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0년대는 역동의 시대였다. 그 이전, 누가 상상할 수 있었으랴, 계급이 사라지고 돈을 가진 부자들이 신흥 세력으로 떠오르며 중국의 한자가 아닌 코쟁이 들의 말을 죽을 각오로 배워야 하는 사회가 온다는 것을. 우리는 천지개벽이라고 불리는 변화를 지난 100년간 겪어왔다. 그리고 그 속의 인간들은 심한 부침을 견딘채 지난한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은 현재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가부장제의 망령에 발을 묶인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바둥거리며 여기저기 드난살이를 반복해왔다. 그 고된 삶. 여기, 그렇게 힘들었던 여성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살아'왔다는 것을 증언하는 작품들이 있다.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은 그 많은 소설 중에 페미니즘 작품만을 엮어 놓은 매우 참신한 책이다. 문학에 무슨무슨 주의를 끼워넣지 말라며 문학적 순수성을 부르짖는 사람에겐 참 미안한 이야기지만 문학은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도 이미 순수하지 않다. 그렇기에 예전 친일행각을 했던 자들의 시를 교과서에서 제외하자는 여론까지 일지 않는가. 그러니 문학에서 여성주의를 찾는다고 하는 것이 무슨 큰 일이라도 되겠느냐마는 많은 사람들(남성은 물론이고 과반수 이상의 여성 마저도)이 여러 '주의' 중에서도 여성주의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작금의 세태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니, 이 얼마나 획기적이고 감격의 눈물이 나올 일이던가. 책에는 표제작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과 함께 여러가지 여성주의 작품이 소개된다. 그리고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한 약간의 작품 설명과 생각할 문제도 주어지는데 이 파트가 이 서적을 가장 빛내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아마 여성주의 또는 여성주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 사람(혹은 여성주의적으로 해석하는 데 서툰 사람)이라면 작품 설명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여성주의를 선동하는 계몽적 소설들을 모아 놓은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책 자체가 여성주의 "문학"임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들은 모두 여성주의 이전에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들이며, 따라서 여성주의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도 책을 접하게 되면 작품들의 문학적 가치만으로도 이 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을 알고 싶은 남자,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고픈 여자라면 그 살벌했던 시절,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았던 할머니를 비롯한 여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아마 올 봄, 산과 들의 좋은 자리는 다른 이에게 다 내놓고 후미진 구석자리에서 소담하게 피어날 할미꽃의 자태를 보는 눈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사족. "사소한 일상이나 가정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사회 역사와 같은 큰 이야기에도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남성, 여성작가라는 구분도 사라지게 되겠죠. 박경리 선생을 두고 누가 여류작가라고 말하던가요." 라는 엮은이의 말에 크게 분노. 여성에겐 아직도 가정이 전쟁터라는 사실을 엮은이가 잘 모르나보다. 남성이라 그런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