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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의 남작> 은 번번히 시도만 하다가 포기했던 책이였다.그런데 무심히 읽게 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너무너무 재미나서 깜짝 놀랐다.코로나19로 인해 여러 생각을 하고 있던 시기에 읽게 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일수도 있겠지만...해서 작가의 다른 책들에 다시 도전(?) 해 보고 싶었다.반갑(?)게도 제목에 '도시' 가 들어간 책이 또 있었다. <마르코발도 혹은 도시의 사계절>
'도시의 버섯' 을 읽자마자 슬픈데,웃음이 났다.(허망한 웃음이었지만..) 이렇게 간결하게 웃픈이야기를 하다니..생각하며 짧은 단편글을 모은 책인가 싶었는데..제목에서 알 수 있듯,마르코발도라는 노동자가 도시에서 보내는 사계절을 5년의 시간으로 엮어낸 글이었다. 계절마다의 특징도 엿보이는 건,미나리아제비 꽃과 같은 언급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굳이 계절을 언급하지 않아도,한 편 한 편의 글이 독립적인 단편이라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흥미로웠다.두서없이 아무 계절,아무 시간을 읽어도 되는..<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인상적이었던 건 도시 하면 생각할 수 있는 것 너머의 무언가를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인데,마르코발도...도 그 연장선의 느낌이 있었다. 차이라면,보이지..않는 도시가 거시적이라면,마르코..는 좀더 구체적으로 도시에 대한 풍경이 그려진다고 보면 될까.가난한 노동자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삶이 어떨지..그럼에도 마르코발도는..도전하고 또 도전한다.결과가 늘 만족스럽지 않아..읽는 독자로 하여금 웃프게 하는 것이 문제이긴 해도..해서 '도시의 버섯' '시청의 비둘기' '벌침 치료' '도시락' '실험실의 토끼' '강물이 가장 푸르른 곳'이 특히 더 인상적이고 강렬하게 읽혀진 듯 하다. 코로나19로 정신없는 지금이라,실험실의 토끼..는 소설임에도 섬뜩 했으나..한 편 도시라는 곳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곳인지 정신이 번쩍 들정도였다.
"그 물고기들 어디에서 잡았소?" 순찰대원이 물었다. "에?왜요?" 마르코발도는 벌써 심장이 목에 걸린 느낌이었다. "만약 저 아래에서 잡았다면 당장 내버리시오.여기 산에 있는 공장 못 봤소?" (...) "최소한 강물이 어떤 색깔인지는 보았을 것이오! 저건 페인트 공장이라오.강물은 저 푸른 것 때문에 중독되었고 물고기들도 마찬가지요.(...)"/95쪽
낚시를 했는데..먹을 수 없는 고기를 잡게 된 이유가 섬뜩하다.순간 모네의 그림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모네는 안개로 가득한 런던 국회의사당과 풍경이 몽환적이라고 했다지만..실은 스모그때문이었다는 사실..화려하고,멋진 도시 이면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코로나19를 겪으면서도 계속적으로 하고 있는 질문이라.. 잠깐,마르코발도의 고단함 보다 도시의 발전이 어떤 피햬를 불러오는지 생각했다. 도시에 오면 행복하고,성공이란 것도 할 줄 알았던 마르코발도..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그가 풀어낸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그래서 웃프게 다가왔다. |
| 이탈로 칼비노 저 김운찬 역 이탈로칼비노 전집 마르코발도 혹은 도시의 사계절 리뷰입니다. 이 작품은 과거 팔구십년대에 번역되었던 적이 있는데 새롭게 나왔네요. 동화우화느낌에 환상문학스타일도 들어있는 칼비노 초중기작품입니다. 잘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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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편의 연작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산업화된 도시를 이탈로 칼비노만의 특유의 환상성으로 들여다 본 우화로 읽힙니다. 중세가 아닌 도시에서도 이탈로 칼비노의 환상성이 아주 유감없이 발휘되며 앞서 읽었던 다른 저작에서의 중세에서의 환상성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단편으로 이루어져 글은 아주 쉽게 읽히지만 연작이기에 더 풍부한 의미를 더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대도시의 삶에 대한 우려와 공감에 대한 이탈로 칼비노의 시선이 잘 드러난 소설로 전집 중 제일 쉽게 읽히지 않나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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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비노의 책은 몇 권 읽지 않았지만 읽은 것 중에서는 이 책이 제일 읽기가 편하다. 애초에 어린이들을 위해 출간되었다고 하니 그렇기도 한가보다. 그렇다고 해서 메세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 어린이가 읽어도 되지만 메세지는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것이다. 삶의 애환과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캐릭터가 독특하면서도 어디선가 만난듯한 친숙한 캐릭터이다.
마르코발도, 1960년대 이탈리아, 시골에 살다가 중소도시로 떠밀려 나온 최하층 노동자다. 식구는 일곱인가 여덟인가 되는 대가족이고 지하 다칸방에 살다가 고미다락 단칸방으로 옮겨 산다. 약간 모자란듯 하면서 한편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머리쓴 것이 현실과 잘 맞지 않아 엉뚱한 방향에서 결과가 나온다. 무척이나 가난한 그의 살림에도 불구, 낙천성과 긍정성이 외려 애잔함으로 다가온다. 그를 똑 닮은 큰 아들 미켈리노도 애잔하기는 마찬가지다. 얼떨껼에 산으로 가는 소떼를 따라가 모진 고생을 하고 여름이 끝날 때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거리의 끝너머에서 희미한 잿빛 산그림자가 무더위에 뒤덮인 모습으로 보일 때마다 자신이 우물 속에 빠져 이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리 한가운데 어느 젖소의 잔등에는 미켈리노가 걸터앉아 있었는데, 두 손으로 소의 목덜미를 움켜 잡은 채 소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다.' "노새처럼 일했어요."
마르코발도는 이탈리아적 캐릭터인가?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돈 까밀로와 빼뽀네>의 빼뽀네가 연상되는데, 그런데 또 빼뽀네하고는 많이 다르단 말이지. 왜 그 캐릭터가 생각나는지는 모르겠다. 산초 판사가 생각나기도 하고.
'추위는 수천 가지 형태와 방식으로 세상 속에서 움직인다. 바다에서는 야생마 무리처럼 달려가고, 들판에서는 메뚜기 떼처럼 휩쓸고 지나가고, 도시에서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길거리를 난도질하면서 난방이 되지않는 집들의 틈사이로 꿰뚫고 지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