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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에 앞서 본인의 신변잡기적인 얘기를 약간 하겠다. 이 놈의 블로그에도 올렸듯 1년전에 대충 세우다 만 2008년의 계획은 독서량을 150권으로 정했다. 중간에 가을병에 시들시들하는 내가 매우 혐오스러웠고, 존경하는 교수님의 일침 덕분에 쥐뿔도 모르면서 겉멋만 든 자신의 처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목표를 올렸다. 11월에 도서관에서 책만 퍼 읽다. 마침내 12월12일, 빛나리 장군이 대한민국 개조사업을 완수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던 그 날에 나는 목표한 독서량을 채우다. 왠지 200권째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을 읽어야 할 기분이 들어 294불교, 306페미니즘, 335사회주의 주위를 기웃거리다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의 '경계 없는 페미니즘'을 뽑아 들다. 만족한다.
'이론의 탈식민화와 연대를 위한 실천'이라는 제목보다 더 긴 부제를 단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다룬다. 첫째, 탈식민주의. 둘째, 반자본주의. 셋째, 페미니즘. 편의상 세 개의 장으로 나누었을 뿐 내용면에서 보면 저자 찬드라 모한티는 한결같은 주장을 편다. 자본 주도의 세계화에 반대하고 은연 중에 제국주의에 가담한 서구 페미니즘을 비판하여 연대를 향한 새로운 기획을 세운다. 캬. 멋지다. 역시 '여이연'에서 나온 책 답다.
한국의 독자를 위해 몸소 한국판 서문을 써 준 모한티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역사적 시점에서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저로서는 진정한 페미니즘 과제 중 하나가 미국이라는 제국에 맞서 싸우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8쪽)
근거도 없는 반미가 시대적 유행이 되었다고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세력은 불만을 토로한다. 국가, 그리고 일국 내에서도 계급 불평등은 심화되고 68년 이후 세계경제는 활기를 잃었으며 냉전의 붕괴 이후 미국이 다른 나라의 주권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이런 현상이 모두 문제없음으로 일괄적으로 처리될 수 있다면 조선일보의 말도 맞겠지.
인도 태생의 저자는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영주권까지 얻는다. 그녀는 미국에서 여성학을 강의한다국가, 그리고 일국 내에서도 계급 불평등은 심화되고 68년 이후 세계경제는 활기를 잃었으며 냉전의 붕괴 이후 미국이 다른 나라의 주권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이런 현상이 모두 문제없음으로 일괄적으로 처리될 수 있다면 조선일보의 말도 맞겠지.
인도 태생의 저자는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영주권까지 얻는다. 그녀는 미국에서 여성학을 강의한다. 일면 미국교육의 수혜자로 볼 수 있지만 모한티는 사이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해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는다. 그녀가 이 책을 쓴 이유를 들어보자.
나는 탈식민주의에 닻을 내리고 반자본주의적 비평과 함께 하며 인총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즘의 분석틀이 지금의 시대에 필요하다고 확신한다.(16쪽)
저자의 시도가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경계가 없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국가,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종교, 장애를 통과하며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계선이 실재함을 인식하고 이를 공격하는 페미니즘 말이다. 미국 페미니즘은 여태껏 대안으로써 충실히 성장했다. 그러나 레이건으로부터 부시 행정부에 이르는 보수층의 대반격과 자본의 세계화, 포스트모더니즘적 회의주의로 인해 미국 내 페미니즘은 위기에 처했다. 학력이 권력화되면서 강단 페미니즘에 갇히고 말았고, 고학력 전문직 여성이라는 당근에 심취한 신자유주의 페미니즘, 가치 상대주의로 귀결된 회의주의라는 수렁에 빠졌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모한티는 반자본주의적 비평과 탈식민주의를 제창한다.
제1부 '페미니즘의 탈식민화'에서 그녀는 주로 서구 페미니즘이 어떤 식으로 왜곡된 재현에 기여했는지를 밝힌다. 역사적 주체로서의(개념으로서의) 여성과 (현실로서의) 여성의 재현과의 연계는 헤게모니적 담론이 만든다. 이는 각각의 독특한 문화 속에서 구성되는 자의적인 관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페미니즘은 제3세계 여성을 고정관념으로 대상화하며 차이를 고려하지 못한다. 서구 여성들은 자신을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묘사하는 반면 비서구 여성을 1.남성폭력의 피해자 2.항상 종송적 3.식민화 과정의 피해자 4.아랍가족 체계의 피해자 5.이슬람 코드의 피해자 6.경제적 발전의 피해자로 그린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의 집단으로서 하나의 고착된 분석의 틀로서의 "여성"을 사용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이런 방식들이 여성들의 종속성이라는 일반화된 개념을 기반으로 여성들 간의 몰역사적, 보편적인 통일성을 전제한다는 것이다.(55쪽)
사이드가 일찌기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지적한 이항 대립이 서구 여성과 비서구 여성 간에도 재현되어 버린다. 서구 여성만이 비서구 여성을 대신해서 말할 수 있다. 스피박이 사티를 언급하며 제기한 비판도 바로 이것이다. 사티를 비판하는 서구 페미니스트들의 접근 방식은 인도의 구체적인 역사와 인도 여성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쉽사리 제국주의 논리에 동화된다. 나아가 외부의 비판은 민족주의적인 반발을 불러와 사회를 더 보수화시킬 수도 있다. 물론 '억압의 동시성'은 제3세계 여성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 사회적 정치적 주변화는 제3세계 여성들이 가장 심하게 겪은 공통의 경험이다. 하지만 구체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서구 페미니즘의 인식은 권력 관계를 배태한 계몽의 논리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제2부 '자본주의의 탈신비화'에서 그녀는 사유화된 시민권, 기업화된 대학, 여성 노동에 대해 얘기한다. 데처리즘, 레이거노믹스는 국가의 재정지출을 삭감하고 공적 영역을 시장에 방치한다. 예전에 읽은 한 통화주의자의 책에서는 심지어 경찰 업무까지 정부보다는 시장이 맡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더라. 군대와 경찰이 정부가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구책이라는 점에서 경찰제도마저 사유화하자고 주장하는데, 하물며 의료나 교육이야 말해 뭣하리. 약값, 병원비, 대학등록금은 오르고 기초생활수급자의 범위, 실업수당 등 공적 부조는 줄어든다. 세계화는 글로벌 스탠더드인 미국적 모델을 따르는 과정, 미국은 돈 있는 자에겐 천국인 사회다. 곧 세계화는 돈 없는 자는 죽어라는 대단히 자비로운 가르침이다. 지구상에 재화가 충분하면 좋겠지만 막장까지 간 이 세계에서 더 캘 게 뭐가 있겠는고. 68혁명 또는 73년 베트남 전에서 미국의 패퇴 이후 세계경제가 이전의 황금기를 되돌아가지 못했다는 건 사실이다. 점점 느리게 성장하고 인구는 계속 늘어난다. 노동에 의한 상방 압박과 이윤의 쇠퇴는 노동의 유연화로 이어진다. 중간층이 비약적으로 늘어나서 혁명을 포기한 베른슈타인과 경제순환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고 선포한 케인즈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데리다의 말마따나 다시 마르크스라는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그러나 물론 노동자는 단결하지 않을 테고 혁명도 안 일어난다. 그냥 이대로 지구는 굴러가리라.
아. 책에서 너무 많이 벗어났다. 아무튼. 전 부문에 걸쳐 진행된 사유화로 인해 대학마저 진리 추구와 사회 비판의 장소가 아니라 돈 되는 장사를 하는 기업의 연구소로 전락해 버렸다. 한국에서만 시간 강사 문제가 심각한 줄 알았더니 미국도 마찬가지네. 점점 전임이 아닌 기간제가 늘고 있다. 모한티가 이보다 더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미국 대학의 문제는 인종차별이다. 언뜻 듣기로 미국에 가면 종교학 자리는 많다던데, 전반적으로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2001년 고등교육 연감기록'에 의하면 2001년 전임의 79%가 남성이고 이중 90%가 백인이다. 이런 사회에서 오바마 한 명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바뀔까. 바꾸어 말해보자. 한국사회에서 고졸 출신의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학벌사회가 깨졌느냐. 잘 해 보세요. 미국사회. 아무튼, 이런 수치는 1977년과 비교해 봐도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 책과 상관 없지만 한국사회에도 마찬가지이리라. 골드미스 골드미스 하는데 매번 단골로 나오는 메뉴가 사시, 행시, 외시에서의 여풍이다. 모범 사례나마 제시된다는 점에서 일견 진보한 양 보인다. 그러나 고시에 일단 합격하고 나서 얼만큼 높은 보직으로 진출하느냐, 높은 보직에 진출할 때도 남성적인 속성을 무기로 진급했느냐, 왜 고시에 여학생들이 많이 합격하냐(여성들의 대부분이 고등학교 문과쪽을 선택하고, 기업으로 진출이 용이한 남성에 비해 여성의 선택폭이 훨씬 좁다)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에 대한 긍정적인 변화가 없다면 근본적인 가부장제는 변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IMF 구조금융 사태 때 퇴사 1순위가 기혼여성이었다는 상기하자.
또 또 또 책에서 벗어났다. 그냥 나의 쓸데없는 주접은 마무리 하고 저자의 말이나마 직접 몇 구절 옮기겠다.
페미니즘적인 역사의 구성은 때때로 정치적으로 후진적인 인종차별적, 제국주의적, 성차별적 담론에 맞서는 정도만큼이나, 노예제, 식민주의 현대자본주의에 관해 서로 중첩되는 상당히 많은 양의 진보적 담론들(즉 백인 페미니즘, 제3세계 민족주의, 사회주의)에 맞서는 독해도 시도해야 한다.(77쪽)
영국젠틀맨이라는 개념의 창조는 사회진화론, 진화 인류학, 기독교주의, 의료나 '과학'적 연구논문 그리고 제국의 문헌적 전통에서 도출된 신념체계 등을 기반으로 했다.(96쪽)
명백한 노동의 성적 분화에 기반을 두고 그 속에서 사회적 지위나 (백인) 남성성의 분리되지 않으며 남성적 모험마저 남성화된 통치의 지지를 받던 제국적 통치의 특성과 달리, 부르주아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만든 시민권 개념은 비인격적 관료제와 합리 타산적 이해, 질서 정연이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조직된 헤게모니적인 남성성에 입각하고 있다.(103쪽)
문학과 사회과학 분과의 지식생산은 투쟁을 위한 담론의 영역에서 중요하다.(119쪽)
글쓰기는 그 자체로 계급과 인종적 위치에 의해 특정지어지는 행위다.(121쪽)
요즘의 중요한 문제는 페미니즘 담론 내부의 차이에 대한 구성, 검토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제도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164쪽)
정체성이라는 본질주의적 개념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비평의 문제점 하나는 이것이 인종이라는 범주를 용해시켜 버렸다는 것이다.(165쪽)
젠더 억압이라는 보편성은 젠더가 가시화되기 위해 인종과 계급이라는 범주를 비가시화해야 한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하는 한,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165쪽)
결국 '남성'의 세계를 초월하는 존재를 바탕으로 정의되는 보편적 자매애는 여성집단 내부와 여성들 사이의, 특히 제1세계와 제3세계 여성 사이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권력 차이를 효과적으로 지워버리는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우리 모두를 역사와 정치의 주체에서 제거하는) 심리학적 개념인 중산층의 존재로 마무리된다.(178-179쪽)
나는 현재와 미래를 위해, 이제까지 초월의 정치보다는 개입의 정치를 이야기했다.(189쪽)
학계는 지식들이 식민화되지만, 또 경쟁하기도 하는 모순적인 장소이다.(중략) 이 곳은 빠르게 사유화하는 세계 속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공간, 그러니까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대화하고 개입할 수 잇는 공적 영역의 외양을 갖춘 공간의 하나이다.(257쪽)
19세기 공립대학의 비전과 사명은 이제, 자본주의를 당연시하고 시민권을 사유화하는 경영을 거쳐, 사업적, 기업적 대학의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263쪽)
사유화는 민주적 지배의 원칙을 자본주의적 시장의 원리로 개작하였고, 시민을 소비자로 만들어 버렸다. 사유화는 책임에 대한 포기다.(268쪽)
학계의 재구조화(사유화)는 교수진의 날을 무디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270쪽)
우리는 개인적으로는 인종차별주의자도 성차별주의자도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와 지점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부담 혹은 특권에 의해 분명히 규정되기 마련이다.(289쪽)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제국주의, 동성애 혐오가 진행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잠재적으로 학계나 그 학계가 전통적으로 생산한 지식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것이 될 수 있다.(302쪽)
다원주의는 그 자체로는 필연적인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무정치적이고 몰역사적인 문화다원주의 측면에서의 개념정의는 재고될 필요가 있따.(314쪽)
뿌리 깊은 남성주의와 때때로 인종차별적인 언설을 담고 있는 종교근본주의의 성장은 세계 곳곳에서 페미니즘 투쟁에 커다란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314쪽)
변한 것은 분석틀이 아니다. 전지구적 경제, 정치적 과정이 더욱 야만스러워지면서 경제, 정치, 인종, 젠더 불평등을 심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탈신비화하며 재검토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한 것일 뿐이다.(342쪽)
전통적인 자유주의, 혹은 자유주의적 페미니즘 페다고지는 역사적이며 비교방법론적인 사고를 용납하지 않으며 급진적 페미니즘 페다고지는 때때로 젠더를 유일한 수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맑스주의 페다고지는 자본주의에 초점을 맞추느라 인종과 젠더를 침묵시킨다. 내가 원하는 페다고지는 학생들이 여성 공동체 사이의 복합성, 단일성, 상호연계성을 조망할 수있도록 하는 것이다.(36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