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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극우주의/자음과모음]우린 지금 극우주의인가?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처럼 보수파를 걱정하고, 극우파를 비판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입장을 담은 책이다. 책에서는 기성 정당의 극우화,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와 확산에 대한 우려를 담았다.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 일베 이전부터 극우 활동은 있었고, 지금은 온정적 다문화주의가 서서히 자리 잡고 있기에, 극우주의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경제 발전이 우선적 목표였던 한국에서 사회적 모순에 대한 해법은 늘 뒷전이었다. 진보주의의 의미도 진보정당과 함께 퇴색해 버린 한국에서 지금 보수파만 비대해져 있다. 막강해진 보수의 뒤엔 극우파가 도사리고 있다. 비만은 온갖 성인병의 주범인 것처럼 거대 보수 진영의 덩치만으로도 폐단은 있다는데...... 이 책은 우리에게 필요한 진보에 대한 고민들을 담았다. 현재의 위기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도 제시한다.
한국의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같은 넷우익은 토마스 그룸케 교수가 말한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저항하는 게 극우주의”라는 말과 일맥상통할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극적이다. 부분적으로 민주화를 가능했던 ‘1987년 체제’는 한계 상황을 맞이했고,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삼은 경제체제는 심각한 불평등 사회를 남겨놓았다. 숱한 진단과 처방이 난무하지만, 뚜렷한 방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제의 좌파가 오늘의 우파가 되고, 민주주의라는 밝은 빛은 극우주의라는 어두운 그늘을 만들어놓았다. (4~5쪽)
단 두 번의 개혁 정권 시기 10년을 빼고 해방 이후 국가권력을 사실상 독점해온 소위 ‘보수 세력’은 전통적 의미에서 보수 세력과는 전혀 다르다. (중략) 한국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당연히 ‘극우파’로 불릴 이 집단은 반독재운동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높은 경제성장률과 명목상의 의회주의로 정당성을 인준 받으며 지금까지 가장 강대한 기득권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10쪽)
남상욱의 ‘현대 일본의 극우주의와 생-정치’가 가장 흥미롭다. 그의 생각을 정리해 보자. 한국과 일본에서는 일베와 서북청년단, 2채널과 재특회라는 소규모의 정치집단 출현으로 시끄럽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보편주의를 전면 거부한다는 점에서 ‘우파’나 ‘극우’로 불린다. 사실 일본에서는 태평양 전쟁 이후로 줄곧 존재한 극우다. 이들은 욱일승천기를 머리띠로 하고 ‘일본의 타락’을 타도하고 ‘아름다운 일본’, ‘천황 폐하의 뜻’을 소리 높여 상기며 거듭나라고 외친다. ‘만세일손의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황국’을 이념으로 삼아온 이들은 일본 우익에서도 선을 긋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일본에서도 재특회처럼 과격한 주장을 하는 자들은 지극히 일부다. 패전 직후 일본의 젊은 지식인들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을 비판한다. 일본은 국가보다 개인을, 죽음보다 생명을 초월적 가치로 승격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신적인 존재였던 일본 천황에서 점차 자신들과 같은 평등한 인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베 신조의 정치적 행위를 보다 보면, 박근혜의 통치술이 어떠한 방식으로 행사되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dlY을 것이다. 단 주의해야 할 점은, 기시 노부스케-아베 신조 라인과 박정의-박근혜 라인의 삶과 정치 이념적 아이덴터티의 유사성이 아니라, ‘누군가’를 살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그 누군가’ 혹은 ‘다른 누군가를’ 죽게 내버려두는 통치 방식의 유사성이다. (165~166쪽)
경제주의, 순혈주의, 우파적 공동체주의, 극우주의 등에 대해 이 시대를 진단하는 글들이다. 단행본이자 잡지로서의 무크지의 역할을 담당하는 책이다. 비대해진 보수가 낳은 극우주의의 곪은 부분을 도려내자는 책이다.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매카시즘, 언론 자유에 대한 억압, 노동권과 인권에 대한 극도의 반감과 제도적·물리적 공격, 국가기관의 여론조작을 통한 민주주의의 파괴, 기존 사회 안전망의 전면적 해체, 부동산·거대 토목 사업·대형 국가 이벤트 등의 일방적인 정책에 대한 경종도 울리고 있다.
책에서는 6명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글이 담겨 있다. 박권일의 ‘공백을 들여다보는 어떤 방식: 넷우익이라는 ’보편 증상‘’, 김민하의 ‘한국의 극우 정당, ’오지 않은 미래‘인가?’, 김진호의 ‘한국 개신교 반공주의와 ’증오의 정치학‘’, 남상욱의 ‘현대 일본의 극우주의와 생-정치’, 문순표의 ‘극우와 계몽의 변증법, 이택광의 ’다시 파시즘을 생각하자‘ 등이다.
정치에 무관심하지만 보수파가 오랫동안 지배해온 것은 사실이다. 진보정당이 국민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당이 예전만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걱정스런 것도 사실이다. 반대파의 세력도 필요하고 진보정당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극우나 지나친 극좌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야당이나 진보당은 실망을 주고 약하다는 이미지를 준다. 국민을 위한 반대파와 국민을 위한 진보정당의 출현이 필요한데, 우린 언제쯤 그런 세력들을 가지고 건전하게 국익과 민생을 논하게 될까? 우린 지금 극우주의인가? 그런 생각 이전에 야당이 파벌논쟁을 버리고 건전한 모습으로 얼른 일어섰으면 좋겠다. 서로 상생했으면 좋겠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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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몇 장 읽다보니 뭔가 내 코드와 맞는다는 생각이 확연히 들었다. 그런데 저자가 여러 명이라서 그런지 지식이 짧아서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우선 작은 사이즈에 얇아서 마음에 들었다. 크고 묵직한 책은 우선 부피에서 오는 부담감에 선뜻 손이 안 가는 경우가 많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위기에 대한 묘사를 넘어서서 그에 대한 실질적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시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준비한 시리즈 중 첫 번째라는 머리말 글이 인상 깊었다. 6명의 저자가 각각 1장씩 맡아 글을 써서 모았다.
인터넷에서 글이나 덧글을 읽다보면 이유 없이 파괴적이고 무척 냉소적인 시각의 글을 접하고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1장 넷우익이라는 ‘보편 증상’에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만 유독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한중일 공통으로 발견된다는 것에서 놀랐다. 한국 개신교와 반공주의, 현대 일본의 극우주의, 파시즘 등 ‘핫’한 현대 사회의 키워드를 생각지도 못한 시각에서 풀어나가고 있다. 단어의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읽다보니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경험도 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더 긍정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귀 기울여야 할 내용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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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는 날이다. 진보의 역사는 역사이래 지속되었지만 역사속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통합진보당은 한반도의 정서적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와 진보사이에서 항상 뜨거운 감자이다. 정당이래 첫 정당해산이라는 강수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정당해산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들이 분출하는 오늘에 서평을 쓰게 되었다.
오늘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 관점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념적 대립으로 인해 우리 한반도는 동서남북이 첨예하게 구별되어 있다. 또한 한민족이지만 반백년 동안 나누어져 서로에게 총뿌리를 겨누고 있다. 이로 인한 정권 재창출시마다 등장하는 반공이데올로기는 국민들의 의식에 깊게 박혀있다. 식상한 이념대립이라고 하지만 총선, 대선 때마다 등장하였다. 어떤 단체가 이득을 보는지에 대한 것은 차후에 문제이고 우리 국민들이 이러한 이념대립으로 언제까지 대립노선에 노출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모두가 진보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을 함께 가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안정을 추구하기에 보수적 성향에 가까워진다. 젊었을 때는 고착된 현실보다는 변화를 추구하는 나이이기에 진보적 성향이 두드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정서와 생각속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공존한다. 공존된 이념을 통해 균형적 정서를 도출해 내는 능력이 우리안에 있다. 이념에 대립하여 통제력을 잃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극우주의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된다. 저자들이 시대적 흐름과 정권들의 논리에 의해 편협하게 해석되어진 극우주의에 대한 명쾌한 논의가 가슴에 답답함을 뚫리게 했다. 역사는 진실해야 한다. 그렇지만 거꾸러 달려가는 듯한 느낌이 우리들이 받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 시대보다 의식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이 때에 이념대립이 어떤 시대보다 더욱 극심해지고 있는 것은 왜 일까.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대립으로 인해 소모전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권 재창출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정권이 미래의 한국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현실에 대한 대안들을 찾아 가야 한다. 정확한 이해력을 통해 정치, 이념의 논리에 빠져들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얼마전에 중소기업 채용기준에 호남사람은 제외한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놀랬다. 그러나 지역적 편차가 여전했다. 어떤 이들은 당연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럴 수 있는가라고 걱정했다. 우리 사회의 일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선진국에 들어서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가감없이 보여준 사례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시대적으로 극우주의에 대한 고착과 정의를 달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와 사상적 자유가 있지만 분단의 특수성으로 인해 자제력과 통제력, 수용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한국의 의식수준이 그들의 이념에 빠져드는 작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다시금 새로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지력을 넓히고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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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극단적으로 보수주의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인 성향을 주장하는 사고방식. 또는 그런 경향이나 태도를 말하는데 극단적으로 보수적이거나 국수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 책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는 김민하, 김진호, 남상욱, 문순표, 박권일, 이택광 등 6명이 필자로 참여해 펴낸 무크지로 저자들은 한국 사회에 팽배한 극우주의의 특징을 논하고 있다. 책에는 인터넷 공간을 벗어나 거리로 나온 ‘일베’, 사회운동과 정당정치, 극우주의에 대한 관점 등 극우주의의 사회적 현상과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진단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이론만의 확대재생산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 사회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다리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아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베의 일탈 행위는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패륜적 행위는 그 한계가 없다. 전임대통령 비하, 지역, 여성 차별에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매도하고 세월호와 분당 환풍기 사건을 엽기적으로 엮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사람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고 대부분의 주장들이 기존의 편견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입장은 보수적이며 그 내용의 과격성으로 볼 때 결국 극우적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80년 광주에서 자식이 죽은 관 앞에서 울부짖는 사진을 보고 택배를 떠올리는 이 기이한 상상력은 패륜 행위일수록 낄낄거리며 함께 즐기는 사용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현상은 사실 일베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인터넷은 인간의 전체 모습이 아닌 일면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진실이 오도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 한국은 한마디로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저자들의 진단에 따르면 특히 2012년 이후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대립이 무의미하게 된 국면을 맞이했다고 보고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특정 정당과 인물로 대변되는, 또 일베 같은 특정 사회적 움직임으로 대표되는 '극우주의'라는 프레임을 읽는다는 것은 진보라는 가치를 도대체 왜 추구해야 하는 것인지에 관해서, 그리고 앞으로 고민해야 할 진보의 문제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관해서 생각의 끈을 이어가는 육체적·정신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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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에 이어 서북청년단까지 다시 활개를 치는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키워드 '극우주의' 한 뼘 정도로 작고 200여 쪽의 얄팍했지만 내용의 깊이는 그렇지 않은 이 책은 이를 주제로 한 여섯 편의 글들을 묶은 무크지이다.
일베, 극우정당, 개신교, 일본의 극우주의와 정치, 계몽, 파시즘, 위 여섯 가지를 통해 현재의 상황이 나타나기까지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현상황에 대한 견해등에 대해 살펴보고 있어 한 편의 리뷰 논문을 읽는 것처럼, 현대사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읽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평소에 한국 대형교회로 대표되는 개신교 목사들의 반공주의 성향에 대해서 의아했기 때문에 3장 한국 개신교 반공주의와 증오의 정치학편 | 김진호 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1장 공백을 들여다보는 어떤 방식: 넷우익이라는 ‘보편 증상’ 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키워드는 주목경제, 상상된 착취, 담론의 근원 세가지였다.
그 외에도 안티조선일보운동 경험을 통해 성찰한 극우주의를 계몽으로 보는 시선의 실효성에 대한 5장 극우와 계몽의 변증법| 문순표 한국에서 새로운 극우정당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2장 한국의 극우 정당, ‘오지 않은 미래’인가? | 김민하 일본 극우주의의 역사와 함께 '생명'의 개념을 이용하는 새로운 우파에 대한 4장 현대 일본의 극우주의와 생-정치 | 남상욱 파시즘의 정치 도래 가능성에 대한 6장 다시 파시즘을 생각하자 | 이택광
현재의 한국을 여러가지 측면과 견해를 통해 단시간내에 살펴본다는 측면에 있어 매우 좋은 듯.
저는 위 상품을 소개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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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으로 보수적이거나 국수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극우주의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는 전체주의, 애국주의, 파시즘, 넷우익 등의 여러 형태로 일어나고 있는 지구적 사건이기도 하다. - 책 소개 중 - 매일 하는 일과 중의 하나가 뉴스를 챙겨보는 일이다. 인터넷 뉴스, 한인소식지, CNN 뉴스까지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한국의 뉴스를 접하고 있는데 누구나 그렇겠지만, 뉴스를 접하는 내내 나오는 건 한숨 뿐이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하노이에 살고 있다보니, 한국 안에서와 외국에서의 시선이 다른 것도 느끼고 있다. 아직도 한국은 전쟁 중인 나라라는 외국인들의 인식도 느낄 수 있고, 현대 한국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외국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이가 안좋다고 볼 수 있는 일본인들과 가장 공감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비슷한 듯, 다른 듯.. 현대 한국와 일본의 모습이 미묘하게 닮아있어서 그런 듯 하다.
일본 역시 우리보다 먼저 극우주의가 사회 현상이자 동시에 문제로 다가오는 사회였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일베 등의 비이성적인 극우주의가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이 지구촌 여러 나라의 전체주의, 애국주의, 파시즘, 넷우익 등의 다양한 형태로 보여지고 있는 것을 보면 어느 한 사회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우리 사회가 진보와 극우주의로 양분화되가고 있는 세력이 많다는 것과 갈등이 깊어진 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서로 상호 협력하고 토론하여 의견을 조율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공멸이 목적이 아니라면 우리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이 책은 그런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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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의 머리말에도, 그리고 첫 번째 실린 글이 공통적으로 일베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책은 분명 일베류의 극우적 언동이 점점 늘어나는 데 대한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여섯 명의 저자들은 각각 한국 사회의 극우적 움직임에 관한 글들을 실고 있는데, 각각의 글의 성격이나 주제는 조금씩 다르다. 일베를 다루고 있는 첫 번째 글과 한국의 극우정당 출현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두 번째 글은 현실분석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한국 개신교의 극우적 성격을 다룬 세 번째 글은 역사를 추적하는 쪽에, 그리고 나머지 글들은 극우주의나 파시즘 같은 주제들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2. 감상평 。。。。。。。 책의 가장 앞에 실려 있는 ‘창간사’라는 이름과 거기 언급되는 ‘무크지’라는 단어는 이 책이 (형태는 단행본이지만) 일종의 잡지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행본과 잡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시의성인데, 잡지 쪽은 당장에 필요한 정보를 좀 더 집중적으로 담아내는 데에 무게를 더 둔다. 이 책은 최근 한국의 현실이 ‘극우주의’라는 문제를 서둘러 다뤄야 할 정도로 급박해졌음을 시사한다.
첫 두 편의 글은 흥미로웠다. 짧은 글 안에서 일베의 성격에 관해 다양한 방향에서 분석했던 박권일의 글이나 한국의 정치지형을 분석하며 그래도 아직은 당장 극우주의 정당이 출연할 것 같지는 않다는 다행인 소식을 전해주는 김민하의 글은 읽을 맛이 난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의 반공주의적 성격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하려고 시도한 김진호의 글부터는 이런 느낌이 달라진다. 그의 다른 책(‘예수의 독설’)에서도 보여줬던 지나치게 과감, 혹은 과장된 추측과 그것을 곧 단정지어버리고 기정사실화 한 채 전개하는 논의방식은 이 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여기에 사용되는 용어들도 딱딱하거나 사상성이 깊이 묻어나오는 단어들이다. 후반부의 세 개의 글은 좀 더 나아가서 아예 철학적인 논의로 접어드는데, 덕분에 책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떨어지고 만다. 물론 어떤 사안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적절한 철학적 기초가 있어야겠지만, 이쯤 되면 이런 글은 나 읽으라고 쓴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물론 내가 책을 잘못 선택한 거지, 저자들의 문제는 아닐지도..) 뭐 여러 개의 글들이 있으니 마음에 드는 것만을 뽑아 읽어도 그만이다. 개인적으로 글들의 배치가 절묘했다는 느낌이 든다. 안 그랬으면 집어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