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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 이제는 아주 유치하고 진부해져버린 듯한 테마이지만 우리는 끝까지 이 테마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가치기준이 모호해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선'이라는 참된 가치를 항상 붙잡고 있어야 한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비록 깊이있는 작품은 아닐지라도,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아주 통쾌하고 흥미진진하게 다룬 모범적인 대중소설이다. '복수'는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매력적인 소재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앞두고 가장 행복한 순간에 억울한 누명으로 인해 모든 걸 빼앗긴 에드몽 단테스의 운명은 누구라도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전통적으로'복수'라는 것은 결국 허무와 슬픔을 동반한 채로 결말이 나는 법이지만. 그는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당그랄과 빌포르, 페르낭에게 치밀하고 완벽한 복수를 하는 한편, 끝까지 자신의 아버지를 보살펴준 모렐 일가에게는 그가 베푼 것의 수십배로 은혜를 갚는다.
하지만 집요한 복수의 과정 속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빌포르의 죄없는 아들이 죽게 되고, 몽테크리스토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이고 신의 의지를 대변하려던 자신의 계획은 한낱 오만에 불과하다는 것을. '복수'란 더없이 인간적인 감정의 발로인 것 같다. 그것도 나름대로의 '정의'라고 불리울 수 있겠지만 결국은 은혜와 자비 앞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인 것 같다. 미움은 미움을 낳고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복수심은 결국 또다른 증오를 낳아 끝없는 증오의 악순환을 이룰 뿐이지만 '레미제라블'의 미리엘 주교가 보여준 것과 같은 용서와 은혜는 커다란 사랑의 씨앗이 되었다. 그렇다. '사랑'이야말로 말세로 치닫고 있는 이 세상을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곳으로 유지시키고 있는 마지막 원동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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