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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심판이 있는 스포츠 경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면 욕을 하거나 드잡이질을 할 일도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말하자면 사는 게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인생은 주심이 관할하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온갖 반칙이나 눈속임,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 거친 몸싸움 등 모든 게 허용될 뿐만 아니라 스포츠 경기에서처럼 부당함을 따질 수 있는 심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내가 규정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도 옆에서 끼어든 다른 차량에 의해 내 차가 박살나고 그 여파로 내가 장애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이건 부당하지 않느냐 한마디 따져묻거나 내 인생에 너무 심한 태클을 걸어온 게 아니냐 욕을 하거나 불평을 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인간이 만든 법에 의해 금전적 보상을 받거나 나를 그렇게 만든 상대방을 구속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이 사고 이전으로 되돌려지는 건 아니다.
"작은 배를 타고 어딘가를 떠나는 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물결의 움직임, 엔진이 내는 소리. 삶을 뒤에 남기고 떠나지만, 당신은 여전히 뒤에 남기고 떠나는 그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신의 일부는 그곳에 남는다. 죽음도, 최고의 죽음이라면 아마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모든 것은 기억이지만, 또 모든 것은 확장된 현재 안에서 여전히 진행중이다." (p.130)
제프 다이어의 산문집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꽤나 재미있는 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알랭 드 보통도 어느 인터뷰에서 이 책을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로 꼽을 정도였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제프 다이어를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독서라는 게 누가 누구를 좋아한대, 이런 이유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편을 가르는 행위와 연관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람의 기호라는 것 또한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까닭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애호하는 또 다른 작가를 나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귀결에 이르곤 한다.
책의 제목만 보자면 무슨 요가 책인가, 싶겠지만 아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제목만 보아서는 안의 내용을 잘 알 수 없는 책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를테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라든가 폴 퀸네트의 수필<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등은 좋은 예이다. 이 책은 제프 다이어의 여행 산문집이다.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로마를 기점으로 리비아, 미국 뉴올리언스, 태국,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도네시아 발리, 캄보디아, 프랑스 파리, 미국 디트로이트로 이어지는 여행기이지만 장소의 이동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로마와 리비아에서는 주로 공간적 폐허를,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작가의 심리적 폐허를 소설가인 작가 자신의 필력에 담아 재미있게, 마치 소설처럼 쓰고 있다.
"잠깐 빛나는 행복의 표면 아래에는 절망이라는 차가운 지형이(아주 밀도가 높은) 깔려 있었다. 내가 만족감을 느끼며 차분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런저런 일에 맞서며 행복해지기 위해 나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알 수도 없는 무언가('자아'였을까?)의 중압감을 떨쳐내려 애쓰지 않았다. 나의 일부분은 한때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던 희망들을 모두 놓아버리고 끝을 맞이한, 버려지고 슬픈 노인들이 부러웠다. 언제라도 나와 그 노인들의 처지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그렇게 하라면 또 행동에 옮기지는 못햇을 것이다." (p.263)
이 책은 보통 여행 에세이로 분류되지만 여타의 다른 여행 책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가 여행했던 장소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지도 않고 다만 그곳에서 40대 초반의 한 남자가 느꼈던 내면의 세계, 폐허가 된, 폐허로부터 위안을 받는 그 세계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따금 니이체나 보르헤스 등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릴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 까닭에 그가 찾았던 로마나 렙티스 마그나에서의 고대의 세계나 현대의 도시 디트로이트나 폭력에 짓밟힌 캄보디아나 그 어느 곳이든 장소가 중요했던 건 아닌 듯 보였다.
대한민국은 요즘 제프 다이어의 내면적 폐허를 온 국민이 집단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각 정당이 보여주는 안하무인의 행태를 보면 정말이지 곧 다가올 미래의 폐허를 한층 강화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자에게 바른말을 했다는 이유로 눈밖에 난 사람의 탈당을 유도하기 위해 후보 등록 전날까지 공천을 주지 않는 야비하고 비열한 모습을 연출했던 여당이나, 셀프 공천을 하는 걸로도 부족해 비례대표 순번을 2번으로 정했던 야당의 대표나, 신생 정당을 표방하며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던 제2야당이 계파정치의 끝판을 보여주었던 것이나 정치 혐오증을 넘어 대한민국 자체에 대한 혐오증을 심어주었다. 제프 다이어의 폐허가 내 마음의 폐허로, 그리고 대한민국의 폐허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이러다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미래의 폐허'라는 제목으로 멋진 수필 한 편씩을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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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쓰인 ‘꼼짝도 하기 싫은’은 ‘폐허가 된 사람의 마음 상태’다. 현재 내 마음도 그래서 나는 절박하게 이 책을 따라갔다. 소설, 에세이, 르포르타주 등 여러 장르의 경계를 혼합하는 그의 글쓰기 특징은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고 있다. 실제로 일어난 일과 그의 창작이 슬며시 끼어드는 장면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우리는 화려한 도시로 떠올리지만 그곳을 유명하게 만드는 건 폐허의 유적물인 로마에서 그는 프로이트 『문명 속 불만』을 떠올린다. 로마는 도시가 아니라 “그 역시 오래되고 풍성한 역사를 지닌 하나의 정신적 실체”이고, “르네상스 이후 지난 몇 세기 동안 거대도시로 성장한 로마의 뒤죽박죽된 건물들 사이에서 폐허가 되어버렸다.” 실체는 매우 희박하지만 정신 영역에서는 완강한 그것. 마음의 폐허 상태에서 우리가 버티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을까. 기억, 희망, 사랑 그런 추상적인 것들. 가까이 있으면서도 특정 사람 외엔 접근할 수 없는 감옥, 영화배우 같은 그와 그녀가 있는 로마의 산 칼리스토는 그래서 유토피아처럼 그려진다. 이곳의 하늘은 헨리 제임스의 여행 에세이 『이탈리아의 시간들 Ⅰ』 의 문장 “산산이 조각난 전통처럼 파란 하늘” 같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필름이 없는 슈퍼 8밀리 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상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제프는 교통 법규 위반으로 경찰에게 울면서 호소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리스비극처럼,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모습은 담담하게 묘사한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폐허” 상태였으므로.
그의 여행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기 위한 관광이 아니다. ‘폐허’로서 ‘폐허’를 마주하기라고 할까.
그는 이 원인을 중년이 된 나이 탓이 아닌가 의심하지만 그것은 빨리 얻고자 하는 하나의 답일 뿐이었다. “물건이 부서진 후에도 계속 쓰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를 좋아한다”면서 자신을 그렇게 여기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마음도 있었겠지만. 과거의 꿈의 공간 같은 ‘구역’을 찾는 그는 폐허로 외로움으로 계속 이동한다. 그것은 수평적인 마음이다.
뉴올리언스 슬럼가 체류는 타란티노 영화 <펄프 픽션>처럼 지나갔고(<수평선 상의 이동 - 미시시피 강의 지루하게 움직이는 도시>), 태국의 성지이자 휴양지에서 그들은 요가나 마음 수련, 글쓰기보다 약물이나 자학적인 고행, 섹스에 빠지기 일쑤였다(<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귀찮아서 쓰지 못한 자기계발서>). 암스테르담에서 친구가 연 근사한 파티는 잠깐이고 “그냥 퍼질러 앉아서 지나온 인생 전부를, 한순간 한순간을 아쉬워해야 할 것만” 같이 좋지 않은 날씨와 약물과 방황이 하루 가득이다(<호텔 오블리비언 - 암스테르담의 기억나지 않는 행복>). 인도네시아 우붓에서는 풍경이 아니라 공놀이에 빠진다.
캄보디아에서는 하루 종일 제자리를 맴도는 배를 타거나 석양을 기다리는 게 일이다. 어느 아이에게서 콜라를 사야 하는 지도 고민거리다.
도시에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강력한 풍경이다. 베르사체가 총을 맞아 유명해진 명소도 베르사체 때문에 그러하다. 도시라는 공간은 기묘해서 사람들이 자살하는 원인을 더위나 아르데코 양식 때문이라고 제멋대로 상상할 수도 있다.
고대 폐허도 디트로이트 같은 최신 폐허도 내 맘의 폐허를 압도하지 못한다.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건 안에서 내리는 비가 그칠 때이다.
블랙록시티의 묘사는 마치 지구에서 잠시 살다가는 인간의 은유 같다.
이런 생각을 해 볼 수도 있다. 내가 독재하는 ‘나’라는 국가를 좀 더 자유로운 자치구로 만들 수는 없을까. “여기서 지금.” 인간은 그것이 잘 안되기 때문에 온갖 곳을 다니고 페인트 축제로 서로에게 물감을 퍼붓고 인형을 태우고 하는 실정이지만.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스토커>에서 ‘구역’은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욕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곳은 바로 여기, 지금, 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자기 수양을 뜻하는 '요가'라는 단어로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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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러스킨은 <기억의 일곱 등불; http://blog.yes24.com/document/7498515>에서 건축물의 기억에 관한 다음과 같은 설명에서 폐허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건물의 가장 위대한 영광은 돌이나 금과 같은 재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영광은 건물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에 달려 있고 말하고자 하는 바의 울림과 엄밀한 관찰의 깊이에 달려 있으며, 또한 찬성이나 비난이 교차하더라도 인간애의 물결로 오랫동안 씻긴 그 벽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불가사의한 공감에 달려 있다. 오랜 시간을 견뎌온 그 증인이 인간을 마주할 때, 그리고 잠시 머물다 가는 모든 사물과 조용히 대비를 이룰 때 영광이 있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며 왕조의 탄생과 쇠퇴가 반복되고 지구의 표면과 해안의 경계가 바뀔지라도, 거기에 있는 돌은 그 고된 시간 동안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며 잊힌 시대와 다가올 시대를 서로 연결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래서 이미 그 민족 정체성의 절반을 구현하는 힘의 크기 안에 그 영광이 있다.(240~241쪽)”
제프 다이어의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바로 폐허로 떠난 여행기라는 카피에 홀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야기는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건물이 즐비한 로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사실은 아테네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어울렸을 법합니다만, 그리시와 이탈리아라고 하는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건축물이 무너져 내린 폐허보다는 폐허화되어가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로마의 유적에 서 있는 거대한 돌에서 역설적으로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돌 사이에 펼쳐진 고요함에서 시간의 흐름에 무심해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리비아의 렙티스 마그나에서는 수직으로 세운 것이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궁극에 가서는 그마저도 무너져 수평적으로 된 것들이 주는 매혹에 저항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웁니다.(정말 어렵습니다.)
그리고는 뉴올리언즈, 태국, 암스테르담, 발리 등으로 여행이 이어지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여성과의 원나잇스탠드, 마약과 같은 일탈을 반복하면서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여행지에서의 일상이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모호하게 나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행에 관한 내용일 것으로 기대했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망각이 이야기의 핵심이 되면서 저자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한 겹 내보이기도 합니다. “마흔이 지나면 온 세상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처럼 되는거야. 마흔이 지나면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149쪽)”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고 했던 공자님이 들으시면 개 풀 뜯는 소리냐 하셨을 것 같습니다. 급기야는 호텔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 헤매기까지 합니다. 길을 헤매는 일은 캄보디아의 프놈펜에서 메콩강을 거슬러 시엠립으로 가는 길에 톤레삽에서 배가 좌초되는 일로 이어집니다. 그에게 있어 시엠립은 앙코르왓의 신비보다는 프놈바켕의 석양이 더 큰 의미를 남겼고, 프레룹사원에서 콜라를 파는 소녀와의 실강이기 더 기억에 남았던 모양입니다.
1999년에 방문했다는 파리의 에피소드를 읽기 시작하면서, 뉴올리언즈 여행이 1991년이었음을 상기하면서 이야기들이 여행순서와는 무관하게 저자의 기획의도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디트로이트에서 이 책의 주제가 드러나게 됩니다. 로마에서 처음 기획할 때는 고대 유적지의 폐허에 대한 글이 될 참이었는데, 그 사이에 자신이 폐허가 되고 말아 읽기나 쓰기는 물론 집붕력을 요구하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기하고 있던 책쓰기를 디트로이트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야 디트로이트를 그저 운전해서 지나친 기억 밖에 남아 있지 않아 도시에 대한 구체적인 인상이 없어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바다의 블랙록 사막이야말로 저자에게는 모든 욕망이 충족되는 ‘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책읽기를 마치고는 그저 어렵다는 느낌만 남은 것 같습니다. 다시 읽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불길함이... |
여행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자기만의 분명한 답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여행의 목적은 그저 사진 찍고 자랑하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여행 작가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내가 그것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이를 통해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뽐내기에 바쁘다. 한껏 들떠 있거나 센티해진 여행자의 감정에 내 감정이 따라갈 수는 없다. 그러니 나는 여행 에세이를 읽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이런 단정적인 생각은 나의 빈약한 독서편력만 드러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바로 이런 고집을 꺾고 싶지는 않다. 대신 나는 이 지점에서 여행 에세이가 빛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 분야는 에세이에 묶여 있더라도 소설이나 철학의 지위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처럼 몰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확보되어야 하고, 철학처럼 깊이 있는 사고가 담보되어야 한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처럼 여행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해야 하고, 진실을 꿰뚫어보는 철학처럼 그 여행을 통해 몰랐던 걸 발견하고 통찰할 줄 알아야 한다. 다행히 최근 그런 여행 에세이가 출간됐다. “철학보다 깊고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여행기!”라는 카피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알랭 드 보통의 한 인터뷰에서 제프 다이어란 이름을 처음 알았다. 그 인터뷰에서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에세이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를 꼽았다. “He is not an older gentleman just travelling around – he is a hipster. (그는 점잖게 세계를 여행하는 나이 든 신사가 아니라 자유로운 힙스터이다.)”라고 제프 다이어를 평가했다. 소설처럼 몰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캐릭터가 이 책의 화자가 되는 셈이다. 또 제프 다이어는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의 프롤로그에서 “이 책에 적은 일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그중 몇몇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고 고백하며 이 여행 에세이가 허구의 이야기가 포함된 것임을 밝힌다. 분명 이 여행 에세이는 소설의 지위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매력적인 주인공 제프 다이어는 어느 순간 자신이 아무런 목적과 방향도 없이 살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걸 발견한다. 그는 그 상태를 “폐허”라고 부른다.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다 소진되어버린 상태인 것이다. 그의 여행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폐허가 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그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진짜 폐허를 찾아 나선다. 고대 유적으로 가득한 로마와 렙티스 마그나나, 몰락한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 등 그가 마주하는 것은 모두 낡고 쇠락한 것들이다. 그는 이 여행에서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제프 다이어 자신이 이미 그런 호기심을 강하게 품고 있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시종일관 그 호기심을 따라가게 된다. 야망이 큰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소설의 지위만 엿보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적극적으로 품는다. 제프 다이어는 “구역”이라는 개념을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그에 따르면 “구역”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제프 다이어는 렙티스 마그나에서 자신이 “구역” 안에 있음을 느낀다. 이곳에서 그는 제법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어쩌면 고대 유적에서 배우는 가장 간단한 교훈은, 뭐든 수직으로 세운 것은 훗날 경외의 대상이 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수평적인 것들이 주는 매혹에 저항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바로 그 때문에 하늘이나 바다의 수평선을 배경으로 선 고대 수직 기둥들에 더 큰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 배경의 관점, 그러니까 바다나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렙티스는 폐허의 초기 단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언젠가는 남은 유적들이 모두 사라져 사막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수평선을 방해하는 수직 기둥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것이 시간에 대한 공간의 최후의 승리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 알랭 드 보통이 왜 그렇게 이 여행 에세이를 강력 추천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인터뷰 원문을 발췌한다. 알랭 드 보통 역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가 단순한 여행 에세이의 틀 안에 가둬지지 않음에 주목했다. Why would you recommend this book in particular, when there are so many travel books around? I guess because it’s not a travel book in that sense. It’s a book about his mind, which I think is both interesting and funny. And he is charming as a writer. He is constantly flitting with ideas about all sorts of stuff – not big ideas, but things such as how easy it is to lose your hotel room key and why grass is green (literally). There is lots of stuff in it, hung together by the force of his personality. You would have a hard time describing it to a publisher. In this age where books are supposed to be about one thing. 세상에 여행에 관련된 책이 얼마나 많은데, 왜 특별히 이 책을 추천하시는 건가요 제 생각에 어떤 맥락에서 이 책은 여행 에세이가 아닙니다. 이건 그의 마음에 관한 책이죠. 흥미롭고 웃긴 그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작가로서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확인할 수 있죠. 그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생각으로 끊임없이 돌아다닙니다. 그게 대단한 생각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호텔방 열쇠를 잃어버리는 게 얼마나 쉬운지, 잔디는 왜 초록색인지 생각하는 겁니다. 이 책에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모두 작가가 지닌 개성의 힘을 잘 보여주는 것들이죠. 출판사에 이 책을 설명하는 게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책은 어떤 한 가지에 대해서만 말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니까요. (출처 : fivebooks.com) |
이제까지와는 좀 다른 글을 써보겠다고, 적어도 쓰려 노력해보겠다 말했던 게 작년 이맘때다. 계획을 세워보지 않을 수 없는 시기. 누구나 무언가를 가늠하고 결심하며 자신감에 부푼 시기. 나도 그랬다. 그러나 매년 12월은 완벽히 청개구리의 계절이다. 1월은 시작이란 말로 달콤하게 유혹하는 달이 틀림없지만 풍선은 시시하게도 금방 쪼그라들거나 터져버린다. 쓸모없는 말을 내뱉고 주워담고 정리하다가 되려 내뱉는 일련의 도돌이표에 대해 말하려면, 우선 예스블로거로서의 rararis를 조명해야 하지만, 1년간 남긴 글은 물론이고 내가 지난 시간 대해온 이 공간에 대한 사용법이 다른 해 다른 때와 달랐냐면, 간단한 자가진단만으로도 강력하게 아니라고 외칠 수 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소재와 문체, 수준에 대해 내가 나를 넘어서겠다는 호언장담이라니, 노력이나 의도 없이 허세로 내뱉은 그럴싸한 싸구려 결심이라니, 그런 되먹지 못한 자만이라니. 수월하게 넘어가는 게 좋았고 늘 해오던 대로 사는 건 그것대로 편해서 또 달라지지 못했다. 2014년은 거뜬했으나 마지막 선에 다다랐을 때 미처 숨기고 싶은 구멍을 작대기로 마구 헤집히는 뜨끔한 책을 만났으니 아직은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많은 역사가 훗날 다시 평가되듯, 나도 나를 두고 객관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매해 연말 연초가 그렇듯 지금부터 주어진 지도를 찾기 위해 또 헤매고 애태워야 할 것이다. 가고 싶은 곳과 갈 수 있는 곳,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없는 일 사이를 갈팡질팡 오락가락 또다시. 애쓰고 좌절할 것이다. 나쁜 게 아니라면 무엇이든 해볼 것이다. 꼼짝도 하기 싫지만 꼼짝해야 하는 날들에 삶을 저당잡히진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여행 내러티브로 이루어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로마, 리비아의 고대 유적인 렙티스 마그나, 뉴올리언스, 태국 코팡안, 암스테르담, 발리, 프놈펜, 파리, 마이애미, 디트로이트 등의 도시를 통해 나와 당신, 내면과 세계를 응시하는 시간을 갖는 일이다. 제프 다이어의 여행은 장소로써의 그것에만 그치는 여행의 의도를 시공간 전체로 통찰한다. 몰락과 폐허, 영광의 기운이 심상찮은 도시에서 나 혹은 나 아닌 사람들이 느끼는 '나'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로 가득하다. 미련이나 후회 때문이라면 그 어쩔 수 없는 좌절과 패배의 기분이 싫어져 돌아보기를 돌 같이 하는 편이지만, 채우고 비우는 일련의 사건을 때론 무심히 때론 적극적으로 응시하는 기회의 주어짐이 바로 그가 말하는 '구역', 구역의 구역에 딱 알맞은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밖에 있으면 실내로 들어가고 싶었고 실내에 있을 때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가장 심할 때는 일단 좀 앚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 자리에 앉자마자 일어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래서 일어난 다음에는 다시 앉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인생을 허비했다.
<안에 내리는 비, 디트로이트에서만 쓸 수 있는 책> 중에서
앞으로도 여러 글들을 쓰겠지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한순간 도깨비 방망이 요술처럼 뿅하고 달라질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을 뿐 한순간도 몰랐던 적 없다. 몇 시간이면 나는 다시 폐허로 간다. 그 폐허는 '다음'이 아니라 지금과 '다른' 곳으로, 여기가 아닌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서 조금 더 움직인 곳일 것이다. 드디어 알게 되었다. 인정해버리면 편하다. 악착같이 내가 나 아닌 나보다 훨씬 나은 내가 되리라는 높은 기대보다는 작고 모자라며 때론 형편없는 나지만 변하고 달라지기도 하는 나란 걸 인정하는 게 순리에 닿아있는 일임을. 그렇지만 다른 '구역'을 만들어나가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며, '다른' 구역이 없다고 믿거나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꼼짝하지 않고도 내가 있는 세상에서 가장 먼 곳까지 속도와 거리를 조절하며 다녀올 줄 아는 사람이다. 당신이 보는 꼼짝하지 않는 나는 어쩌면 완전한 생명체로서의 내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더이상은 그 사실이 두렵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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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이나 이 책을 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급한 일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책을 펼칠 엄두도 낼 수 없는 지경이었음에도 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주 감동적이었다거나 아주 절실했다거나 하는 그런 인상이 아니었다. 유쾌함이었다. 더할 수 없이 가볍고도 웃기는 유쾌함.
빌 브라이슨 이후로 오랜만에 만나본 유머였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귀찮아하는 듯 게으른 듯하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기본적으로 그런 자세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런 세세한 관찰과 잦은 여행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소 퇴폐적으로 보이는 생활태도도 내 취향이 전혀 아니지만 넉넉히 이해해 줄만할 정도이다.(마리화나를 꽤 좋아하기는 한다.) 이런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봐 주겠군, 하는 마음.
은근히 작가의 태도나 말투까지 따라 해 보는 스스로를 느끼면서 내 속의 냉소를 확인했다. 잔뜩 숨겨 왔던 내 이중성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와 같은 용기나 대담함이 없어 감추어 왔던 반항적인 속성이 글을 따라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작가에 대한 호감이 더 솟았으리라. '나의 이런 면과 유사한 속성을 가진 사람이 또 있었구나, 이 또한 그런 대로 괜찮은 멋이었구나.' 현실에서는 내보일 수 없는 엉뚱하고 무책임한 듯 보이는 태도, 작가라서 이해가 되는 범주의 행동들.
요가에 관한 책이 아니다. 제목에만 이 단어가 쓰였을 뿐, 요가의 효과와는 연결될 수 있을 듯하지만 요가 동작을 하나라도 기대한다면 곤란하다.(내가 제목에 속았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으로 요가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자유롭고도 제멋대로인 듯한 여정, 내 마음에 아주 들었던 기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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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토요일 이틀동안 강원도 원주와 평창 대관령을 다녀왔다. 날씨가 흐려서 출발할때 혹시나 비가 올까봐 우산을 챙겨서 차에 올랐다. 대구를 지나 안동에 접어들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대구로 곧장난 새도로 달려서 그런지 원주까지 3시간 정도 걸렸을 것이다. 중도에 치악휴게소에 들러서 이른 점심을 먹지 않았다면. 치악휴게소의 음식들은 정말 뜨내기들이 먹을 음식이니 맛있게 잘 만들 필요가 없다고 소리치는 듯했다. 다먹기도 전에 배가 불렀고 반쯤 먹었을때는 참 맛이 없다는 걸 새삼 각인 시켜주었다. 25인승 미니 버스의 중간 쯤에 자리를 잡았지만 참 불편했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아서 책을 꺼내 들었다. 바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였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라니 처음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책 소개 글 때문이었다. 알랭드 보통과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 처음부터 이 책은 나를 사로 잡았다. 뭐라해야하나 몇장을 넘기기도 전에 "응? 이 작가 참 엉뚱한데?"로 출발했다가 책장을 넘길때마다 "알랭드보통이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할 수 밖에 없겠네."라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은 정말 최근 내가 읽은 어떤 책보다 나를 사로잡았다. 30년전에 니코스 카잔 차키스가 한번 그랬고, 이번에는 제프 다이어가 그랬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고 정말 자유롭게 자유를 만끽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를 읽으면서 이 책이 기행문인가? 소설인가? 자서전인가? 철학서적인가? 여러가지 재미를 동시에 주었다. 여행을 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자유롭게 사귀고, 때론 사랑하고, 때론 방황하고,때론 방탕하다가 우울하기도 한 참 다양한 감정으로 읽을 수 있는 수작이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아무래도 암스테르담의 오블리비언 호텔과 인도네시아의 우붓이었다. 호텔 오블리비언 에서는 마약에 취해서 오블리비언을 찾아헤메던 상황이었다. 내 느낌은 마치 노자나 장자를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해야하나? 내 의견에 반대할 사람도 많겠지만 나는 그랬다. 이런 장면이 있었다. 작가는 새로 산 바지를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나왔다. 그런데 약에 취해서 바지를 뒤집어 입은채였다.그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뒤집어 입었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는 외부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뒤집어 입었다고 할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그게 정상이라고 말한다. 자기 스스로가 뒤집혀버렸기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다분하지만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완벽히 정확한 분석이라고 우긴다. 말하자면 말장난에 지나지 않은 것같지만 내가 그렇게 입기로 결정했다면 뒤집히지 않았다는 발상도 가능한게 아닐까?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우붓을 여행하면서 친구와 나누는 대화는 전망좋다라는 말에 관한 것이었다. 그 대화를 곱씹어보면서 내머리속에 언뜻 떠오른 생각은 마치 조선시대의 湖洛론을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인성과 물성은 같은가?아니면 다른가? 호론에서는 다르다이고 낙론에서는 아니다 같다라고 서로 싸운다. 물론 나의 논리는 비약이 좀 심하기는 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아무튼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친 생각은 그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자유로운 영혼을 만끽하며 자유로이 책을 읽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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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앗, 나를 위한 책이다!'라고 생각했다. 요가를 하면 몸이 가뿐해지고 좋다는 것을 알지만, 한 번 거르면 자꾸 귀찮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먼저 의아한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책은 요가 책이 아니라 여행 산문집이기때문이다. 그 점이 이 책의 첫 번째 반전이었다. 독특한 제목을 짓고,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는 책, 일단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제프 다이어. "영국 최고의 생존 작가" "국가적인 보물" "영국문학의 르네상스인"등으로 평가받는 영국 최고의 논픽션 작가이자 소설가. 그의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알랭 드 보통 등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작가 소개에 솔깃해진다. 이 책이 2004년 W.H 스미스 가장 훌륭한 여행서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었다.
보통 '여행'이라고 하면 바쁜 일정으로 빠듯하게 돌아다니며, 관광지 위주로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오는 여행기를 접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배낭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곳에 가보면, 다른 방식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가끔은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때로는 너무도 솔직담백하고,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듯한 느낌마저 들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처음에는 작가 스스로 실제로 일어난 일과 머릿속에서만 일어난 일이 섞여 있다고 고백했다는 말에 괜시리 사실과 상상을 구분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읽어나가면서 그런 작업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특이한 여행담에 집중해서 읽어나가는 것 자체로 신선했으니까.
이 책을 읽게 만든 제목인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소제목에 나오기도 한다. 귀찮아서 쓰지 못한 자기계발서라! 흥미로운걸! 케이트는 내가 "무슨 작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어떤 글을 쓰냐고 물어보았다. "자기계발서를 하나 써볼까 생각 중입니다." 내가 말했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라고." "귀찮아서 못 쓰고 계신 것 같은데요. 맞죠?" "들켰네요." (120쪽)
'이런 여행도 있구나!' 이 책을 읽으며 세계각국의 다양한 여행객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만의 어조가 있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어찌되었든 다른 사람의 여행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여행에 대한 책이 여행에 관한 이야기로만 채워지지 않고, 저자의 다양한 생각이 글로 표출된 것이기에 색다른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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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책 제목만 봤다면 어떤 내용을 기대하겠는가. 어찌됐든 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장르를 확인할 수밖에 없으니. 이 책은 제프 다이어의 여행 산문집이다. 왜? 여행 중에 쓴 글이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벗어날 수 없는 오류라고 해야 하나. 무엇이든 분류하고 규정지어야 하는 세상의 틀에 맞춘다면 여행서가 맞을 것이다. 그걸 정해놓지 않으면 출간된 책을 서점에서 진열할 때 곤란할테니까 말이다.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틀 속에 들어가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는 아이러니. 제프 다이어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굉장히 독특한 레시피를 지닌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떠올리는 여행지라면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풍경을 지녔거나 문화적 가치를 지닌 장소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폐허를 찾아간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역사적 자료를 찾아본다거나 주제를 정한 여행이 아니다. "나에게는 목적도 방향도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삼십 대 때보다 훨씬 적게 생각한다는 것, 나 스스로 빠른 속도로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32p) 처음 등장하는 로마에서의 여행을 보면서 단번에 알아차린 그것. 그의 여행에서 공감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가 바라본 폐허처럼, 나 역시 이 책을 그러한 마음으로 읽으면 되겠구나. 프롤로그에서 그는 이 책에 적은 일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그중 몇몇은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고 고백한다. 여행을 했다는 사실적 요소와 그 과정 속 이야기에 가미된 허구적 요소를 굳이 가려낼 필요가 있을까. 결론은, 그럴 필요없다. 여행지에서 만난 여인들이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한들 따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하나의 풍경처럼 스쳐지나가면 그뿐.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한 남자가 주인공인 한 편의 소설을 읽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어차피 제프 다이어라는 인물은 내게 소설 속 주인공처럼 비현실적인 인물이니까. 중요한 건 여행이 주는 경험, 즉 내면의 목소리가 아닐까. 동일한 장소를 여행한다고 해서 그와 같은 생각이나 느낌을 가지진 않을 것이다. 또한 그의 글을 읽는다고해서 그 생각과 느낌이 내 것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뭔가 독특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만약 내게도 아주 조금 작가의 피가 흐른다면 글로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지금껏 내가 본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다는 상상은 할 수 있다. 상상 속에서 벌어질만한 일들을 제프 다이어의 여행 산문집에서 만난 거라고 말하고 싶다. 경험하지 못한 일들은 그저 상상이나 꿈이 만든 허구의 것이니까. 내게는 현실이 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외면하기에는 뭔가 궁금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결말을 보지 못한 소설을 읽은 것 같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궁금증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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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消盡). 요즘들어 자주 듣게 되는 단어가 아닌가? 그래 이 이야기는 어느 누구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제프는 어디에서부터 자신이 이토록 황폐해졌는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는 진짜로 솨락하거나 이미 페허가 된 장소들을 찾아나선다. 저자는 고대 유적으로 가득한 로마와 렙티스 마그나나, 지금은 몰락한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캄보디아 등을 돌아다닌다. 모두 한때는 번영을 누렸지만 지금은 쇠락해 흔적만 남아있는 장소들이다. 그가 마주하는 것은 모두 낡고 쇠락한 것들이다. 책의 부제가 '왜 폐허를 걸으며 위안을 얻다'인 까닭이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하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51쪽) 책중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어디선가도 이것과 같은 의미의 말을 들은적이 있는데,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다시 그 일상에서 살기위한 충전을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는 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것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떠나는 쇠락한 곳으로의 여행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폐허라는 말 때문에 얼핏 들으면 스산하고 암울해보이지만.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이전 과는 다른 새로운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저자와 같이 과거로의 여행은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가지는 묘미는 단지 여행에세이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는 여행을 떠나지만 정작 여행지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대신 저자가 머무는 공간과 행동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가 이어진다. 저자는 끊임없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주변의 사물들. 자연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아 모여라~ 하는 책인데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 결국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에 있든.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그만 달리한다면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져보인다는 것. 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한번 저자처럼 따라해보고 싶어진다. 몸은 당장 떠나지 못해도 마음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