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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향 앤솔러지... 색과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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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이었나? 향香자의 음과 훈을 묻는 시험 문제가 있었다. 나를 비롯한 제법 많은 아이들이 '냄새 향'이라고 적었다. 비슷하다고 생각해 맞는 답으로 해달라고 선생님께 사정했지만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냄새가 향기이면 똥 냄새도 향기냐?" 작가정신의 소설향 앤솔러지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초록 땀>. '색'과 '향'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김화진, 문진영, 이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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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이었나? 향香자의 음과 훈을 묻는 시험 문제가 있었다. 나를 비롯한 제법 많은 아이들이 '냄새 향'이라고 적었다. 비슷하다고 생각해 맞는 답으로 해달라고 선생님께 사정했지만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냄새가 향기이면 똥 냄새도 향기냐?"

작가정신의 소설향 앤솔러지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초록 땀>. '색'과 '향'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김화진, 문진영, 이서수, 공현진, 김희선, 김사과 여섯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를 담은 책이다. 

색이라는 주제...

우리는 무지개를 7가지 색깔로 본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문화권별로 6가지 또는 5가지 색깔로 무지개를 보기도 한다. 무지개 색깔이 6가지, 5가지라니, 우리가 볼 때 그런 인식은 어색해 이상하기까지 하다.

김화진의 <초록 땀>에서 '나'는 숨 쉴 때마다 혀를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른다. '숨 문제'가 있는 '나'는 사무보조 아르바이트 보영과 친해지면서 보영이 '초록 땀'을 흘린다는 비밀을 알게 된다. 보영은 초록 땀이 흐를 때마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재빨리 손수건으로 닦아 숨긴다. 그런가 하면 초록 땀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초록 땀을 유리병에 담아 판다. 보영이 남들이 이상하게 바라보는 '땀 문제'에 갇혀있지 않기로 마음먹자 '초록 땀'은 소원을 들어주는 '행운'이 된다.

이서수의 <빛과 빗금>에서 색은 정치를 상징하며 사람들 사이에 빗금을 그어놓는다. 하지만 색은 빛이 있어야만 드러난다. 빛이 없다면 색을 식별하고 분류할 없음을 사람들은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색보다 빛을 먼저 보라고." 승주가 도통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빛이 뭔데?" 빛은… 빛은 단순한 밝음이 아니야. 입자나 파동, 광선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식상하지만 사랑과 온기라 표현할 수 있고, 식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노려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온기라고 말할 수도 있어. (p. 128, <빛과 빗금>)'

김희선의 <뮤른을 찾아서>에서는 색을 식별하는 빛마저 흡수해버리는 블랙이 있다. 블랙의 세계에서 할 일은 내 기억 속에 존재했을지도 모를 사라진 색깔, 흡수되지 않는 색깔, 뮤른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항상 반사되는 빛, 즉 흡수되지 않는 빛이다. 거부당한 색을 보고 '사과는 붉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사과는 빨강을 제외한 모든 색이다.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작가정신, p. 435)'

향이라는 주제...

'냄새에 대한 감각은 지극히 정확할 수 있지만, 어떤 냄새를 맡아본 적 없는 사람에게 그것을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 냄새는 침묵의 감각이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 우리는 숨 쉴 때마다 냄새 맡는다. 눈을 가리면 보이지 않고 귀를 막으면 들리지 않지만, 코를 막고 더 이상 냄새를 맡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을 것이다.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작가정신, p. 19)'

"냄새가 선을 넘지"  영화 <기생충>에서 냄새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구분했다면 문진영의 <나쁜 여행>에서 냄새는 너와 나의 '구별 짓기'를 한다. 냄새로 누구는 밀어내고 또 다른 냄새를 가지고 내 품으로 뛰어드는 누군가는 끌어안는다.

공현진의 <이사>에서 정체 모르는 악취는 불안을 일으킨다.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이기에 냄새를 알 수 없어 불안은 공포가 된다. 드디어 언젠가 맡아본 냄새라는 걸 알아낸 해오는 그 냄새의 정체를 알지만 우진은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라 여전히 그 냄새를 알 수가 없다.  '우진은 해오와 같은 냄새 속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냄새 속에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 (p. 170, <이사>)'

김사과의 <전기도시에서는 홍차향이 난다>에서는 미래도시에 가득한 향을 말한다. 홍차향만 남고 모든 향이 사라진다면, 낙엽의 달고 씁쓸한 향, 냉기 서린 죽음의 냄새 등등... 하나씩 사라진다는 건 사랑하는 연인도 이웃도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존재했다는 기억조차 사라질지 모르기에 '어떤 것은 사라지면 안 된다. 아니 사라질 수가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p. 250, <전기도시에서는 홍차향이 난다>)'

똥 냄새도 향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냄새 향'을 정답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에게는 무지개 색깔이 6가지, 5가지다. 누군가는 아는 냄새를 누군가는 모른다. 각각 추억에 따라 냄새도 색깔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그렇다.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후각이 아내보다 덜 예민한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이런 내 후각이 어떤 때 유리하고 어떤 때는 불리하다. 하지만 어떤 때 유리했는지 어떤 때 불리했는지 나는 모른다. 경험이 없어 인식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아있지도 않다. 

어떤 색깔을 좋아하나. 보라색? 어떤 사람은 그 색깔을 싫어한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니 보라색이 내게 장애물로 작용할리 없다. 그저 언제나 내겐 행운의 색깔일 뿐이다.

c******9 2025.08.04. 신고 공감 9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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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향에 관한 앤솔러지, 『초록 땀』, 단편소설과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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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초록 땀』은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저마다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앤솔러지로, <소설향> 시리즈의 첫번째 권이다. 시리즈의 기획의도가 궁금하여 먼저 찾아 옮겨본다.199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선을 보인 중편소설 시리즈 ‘소설향’은 ‘소설의 본향, 영향, 반향’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으로 다시 선보이며 2세대 ‘소설, 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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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초록 땀』은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저마다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앤솔러지로, <소설향> 시리즈의 첫번째 권이다. 시리즈의 기획의도가 궁금하여 먼저 찾아 옮겨본다.

199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선을 보인 중편소설 시리즈 ‘소설향’은 ‘소설의 본향, 영향, 반향’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으로 다시 선보이며 2세대 ‘소설, 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설향 앤솔러지’는 소설에 대한 열의와 희망을 되새기고, 한국문학의 오늘과 내일을 채우는 작가들과의 만남의 장을 지속적이고도 발 빠르게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 출판사 소개 중에서



소설향 시리즈 첫번째 권의 테마는 ‘색’과 ‘향기’다. 초록과 검정 등의 '색'과 홍차향 등의 '향기'라는 감각적 매개체를 활용하여 작가마다 각기 다른 시선과 감각적 언어로 테마를 변주하면서 일상의 불안, 관계, 상실, 성장, 인간관계 등의 테마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각 작품마다 <작가노트> 코너를 두어 주제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나 작품 의도를 밝히고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표제작인 김화진 작가의 「초록 땀」에서 ‘초록’이라는 색은 인물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투영하면서 주인공의 정체성, 불안, 그리고 성장과 깊이 연결된다. '안팎을 연결하는 통로에 갑작스레 셔터가 내려가서 장 통하던 공기나 물이나 바람이나 그런 것들이 통하지 못하게 된 것처럼(p18)'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지고, 자연스럽게 숨쉬는 게 힘들어졌던 화자는 사무보조 아르바이트생인 보영의 숨을 부러워하며 지켜보다가 보영이 초록 땀을 흘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보영은 이 땀을 자신의 약점이 아니라 삶을 정의하는 하나의 특성으로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그런 보영과 소통하게 된 주인공은 '초록의 흔적이 남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p40)'는 믿음으로 초록 땀 하나를 산다.



언젠가부터 안 좋은 쪽으로만, 불퉁한 쪽으로만 흘러가는 내 생각들, 낯선 삶을 걸으며 내. 머릿속을 시끄럽게 하는, 닫힌 창문 뒤에서 성격 나쁜 마녀처럼 세상 탓을 하는 그런 투덜거림을 끊임없이 중얼거리기를 제발 멈추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고 나는 초록 땀을 창가에 두었다. 땀이 말라서 초록의 흔적만 남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으니까. 

- p40, 김화진, 「초록 땀」


감각이라는 것은 인지하기에 앞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던가. '감각으로 보는 세계는 그러기에 더욱 기민하게 현실을 포착하며 우리의 의식을 보다 깊고 넓게 확장한다.' 각 작품 속 감각들은 단독이 아니라 상호 얽혀 인물의 내면이나 인간관계, 사회적 조건까지 연결하는 상징적 언어로 활용된다. 빛의 온도, 피부에 밴 땀, 공간 안에 드리운 잔상 등 시각 및 촉각적 묘사가 심리적 분위기를 촘촘하게 환기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검정이라는 색을 통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상실과 공허, 세상에서 길을 잃는 감정과 현실을 그린 김희선 작가의 『뮤른을 찾아서』 는 삶의 빈틈, 상실의 감정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화자는 자신이 잃어버린 어떤 색깔이 있다고 느끼기 시작하고, 이 현상이 자신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 혹은 전 지구적으로 퍼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다. 이 비현실적인 현상의 중심에는 물리학자 출신의 예술가가 존재하고 그의 집은 블랙홀 같은 어둠으로만 이루어져있다. 검정은 단순히 어둠이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현실에서 길을 잃거나 소외된 감정, 무엇인가를 잃고 난 뒤의 깊은 공허와 절망, 그리고 현실에서의 소속감 부재까지 확장되어 진다. 



가서 사람들에게 그날 사라진 색이 뮤른이라고 전하세요. 뮤른을 기억해보라고, 그게 어떤 사물에 그 색이 깃들어 있었는지 떠올려보라고, 전해달란 뜻입니다. 나에게 뮤른이 이런 색이라면 당신에겐 뮤른이 저런 색이고, 만약 이 지구에 80억 명의 사람이 있다면 뮤른은 80억 개의 빛깔을 띨 거라는 얘기도, 꼭 덧붙이고요

- p211, 김희선, 『뮤른을 찾아서』 



잃어버린 색은 제목 속의 단어인 '뮤른'이다. '곧 잃게 될 것을 알면서도'(p211) 화자가 나지막이 그 색깔 이름을 중얼거리는 마지막 장면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내 세계에서도 어떤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김희선 작가는 작품은 각각의 독자에게 저마다의 해석으로 다가가기에 작가노트에서는 무지개의 일곱가지 색에 대해 서술해본다고 하면서, '무지개의 진짜 색깔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있을 뿐이다. 무지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색깔이 그러하다(p220)' 라고 전하고 있다. 


앤솔러지 『초록 땀』 의 각 단편의 이야기들에는 그다지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장면들 속에 시각, 후각, 촉각 등을 자극하는 문장들이 감각의 부스러기처럼 읽는 이의 마음에 쌓인다. 감각과 존재가 연결되며 읽는 이들만의 '색'과 '향'을 인식하도록 이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a 2025.08.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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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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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알고 싶으면 빛의 휘장을 걷고, 그 안을 봐야 한다신선한 조합으로 만난 푸르른 5월에 만난 좋은 에세이였다. 특히 김희선 씨의 에세이가 참 좋았다. 올림픽 공원에서 푸르른 들판을 보며 읽었더니 더 굳굳 다음에도 읽어야지.#5월의젊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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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알고 싶으면 빛의 휘장을 걷고, 그 안을 봐야 한다


신선한 조합으로 만난 푸르른 5월에 만난 좋은 에세이였다. 특히 김희선 씨의 에세이가 참 좋았다. 올림픽 공원에서 푸르른 들판을 보며 읽었더니 더 굳굳 다음에도 읽어야지.


#5월의젊은작가

s*******e 2026.06.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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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색을 통해 표현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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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색을 소재로 하는 여섯 작가의 여섯 이야기 엔솔로지.작가 정신 출판사의 <초록 땀> 엔솔로지라는 용어가 익숙치 않아 찾아보니 꽃다발 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온, 시나 소설 등의 문학작품을 하나로 묶은 작품집이라는 설명이 보인다여섯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소설 6편이 왠지 '작가 정신'이라는 출판사의 이름에서 엿보이는 사명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사뭇 어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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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색을 소재로 하는 여섯 작가의 여섯 이야기 엔솔로지.
작가 정신 출판사의 <초록 땀> 

엔솔로지라는 용어가 익숙치 않아 찾아보니 
꽃다발 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온, 
시나 소설 등의 문학작품을 하나로 묶은 작품집이라는 설명이 보인다

여섯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소설 6편이 
왠지 '작가 정신'이라는 출판사의 이름에서 엿보이는 사명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사뭇 어울린다 생각된다. 

<초록 땀> 
나는 숨 문제를 겪고 있다. 숨을 들이쉬는 법을 의식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아니라,  사탕을 삼키듯 꿀떡 삼키게 되고, 배 속은 공기방울이 뽀글거리며 불편해진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다른 이들에게 들킬까 신경쓰여 점점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고립해 들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록 땀을 흘리는 보영을 만난다. 초록 땀을 흘리는 이유로 땀이 많이 흐르는 여름은 재택 근무를, 그 외의 세 계절에는 계약직으로 일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문제에도 세상으로부터 숨지 않았다. 보영은 자신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은 듯,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듯 무심히 다룰 줄 아는 가람이었다. 그녀를 통해 나는 숨 문제에서 조금은 초연해지길 기대해본다. 


누구나 각자 가진 골칫거리 곤란거리 하나 있을 지 모른다. '나'는 자신의 숨 문제가 다른 이에게 들킬까 전전긍긍한다. 내 문제인데도 사회적 시선이나 평가가 신경쓰여 정작 나의 힘듬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런데 너무나 '나'란 존재의 마음과 태도가 공감이 되기에 보영을 만나 그가 품는 기대와 소원을 응원하게 된다 

<나쁜 여행>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세요. 그리고 그 과정을 보여주세요. 
자신의 일에 무기력해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헤밤님의 말에 힘입어 일을 그만두고 치앙마이로 여행을 떠난다. 그 사실을 SNS에 올리자 대학 때 잠시 알았던 핌의 연락이 온다. 브이로그를 핑계로 액션캠을 들고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을 보내는 나. 여행지로 날아온 핌. 나의 기억 속 핌과는 전혀 다른 핌의 모습과 기대와 상상 속 치앙마이와 현실 속 치앙마이. 나는 왜 여기에 온 것이지. 

치앙마이에서 만난 소녀는 땀냄새, 비릿한 바람 냄새, 흙냄새, 핌은 비온 뒤 촉촉한 숲 냄새, 부담스럽지 않게 옅은 꽃향기로 표현되는 대상에 대한 인상들. 작중 '나'는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 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녀가 기억하던 과거 속 패딩을 빌려 입은 태국에서 온 핌은 현재 내가 만난 핌과 전혀 다른 이미지다. 과거 삼겹살에 소주 냄새를 풍기면 길을 함께 걸었던 핌과 꽃향기나는 향수내음을 풍기며 외국인들과 파티를 즐기는 핌의 괴리감 만큼 나와 핌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끝내 씹다 뱉은 갈랑갈 뿌리나 썩은 내 나는 웅덩이나 까오의 까오 아님을 담을 수 없다면 내가 찍는 브이로그 속 모습이 진짜가 아님을 깨닫는다. 

넌 향수 안 쓰는 것 같더라?
핌이 말했다. 
응. 난 한 번도 뿌려본 적 없어. 
왜? 
향수는 너무 비싸기도 하고. 별로 관심 없어서. 
그러자 핌이 묘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더는 말없이 조그만 핸드백에
이것저것 집어넣더니, 어느 순간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축복받은 사람이네. 



<빛과 빗금> 
쉐어하우스로 들어서는 나(민정).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민정은 미처 듣지 못했지만 쉐어하우스의 구성원 혜지, 은희, 솔미 사이에는 정치적 갈등이 있었다. 남자친구 승주와 정치 문제를 대하는.태도때문에 갈등을 겪다 도망치다시피 집을 나온 민정은 다시 같은 문제 상황에 들어간 생각이 든다. 

빨강이냐 파랑이냐 ㅡ 색을 매개로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노선을 확실히 하란 이들과 어느 노선도 표시하지 않고 그들을 메이트로 챙기는 이, 굳이 노선을 잡자면 한쪽을 지지하긴 하지만 깃발과 적극적 참여로 내 노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 어느 색을 지지하기 이전에 가족이고 연인이고 메이트였고 사람인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색으로 구분되고 색을 표하지 않으면 박쥐로 비난받는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기에 저절로 피로감이 몰려오기도 한다. 

색보다 빛을 먼저 보라고.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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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4 2025.09.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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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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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초록 땀』은 작가정신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소설향 앤솔러지-색과 향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깔끔한 표지 디자인이 제목과 어울어진 눈길을 끄는데 총 6명의 작가가 공저한 작품이기도 하다. 인간의 오감 중 어느 감각이 먼저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에서는 색과 향에 주목해 인식을 앞서는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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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초록 땀』은 작가정신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소설향 앤솔러지-색과 향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깔끔한 표지 디자인이 제목과 어울어진 눈길을 끄는데 총 6명의 작가가 공저한 작품이기도 하다. 

인간의 오감 중 어느 감각이 먼저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에서는 색과 향에 주목해 인식을 앞서는 감각 속 소설과 에세이를 보여준다. 감각 기능의 이상이 없는 한 색과 향은 후각과 시각을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인지 하는 것 이상으로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표제작이기도 한 김화진 작가의 「초록 땀」을 통해 땀의 색이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이들과는 다른 색의 땀을 흘린다는 것이 그럴수 있는 것이 아닌 문제적 요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주인공 보영은 그속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문진영 작가의 「나쁜 여행」은 영화의 꿈을 안고 살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주인공이 치앙마이로 떠난 여행 속에서 현지인 친구 핌의 향수 냄새와 한 아이의 땀 냄새를 통해서 느끼게 되는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고 이서수 작가의 「빛과 빗금」은 어떻게 보면 정치적일 수 있는 그러나 현실을 보여주는 작년 한국 현대사에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12월 사건 그 이후를 이야기하고 있다.

공현진 작가의 「이사」는 개인의 감각적 차이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외출 후 돌아왔을 때 맡아지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냄새를 소재로 하면서 그것이 어느 순간 동일한 공간에 있는 한 사람(해오)에게만 맡아지고 이후 그 냄새의 정체가 밝혀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김희선 작가의 「뮤른을 찾아서」는 판타지한 분위기의 작품으로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초거대 입자가속기의 등장으로 주인공이 직면하게 되는 이상 현상을 담아내고 있는데 이것이 비단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인지 아니면 아니면 지구 전체의 일인지, 아니면 애초에 일어나는 현상인지 망상이 만들어낸 것인지를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다. 

김사과 작가의 「전기도시에서는 홍차향이 난다」는  사람이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전기도시의 향을 홍차향에 비유하고 있다는 점이 기이한데 인간의 소리가 사라지고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에 점점 더 사라져버리는 인간성의 상실과 그 과정에서 오는 외로움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일까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색과 향을 소재로 하지만 장르도 스토리도 작가님들만의 개성이 묻어나고 독특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실험적 시리즈를 작가정신의 대표 시리즈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g*****s 2025.08.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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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단 14기 | 『초록 땀』: 감각의 문을 열고 마주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작정단 14기 | 『초록 땀』: 감각의 문을 열고 마주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내용보기
작가정신 출판사의 새로운 소설향 앤솔러지 시리즈, 그 첫 번째 책 『초록 땀』이 독자들을 찾아왔습니다. 김화진, 문진영, 이서수, 공현진, 김희선, 김사과, 여섯 명의 작가가 '색'과 '향'이라는 매력적인 테마 아래 펼쳐내는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우리는 인식보다 앞서는 감각으로 세상을 새롭게 경험하게 됩니다.이 책은 '색'이라는 감각을 통해 우리 자신을 규정하고 복잡한 세상을
"작정단 14기 | 『초록 땀』: 감각의 문을 열고 마주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내용보기
작가정신 출판사의 새로운 소설향 앤솔러지 시리즈, 그 첫 번째 책 『초록 땀』이 독자들을 찾아왔습니다. 김화진, 문진영, 이서수, 공현진, 김희선, 김사과, 여섯 명의 작가가 '색'과 '향'이라는 매력적인 테마 아래 펼쳐내는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우리는 인식보다 앞서는 감각으로 세상을 새롭게 경험하게 됩니다.


이 책은 '색'이라는 감각을 통해 우리 자신을 규정하고 복잡한 세상을 헤아리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김화진 작가의 「초록 땀」에서 남들과 다른 특별한 땀을 흘리는 주인공은 삶의 혼란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서수 작가의 「빛과 빗금」은 사회적 대립 속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빛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김희선 작가의 「뮤른을 찾아서」는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 속에서 역설적으로 진짜 세상을 발견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한편, '향'이라는 감각은 우리를 과거의 특정 순간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합니다. 문진영 작가의 「나쁜 여행」은 냄새를 통해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느끼고 내면의 낯선 향을 감지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립니다. 공현진 작가의 「이사」는 알 수 없는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을 상기시키며 삶의 미스터리와 사회적 비극에 대한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김사과 작가의 「전기도시에서는 홍차향이 난다」는 인공지능 시대에 사라져가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 스산하고 환각적인 미래를 보여줍니다.





『초록 땀』은 단순히 '색'과 '향'을 다루는 책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의 매 순간을 다채롭고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보게 합니다. "무지개의 색깔은 일곱 가지 색깔이 아니다. 무지개의 진짜 색깔은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김희선 작가의 문장처럼, 이 책은 독자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진짜 색과 향을 일깨우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통찰을 선물할 것입니다. 감각을 통해 삶의 깊이를 탐색하고 싶은 독자, 익숙한 일상 속에서 낯선 질문을 던지고 싶은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g********6 2025.08.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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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색과 우리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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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2022)≫로 2023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김화진 작가님,≪최소한의 최선(2023)≫에서 인아영 평론가님과 좋은 합을 보여준 문진영 작가님,≪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네 번째 작품 <젊은 근희의 행진> 이서수 작가님,곧 내게도 올 따끈한, 후텁지근한! 신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2025)≫의 공현진 작가님,문제적 ≪2019년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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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2022)≫로 2023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김화진 작가님,

≪최소한의 최선(2023)≫에서 인아영 평론가님과 좋은 합을 보여준 문진영 작가님,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네 번째 작품 <젊은 근희의 행진> 이서수 작가님,

곧 내게도 올 따끈한, 후텁지근한! 신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2025)≫의 공현진 작가님,

문제적 ≪2019년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두 번째 작품 <공의 기원> 김희선 작가님,

작가정신의 또 다른 시리즈 소설,향의 ≪0 영 ZERO 零≫ 김사과 작가님이 하나의 테마로 모였다.


각자의 색에 대한 존중, 세계를 이루는 우리들 사이의 경계, 그리고 개인 속으로의 침잠 그 모든 것에 겨웠다. 땀이 날 정도로.

각 작가님의 여섯 작품이 순서대로 둘씩 나뉘어 엮였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실존에 관한 탐구로 해석되는 <뮤른을 찾아서>가 좋았다. 이렇게 작가의 해설 및 후기가 덧붙여진 앤솔러지 형식의 소설집으로는 나의 확신에 찬 감상이 작가의 의도가 아닌 경우가 있어 매번 뒤통수를 맞는다. 실제적인 묘사로 지금 현대의 모습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고 평했던 작품이 극 추상적인 개념인 진짜 사랑과 이상향을 말하고 있었다든지(<빛과 빗금>), 아주 몽상적이고 감각적으로만 감상한 작품이 사실은 아주 극 사실적인 경험 기반의 이야기였다든지(<이사>, <전기도시에서는 홍차향이 난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둘씩 묶어, 그리고 나의 감상이 늘 그렇듯 다른 작품들과도 엮어 재조립해보려고 한다.



하긴, 이것은 소설일 뿐이다. 작가의 완고한 사상을 전하는 글이 아니라 독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거나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  

작가정신의 《초록 땀 p.139, 이서수 작가님의 작가노트




각자의 색에 대한 존중

김화진 작가님의 <초록 땀>과 문진영 작가님의 <나쁜 여행>


혀를 입 속에 수납하는 법을 잊은 사람과 언젠가부터 초록 땀을 흘리는 사람.

여기에서 황모과 작가님의 단편 《10초는 영원히》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사랑을 보았지만, 지금은 약한 이들에 대한 보살핌과 각자의 색에 대한 존중을 바라본다.


우리 반 애들은 정말 개성 만점이다. 이곳에 이렇게 모여 다들 앉아 있는 것만도 기적이다. 원민이는 말이 너무 느렸다. 원민이와 대화하려면 말하는 속도를 반쯤 늦춰야 했다. 말이 속사포처럼 빠른 기광이와는 앙숙처럼 사이가 나빴다. 별명이 할아범인 하범이는 허리를 통통 두드리며 오늘도 세상을 욕하고 있었다. 은서는 두 겹으로 쓴 마스크 속에서 콜록거렸다. 동숙이는 심성은 착했지만 부지불식간에 무쇠 주먹을 휘두르면 무서웠다. 다모증 중기는 오늘도 제모를 하고 있었고, 책상에 짐만 남기고 교실에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 건 루다였다. 유슬이는 코스프레 중독이 심해 꽤 자주 모습을 바꿨다. 지난번엔 미소년이었는데 오늘은 초등학생이다.

위즈덤하우스의 위픽 시리즈 중 《10초는 영원히》 p.12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부러워해야 하는 걸까?


보영은 화들짝 놀란 몸짓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부른 사람이 나라는 걸 확인하자 아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데 그때 나는 무의식적으로도 의식적으로도 보영이 내뱉는 숨이 부러웠다. 뱉을 때 자연스럽게 뱉어지는 숨.

작가정신의 《초록 땀 p.14



아니면 다름을 그대로 다르게만 느끼며 나누고 예의 주시해야 하는 걸까?


숨 쉬는 것의 불편함을 잊은 잠깐의 집중. 그러다가 뭔가 이질적인 것을 발견했다. 이질적인 장면이라기보단 이질적인 색깔. 아주 작은 색깔이었다.

같은 책, p.21


분류가 정확히 되는 건 그래도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이름 붙이는 일은요.

같은 책, p.39



언제나 옳은 쪽은 사랑이다. 정답은 존중이리라. 유레카! 땀을 날리는 찬바람 같은 바른 답!


이상하게도 류비가 나를 이미 사랑한다는 사실이었다. 

위픽 《10초는 영원히》 p.38


한쪽은 긴장을 해서 눈에 안 보이는 문제가 생기고 한쪽은 눈에 보이는 문제가 생겨서 긴장을 하고...... 얄궂네요.

그렇게 말해보는데 열린 창문으로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내 문제를 그렇게도 말할 수 있다니 속이 시원했다.

작가정신의 《초록 땀 p.39



초록이 무성한 치앙마이에는 태국인 핌과 이름이 잊힌 아이 파난이 등장한다. 

<나쁜 여행>에도 자신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핌이 있다.


그는 핌이 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고, 핌은 그 생각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같은 책, p.82



<초록 땀>에서 다름을 부러워하지도 서로를 겨누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각자의 색을 존중하되 스스로를 아껴야 하는 것을 모든 인물이 인정했다면, <나쁜 여행>에서는 결국 이 문제가 해소되지 못한 채 끝이 난다.


나는 앙심을 품을 사람을 정하기 위해 친구 누구에게 줬냐고 재차 물었다. 핌이 한참 있다 대답했다.

...... 기억이 안 나.

그럼 그렇지, 그건 돌려주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핌이 중얼거렸다.

...... 너는 내 이름 기억나?

넌 핌이잖아.

풀네임.

핌...... 핌...... 기억나지 않았다. 아까 들은 여자애의 진짜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다.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좀 더 싫어졌다. 잠시 후 핌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책, p.89



다름에 대한 인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남에게 향하던 화는 자기경멸로 이어진다. <나쁜 여행>에서는 이 퀘스천마크가 인물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해소되지는 않으나, 까오가 아닌 그 애, 이름이 잊힌 아직 때 타지 않은 순수한 어린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간접적으로 바른 답을 일러준다. 

우리는 존중해야 하고 사랑해야 하며 서로를 돌보아야 한다. 그때야만이 비로소 자기를 귀히 여길 수 있다. 높은 곳에서 저 멀리를 더 넓게 보자. 초록을 보면 눈이 좋아진다던데, 먼 곳을 보면 눈이 좋아진다던데.


그러고 보니 까오가 아닌 그 애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같은 책, p.90


핌이 짐을 꾸리는 동안 나는 캔맥주를 들고 발코니에 앉았다. 울창한 나무들이 푸른 담요처럼 지평선을 덮고 있었고, 그 뒤로 붉은 해가 절반쯤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 내가 이 장면을 내려다볼 수 있는 건 이 건물이 홀로 높기 때문. 저 풍경 안에 속하면서 동시에 저걸 내려다볼 수는 없다.

같은 책, p.91



누군가에 대한 앎은 '구별 짓기'와 동시에 일어난다.

(중략)

누군가와, 어떤 거리도 생성하지 않은 채로 연결될 수는 없을까.

누군가를 기어이, 기꺼이 조금도 모르거나 혹은 나 자신이 그 누구도 아닌 채로 존재할 수는 없을까. 

같은 책, p.94, 문진영 작가님의 작가노트





세계를 이루는 우리들 사이의 경계와 기억

이서수 작가님의 <빛과 빗금>과 공현진 작가님의 <이사>


<빛과 빗금>과 <이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바깥에서 점차 안쪽으로, 낯섦 없이 들어갈 수 있도록 이끈다.

존중과 사랑과 돌봄이 지금 당장 이 시점에 이 나라에서 어떻게 풀이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한 개인의 안과 밖을 연결한다.


2018년 10월 27~29일 내내 나는 이태원에 있었다.

재밌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좋았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으로 외출이 제한되었을 때 이때의 순간에 굉장한 갈증을 느꼈다.




"너 지금 집이야? 이태원 아니지? 이거 보면 답장 좀 해줘."

2022년 10월 29일 새벽, 생방송으로 보도되는 뉴스를 보며 

끊기지 않는 카카오톡 알림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죄책감의 눈물. 이제는 그곳에 가기가 힘이 든다.


해오는 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빚이 있다고 말했다. 그 건물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우리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것이 우진에게는 기적으로 다가왔는데 해오에게는 우리가 대신 살았고 누군가 대신 죽었다는 부채감으로 해석되었다.

같은 책, p.169



우리는 잊지 않되 살아가야만 한다. 우연하게 읽게 된 《루카스》는 그때를 기억하게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정말 펑펑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리고 잊지는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기억을 잘라내려는 것들과 싸우지 않으면 기억을 지켜낼 수 없다.

위픽 《루카스》 p.81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으로부터 한 정거장 떨어진 합동 분향소에서 애진은 약속했다.

(중략)

시피알로도 살리지 못했다는 말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보호자들을 볼 때마다 그 바다와 그 골목에서 자식들을 잃고 목 놓아 울던 얼굴들이 겹쳤다. 애진은 그 골목에서 숨이 멈춰버린 자신과 같은 이름의 또래 희생자를 생각했다. 그 골목에서 끝나버린 그의 이야기와 참사가 아니었다면 계속됐을 그의 이야기들을 상상했다.

같은 책, p.82



존중과 사랑과 돌봄을 너에게, 우리에게, 그들에게 실천하려면 모두를 빗금 안으로 데려와야 한다.

색으로, 방향으로 나눌 필요가 없다는 것.


"승주야, 빛을 먼저 보면 안 될까."

"뭐라고?"

"색보다 빛을 먼저 보라고."

승주가 도통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빛이 뭔데?"

빛은...... 빛은 단순한 밝음이 아니야. 입자나 파동, 광선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식상하지만 사랑과 온기라 표현할 수 있고, 식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노려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온기라고 말할 수도 있어. 그리고 그에 대한 모든 기억이라고도. 색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사랑과 온기와 기억을 지키고 깨닫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그러나 그걸 우리는 자주 잊잖아. 특히 너는, 때로는 빛이 없는 사람같이 굴잖아.

작가정신의 《초록 땀 p.128



이해되지 않는 냄새처럼, 내게 어떤 사고들은 영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전에 예방되었어야 할 사고들을 마주하면 참담하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고들. 어떻게 한결같이 반복되는 것일까. 사고의 징후가 있었다고. 사전에 안전 문제를 지적받았다고. 다른 뉴스에서 같은 말을 본다.

(중략)

나는 냄새를 쫓았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일까 쫓는 동안 나는 불안하다. 불안을 느끼는 동안 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불안의 냄새를 나는 쓰기 시작한다. 

같은 책, p.179, 공현진 작가님의 작가노트





개인 속으로의 침잠

김희선 작가님의 <뮤른을 찾아서>와 김사과 작가님의 <전기도시에서는 홍차향이 난다>


사랑과 존중에 관한 이론을 직접 세상에 맞대어 볼 줄 알게 되었다면, 실제적 눈을 떴다면, 알에서 깨어 나왔다면, 싱클레어처럼 다시 내 속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생각에 잠겨가는 얼굴과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옳거나 그르다는 건 무엇일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을  돌보는 일이다.

마지막 두 작품은 시적인 이야기들이다. 

한쪽은 어떤 색이 사라졌고 다른 한쪽은 어떤 향이 계속 떠오른다. 

알에서 깨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사랑해야만 하지만 사실은 어두운 세상에 둘은 모두 약간은 비뚤어져 있다.


언제나 꿈에서는 그 색깔이 뭔지 깨닫는다. 그러나 깨어나면 그 색깔을 잃고 만다. 입에서만 맴도는 이름처럼 그 색은 이곳에 없다. 이곳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 어쩌면 우주 전체에도 그 색은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그런데 나의 꿈에서만 나타나는 건지- 아니면 그날 이후 사라진 건지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그저 없다는 사실뿐이다.

같은 책, p.186


흠, 사실 그런 문제에는 좀 철학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사고실험을 해보는 게 좋다, 이 말인데요. 누군가가 블랙홀을 통과해서 화이트홀로 나온다면, 그때 그 존재는 이전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 전에 먼저, '같다'라는 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같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면 정말로 같은 것? 같지 않은데도 같다고 믿으면 같은 건가요? 혹시 같은데도 같지 않다고 믿는 경우는요? 또는, 이런 식의 접근은 어떻습니까? 세계는 우리가 믿는 대로 봉이는 건지, 아니면 고유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가 그걸 그저 보기만 하는 건지. 이 중에서 무엇이 진실에 가장 가까울까요?

같은 책, p.192


그때 벽에 걸린 티브이에선 뉴스가 나오고 있었지요. 무음으로 해놨는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다 무너진 병원 건물 같은 데서 아이들과 여자들이 뛰어나오는 광경이 보였어요. 이제 와 돌이켜보면 거긴 아마도 팔레스타인이 아니었을까요? (중략) 그는 자기가 들고 있던 종이컵이 엎어진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외쳤어요. 저걸 왜 컬러로 보여주는 거냐고. 난 물었죠. 그럼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 건지. 그러자 진수가 절망적으로 대답하더군요. 저 화면은 반드시 검어야 한다고, 화면 전체가 온통 검음으로 칠해져서 모든 걸 가려야 한다고. 나는 반문했어요. 그러면 우린 아무것도 볼 수 없잖아? 한동안 허공을 응시하던 진수는, 한참 후에야 낮게 중얼거렸어요.

봐야 아는 건 아니잖아요 온통 검정색이어야 우린 볼 수 있어요 아니 봐야만 해요.

같은 책, p.202

(*검은색=검정, '검정색'은 비표준어다.)


모든 것이 어제와 동일한 채로, 너만 삭제되어 있다. 익숙한 홍차향, 창밖의 초록색 풍경, 여느 때와 다름없는 거실의 공기 속에서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네가 사라졌다는 것을.

일단 차를 마시기로 한다.

같은 책, p.225


사람들이 내는 소음이 조금씩 멀어지고, 대신 기계들이 내는 조용한 소음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라고, 나는 사라지고 싶지 않다고, 나는 네가 되지 않겠다고, 제발, 필사적으로, 어둠 속에서, 나는 가까스로 힘을 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들리지도 않은 채로, 무 냄새도, 너의 이름조차 잊은 채로, 오직 불길한 기계들이 내는 소음 속에서, 진한 홍차향을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사라지지 않기 위해 나는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책, p.242



사랑해야 하는 세상이지만 같은 마음을 가지고서도 다른 쪽으로 가는 일원들, 벗어나고 싶은 그 심정. 사고의 회로는 다시 첫 번째 장으로 간다. 각자의 색에 대한 존중으로.




어쩐지 황인찬 시인의 <학교를 안 갔어>와 천서봉 시인의 <7월의 복합>이 떠오른다.


학교를 안 갔어


일단 전철을 탔고

시를 벗어났어


다들 학교도 안 가고 회사도 안 가고

뭐하는 걸까


나에게는 변명이 많았지

현장학습을 하러 가는 날이에요

집에 급한 일이 생겼어요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진 않았지만


전철을 달렸어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들

강물에 반사되는 빛


기관사가 차내에 계신 분들께 알리는 소리

다들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나도 사람에게 할말은 없었어





7월의 복합


우리는

갈 데까지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연습을 시작한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연습

가령, 비를 가진 구름의 형태에 관한 연구처럼

우리는 한 발을 내딛는다


발끝에서 7월이 시작되고


우리는 소나기를 어느 모서리에 맞추어야 할지 몰라

밤에도 하고 낮에도 하고 그러나 중얼거리는

무지개 때문에 도무지 겹쳐지지 않는 슬픔

되돌아와서 어디까지 갔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문장

이것은 우리가 처음 발견하는 여름, 찢어져도 괜찮아

연습이니까 가령, 중독되지 않는 고독에 관한 연구처럼

우리는 뜨겁게 반복되고 그리고 버려질 거야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7월에서 끝나버린 발끝


어떤 연습은 시작되기도 전에 끝났으므로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한 발을 내딛는다

영영 못 돌아올 거야 우리에게 헌신하는 7월은

참 착하지 갈 데까지 갔다가 녹아버린 얼굴은

얼굴 없이 되돌아오는 우리의 슬픔은



YES마니아 : 로얄 a*****1 2025.08.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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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소원을 들여다보는 시간, 초록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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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뭔가에 홀린 듯 책을 읽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 새로운 영감을 얻고 싶을 때 책만큼 좋은 친구가 있을까 싶다. 그러던 중 보게 된 초록 땀은 표지부터 싱그러운 초록색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속에 작은 초록색 물방울이 톡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소원이 있으세요?”왠지 모르게 뭉클해지는 기분이었다. 나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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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뭔가에 홀린 듯 책을 읽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 새로운 영감을 얻고 싶을 때 책만큼 좋은 친구가 있을까 싶다. 그러던 중 보게 된 초록 땀은 표지부터 싱그러운 초록색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속에 작은 초록색 물방울이 톡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소원이 있으세요?”

왠지 모르게 뭉클해지는 기분이었다. 나 자신에게 나는 요즘 뭘 원하면서 살고 있지? 라고 질문하게 되었다. 나도 한때는 매일매일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삶을 살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초록 땀은 여러 작가들의 단편 소설과 에세이가 담겨 있는 책이다. 그래서 각기 다른 색깔의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조각보를 이루는 느낌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소원 수리 초록빛 땀' 이라는 글이었다. 연하고 투명하게 빛나는 소원, 그리고 낯선 내 안의 향. 작가님들이 써내려간 이야기는 단순히 활자를 넘어, 마치 내 삶의 한 조각처럼 다가왔다. 특히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어도 좋다는 문장은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결과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과정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어릴 적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여름 방학 숙제로 가장 소중한 소원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그때 나는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을 그렸는데, 막상 그림을 그리다 보니 내가 진짜 우주에 가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멋있어 보여서 쓰고 싶었던 건지 헷갈렸다. 그저 막연한 소원이었던 거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나처럼 우리 모두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진짜 소원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색에서 향으로, 향에서 색으로 이어지며 삶을 이루는 다채로운 조각들'

이 문장도 인상 깊었다. 때로는 희망적인 초록빛으로, 때로는 씁쓸한 회색빛으로, 그리고 다시 빛나는 주황빛으로.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가 나오는데, 양귀비 꽃밭을 지날 때의 붉은 꽃잎이 떠오른다는 구절에서는 정말 생생하게 그 장면이 그려졌다. 나에게는 책을 읽는 이 시간이 바로 나만의 초록 땀을 흘리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단순히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각 작가님들의 삶의 조각들을 엿보고 그 속에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준 책이다. 숨이나 잘 쉬고 싶다'는 외침처럼, 때로는 거창한 소원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여러분도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만의 소원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초록 땀 을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다양한 작가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모두의 마음속에 작은 위로와 희망의 씨앗을 심어줄 것 같다.
이달의 사락 n********r 2025.08.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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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땀, 김화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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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싫다. 어떡하면 좋을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고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들, 전부 싫어. 어떡하면 좋을까? 생각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어. 눈치 보고 싶지 않아. 그럴 수 있을까?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p. 12, 「초록 땀」사람들은 생각보다 사람이 하는 말을 너무 믿어요. 믿음은 오히려 이상할 때가 있어요. 하지 않는 말까지 만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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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싫다. 어떡하면 좋을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고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들, 전부 싫어. 어떡하면 좋을까? 생각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어. 눈치 보고 싶지 않아. 그럴 수 있을까?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p. 12, 「초록 땀」



사람들은 생각보다 사람이 하는 말을 너무 믿어요. 믿음은 오히려 이상할 때가 있어요. 하지 않는 말까지 만들어서 믿어요.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도요.

p. 27, 「초록 땀」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건 누군가의 마음, 혹은 누군가가 내 마음처럼 마음을 먹는 일이라고 했다. 맡겨놓은 것처럼. 마치 맡겨놓았는데 그쪽이 깜빡해서 되돌려 받지 못한 것처럼. 그래서 너무 화가 나거나 슬프고 배신감이 들어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p. 27, 「초록 땀」



저는 숨 쉬는 법을 까먹었어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아무에게나 말하고 싶던 것은 아니고 내 말이 안전하게 도착할 장소에, 그런 장소가 될 사람에게 하고 싶었다.

p. 38, 「초록 땀」



나는 깃발의 형태만 만들어놓고 그 안에 아무런 문구도 쓰지 못했다. 어떤 사람인지, 무얼 추구하는지 말해야 하는 순간마다 누군가에게 선을 긋는 기분이 드는 고질병 때문이었다.

p. 124, 「빛과 빗금」



빛은…… 빛은 단순한 밝음이 아니야. 입자나 파동, 광선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식상하지만 사랑과 온기라 표현할 수 있고, 식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노려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온기라고 말할 수도 있어. 그리고 그에 대한 모든 기억이라고도. 색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 사랑과 온기와 기억을 지키고 깨닫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그러나 그걸 우리는 자주 잊잖아.

p. 128, 「빛과 빗금」



누군가가 블랙홀을 통과해서 화이트홀로 나온다면, 그때 그 존재는 이전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 전에 먼저, '같다'라는 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같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면 정말로 같은 것? 같지 않은데도 같다고 믿으면 같은 건가요? 혹은 같은데도 같지 않다고 믿는 경우는요? 또는, 이런 식의 접근은 어떻습니까? 세계는 우리가 믿는 대로 보이는 건지, 아니면 고유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가 그걸 그저 보기만 하는 건지. 이 중에서 무엇이 진실에 가장 가까울까요?

p. 192-193, 「뮤른을 찾아서」







'색과 향'이라는 주제로 묶인 앤솔러지,

『초록 땀』.


텍스트로 되어 있는 작품들을 읽으면서

감각적인 경험을 동시에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글을 통해 색이 보이고,

향이 맡아지는 느낌이랄까.


소설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과는

또 다른 색다른 경험이었다.


*

숨 문제가 있는 '나'와

초록 땀을 흘리는 '보영'의 이야기.

김화진, 「초록 땀」.


치앙마이 여행에서

'낯섦'을 느끼는 '나'

문진영, 「나쁜 여행」.


두 가지 색으로 나뉜 세상에서

'빛'을 찾아가는 '나'의 이야기가 담긴

이서수, 「빛과 빗금」.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나기 시작한

알 수 없는 냄새의 원인을 찾는 '해오'와 '우진'.

공현진, 「이사」.


그날 이후 색깔을 잃어버린 사람들.

하지만 잃어버린 색깔이 어떤 건지

아는 사람은 없다.

김희선, 「뮤른을 찾아서」.


"모든 것이 어제와 동일한 채로,

너만 삭제되어 있다."

김사과, 「전기도시에서는 홍차향이 난다」.


*

앤솔러지는 참 매력적이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이렇게나 다양한 글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라면 이 주제로

어떤 내용의 글을 써볼 수 있을지 하는

생각도 해보게 한다.


김화진 작가님 글은

언제 어디서 만나도 참 좋구나...🫶🏼

작가님의 모든 글을 흡수해버리고 싶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c*******0 2025.08.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초록 땀
"초록 땀" 내용보기
'초록 땀'은 '향'을 주제로 한 소설 앤솔러지다.여섯 작가의 색과 향을 접할 수 있었다.기억은 색과 향으로 존재하는데, 그들처럼 오래 기억 속에 머무를 책이라고 느꼈다.읽으며 많이 떠올린 단어는 '공유성'이다.'초록 땀'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나온다.숨을 쉬기 어려운 사람과 초록 땀이 흐르는 사람.서로가 만났기에 어쩌면 더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누군가는 다르다는 걸 절대 받
"초록 땀" 내용보기
'초록 땀'은 '향'을 주제로 한 소설 앤솔러지다.
여섯 작가의 색과 향을 접할 수 있었다.
기억은 색과 향으로 존재하는데, 그들처럼 오래 기억 속에 머무를 책이라고 느꼈다.

읽으며 많이 떠올린 단어는 '공유성'이다.

'초록 땀'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나온다.
숨을 쉬기 어려운 사람과 초록 땀이 흐르는 사람.
서로가 만났기에 어쩌면 더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다르다는 걸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나쁜 여행'에서는 사람 간의 거리감이 드러난다.
낯선 장소에서 어색한 동기를 만나고, 그 속에서 섞이지 못하며 결국 멀리서 바라보는 감각.
심지어 자신에게조차 거리감을 느낄 수가 있다.
생소하면서도 모두 언젠가는 느껴봤을 감각이다.

'빛과 빗금'에서는 함께 살아가며 공유하는 현실이 드러난다.
비록 그들은 모두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졌지만, 서로 적대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공유하는 현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사'에서는 공유하는 그림자가 떠올랐다.
모두가 잊고 싶은 날이 있을 것이다. 아니, 없었어야 하는, 그러지 않았어야 하는 날이겠다. '왜?'라는 질문만 겨우 나오는 그런 순간.
한순간에 모두에게 상처를, 충격을 주고야 만 마는 그런 일들이 오늘도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뮤른을 찾아서'에서는 공유하는 상실감이 떠올랐다.
아픔조차 선명하고 강렬하게 드러내는 세상에서 색을 하나 뺏은 것은 앞으로의 상처를 그리 보지 않기 위함일까.
남의 고통이 콘텐츠가 되고, 모든 것이 기만으로만 돌아오는 현실에서 무채색으로 덮인 순간은 분명 필요하다.

'전기도시에서는 홍차향이 난다'에서는 기이한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게 모두가 가지고 있고, 당연하다. 주류가 안 되는 게 더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누군가는 세상 속의 기이함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깨닫더라도, 그게 '진실'일지라도. 그 사람은 그저 '다른 사람'인 현실이 있다.

나는 코가 둔한 편이라 친구들이 언급하는 향에 대해 못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가까운 이와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느끼는 건 기쁜 일이니까. 무언가를 '공유'하는 감각이, 그걸 인지하고 있는 우리가 계속해서 함께한다는 건.

추억은 함께 한 이들과 공유하는 즐거움인데, 어쩌면 모두 다 다른 기억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각자의 시선으로 느낀 색과 향으로 다양하게 '그날'의 기억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더 좋겠다. '너와 나는 다르다'라는 생각만으로 남겨두지 않고, 그것에 아쉬워하지 말고, 다채로워진 추억을 아껴주는 게 어떨까 싶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들과 다른 색과 향을 느끼고 살았다 해도 '공유성'의 문제에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색과 빛과 향은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되지만, 모두가 같은 감각을 느낀다고는 확신할 수 없으니까. 그런 향수도 있지 않은가? 체향과 체온에 따라 다른 향이 풍기는 신기한 향수. 삶 자체가 어쩌면 그런 세상일 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 갑자기 사진집 펀딩에 참여한 적이 있다. SNS를 통해 한 사진을 접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경이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세상을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사진작가는 자신의 시선을 나눠주는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시야를 빌려라도 보고 싶어져서 그 사진집을 샀었다. 그 이후부터는 사진 전시회도 종종 가보고 있다. 나로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각자의 특색이 담겨있는 그 시야가 너무나도 새롭고 아름다워서.

사람은 직접 경험한 것만을 믿는 경향이 있다. 그 기반이 되는 건 자신의 오감일 것이다. 그 속의 감각들이 사실 확신의 대상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그 무엇도 확신하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막연한 믿음으로 사는 것 같다.

같다는 것을 느끼고 싶은 이유는 두렵기 때문일까. 자신의 복제품이 있어야만 안심할 수 있는 이 세상은 한없이 약하기만 하다. 모두 다른 우리가 만났기에 하나의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다름'에 집중하느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을 거라고.

개성은 중요하지만, '다른 것'은 여전히 용납되지 않는 이 세상 속에서 모두가 '나'인 채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원래 모두 다르니까.
l*******7 2025.08.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