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가면(假面)을 쓰고 살아간다.자기 체면의 유지를 위해,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어쩌면 세상이 씌웠을지도 모를 이 보이지 않는 가면을 우리는 나름대로 고백을 통해서 벗겨내려 하지만, 물밀듯이 밀려오는 저 깊은 곳의 뭔지 모를 회한으로부터 우리는 결국 '그것'을 쓴 채 연극을 해야 한다. 주인공 '나'는 자신이 태어난 모습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약간 남다른 아이다. 남보다 깊은 생각을 가진 그는 [성 세바스찬]이란 제목의 그림을 보고 갖가지 상상을 하고 산문시까지 짓는다.그리고 자신에게도 '성 세바스찬'같은 죽음이 오기를 기다리고 또 바란다.그로부터 그는 남자의 육체의 아름다움,혈(血)과 미(美)의 조화 등등의 생각에 깊이 파묻히게 된다.또한 같은 학년의 친구로부터 느끼는 첫사랑은 그에게 있어 도 다른 '성 세바스찬'을 동경하게 만든다. '나'는 자기의 나약함을 보고 친구들이 건넨 말-넌 20세가 되면 죽고 말거야-을 믿게 된다.그리고 그것은 '전쟁'이라는 단어와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된다.전쟁이라는 것은 그ㅡ이 믿음늘 확실하게 해주는 하나의 기둥이 되었다.적의 폭탄에 맞아 20세의 생을 마감하리라는 생각은 그 시대에 가능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겉만 사랑하는 여인에게 결혼ㅡㄹ 할 수 없다는 투의 편지를 보내고 죽음을 기다린다.그러나 그런 기대를 한 풀 꺾게 만든 것은 전쟁의 종결-항복-이었다.이렇게 전쟁은 끝나고 무섭게 느껴지는 일상생활에의 귀의는 그를 더욱 허무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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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자의적, 타의적 가면에 안주한다.
그것은 이미 좋거나 싫거나의 선택적 문제가 아니라 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타고난 본성적인 문제여 왔다.
그런나 진실이나 본질은 감추거나 덧바른다는 군더더기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그렇게 있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알았던거 같다. 특별히 튀어나오지 않았으나 늘 상존하는 본질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거 같다.
대략은 살짝 파격적이다.
고백은 너무 담담하고, 침착한 어조로 지속하지만, 그것을 목격하는 나는 쉴새없이 숨가펐던거 같다. 고백에서 자꾸 내가 보였다. 뭐.. 디테일에서 100%일치했다는 것은 아니지
만..
그리고 책이 끝날때 쯤이면 가면이라는 것이 본질을 감싸는 무엇이라는 이물이라기 보다는 그것 자체도 둘로 나뉠 수 없는 진실일꺼라는 생각이 든다.
미시마 유키오는 금각사를 읽으며 더없이 호감을 느꼈던 작가였다.
그러나 재미를 주었던 금각사였다면, 가면의 고백은 재미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 보다는 섬찟한 동화라고해야 하나...
워낙 구하기 힘들어서 일본서를 보거나, 빌려읽거나해야겠으나.
수고롭게 구해 볼만한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나의 인생에 맞서는 태도는 이즈음부터 그런식이었다. 너무도 기다리던 끝네, 일이 일어나기 전의 공상 속에서 너무도 지나친 수직을 해대다가 마침내는 도망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게 되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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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작가의 작품을 본 것은 이문열의 단편을 모아 주제별로 묶어 소개 해 놓은 10권의 책중에서 죽음을 다룬 책중에서 군국이라는 단편을 본 것이었다. 짧은 글이었지만 너무나 강렬한 인상과 충격을 받았다. 나라를 위한 죽음과 탐미적인 내용은 며칠동안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미시마 유키오의 다른 책을 뒤지기 시작했을때 눈에 띈 것이 바로 이 가면의 고백이다.
미사마 유키오는 자신의 책 내용에서 항상 관철해오던 내용같은 삶을 산 것으로도 충격을 던져주는데,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을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인 그는 군국에서처럼 할복자살을 해서 일본 전역에 충격과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킨 작가이다. 가면의 고백에서 보면 초반부분의 어렸을때부터의 동성에 대한 관심은 물론 특유의 탐미주의 적인 시선이 숨을 못 쉬게 할만큼 강렬한 이미지로 독자들을 압도한다. 일본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이 책과 단편인 군국은 꼭 한번 보기를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뒤틀린 꼬락서니로 쓰러져 버린 나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데에서 기쁨을 배웠다. 자신이 총에 맞아 죽어가는 현실에는 더할 수 없는 유쾌함이 있었다. 정말로 총알을 맞는다해도 나라면 아플리가 없을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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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명성은 물론 그가 남긴 작품들의 탁월한 문학성에서 기인하지만, 그의 수수께끼는 그의 독특한 삶에 있다. 소설과 희곡을 쓰고, 영화에 주연과 감독을 하고, 나약한 일본의 작가들을 비웃으며 보디 빌딩으로 몸을 다듬고, 검도와 유도 역도를 연마하고, 등등의 르네상스적 만능인간의 면모를 지녔던 작가. 일본 최고의 작가라는 명성을 얻던 45세의 나이에 육상자위대의 궐기를 위해 열변을 토한 후 전 일본에 중개되는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 배를 가르며 자신의 삶을 마감한 남자. 작품을 쓰듯 삶을 살다 간 이 남자는 그의 다른 독자들에게도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미시마 유키오가 내게 던졌던 수수께끼는 '어떤 한 천재가 무엇을 통해, 무엇을 위해 파시스트가 되었는가?' 였다.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해 그가 보여주는 통찰들, 그 통찰들을 담아내는 유려한 문장들. 그렇게도 인간에 대한 관심과 이해능력이 탁월했던 한 작가가 왜 인간의 개성과 자유를 억압하는 파시즘에 경도되었을까?
이 책은 본인처럼 미시마 유키오라는 인물 자체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만 할 책이다. 사소설을 그렇게도 혐오하던 그가 사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유일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자신 속에 있는 유독한 물질을 깨끗하게 치우'기 위해 쓴 소설이라는 도날드 킨의 견해대로, 그가 자신,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이끌고 있는 보이지 않고, 혹은 감추고 있는 내밀한 욕망에 대해 솔직하게 작품으로 구성하기 위해 애 쓴 흔적이 작품 전반에서 역력히 느껴진다. 그가 공을 들여 보여주는 그를 이끄는 욕망의 근원은 어린 시절 부터 계속된 죽음에 대한 동경 및 갈망과 두려움, 사디즘적인 남색이다. 하지만 그의 문체에는 사소설의 근저를 이루는 자기 연민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차라리 이 작품의 문장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오만함이다. 가령 다음의 한 문단을 보자.
"내가 어릴 때부터 인생에 대해 품고 있던 관념은 아우구스티누스 풍의 예정설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수없이 무익한 방황이 나를 괴롭혔고, 지금도 여전히 괴로워하는 이 방황을 일종의 타락의 유혹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의 결정론에 흔들림은 없었다. 내 삶의 불안, 그것을 모두 정리한 메뉴판을, 나는 아직 그것을 읽을 수 없을 때부터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단지 냅킨을 두르고 식탁을 마주하고 앉아만 있으면 되었다. 지금 이러한 낯뜨거운 글을 쓰고 있는 일까지도 그 메뉴에는 이미 실려 있었고, 처음부터 나는 그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운명은 예술가적 고뇌와 번민으로 괴로워하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을 한 번도 흔들림 없이 받아들이고, 그런 생각을 바꿔서 세계와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작가. 자신의 인생을 완결된 그리스 비극처럼 이끌어 가겠다는 욕망, 그 욕망에 맞추어서 자신의 인생에서 비루한 부분은 잘라내고, 죽음마저도 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오만, 이런 것들이 미시마를 이끈 동력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문단이었다. 그런 그가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파시스트가 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아름다움에 끼어드는 다른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게 파시스트의 조건이니까.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지만, 그 아쉬움은 오히려 이 작품의 훌륭함에서 비롯되는 허전함이다. 미인의 요소를 모두 갖추었지만, 아무런 느낌도 얻을 수 없는 미인을 볼 때의 허전함처럼, 걸작의 요소를 모두 갖추었지만, 딱히 걸작은 아닌 작품을 볼 때의 아쉬움이라고 할까. 하지만 미시마 특유의 예리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틀림없이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령 중산층 노인의 교양있고 상당히 친절한 말투에 대한 "그러나 그녀의 너무도 고른 의치 치열처럼 그 말투는 이른바 무기질적인 나열의 능숙함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묘사 같은, 그의 탁월한 인간 관찰능력이 녹아들어간 문장들이 뇌세포에 던져주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상깊은구절]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것은 묘하게 가벼운 것으로 여겨졌다. 꼭 20대까지로 구획된 생의 짠물이, 자연스럽게도 염분이 짙어지면서 몸을 띄우기 쉽게 해주는 것 같았다....(중략) ..이 시대야 말로 내게 있어 유일한 윤락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불안하기는 했어도 막연한 데 지나지 않았고, 나는 아직 희망을 품고 있었고 내일은 언제나 푸른 하늘 아래로 내다보였다. |
|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다. 병약했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로 인해 하얀 피부에 가느다란 몸매, 내향적인 사람으로 성장한 작가. 어쩌면 그런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성취향이 탄탄한 몸매의 남성-사회에서 통용되는 지극히 남성적인 모습-으로만 국한되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의 우국적인 성향 역시. 왜, 사람은 자신이 못 가진 것에 대한 열망이 강하니까. 작가의 탐미적 취향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이 사람의 욕망을 채워 줄 과학기술이 발달된 오늘날에 이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리고 작가의 생존시대보다는 오늘날이 성적취향에 대해서도 보다 더 탄력적이기도 하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함에 있어서 사회적 요소 또한 중요함을 느낀다. 타인에게 숨기고픈 너무나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이 작가의 용기가 참 대단해 보였다. 한편으론, 이렇게 다 털어 내버려 홀가분해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책 속에서 비판(?)했던 유약한 지식인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작가의 모습이 지식인의 모습이라고 본다.(지극히 우경화 되고 할복 자살한 최후. 운동으로 육체를 가꾸는 표면적인 모습이 아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실천 할 수 있는 참다운 모습에서 말이다.) 작가가 젊었을 적의 시대상 인-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2차대전 중 그들 나라의 젊은이들이 군수용품 공장에서 일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지극히 당연한 건가? 내게는 새로움이었다.) 그때의 일본은 '그랬구나'싶었다. 끝으로, 글 자체는 참 잘 읽히게 쓰여졌는데, 자신만이 경험한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글로써 옮기는 부분에 있어 작가가 비유를 많이 써서 그런 부분은 잘 안 읽힌다. * 다자이 오사무의 책 설명에 이 작가가 짧게 거론되어 있었는데, 이 책에서도 역시 다자이 오사무가 거론되어 있다. 두 책 모두 자기 고백서이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