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터'' 와 ''최후의 아들'' 두 편으로 되어있는 책있다.
다른 요시다 슈이치의 책처럼 등장인물이 스쳐 지나간다던지 장소가 겹치는 그런
연작의 요소가 없는 그냥 별개의 두편이 묶여있다.
동성애란 요소가 두 편에 모두 나오지만
''워터''에선 청소년기 소년들의 모습에서 나오는 양념같은 요소로 나오지만
''최후의 아들''에선 이야기의 중심이다.
스토리의 전개라던지 표현력이 매우 마음에 든다.
특히 ''최후의 아들''이 더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무거운 주제지만 즐겁게 풀어낸
작품이다. 시간의 전개 또한 독특하다.
요시다 슈이치의 팬이라면 꼭 읽어 봐야 할 책있듯 싶다. [인상깊은구절] 혹시라도 내가 경기장을 청소한다고 하면, 누가 그 많은 관중들 속에서 날 위해 일어나 줄까? 그리고 날 위해 일어서 준 사람을 나는 과연 그 소년처럼 소중히 생각해 줄 수 있을까? |
|
료우운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겨우 17세이긴 하지만 그는 대학진학이 포기되어 있다. 가정형편상 미리 포기해버렸다. 그렇다고 그의 하루하루가 우울의 연속인 것은 아니다. 비록 술배달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고교졸업 후부터는 100%전력을 다해 도와야 하고, 반년 전 형 유다이가 죽어버린 후 정신이 이상해진 엄마를 돌봐야 하지만 그는 우울할 틈이 없다. 하루에도 쉴새없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는 수영부 선수이니까. 자유형을 맡고 있는 그는 접영의 고스케, 평영의 게이치로, 배영의 다쿠지와 함께 수영을 하고 있다. 너무 친하다보니 때때로 그들은 게이치로의 집에서 먹고자고 할때가 많았는데, 게이치로의 어머니는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돌보면서도 싫은 내색이 전혀 없다. 사내아이들이 그렇듯이 그들의 우정은 언제나 초록빛이다. 싱그러운 그들의 17세라는 나이와 수영이라는 푸른 빛이 함께 어우러져 시원하고 쿨할 것 같은 [워터]는 작가의 말처럼 "여행이란 그 목적지보다 함께 걷는 길동무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하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얼음이 깨지듯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게이치로가 남자를 좋아하는 성향을 가졌으며 그의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린 사건은 하나의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료우운의 어머니의 상태로 걱정이다. 게다가 성 마리안느의 라이벌 선수 다시마는 기록단축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곧 시합인데, 그들에겐 시합에 집중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만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시작할 때의 내가 가장 겁쟁이고, 그리고 가장 용감하다"를 마음에 되새기며 료우운은 마음을 다잡는다. 이윽고 시합날. 함성이 울려퍼지고 료우운이 팔을 뻗어 도착했다. 전광판에 기록이 올라간다. 함성이 들리고 소설은 끝난다. 이겼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게 끝나버린다. 하지만 분위기상 료우운이 좋은 성적을 내고 다시마라는 이상한 이름의 선수를 제쳐버렸을 것이라고 감히 상상해본다. 이겼다고 그들의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들에겐 푸른 빛의 희망이 있다고 믿어본다. 이제 겨우 17살인 그들의 미래가. |
|
푸르름이 넘치는 학창시절의 추억...
모리 에토의 <다이브>를 읽기 전에 역시 '물'을 주제로 한 성장 소설인 <워터>를 꺼내들었다.
다시 읽었지만 역시 풋풋함과 상쾌함이 넘쳐나는 소설이었다.
"뭔가를 시작할 때 내가 가장 겁쟁이고, 내가 가장 용감하다." 시원함이 넘치는 제목과 함께 표지를 장식한 이 문장이 계속 마음에 남아 쉬이 책장을 넘 길 수 없었다. 겁쟁이지만 무모할 정도의 용감함을 요하는 것, 바로 무언가를 시작하는 그 때인 것이다. 계획했던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의 어려움, 막막함, 포기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일단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나면 처음에 가졌던 두려움은 점차 사라지고 점점 더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시작하기도 전에 머뭇거리다가 결국 포기해버리면 자신감 대신 자괴감이 남아 쉬운 일도 어렵게만 느껴지게 된다. 더불어 생기는 무력감 역시 자신을 더 깊은 침체에 빠지도록 억누르게 된다. 그러면 나는 어떤가? 겁쟁인가 아니면 용감한 쪽인가? 부끄럽지만 아무래도 겁쟁이에 가까운 것 같다... 소설 속 이야기에 나오는 료운과 다쿠지, 게이치로, 고스케 이렇게 네명의 아이들은 그 시절 나와는 달리 아주 용감한 녀석들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세운 기록을 줄이기 위해 거침없이 물살을 가르는 녀석들의 머리속에는 오로지 ’수영’만이 존재한다. 수영이라는 종목이 가지는 특성상 기록단축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며 그 험난한 싸움에 임하기에는 아직 그들은 너무 어리지만 그럼에도 그녀석들은 그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을 만큼 용감하다. 하지만 수영을 벗어나면 그 아이들의 상황은 좀 다르다. 료운은 가출한 친구 어머니를 보고도 망설이다가 끝내는 얘기하지 못하고, 후지모리를 좋아하면서도 친구에게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한다. 다쿠지는 헤픈 어머니에다 대학에 가고 싶은 꿈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고, 이들은 수영을 할 때 와는 달리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가장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서 그들은 서로에 대한 화살로 갈등이 폭발하지만 ’수영’에 대한 공통된 열망에서 나오는 무의식적인 힘에 의해 서로에 대한 적개심은 어느새 사라지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다. 여기서 아쉽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지만 즐거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뒤섞인 채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누는 녀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물 속에서 만큼은 어느 누구보다도 용감했던 네명의 아이들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
| 이 책에는 두개의 소설이 있는 데, 그 다른 성격에 일단 놀랬고 그걸 같이 묶어 놓은 의도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워터와 최후의 아들 두 소설이 있는 데 워터는 가슴에 스파크가 일고 눈에는 눈물이 주루룩 내리게 만드는 이유있는 청춘소설이고(역시 우리는 그냥 막 크는게 아니죠.. ㅋ) 최후의 아들은 주인공이 호모인데 구성이 특이해서 좋았지만, 워터를 읽고 난 뒤 읽어서 인지, 뭐랄까- 미국에 있다가 1초만에 인도에 간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하이튼 매우 이질적임에 적응하기에 좀 그랬습니다. 워터를 읽고는 정말 최고다! 하고 생각했는 데 (특히 청춘소설 특유의 중립적이지만 언제나 흔들리는 주인공, 목표.. 그런게 있어서 좋았고 더군다나 어설프게 제대로 성장해가는 게 아니라, 실수하고 싸우고하는 끝까지 그러는 일상적임이 좋았다고 나 할까..) 최후의 아들은 읽고 나면 ,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실격이 떠오르는 게 뭐 판박이는 확실히 아니지만 디자이오사무 특유의 가라앉음을 떠올리게 해서 별로였어요 가슴이 팡팡 튀는 청춘소설을 읽고 싶다면, 일단은 최후의 아들 때문에 비추천이 될것 같네요. |
| 「워터」. 고등학교 3학년 수영부의 네 친구들인 배영의 다쿠지, 평영의 게이치로, 접영의 고스케, 그리고 자유형의 나 료우운... 매일같이 죽을 힘을 다해 수영을 하고, 기록을 재고, 자신들의 앞날에 대해 생각하며 시간과 공간을 나누어 갖는 이들 네 명은 마지막 수영대회의 400미터 계주를 앞두고 있다. 역자의 표현에 의하면 팔딱거리는 물고기처럼 에너지가 충만한 이들 고등학생들의 카타르시스를 소설로 지켜보는 일은 꽤 흥분된다. 형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안고 있는(이 충격으로 엄마는 아직도 정신을 가끔 놓치고 있다) 나 료우운, 호모일 수도 있는 게이치로, 아버지 가게 일을 돕는 다쿠지 등이 겪는 일말의 번뇌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았을 때 비로소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 소설 속에 잘 살아 있다. “비굴해지지 말라고 남들은 말한다. 노력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갖은 노력을 다해서 남들과 엇비슷한 자리에 서게 돼봤자……. 예를 들어, 출발지점까지 죽기 살기로 달려가야만 하는 사람과 자동차에 편이 앉아 도착하는 사람이 있다. 달려온 사람은 헉헉거리면서 또다시 출발점부터 달려 나가야만 한다. 난 그러고 싶지 않다. 나라면 출발지점과는 다른 장소로 달려간다. 거기에 아무도 모여 있지 않다고 해도 그곳으로 달려간다...”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무엇을 구축하기 위해 힘차게 달려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기 좋다... 「최후의 아들」. 요시다 슈이치의 등당작 쯤이 아닐까... 양성애자인 나와 이런 나의 게이 애인인 엠마가 있다. 얼핏 보면 기둥서방처럼 나는 엠마에게 얹혀 살면서 엠마의 가게에 들락거리고, 두 사람의 생활을 비디오 카메라로 찍으며 빈둥댄다. “... 내가 필요한 건 역시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무언가를 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을 벌어다 주기 바라는 거다...” 엠마는 나를 사랑하는 듯하지만 사실 나는 엠마를 사랑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 발린 소리로 엠마의 곁에서 엠마의 사랑을 받으며 나는 산다. 간혹 나를 찾는 나의 엄마의 전화를 받는 일까지도(부러 남자 친구인 양 남자의 목소리를 내면서까지) 엠마의 몫이다. “결국, 괴로움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것은 인정받지 못하는 자와, 인정해야만 하는 자가 각각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내 어머니에게 남자 말투로 대답한 엠마는, 어머니가 가질 괴로움과 자기 스스로의 괴로움을 모두 떠안는 게 되는 거다.” 게다가 나는 예전 여자 친구인 사와코와 만나 섹스를 하기도 한다. 죄책감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사와코는 사와코대로 엠마는 엠마대로 나에게 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 사와코와의 섹스가 사막에서 마시는 한 잔의 물이라면, 엠마와의 그것은 푹푹 찌는 열대야 속에서 온몸으로 뒤집어쓰는 소낙비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핥아 마실지, 몸속까지 푹 적실지,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나의 갈증은 해소된다.” 이런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양성애자이며 뻔뻔하기 그지없는 나와 그런 내게 결혼을 강권하는 부모와 이런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지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전사회적인 편견과도 싸워야 하는 엠마... “... 난 사양할래. 나한텐 당신을 당신 집안의 최후의 아들로 만들 권리도, 책임도 없다고. 뭐 딱히 결혼신청을 받은 건 아니지만, 여자도 이 나이가 되면 상대 부모님을 만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뻔히 알거든. 아무튼 당신을 평생 돌봐줄 생각 따윈 눈곱만큼도 없어!” 주류의 패러다임이라는 물컵에 제대로 섞이지 못하고 기름처럼 둥둥 떠있는 듯한 소설 속의 인물들, 그렇지만 각도를 달리해 그들을 살피면 오묘한 빛깔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모두가 구원받기 위해서 말이지, 누구 한 사람이 꼭 희생되어야만 한다면…… 모두 구원받지 않으면 돼.”라고 외치는 엠마의 빛깔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