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전설적으로 대칭을 혐오하는 미성년
"전설적으로 대칭을 혐오하는 미성년" 내용보기
별 모양의 얼룩   베란다다 이불을 턴다 소녀가 떨어진다 무거운 수염들과 단단한 골격의 냄새가 묻은 이불을 털다 한 여자가 떨어져버린 저녁, 피가 번지는 잿빛 구름 속으로 타조 한 마리 날아가는 지방 뉴스가 방영되고 기차를 타고 가던 그들도 앞부분이 무거운 문장의 자막을 읽게 될 것이다  순식간이다 얼룩이 큰일이다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추위는 시작된다 냄새나고 화끈거린
"전설적으로 대칭을 혐오하는 미성년" 내용보기

 

별 모양의 얼룩

 

 

베란다다 이불을 턴다 소녀가 떨어진다 무거운 수염들과 단단한 골격의 냄새가 묻은 이불을 털다 한 여자가 떨어져버린 저녁, 피가 번지는 잿빛 구름 속으로 타조 한 마리 날아가는 지방 뉴스가 방영되고 기차를 타고 가던 그들도 앞부분이 무거운 문장의 자막을 읽게 될 것이다

 

순식간이다 얼룩이 큰일이다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추위는 시작된다 냄새나고 화끈거린다 두근두근한다 몰래 홑청을 바꾸고 펴놓았다 개킨다 올리다가 다시 내린다 이불 속 깃털을 뽑는다 큰 타조의 날개는 사라지고 발간 민머리 누더기, 이상한 얼룩이 묻은 이불은 논리가 없다 귀찮아 걷어찼다가 다시 껴안는다 제대로 꿰매지지 않는 기억은 비벼댈수록 스며들고 씻을수록 번져 간다 어느새 늙고 추악한 소녀를 돌돌 말고 있다

 

천상에서 이불을 털고 있나 검은 구름을 뚫고 희뿌연 깃털들이 뽑혀 나오는 저녁, 자살할 기회를 주기 위해 그들이 집을 떠날 때 나는 거울을 보며 마구 머리칼을 자르고 있었다 첫눈 내리던 밤이었고 넓고 푹신푹신한 이불이 베란다 아래 펼쳐져 있었다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고 난 눈을 뜬다 의사만 조금 웃는다 태어나던 순간에도 이랬을 것이다

 

 

김이듬 시인의 첫 시집이다. 얼마나 설레는 이름인가, 첫 시집. 세상의 모든 첫 시집은 세상에 내딛은 시인의 뚜렷한 발자국이다. 발자국에는 시인이 어느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지, 어떤 보폭으로 가려고 하는지, 얼마나 굳세게 디뎠는지 들을 살펴볼 수 있다. 시인의 거의 모든 것이 잠재되어 있거나 드러나 있다. 그러기에 시인도 개정판을 내면서 “첫사랑, 아득한 당신의 얼굴, 내 가슴, 완전한 환부, 허망한 뿌리를 맹목적으로 만지는 심정”이라고 했거니와 “당신이 장미꽃에 내가 당신의 목덜미에 발등 아래 키스하듯이 우리의 슬픔에 입술을 대 주기를”(「개정판 시인의 말」) 기대했을 테다.

 

첫 시집의 표제작이다. 첫 시집의 알맹이라 볼 수 있는 표제작에는 ‘소녀’가 있다. 가랑잎이 굴러가는 것에도 눈물을 흘리거나 깔깔거리는 경쾌한 소녀가 아니라 “자살할 기회를 주기 위해 그들이 집을 떠날 때 나는 거울을 보며 마구 머리칼을 자르”는 소녀다. “무거운 수염들과 단단한 골격의 냄새가 묻은 이불을 털다” 떨어져버리는 소녀다. 그러거나 말거나 “피가 번지는 잿빛 구름 속으로 타조 한 마리 날아가는 지방 뉴스가 방영되”는 세상.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고” 눈을 뜨지만 의사만 조금 웃고 “태어나던 순간에도 이랬을 것이”라고 여기는 소녀다. 얼룩, 그러나 별 모양의 얼룩.

 

우리 문단에 전혀 볼 수 없었던 소녀의 모습이다. “할머니처럼 다산성의 별보배조개 체질도 아니고 당신 어머니같이 들큰한 애액을 분비하고 까무라치는 가무락조개 성질도 닮지 못”(「조개껍데기 가면을 쓴 주치의의 달변」)한 소녀. “유년의 기억에는 초콜릿 시럽처럼 / 시멘트 콘크리트가 발려 있고 / 자라지 않는 생각의 나무 위에 / 우수(雨水)의 눈이 내리고 새소리는 / 시계가 미늘을 다는 소리처럼 친근할 때 / 뒷줄 아이의 발표를 들으며 / 나는 집은 천막이라 할지 하청공장이랄지 / 생지옥이라고 쓸지 조금 고민 중”(「가내공업」)인 소녀. “전설적으로 대칭을 혐오하는 미성년”(「시소」)의 소녀. 끝내 우리 문단에 신선한 균열을 일으킬 소녀.

 

YES마니아 : 로얄 g*******g 2019.05.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