아이구 넘어져 다친 것 같구먼" .......... 인력거 꾼은 그녀의 팔을 부축하여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앞에는 파출소가 있었다.
a********n 2002.04.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