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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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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심판이 있는 스포츠 경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면 욕을 하거나 드잡이질을 할 일도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말하자면 사는 게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인생은 주심이 관할하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온갖 반칙이나 눈속임,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 거친 몸싸움 등 모든 게 허용될 뿐만 아니라 스포츠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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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심판이 있는 스포츠 경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면 욕을 하거나 드잡이질을 할 일도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말하자면 사는 게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인생은 주심이 관할하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온갖 반칙이나 눈속임,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 거친 몸싸움 등 모든 게 허용될 뿐만 아니라 스포츠 경기에서처럼 부당함을 따질 수 있는 심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내가 규정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도 옆에서 끼어든 다른 차량에 의해 내 차가 박살나고 그 여파로 내가 장애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이건 부당하지 않느냐 한마디 따져묻거나 내 인생에 너무 심한 태클을 걸어온 게 아니냐 욕을 하거나 불평을 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인간이 만든 법에 의해 금전적 보상을 받거나 나를 그렇게 만든 상대방을 구속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이 사고 이전으로 되돌려지는 건 아니다.

 

"작은 배를 타고 어딘가를 떠나는 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물결의 움직임, 엔진이 내는 소리. 삶을 뒤에 남기고 떠나지만, 당신은 여전히 뒤에 남기고 떠나는 그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신의 일부는 그곳에 남는다. 죽음도, 최고의 죽음이라면 아마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모든 것은 기억이지만, 또 모든 것은 확장된 현재 안에서 여전히 진행중이다."    (p.130)

 

제프 다이어의 산문집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꽤나 재미있는 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알랭 드 보통도 어느 인터뷰에서 이 책을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로 꼽을 정도였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제프 다이어를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독서라는 게 누가 누구를 좋아한대, 이런 이유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편을 가르는 행위와 연관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람의 기호라는 것 또한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까닭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애호하는 또 다른 작가를 나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귀결에 이르곤 한다.

 

책의 제목만 보자면 무슨 요가 책인가, 싶겠지만 아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제목만 보아서는 안의 내용을 잘 알 수 없는 책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를테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라든가 폴 퀸네트의 수필<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등은 좋은 예이다. 이 책은 제프 다이어의 여행 산문집이다.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로마를 기점으로 리비아, 미국 뉴올리언스, 태국,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도네시아 발리, 캄보디아, 프랑스 파리, 미국 디트로이트로 이어지는 여행기이지만 장소의 이동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로마와 리비아에서는 주로 공간적 폐허를,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작가의 심리적 폐허를 소설가인 작가 자신의 필력에 담아 재미있게, 마치 소설처럼 쓰고 있다.

 

"잠깐 빛나는 행복의 표면 아래에는 절망이라는 차가운 지형이(아주 밀도가 높은) 깔려 있었다. 내가 만족감을 느끼며 차분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런저런 일에 맞서며 행복해지기 위해 나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알 수도 없는 무언가('자아'였을까?)의 중압감을 떨쳐내려 애쓰지 않았다. 나의 일부분은 한때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던 희망들을 모두 놓아버리고 끝을 맞이한, 버려지고 슬픈 노인들이 부러웠다. 언제라도 나와 그 노인들의 처지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그렇게 하라면 또 행동에 옮기지는 못햇을 것이다."    (p.263)

 

이 책은 보통 여행 에세이로 분류되지만 여타의 다른 여행 책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가 여행했던 장소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지도 않고 다만 그곳에서 40대 초반의 한 남자가 느꼈던 내면의 세계, 폐허가 된, 폐허로부터 위안을 받는 그 세계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따금 니이체나 보르헤스 등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릴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 까닭에 그가 찾았던 로마나 렙티스 마그나에서의 고대의 세계나 현대의 도시 디트로이트나 폭력에 짓밟힌 캄보디아나 그 어느 곳이든 장소가 중요했던 건 아닌 듯 보였다.

 

대한민국은 요즘 제프 다이어의 내면적 폐허를 온 국민이 집단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각 정당이 보여주는 안하무인의 행태를 보면 정말이지 곧 다가올 미래의 폐허를 한층 강화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자에게 바른말을 했다는 이유로 눈밖에 난 사람의 탈당을 유도하기 위해 후보 등록 전날까지 공천을 주지 않는 야비하고 비열한 모습을 연출했던 여당이나, 셀프 공천을 하는 걸로도 부족해 비례대표 순번을 2번으로 정했던 야당의 대표나, 신생 정당을 표방하며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던 제2야당이 계파정치의 끝판을 보여주었던 것이나 정치 혐오증을 넘어 대한민국 자체에 대한 혐오증을 심어주었다. 제프 다이어의 폐허가 내 마음의 폐허로, 그리고 대한민국의 폐허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이러다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미래의 폐허'라는 제목으로 멋진 수필 한 편씩을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s*****l 2016.03.24. 신고 공감 5 댓글 12
리뷰 총점 eBook
‘폐허’로서 ‘폐허’를 마주하기 - 제프 다이어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폐허’로서 ‘폐허’를 마주하기 - 제프 다이어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내용보기
제목에 쓰인 ‘꼼짝도 하기 싫은’은 ‘폐허가 된 사람의 마음 상태’다. 현재 내 마음도 그래서 나는 절박하게 이 책을 따라갔다. 소설, 에세이, 르포르타주 등 여러 장르의 경계를 혼합하는 그의 글쓰기 특징은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고 있다. 실제로 일어난 일과 그의 창작이 슬며시 끼어드는 장면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우리는 화려한 도시로 떠올리지만 그곳을 유명하게 만드
"‘폐허’로서 ‘폐허’를 마주하기 - 제프 다이어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내용보기

제목에 쓰인 ‘꼼짝도 하기 싫은’은 ‘폐허가 된 사람의 마음 상태’다. 현재 내 마음도 그래서 나는 절박하게 이 책을 따라갔다.

소설, 에세이, 르포르타주 등 여러 장르의 경계를 혼합하는 그의 글쓰기 특징은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고 있다. 실제로 일어난 일과 그의 창작이 슬며시 끼어드는 장면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우리는 화려한 도시로 떠올리지만 그곳을 유명하게 만드는 건 폐허의 유적물인 로마에서 그는 프로이트 『문명 속 불만』을 떠올린다. 로마는 도시가 아니라 “그 역시 오래되고 풍성한 역사를 지닌 하나의 정신적 실체”이고, “르네상스 이후 지난 몇 세기 동안 거대도시로 성장한 로마의 뒤죽박죽된 건물들 사이에서 폐허가 되어버렸다.” 실체는 매우 희박하지만 정신 영역에서는 완강한 그것. 마음의 폐허 상태에서 우리가 버티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을까. 기억, 희망, 사랑 그런 추상적인 것들. 가까이 있으면서도 특정 사람 외엔 접근할 수 없는 감옥, 영화배우 같은 그와 그녀가 있는 로마의 산 칼리스토는 그래서 유토피아처럼 그려진다. 이곳의 하늘은 헨리 제임스의 여행 에세이 『이탈리아의 시간들 Ⅰ』 의 문장 “산산이 조각난 전통처럼 파란 하늘” 같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필름이 없는 슈퍼 8밀리 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상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제프는 교통 법규 위반으로 경찰에게 울면서 호소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리스비극처럼,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모습은 담담하게 묘사한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폐허” 상태였으므로.

 

“당시에는 그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가 어떤 전환점이었을 수도 있지만, 당시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반응, 즉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 어느 지점에서는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지적인 훈련과 야망들이, 심드렁했던 약물남용과 나태함, 그리고 실망감 때문에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는 것, 나에게는 목적도 방향도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삼십 대 때보다 훨씬 적게 생각한다는 것, 나 스스로 빠른 속도로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ㅡ <쇠락과 몰락 - 로마 사람들의 연극하듯 사는 삶> 중

 

그의 여행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기 위한 관광이 아니다. ‘폐허’로서 ‘폐허’를 마주하기라고 할까.

 

“렙티스에 가기 전에 그곳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배우는 최고의 방법은 그냥 바라보는 것,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뿐이었다. 눈은 저절로 거기에 익숙해질 터였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우울한 체념 상태에서 그때까지 겪은 리비아에서의 경험을 적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책상 앞 거울에 비친 내 모습까지, 끔찍할 정도로 현실적으로, 흰머리, 툭 튀어나온 코, 비쩍 마른 목까지 그대로 옮겨 적었다. 종종 내 외모에 실망하는 순간들이 없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 나 자신이 역겨워 보인 적은 없었다. 내 인생에서 있었던 모든 비극들이 갑자기 얼굴 위에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 것만 같았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항상 보고 있는 나의 모습(내 생각과 달리 완전히 숨기지는 못한 그 모습)을 나도 우연히 흘긋 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예언이 실현되는 중이었다. 거울 안의 얼굴이 말했다.

“인생이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 거야. 숨기고 싶었던 모든 실망과 후회, 모든 쓰라림과 분노가 이제 폭발하듯 튀어나와, 그나마 남아 있던 보기 좋은 면과 희망의 마지막 조각을 지워내고 있는 거라고. 몸이 끌리는 것들에 지나치게 가치를 두며 지냈던 사람들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 이제 너도 그런 사람들, 너와는 인상이 다르다며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 수백 명의 사람들 중 하나가 되는 거야.”

ㅡ <렙티스 마그나 - 폐허의 초기 단계> 중

 

그는 이 원인을 중년이 된 나이 탓이 아닌가 의심하지만 그것은 빨리 얻고자 하는 하나의 답일 뿐이었다. “물건이 부서진 후에도 계속 쓰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를 좋아한다”면서 자신을 그렇게 여기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마음도 있었겠지만. 과거의 꿈의 공간 같은 ‘구역’을 찾는 그는 폐허로 외로움으로 계속 이동한다. 그것은 수평적인 마음이다.

 

“어쩌면 고대 유적에서 배우는 가장 간단한 교훈은, 뭐든 수직으로 세운 것은, 그게 도리아식이든, 이오니아식이든, 코린트식이든 상관없이, 훗날 경외의 대상이 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수평적인 것들이 주는 매혹에 저항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바로 그 때문에 하늘이나 바다의 수평선을 배경으로 선 고대 수직 기둥들에 더 큰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 배경의 관점, 그러니까 바다나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렙티스는 폐허의 초기 단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언젠가는 남은 유적들이 모두 사라져 사막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수평선을 방해하는 수직 기둥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것이 시간에 대한 공간의 최후의 승리일 것이다.”

ㅡ <렙티스 마그나 - 폐허의 초기 단계> 중

 

뉴올리언스 슬럼가 체류는 타란티노 영화 <펄프 픽션>처럼 지나갔고(<수평선 상의 이동 - 미시시피 강의 지루하게 움직이는 도시>), 태국의 성지이자 휴양지에서 그들은 요가나 마음 수련, 글쓰기보다 약물이나 자학적인 고행, 섹스에 빠지기 일쑤였다(<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귀찮아서 쓰지 못한 자기계발서>). 암스테르담에서 친구가 연 근사한 파티는 잠깐이고 “그냥 퍼질러 앉아서 지나온 인생 전부를, 한순간 한순간을 아쉬워해야 할 것만” 같이 좋지 않은 날씨와 약물과 방황이 하루 가득이다(<호텔 오블리비언 - 암스테르담의 기억나지 않는 행복>). 인도네시아 우붓에서는 풍경이 아니라 공놀이에 빠진다.

 

“그렇게 강한 공을 손바닥으로 받는 일에는 뭔가 깊은 만족감이 있다. 왼손으로 있는 힘껏 다시 공을 던졌다. 그레고르가 얼굴 바로 옆에서 공을 잡았다. 그가 다시 공을 던지고 나는 몸을 살짝 앞으로 숙여(정확하게) 왼손으로 잡았다. 그레고르는 내가 릴케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걸 알고 그의 시를 인용했다. “아, 우리가 용기를 내어 무한한 공간으로 던졌던 공, 다시 우리 손으로 돌아올 때는 다른 느낌이구나. 자신이 지나온 공간의 무게로 더욱 무거워졌구나.”[릴케의 시 〈비둘기, 여전히 밖에 있는〉 중]

그레고르의 뒤로 협곡이, 무한한 경계가 놓여 있었다. 공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이리저리 오가는 노란 행성이었다. 우리는 던지고 받는 일에 취해 있었다.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었겠지만 언제 끝이 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공놀이는 영원히 지속되고 있었다.”

ㅡ <무한한 경계 - 발리에서의 영원한 공놀이> 중

 

캄보디아에서는 하루 종일 제자리를 맴도는 배를 타거나 석양을 기다리는 게 일이다. 어느 아이에게서 콜라를 사야 하는 지도 고민거리다.

 

“페소아[포르투갈의 시인]가 옳았다. 석양을 보기 위해 콘스탄티노플까지 갈 이유는 없다. 석양은 세계 어디에서든 똑같으니까. 그래도 어쨌든 간다. 사람들은 콘스탄티노플과 프놈바켕에 가고, 전 세계 어디든 가서 석양을 본다. 사실 여행을 할 때 석양은 다른 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목적과 의미를 가져다준다. 그렇다고 해도 석양을 기다리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다. 석양을 기다리는 일이 하나의 활동이 된다. 정지 중인 운동이라고 할까. 게으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대단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수준의 일로 격상된다. 석양에 대한 기대 역시 노력으로 유지해야 한다. 어쨌든 일어날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셈이다. 아니,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프랭크 오하라[미국의 시인] 역시 옳았다. “해가 늘 지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해는 그냥 사라진다.” 그렇다면 석양은 언제 지는 걸까? 이 점에 대해서는 오든이 정확히 지적했다.

괴테가 깔끔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석양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십오 분 이상은

바라보지 않는다.

그저 석양을 바라보기만 할 게 아니라면 다른 일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내 생각은 그랬다.”

ㅡ <미스 캄보디아 - 석양을 기다리는 게으름> 중

 

도시에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강력한 풍경이다. 베르사체가 총을 맞아 유명해진 명소도 베르사체 때문에 그러하다. 도시라는 공간은 기묘해서 사람들이 자살하는 원인을 더위나 아르데코 양식 때문이라고 제멋대로 상상할 수도 있다.

 

“사우스비치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발코니에서 투신한 자리를 찾아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곳.”

“다시 보니 투신을 한 할머니는 대단히 사려가 깊은 사람임에 분명했다. 일부러 보도에서 조금 떨어진, 정원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자리를 골라 그리고 떨어진 것이다. 길가의 다른 물건들 위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핏자국이나 땅이 꺼진 흔적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둘이서 호텔을 더 구경하고 스무디를 더 마셨다. 오후에는 군중들 사이로 다리를 절며 지나가는 할머니, 젊은이들의 멋지게 태운 매끈한 몸, 약에 취한 마약쟁이, 문신을 새긴 채 블레이드를 타는 사람들, 단백질 보충제와 근육 강화제를 통해 잔뜩 몸을 만들어놓은 동성연애자, 날씬한 몸매를 위해 샐러드만 먹을 것 같은 아가씨 들을 보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르데코는 껍데기뿐인 화려함 뒤의 절망 또는 사람들을 자살로 이끄는 절망의 원인이 아니라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자극이었다. 군중들 사이로 지나가던 할머니의 끈기는 특히 존경스러웠다. 관절염에 걸린 한쪽 발을 열심히 다른 발 앞으로 내딛는 그 모습. 내 옆을 지나던 할머니는 갑자기 앞으로 푹 고꾸라지며(무릎에 힘이 빠졌을 것이다) 거의 넘어질 뻔했다. 다시 균형을 잡은 할머니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고, 바로 그 순간 나는 그 할머니가 그 전날에 본 할머니, 보도 옆에 쓰러져 있던 할머니와 같은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빨리 기운을 차리신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양말을 보고 그 할머니인 줄 알았다. 지저분하지만 피는 묻지 않은 그 흰색 양말을 보고 그 할머니인 줄 알았다. 지저분하지만 피는 묻지 않은 그 흰색 양말을 보고.”

ㅡ <아르데코의 절망 - 시체를 보는 관점> 중

 

고대 폐허도 디트로이트 같은 최신 폐허도 내 맘의 폐허를 압도하지 못한다.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건 안에서 내리는 비가 그칠 때이다.

 

“아무것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아무것도 확실히 내 마음을 잡아주지 못했다. 밖에 있으면 실내로 들어가고 싶었고 실내에 있을 때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가장 심할 때는 일단 좀 앉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 자리에 앉자마자 일어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래서 일어난 다음에는 다시 앉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인생을 허비했다.”

“블레이크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성지에 있었던 그의 시 전집에서 본 구절이었다. “지혜는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는 버려진 상점에서만 살 수 있다.” 하지만 조지스 마켓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늘 사람들이 오가며 현금을 내고 알코올 도수가 100도쯤 되는 지혜를 한 병씩 샀다. 다만 그들이 얻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지혜의 잊힌 사촌쯤 되는 망각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 모든 것 아래 망각의 욕망이 흐른다.’

신문을 열심히 읽고 있는 남자를 쳐다보다 모닥불에 손을 녹이는 다른 남자를 보았다(추운 날은 아니었지만, 버려진 채 지내는 시간이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몸을 덥히게 된다). 나의 말년이 그 두 사람과 비슷해진다고 해도 크게 상관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세상에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다.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두 노인과 나를 구별해주는 건 뭐였을까? 모든 것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기도 했다. 분명 내게는 렌터카가 있어서 언제든 호화로운 폰차트레인 호텔이나 공항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 공항에서 가능성만 놓고 말하면 하늘 아래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하지만 정신이나 마음의 상태까지 고려해서 비교한다면 누가 더 낫다고 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도심 속의 황야인 브러시 공원에 그렇게 앉아 있으려니 모든 것을 잃어버린 리어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 사이에 뭐가 더 낫고 어쩌고 할 게 없는 것 같았다. 행복함을 느끼는 능력 말고 인생을 판단할 기준이 뭐가 더 있을까? “그들은 뭘 바라는 걸까요? 구역을 찾는 사람들 말입니다”라고 영화 〈스토커〉의 작가는 묻는다. “행복이지요. 그 무엇보다도.” 스토커가 대답한다. 어떤 사람들이 구역에 들어갈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착하거나 나쁜 사람이 아니라 엉망이 되어버린 사람들이요”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두 노인이나 나나 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은 대충 같은 셈이다. 거기 앉아서 엉망이 되어버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잠시나마 행복한 마음이 스쳤던 게 차이일 뿐이지만, 그 행복감은 겨울날에 잠깐 비치는 햇빛 같은 것에 불과했다. 햇빛 밖으로 나가면 다시 살을 에는 추위가 느껴져 몸을 녹이려면(모두 빙 둘러서서) 모닥불에 손을 쬐는 수밖에 없다. 잠깐 빛나는 행복의 표면 아래에는 절망이라는 차가운 지형이(아주 밀도가 높은) 깔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 도로에서, 버려진 공장 건물들에 둘러싸인 채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로 앞에 기꺼이 차를 세우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기다릴 수 있었다. 그렇게 걸음을 멈추니 시간도 평소와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아마 그 장면이 영화 속 장면이나 사진처럼 보였던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저 멀리 이어진 철로를 보면 거기 몇 년 전에 지나간 마지막 기차의 모습과 기차가 지나간 후 녹이 슬어가는 선로가 보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보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멀리까지 보지는 않았다. 시간도 기차처럼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현재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다. 그 점이 이 적막한 장소가 흡인력을 가지는 이유였다. 그 흡인력을 감지하고 차를 멈춘 사람이 내가 처음인 것도 아니었다. 내가 타고 온 차의 바퀴 바로 앞에 작은 담배꽁초 더미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차에 있는 재떨이를 거기서 비운 게 분명했다.

기분이 급격히 나아졌다.”

ㅡ <안에 내리는 비 - 디트로이트에서만 쓸 수 있는 책> 중

 

블랙록시티의 묘사는 마치 지구에서 잠시 살다가는 인간의 은유 같다.

 

“블랙록시티에는 축제 기간 동안 약 2만 5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일 년의 51주 동안 블랙록 사막을 항공사진으로 찍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비바람을 제외하면 몇 천만 년째 거기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따지고 보면 그것만큼 틀린 말도 없다. 그런데 일 년에 일주일만 바로 그 텅 빈 지역에 조명의 양이나 화려함에서는 라스베이거스에 뒤지지 않는 도시가 들어선다. 일 년에 일주일 동안 그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중 하나처럼 환상적인 곳이 된다. 그런 다음 사라진다. 다시 황량한 사막만이 끝없이 펼쳐진다. 도시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흔적은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마음과 머리에 담겨 전 세계로 흩어진다.

블랙록시티는 종종 한시적 자치구로 불리기도 한다. 하킴 베이가 제안한 전복적인 개념인 한시적 자치구, 즉 “국가와 직접적으로 얽히지 않는 봉기, 어떤 영역(땅, 시간, 그리고 상상력)을 해방시키는 게릴라 작전을 펼치고, 국가가 나서서 진압하기 전에 재빨리 정리하고 다른 곳?다른 장소에서 다시 하는 것”을 가장 열광적으로 실현한 곳이 바로 블랙록시티다. 버닝맨에 적어놓은 “세상에 없는 곳Nowhere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귀는 은연중에 다른 두 단어를 암시한다. 그건 ‘지금Now’-‘여기here’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하다.

로버트 스톤의 〈다마스커스 게이트〉에 나오는 한 인물은 자신은 무엇을 믿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해방을 믿어요. 저한테 해방이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들에게도 가능하겠죠.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해방될 때까지 저의 해방은 미뤄두려고 해요.” 베이는 이런 종류의 변증법적인 연기延期를 경멸했다. “‘다른 사람들(혹은 감각을 지닌 모든 생명체)이 모두 자유로워진 다음에야 본인이 자유로워지겠다는 것’은 열반의 황홀경 안에 숨겠다는 것, 우리의 인간적 면모를 포기하고, 우리 스스로를 패배자로 규정하는 것이다.” 약간의 사람들이 때때로 해방을 성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지금.”

ㅡ <구역 - 모든 욕망이 충족되는 곳> 중

 

이런 생각을 해 볼 수도 있다. 내가 독재하는 ‘나’라는 국가를 좀 더 자유로운 자치구로 만들 수는 없을까. “여기서 지금.” 인간은 그것이 잘 안되기 때문에 온갖 곳을 다니고 페인트 축제로 서로에게 물감을 퍼붓고 인형을 태우고 하는 실정이지만.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스토커>에서 ‘구역’은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욕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곳은 바로 여기, 지금, 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자기 수양을 뜻하는 '요가'라는 단어로 문을 닫는다.

 

“릴케는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에서 ”너는 네 삶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꾸짖었다. 시 사차날라이의 불상들은 아무도 꾸짖지 않았지만, 그걸 보고 있으니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 때문에 바뀐다”라는 브로드스키[러시아 출신의 시인이자 수필가]의 문장이 떠올랐다. 오든이 여러 차례 적은 바 있는 말을 브로드스키가 의식적으로 살짝 바꾼 것이다. 1933년 오든은 “사람은 자신의 행동 때문에 바뀐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1940년의 신년 편지에서는 “우리가 바꾸어놓은 것들이 다시 우리를 바꾼다”라고 보충했고, 그로부터 십 년 후 〈이동 중〉에서는 다음과 같이 좀 더 자세하게 적었다.

 

어딘가 우리가 진정으로 다녀온 곳이 있어,

고귀한 장소들

우리가 기억하는 행동들, 얼굴들, 장면들

변하지 않는 것들, 우리가 바뀌었으므로······ ”

ㅡ <구역 - 모든 욕망이 충족되는 곳> 중

 


g******i 2019.02.10. 신고 공감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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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은 샹그릴라가 아닐까요?
"‘구역’은 샹그릴라가 아닐까요?" 내용보기
존 러스킨은 <기억의 일곱 등불; http://blog.yes24.com/document/7498515>에서 건축물의 기억에 관한 다음과 같은 설명에서 폐허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건물의 가장 위대한 영광은 돌이나 금과 같은 재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영광은 건물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에 달려 있고 말하고자 하는 바의 울림과 엄밀한 관찰의 깊이에 달려 있으며, 또한 찬성이나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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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러스킨은 <기억의 일곱 등불; http://blog.yes24.com/document/7498515>에서 건축물의 기억에 관한 다음과 같은 설명에서 폐허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건물의 가장 위대한 영광은 돌이나 금과 같은 재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영광은 건물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에 달려 있고 말하고자 하는 바의 울림과 엄밀한 관찰의 깊이에 달려 있으며, 또한 찬성이나 비난이 교차하더라도 인간애의 물결로 오랫동안 씻긴 그 벽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불가사의한 공감에 달려 있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그 증인이 인간을 마주할 때, 그리고 잠시 머물다 가는 모든 사물과 조용히 대비를 이룰 때 영광이 있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며 왕조의 탄생과 쇠퇴가 반복되고 지구의 표면과 해안의 경계가 바뀔지라도, 거기에 있는 돌은 그 고된 시간 동안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며 잊힌 시대와 다가올 시대를 서로 연결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래서 이미 그 민족 정체성의 절반을 구현하는 힘의 크기 안에 그 영광이 있다.(240~241쪽)”

 

제프 다이어의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바로 폐허로 떠난 여행기라는 카피에 홀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야기는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건물이 즐비한 로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사실은 아테네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어울렸을 법합니다만, 그리시와 이탈리아라고 하는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건축물이 무너져 내린 폐허보다는 폐허화되어가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로마의 유적에 서 있는 거대한 돌에서 역설적으로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돌 사이에 펼쳐진 고요함에서 시간의 흐름에 무심해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리비아의 렙티스 마그나에서는 수직으로 세운 것이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궁극에 가서는 그마저도 무너져 수평적으로 된 것들이 주는 매혹에 저항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웁니다.(정말 어렵습니다.)

 

그리고는 뉴올리언즈, 태국, 암스테르담, 발리 등으로 여행이 이어지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여성과의 원나잇스탠드, 마약과 같은 일탈을 반복하면서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여행지에서의 일상이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호하게 나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행에 관한 내용일 것으로 기대했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망각이 이야기의 핵심이 되면서 저자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한 겹 내보이기도 합니다. “마흔이 지나면 온 세상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처럼 되는거야. 마흔이 지나면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149쪽)”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고 했던 공자님이 들으시면 개 풀 뜯는 소리냐 하셨을 것 같습니다. 급기야는 호텔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 헤매기까지 합니다. 길을 헤매는 일은 캄보디아의 프놈펜에서 메콩강을 거슬러 시엠립으로 가는 길에 톤레삽에서 배가 좌초되는 일로 이어집니다. 그에게 있어 시엠립은 앙코르왓의 신비보다는 프놈바켕의 석양이 더 큰 의미를 남겼고, 프레룹사원에서 콜라를 파는 소녀와의 실강이기 더 기억에 남았던 모양입니다.

 

1999년에 방문했다는 파리의 에피소드를 읽기 시작하면서, 뉴올리언즈 여행이 1991년이었음을 상기하면서 이야기들이 여행순서와는 무관하게 저자의 기획의도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디트로이트에서 이 책의 주제가 드러나게 됩니다. 로마에서 처음 기획할 때는 고대 유적지의 폐허에 대한 글이 될 참이었는데, 그 사이에 자신이 폐허가 되고 말아 읽기나 쓰기는 물론 집붕력을 요구하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기하고 있던 책쓰기를 디트로이트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야 디트로이트를 그저 운전해서 지나친 기억 밖에 남아 있지 않아 도시에 대한 구체적인 인상이 없어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바다의 블랙록 사막이야말로 저자에게는 모든 욕망이 충족되는 ‘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책읽기를 마치고는 그저 어렵다는 느낌만 남은 것 같습니다. 다시 읽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불길함이...

y*****2 2015.04.25.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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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철학의 지위를 꿈꾸는 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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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자기만의 분명한 답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여행의 목적은 그저 사진 찍고 자랑하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여행 작가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내가 그것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이를 통해 내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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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자기만의 분명한 답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여행의 목적은 그저 사진 찍고 자랑하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여행 작가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내가 그것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이를 통해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뽐내기에 바쁘다. 한껏 들떠 있거나 센티해진 여행자의 감정에 내 감정이 따라갈 수는 없다. 그러니 나는 여행 에세이를 읽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이런 단정적인 생각은 나의 빈약한 독서편력만 드러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바로 이런 고집을 꺾고 싶지는 않다. 대신 나는 이 지점에서 여행 에세이가 빛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 분야는 에세이에 묶여 있더라도 소설이나 철학의 지위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처럼 몰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확보되어야 하고, 철학처럼 깊이 있는 사고가 담보되어야 한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처럼 여행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해야 하고, 진실을 꿰뚫어보는 철학처럼 그 여행을 통해 몰랐던 걸 발견하고 통찰할 줄 알아야 한다. 다행히 최근 그런 여행 에세이가 출간됐다. 철학보다 깊고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여행기!”라는 카피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알랭 드 보통의 한 인터뷰에서 제프 다이어란 이름을 처음 알았다. 그 인터뷰에서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에세이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를 꼽았다. “He is not an older gentleman just travelling around he is a hipster. (그는 점잖게 세계를 여행하는 나이 든 신사가 아니라 자유로운 힙스터이다.)”라고 제프 다이어를 평가했다. 소설처럼 몰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캐릭터가 이 책의 화자가 되는 셈이다. 또 제프 다이어는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의 프롤로그에서 이 책에 적은 일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그중 몇몇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고 고백하며 이 여행 에세이가 허구의 이야기가 포함된 것임을 밝힌다. 분명 이 여행 에세이는 소설의 지위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매력적인 주인공 제프 다이어는 어느 순간 자신이 아무런 목적과 방향도 없이 살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걸 발견한다. 그는 그 상태를 폐허라고 부른다.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다 소진되어버린 상태인 것이다. 그의 여행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폐허가 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그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진짜 폐허를 찾아 나선다. 고대 유적으로 가득한 로마와 렙티스 마그나나, 몰락한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 등 그가 마주하는 것은 모두 낡고 쇠락한 것들이다. 그는 이 여행에서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제프 다이어 자신이 이미 그런 호기심을 강하게 품고 있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시종일관 그 호기심을 따라가게 된다.

 

야망이 큰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소설의 지위만 엿보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적극적으로 품는다. 제프 다이어는 구역이라는 개념을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그에 따르면 구역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제프 다이어는 렙티스 마그나에서 자신이 구역안에 있음을 느낀다. 이곳에서 그는 제법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어쩌면 고대 유적에서 배우는 가장 간단한 교훈은, 뭐든 수직으로 세운 것은 훗날 경외의 대상이 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수평적인 것들이 주는 매혹에 저항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바로 그 때문에 하늘이나 바다의 수평선을 배경으로 선 고대 수직 기둥들에 더 큰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 배경의 관점, 그러니까 바다나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렙티스는 폐허의 초기 단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언젠가는 남은 유적들이 모두 사라져 사막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수평선을 방해하는 수직 기둥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것이 시간에 대한 공간의 최후의 승리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 알랭 드 보통이 왜 그렇게 이 여행 에세이를 강력 추천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인터뷰 원문을 발췌한다. 알랭 드 보통 역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가 단순한 여행 에세이의 틀 안에 가둬지지 않음에 주목했다.

 

Why would you recommend this book in particular, when there are so many travel books around?

 

I guess because it’s not a travel book in that sense. It’s a book about his mind, which I think is both interesting and funny. And he is charming as a writer. He is constantly flitting with ideas about all sorts of stuff not big ideas, but things such as how easy it is to lose your hotel room key and why grass is green (literally). There is lots of stuff in it, hung together by the force of his personality. You would have a hard time describing it to a publisher. In this age where books are supposed to be about one thing.

 

세상에 여행에 관련된 책이 얼마나 많은데, 왜 특별히 이 책을 추천하시는 건가요 

 

제 생각에 어떤 맥락에서 이 책은 여행 에세이가 아닙니다. 이건 그의 마음에 관한 책이죠. 흥미롭고 웃긴 그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작가로서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확인할 수 있죠. 그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생각으로 끊임없이 돌아다닙니다. 그게 대단한 생각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호텔방 열쇠를 잃어버리는 게 얼마나 쉬운지, 잔디는 왜 초록색인지 생각하는 겁니다. 이 책에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모두 작가가 지닌 개성의 힘을 잘 보여주는 것들이죠. 출판사에 이 책을 설명하는 게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책은 어떤 한 가지에 대해서만 말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니까요.

(출처 : fivebooks.com) 

s****e 2014.11.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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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도 세상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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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문명 속의 불만>에서 로마에 대해 이야기하며 보여준 상상력의 비약 덕분에 나 역시 비슷한 비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만약 이어지는 각 역사의 단계들이 공통의 공간을 공유한다고 상상해보면, 아마도 비슷한 유추를 통해 몇몇 장소들(로마, 디트로이트, 렙티스 마그나, 암스테르담, 뉴올리언스)을 시간 순으로 경험한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동시에 일어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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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문명 속의 불만>에서 로마에 대해 이야기하며 보여준 상상력의 비약 덕분에 나 역시 비슷한 비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만약 이어지는 각 역사의 단계들이 공통의 공간을 공유한다고 상상해보면, 아마도 비슷한 유추를 통해 몇몇 장소들(로마, 디트로이트, 렙티스 마그나, 암스테르담, 뉴올리언스)을 시간 순으로 경험한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동시에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속적인 것들을 동시적인 것으로 경험할 수 있다면 거리 따위는 무시할 수도 있다. 경험들은 특정한 장소와 연관해서만 기억되지만, "정신의 영역에서" 어떤 경험들은(원래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결국엔 하나의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모든 것들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다. 그게 아니라 해도 적어도 몇몇 일, 몇몇 경험은 그렇다. 연대기, 서사 혹은 이야기 대신 끝없는 일들의 축적(일종의 부정적 고고학이다)이 있을 뿐이다. 긴장감은 여전하지만(사실 긴장감밖에 없다) 다음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pp.289-290)

이제까지와는 좀 다른 글을 써보겠다고, 적어도 쓰려 노력해보겠다 말했던 게 작년 이맘때다. 계획을 세워보지 않을 수 없는 시기. 누구나 무언가를 가늠하고 결심하며 자신감에 부푼 시기. 나도 그랬다. 그러나 매년 12월은 완벽히 청개구리의 계절이다. 1월은 시작이란 말로 달콤하게 유혹하는 달이 틀림없지만 풍선은 시시하게도 금방 쪼그라들거나 터져버린다. 쓸모없는 말을 내뱉고 주워담고 정리하다가 되려 내뱉는 일련의 도돌이표에 대해 말하려면, 우선 예스블로거로서의 rararis를 조명해야 하지만, 1년간 남긴 글은 물론이고 내가 지난 시간 대해온 이 공간에 대한 사용법이 다른 해 다른 때와 달랐냐면, 간단한 자가진단만으로도 강력하게 아니라고 외칠 수 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소재와 문체, 수준에 대해 내가 나를 넘어서겠다는 호언장담이라니, 노력이나 의도 없이 허세로 내뱉은 그럴싸한 싸구려 결심이라니, 그런 되먹지 못한 자만이라니. 수월하게 넘어가는 게 좋았고 늘 해오던 대로 사는 건 그것대로 편해서 또 달라지지 못했다. 2014년은 거뜬했으나 마지막 선에 다다랐을 때 미처 숨기고 싶은 구멍을 작대기로 마구 헤집히는 뜨끔한 책을 만났으니 아직은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많은 역사가 훗날 다시 평가되듯, 나도 나를 두고 객관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매해 연말 연초가 그렇듯 지금부터 주어진 지도를 찾기 위해 또 헤매고 애태워야 할 것이다. 가고 싶은 곳과 갈 수 있는 곳,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없는 일 사이를 갈팡질팡 오락가락 또다시. 애쓰고 좌절할 것이다. 나쁜 게 아니라면 무엇이든 해볼 것이다. 꼼짝도 하기 싫지만 꼼짝해야 하는 날들에 삶을 저당잡히진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여행 내러티브로 이루어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로마, 리비아의 고대 유적인 렙티스 마그나, 뉴올리언스, 태국 코팡안, 암스테르담, 발리, 프놈펜, 파리, 마이애미, 디트로이트 등의 도시를 통해 나와 당신, 내면과 세계를 응시하는 시간을 갖는 일이다. 제프 다이어의 여행은 장소로써의 그것에만 그치는 여행의 의도를 시공간 전체로 통찰한다. 몰락과 폐허, 영광의 기운이 심상찮은 도시에서 나 혹은 나 아닌 사람들이 느끼는 '나'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로 가득하다. 미련이나 후회 때문이라면 그 어쩔 수 없는 좌절과 패배의 기분이 싫어져 돌아보기를 돌 같이 하는 편이지만, 채우고 비우는 일련의 사건을 때론 무심히 때론 적극적으로 응시하는 기회의 주어짐이 바로 그가 말하는 '구역', 구역의 구역에 딱 알맞은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밖에 있으면 실내로 들어가고 싶었고

실내에 있을 때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가장 심할 때는 일단 좀 앚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

자리에 앉자마자 일어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래서 일어난 다음에는 다시 앉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인생을 허비했다.

 

<안에 내리는 비, 디트로이트에서만 쓸 수 있는 책> 중에서

 

 

앞으로도 여러 글들을 쓰겠지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한순간 도깨비 방망이 요술처럼 뿅하고 달라질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을 뿐 한순간도 몰랐던 적 없다. 몇 시간이면 나는 다시 폐허로 간다. 그 폐허는 '다음'이 아니라 지금과 '다른' 곳으로, 여기가 아닌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서 조금 더 움직인 곳일 것이다. 드디어 알게 되었다. 인정해버리면 편하다. 악착같이 내가 나 아닌 나보다 훨씬 나은 내가 되리라는 높은 기대보다는 작고 모자라며 때론 형편없는 나지만 변하고 달라지기도 하는 나란 걸 인정하는 게 순리에 닿아있는 일임을. 그렇지만 다른 '구역'을 만들어나가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며, '다른' 구역이 없다고 믿거나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꼼짝하지 않고도 내가 있는 세상에서 가장 먼 곳까지 속도와 거리를 조절하며 다녀올 줄 아는 사람이다. 당신이 보는 꼼짝하지 않는 나는 어쩌면 완전한 생명체로서의 내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더이상은 그 사실이 두렵지 않다.

s*****d 2014.12.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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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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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이나 이 책을 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급한 일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책을 펼칠 엄두도 낼 수 없는 지경이었음에도 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주 감동적이었다거나 아주 절실했다거나 하는 그런 인상이 아니었다. 유쾌함이었다. 더할 수 없이 가볍고도 웃기는 유쾌함.   빌 브라이슨 이후로 오랜만에 만나본 유머였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귀찮아하는 듯 게으른 듯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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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이나 이 책을 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급한 일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책을 펼칠 엄두도 낼 수 없는 지경이었음에도 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주 감동적이었다거나 아주 절실했다거나 하는 그런 인상이 아니었다. 유쾌함이었다. 더할 수 없이 가볍고도 웃기는 유쾌함.

 

빌 브라이슨 이후로 오랜만에 만나본 유머였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귀찮아하는 듯 게으른 듯하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기본적으로 그런 자세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런 세세한 관찰과 잦은 여행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소 퇴폐적으로 보이는 생활태도도 내 취향이 전혀 아니지만 넉넉히 이해해 줄만할 정도이다.(마리화나를 꽤 좋아하기는 한다.) 이런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봐 주겠군, 하는 마음.

 

은근히 작가의 태도나 말투까지 따라 해 보는 스스로를 느끼면서 내 속의 냉소를 확인했다. 잔뜩 숨겨 왔던 내 이중성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와 같은 용기나 대담함이 없어 감추어 왔던 반항적인 속성이 글을 따라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작가에 대한 호감이 더 솟았으리라. '나의 이런 면과 유사한 속성을 가진 사람이 또 있었구나, 이 또한 그런 대로 괜찮은 멋이었구나.' 현실에서는 내보일 수 없는 엉뚱하고 무책임한 듯 보이는 태도, 작가라서 이해가 되는 범주의 행동들.

 

요가에 관한 책이 아니다. 제목에만 이 단어가 쓰였을 뿐, 요가의 효과와는 연결될 수 있을 듯하지만 요가 동작을 하나라도 기대한다면 곤란하다.(내가 제목에 속았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으로 요가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자유롭고도 제멋대로인 듯한 여정, 내 마음에 아주 들었던 기간이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15.04.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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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기행문을 읽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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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토요일 이틀동안 강원도 원주와 평창 대관령을 다녀왔다. 날씨가 흐려서 출발할때 혹시나 비가 올까봐 우산을 챙겨서 차에 올랐다. 대구를 지나 안동에 접어들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대구로 곧장난 새도로 달려서 그런지 원주까지 3시간 정도 걸렸을 것이다. 중도에 치악휴게소에 들러서 이른 점심을 먹지 않았다면. 치악휴게소의 음식들은 정말 뜨내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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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토요일 이틀동안 강원도 원주와 평창 대관령을 다녀왔다. 날씨가 흐려서 출발할때 혹시나 비가 올까봐 우산을 챙겨서 차에 올랐다. 대구를 지나 안동에 접어들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대구로 곧장난 새도로 달려서 그런지 원주까지 3시간 정도 걸렸을 것이다. 중도에 치악휴게소에 들러서 이른 점심을 먹지 않았다면. 치악휴게소의 음식들은 정말 뜨내기들이 먹을 음식이니 맛있게 잘 만들 필요가 없다고 소리치는 듯했다. 다먹기도 전에 배가 불렀고 반쯤 먹었을때는 참 맛이 없다는 걸 새삼 각인 시켜주었다. 25인승 미니 버스의 중간 쯤에 자리를 잡았지만 참 불편했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아서 책을 꺼내 들었다. 바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였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라니 처음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책 소개 글 때문이었다. 알랭드 보통과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 처음부터 이 책은 나를 사로 잡았다. 뭐라해야하나 몇장을 넘기기도 전에 "응? 이 작가 참 엉뚱한데?"로 출발했다가 책장을 넘길때마다 "알랭드보통이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할 수 밖에 없겠네."라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은 정말 최근 내가 읽은 어떤 책보다 나를 사로잡았다. 30년전에 니코스 카잔 차키스가 한번 그랬고, 이번에는 제프 다이어가 그랬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고 정말 자유롭게 자유를 만끽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를 읽으면서 이 책이 기행문인가? 소설인가? 자서전인가? 철학서적인가? 여러가지 재미를 동시에 주었다. 여행을 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자유롭게 사귀고, 때론 사랑하고, 때론 방황하고,때론 방탕하다가 우울하기도 한 참 다양한 감정으로 읽을 수 있는 수작이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아무래도 암스테르담의 오블리비언 호텔과 인도네시아의 우붓이었다. 호텔 오블리비언 에서는 마약에 취해서 오블리비언을 찾아헤메던 상황이었다. 내 느낌은 마치 노자나 장자를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해야하나? 내 의견에 반대할 사람도 많겠지만 나는 그랬다.

 이런 장면이 있었다. 작가는 새로 산 바지를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나왔다. 그런데 약에 취해서 바지를 뒤집어 입은채였다.그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뒤집어 입었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는 외부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뒤집어 입었다고 할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그게 정상이라고 말한다. 자기 스스로가 뒤집혀버렸기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다분하지만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완벽히 정확한 분석이라고 우긴다. 말하자면 말장난에 지나지 않은 것같지만 내가 그렇게 입기로 결정했다면 뒤집히지 않았다는 발상도 가능한게 아닐까?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우붓을 여행하면서 친구와 나누는 대화는 전망좋다라는 말에 관한 것이었다. 그 대화를 곱씹어보면서 내머리속에 언뜻 떠오른 생각은 마치 조선시대의 湖洛론을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인성과 물성은 같은가?아니면 다른가? 호론에서는 다르다이고 낙론에서는 아니다 같다라고 서로 싸운다.

 물론 나의 논리는 비약이 좀 심하기는 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아무튼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은 그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자유로운 영혼을 만끽하며 자유로이 책을 읽어서 좋았다. 

h*****9 2014.12.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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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제프 다이어의 여행 산문집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제프 다이어의 여행 산문집" 내용보기
제목을 보고 '앗, 나를 위한 책이다!'라고 생각했다. 요가를 하면 몸이 가뿐해지고 좋다는 것을 알지만, 한 번 거르면 자꾸 귀찮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먼저 의아한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책은 요가 책이 아니라 여행 산문집이기때문이다. 그 점이 이 책의 첫 번째 반전이었다. 독특한 제목을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제프 다이어의 여행 산문집" 내용보기
 

제목을 보고 '앗, 나를 위한 책이다!'라고 생각했다. 요가를 하면 몸이 가뿐해지고 좋다는 것을 알지만, 한 번 거르면 자꾸 귀찮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먼저 의아한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책은 요가 책이 아니라 여행 산문집이기때문이다. 그 점이 이 책의 첫 번째 반전이었다. 독특한 제목을 짓고,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는 책, 일단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제프 다이어. "영국 최고의 생존 작가" "국가적인 보물" "영국문학의 르네상스인"등으로 평가받는 영국 최고의 논픽션 작가이자 소설가. 그의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알랭 드 보통 등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작가 소개에 솔깃해진다. 이 책이 2004년 W.H 스미스 가장 훌륭한 여행서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었다.

 

보통 '여행'이라고 하면 바쁜 일정으로 빠듯하게 돌아다니며, 관광지 위주로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오는 여행기를 접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배낭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곳에 가보면, 다른 방식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가끔은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때로는 너무도 솔직담백하고,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듯한 느낌마저 들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처음에는 작가 스스로 실제로 일어난 일과 머릿속에서만 일어난 일이 섞여 있다고 고백했다는 말에 괜시리 사실과 상상을 구분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읽어나가면서 그런 작업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특이한 여행담에 집중해서 읽어나가는 것 자체로 신선했으니까.

 

이 책을 읽게 만든 제목인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소제목에 나오기도 한다. 귀찮아서 쓰지 못한 자기계발서라! 흥미로운걸!

케이트는 내가 "무슨 작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어떤 글을 쓰냐고 물어보았다.

"자기계발서를 하나 써볼까 생각 중입니다." 내가 말했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라고."

"귀찮아서 못 쓰고 계신 것 같은데요. 맞죠?"

"들켰네요." (120쪽)

 

'이런 여행도 있구나!' 이 책을 읽으며 세계각국의 다양한 여행객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만의 어조가 있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어찌되었든 다른 사람의 여행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여행에 대한 책이 여행에 관한 이야기로만 채워지지 않고, 저자의 다양한 생각이 글로 표출된 것이기에 색다른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s*****a 2014.11.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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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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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책 제목만 봤다면 어떤 내용을 기대하겠는가. 어찌됐든 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장르를 확인할 수밖에 없으니. 이 책은 제프 다이어의 여행 산문집이다. 왜? 여행 중에 쓴 글이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벗어날 수 없는 오류라고 해야 하나. 무엇이든 분류하고 규정지어야 하는 세상의 틀에 맞춘다면 여행서가 맞을 것이다.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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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책 제목만 봤다면 어떤 내용을 기대하겠는가.

어찌됐든 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장르를 확인할 수밖에 없으니.

이 책은 제프 다이어의 여행 산문집이다. 왜? 여행 중에 쓴 글이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벗어날 수 없는 오류라고 해야 하나. 무엇이든 분류하고 규정지어야 하는 세상의 틀에 맞춘다면 여행서가 맞을 것이다. 그걸 정해놓지 않으면 출간된 책을 서점에서 진열할 때 곤란할테니까 말이다.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틀 속에 들어가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는 아이러니.

제프 다이어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굉장히 독특한 레시피를 지닌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떠올리는 여행지라면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풍경을 지녔거나 문화적 가치를 지닌 장소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폐허를 찾아간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역사적 자료를 찾아본다거나 주제를 정한 여행이 아니다.

"나에게는 목적도 방향도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삼십 대 때보다 훨씬 적게 생각한다는 것, 나 스스로 빠른 속도로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32p)

처음 등장하는 로마에서의 여행을 보면서 단번에 알아차린 그것. 그의 여행에서 공감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가 바라본 폐허처럼, 나 역시 이 책을 그러한 마음으로 읽으면 되겠구나. 프롤로그에서 그는 이 책에 적은 일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그중 몇몇은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고 고백한다. 여행을 했다는 사실적 요소와 그 과정 속 이야기에 가미된 허구적 요소를 굳이 가려낼 필요가 있을까. 결론은, 그럴 필요없다.

여행지에서 만난 여인들이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한들 따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하나의 풍경처럼 스쳐지나가면 그뿐.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한 남자가 주인공인 한 편의 소설을 읽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어차피 제프 다이어라는 인물은 내게 소설 속 주인공처럼 비현실적인 인물이니까.

중요한 건 여행이 주는 경험, 즉 내면의 목소리가 아닐까. 동일한 장소를 여행한다고 해서 그와 같은 생각이나 느낌을 가지진 않을 것이다. 또한 그의 글을 읽는다고해서 그 생각과 느낌이 내 것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뭔가 독특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만약 내게도 아주 조금 작가의 피가 흐른다면 글로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지금껏 내가 본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다는 상상은 할 수 있다. 상상 속에서 벌어질만한 일들을 제프 다이어의 여행 산문집에서 만난 거라고 말하고 싶다. 경험하지 못한 일들은 그저 상상이나 꿈이 만든 허구의 것이니까. 내게는 현실이 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외면하기에는 뭔가 궁금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결말을 보지 못한 소설을 읽은 것 같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궁금증은 사라진다.

YES마니아 : 로얄 a*****7 2014.11.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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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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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도 재미있고 제목도 재미있는 책이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그런데 여행 에세이다. 꼼짝도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여행에 대한 단상을 담은 산문집이라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이 책의 주인공은 제프 다이어.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내재된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린 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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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도 재미있고 제목도 재미있는 책이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그런데 여행 에세이다. 꼼짝도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여행에 대한 단상을 담은 산문집이라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제프 다이어.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내재된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린 이른바 '소진' 번아웃 된 상태임을 깨닫는다. 
소진(消盡). 요즘들어 자주 듣게 되는 단어가 아닌가? 그래 이 이야기는 어느 누구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제프는 어디에서부터 자신이 이토록 황폐해졌는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는 진짜로 솨락하거나 이미 페허가 된 장소들을 찾아나선다.
저자는 고대 유적으로 가득한 로마와 렙티스 마그나나, 지금은 몰락한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캄보디아 등을 돌아다닌다. 모두 한때는 번영을 누렸지만 지금은 쇠락해 흔적만 남아있는 장소들이다.  그가 마주하는 것은 모두 낡고 쇠락한 것들이다. 책의 부제가 '왜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인 까닭이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하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51쪽)
책중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어디선가도 이것과 같은 의미의 말을 들은적이 있는데,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다시 그 일상에서 살기위한 충전을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는 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것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떠나는 쇠락한 곳으로의 여행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폐허라는 말 때문에 얼핏 들으면 스산하고 암울해보이지만.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이전 과는 다른 새로운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저자와 같이 과거로의 여행은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가지는 묘미는 단지 여행에세이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는 여행을 떠나지만 정작 여행지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대신 저자가 머무는 공간과 행동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가 이어진다. 저자는 끊임없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주변의 사물들. 자연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아 모여라~ 하는 책인데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

결국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에 있든.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그만 달리한다면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져보인다는 것. 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한번 저자처럼 따라해보고 싶어진다. 몸은 당장 떠나지 못해도 마음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지 않은가...


d****a 2014.11.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