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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의 이야기는 낯설지가 않다. 무척 많은 부분을 지난 세월동안 나누었기 때문이리라. 여러 형태의 ‘난중일기’도 만났고, 충무공을 소재로 한 여러 책들도 읽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으리라. 하지만 이 책은 낯설다. 책의 내용이 낯선 것이 아니라 표현이 낯설다. 계산된 내용들이 자리를 차지했지만 특별한 표현이 질 좋은 종이에 잘 포장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보아왔던 충무공이 특별하게 포장되어 다가오는 듯하다. 그 포장은 실제와 너무 닮아 있다. 이제까지 많이 보아왔던 영웅적인 면모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단호하고 따뜻한 인간적인 모습, 그 흔적이 많이 그려져 있다. 글은 백의종군으로부터 시작한다. 선조의 교지를 받고 다시 바다를 향해 내려가는 장면, 가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해후, 다시 삼군통제사의 임무를 하달 받는 내용, 권율 장군으로부터 바다를 버리고 육지로 함께하자는 전언, 배가 한 척이 있더라도 바다를 지키겠다는 선언, 그리고 12척의 배로 명랑으로 나아가는 충무공.......이야기는 명랑해전으로 나아간다. 장면 장면이 무척 현실적이다. 저자의 상상력은 영화 ‘명랑해전’의 실제를 보는 듯하다. 순간순간이 명료하게 상상이 되도록 만든다. 적과의 대치, 아군들의 상황, 그리고 군사들의 죽음, 적들의 무너짐, 공격 등이 마음에 녹아들도록 만들고 있다. 그의 이야기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는다. 생명을 경시하는 듯한 안타까움이 있다. 죽음이 많이 묘사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마음에 부담이 된다. 전쟁이라고 하는 것의 속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일념이겠지만 장면마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코 베고 목을 자르고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그려지는 일은 읽기를 무척 힘들게 한다. 작가가 보는 장면들이 조금 걸러 나왔으면 하는 마음을 지니면서 꾸역꾸역 책을 읽었다. 내용보다는 그 틀이 더욱 좋았다. 언어의 화려함은 작가의 최고 무기다. 작가의 글은 내용이 어떻더라도 읽을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이 언어다. 마력적인 힘이 있는 그의 수사다.
바다를 묘사하고 있는 부분과 명랑을 그리고 있는 부분이다. 충무공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화려한 수사를 통한 섬과 바다를 그려볼 수 있는 표현이다. 우리는 이 표현을 통해 바다가 명랑이 살아서 말을 걸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의 언어는 이런 매력이 있다. 그의 수사는 의성어, 의태어, 반복, 열거 등이 많이 사용되어 감각적이고 경쾌함을 드러내 주고 있다. 우리가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를 통해서 재현되는 역사를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근거가 그곳에 있다. 그의 언어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김훈, 그는 그렇게 사람들을 만난다. 명랑은 너무나 고달픈 지역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고, 인내가 격정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소용돌이치는 물결, 그곳이기에 12척의 배로 감히 적의 300척의 배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곳이고,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곳이다. 물론 그곳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지식은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보루가 되었다. 하지만 승패와 삶과 죽음을 도외시하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었던 곳이다. 그곳으로 죽음을 가지고 나아간 장군과 그 일행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오로지 서쪽으로 적들을 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백성들을 더 이상 능욕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시대상을 잘 알려주는 부분이다. 충무공이 잡혀가지 않을 수 없었던 사회고, 질시와 간계가 넘쳐났던 시간들이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충무공은 죽을 상황을 만난다. 그것이 적과 싸움에서 그런 기회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군의 모함으로 이루어진다. 권율 장군에 의해 조정에 잡혀 죽음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무지의 연속된 조정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만일 그때 충무공을 그대로 남쪽에 두었더라면 정유재란이 일어났을까? 진주성이 그렇게 허무하게 많은 생명을 죽게 하고 서러운 노래를 불렀을까? 논개가 나왔을까? 가정은 가정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후세의 사람들 입장에서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충무공은 임금에게 잡혀 죽는 개죽음을 가장 힘들어 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당했다. 그는 잡혔고,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는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시대는 그를 나라의 명령을 어긴 역적으로 몰고 있었다. 그의 전력전술이 조정의 눈에는 그렇게 비쳐진 모양이다. 나라가 군을 맡겨 놓고, 적을 잘 막고 있는 전시에 대장군을 소환한다는 것은 병법에도 없는 일이다. 적을 이롭게 만드는 결과는 당연했으리라. 결국 원균의 인솔 하에 이순신 부대는 궤멸되고 그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얻게 된다. 백의종군으로.
이몽학의 난 토벌군의 수장인 김덕령이 죽음을 당했던 일이 그려진다. 성실하고 강직한 장군이 임금에게는 두려웠던 모양이다. 임금은 강한 신하를 늘 두려워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김덕령의 힘은 임금을 불안하게 하였고, 권율을 통해 그를 잡게 하였다. 즉 천하가 임금의 잠재적인 적이었다. 이순신도 이런 상황 속에 자신을 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죽기는 싫었다. 그것이 싸움에 죽음으로 달려든 이유가 되기도 했으리라. 그는 저자의 입을 빌어 말한다. 임금의 칼에 죽기 싫다고.
노량은 그의 마지막 사랑노래를 부른 곳이다. 시대의 영웅이 서 있어야할 곳은 바다뿐이었다. 육지에는 그를 시샘하는 많은 무리들이 있었고, 임금이 그를 두려워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했다. 그것이 반도를, 반도의 백성들을 그렇게 몰아붙인 그들에게 쉽게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기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돌아가는 그들을 노량에서 막아섰다. 명의 수군을 비롯한 많은 자들이 가는 자들을 그냥 가게 두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복수를 해야 했고 자신을 던져야 했다. 그렇게 충무공은 우리들의 곁을 떠났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무수한 미련을 남기고 우리들의 곁에서 사라졌다. 뒤에도 그의 이름은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전해졌다. 이 책은 노량에서 그를 떠나보내면서 마무리 되고 있다. 뒤의 연보와 함께. 저자에 의해 다시 살아난 역사는 우리들을 감동하게 한다. 다시 생명이 주어진 충무공은 우리들에게 말을 건다. 주위가 어떻게 간악할 지라도 내가 해야 할 일만을 하노라고. 우리의 바다는 늘 그렇게 있고, 우리의 백성들은 어렵게 그렇게 살고 있노라고. 그들을 조금이라도 지켜줘야 한다고. 그것만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저자는 충무공을 다시 불러내어 우리들에게 말을 걸게 하고 있다. 이 책은 충무공이 나로, 화자로 그려지고 있다. 넉넉한 읽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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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고의 문장가 김훈은 공식적인 평가와는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 역사적 인물들을 고아한 문체로 복원해낸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과 같이 역사적 순간들을 살아갔던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둔 그의 주요 작품들은 비역사성을 품은 역사소설이라 회자되며 새로운 형태의 역사소설이 가능함을 평단과 독자들에 알렸다
칼의노래는 이순신이 임금의 명을 거부했다는 죄로 옥고를 치르다가 전세가 기울자 풀려나 삼도 수군통제사를 맡게 된 정유년부터 노량해전에서 적탄을 맞아 영면하기까지 겪은 사건들을 담고 있다 김훈은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죽고자 하는 무인 이순신이 정작 전쟁 외의 상황 때문에 겪었을 인간적인 고뇌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선조의 실정에 의한 불안 강대국인 명의 비위를 맞추며 나라를 지켜내야하는 약소국의 한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구하지 못한 그의 슬픔 등이 전쟁의 경과보다 더욱 세세하게 밝혀진다 칼의 노래는 그간 이순신을 그려낼 때 빠지지 않았던 진부한 전쟁서사를 버리고 아군이란 없었던 한계상황에서 무너지려는 자신을 끝없이 이릉켜 세워야만 했던 이순신의 고독하고 불안한 내면을 김훈 특유의 남성적인 문체로 예리하게 묘파한 수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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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를 위한 작품으로 김훈은 빠지지 않으며 탁월한 선택이라 배웠다. ‘이순신-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곁들인 ‘칼의 노래’를 읽고 나니 저절로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군더더기를 모두 걷어낸 간결한 문장은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지 않으며 독자 역시 ‘견딤으로서의 실존’에 동참하게 한다. 읽다보면 작가만의 문체를 가늠하게 되는데 그런 지점이 오면 낭독을 해봐도 좋을성 싶다. 크로키 같기도 정밀묘사 같기도 한 풍경속으로 쑤욱 들어서고 걷다 보면 어느덧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의 발밑은 늪이다. 빠져든다.
유명한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9쪽)’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인간 이순신이 때론 관조적으로 때론 애끓이며 읽어 낸 삶과 죽음, 이별과 그리움, 사랑과 고독, 인간 조건을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진다. 사건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명철하게 응시하고 분석해내는 사고 전개 과정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담담한 목소리임에도 울림은 크다. 실체와 허상(허깨비에서), 죽음, 배, 냄새, 칼, 바다, 울음, 끼니, 소금, 나의 죽음.....들을 스쳐 흘려보내지 않고 새롭게 정의내린다. 모진 환경가운데 세워지는 이름이라 더 각별하다.
인상깊은 부분을 줄이고 줄여서 옮겼음에도 작은 글씨 빼곡하게 A4 3장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읽었기에 반납하면 잊혀질까 두려워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중에서도 면을 향하는 아버지의 마음과 ‘명량에서, 나는 이긴 것인가.(105쪽)’라며 익명의 죽음과 개별적인 죽음, 생명에서 더 이상 생명 아닌 쓰레기의 바다로 이어지는 장면은 인상깊다. 여러 등장인물이 장군에게는 위안 또는 위협으로 존재하는데 유아적 울음으로 정치하는 선조는 이중 삼중의 의도를 그 울음 안에 숨겼을 듯 싶다. 장군은 징징 칼로써 울었을 뿐이다.
책을 읽으며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에서 관찰자이자 서술자로서 삶과 죽음을 치열하게 기록한 주인공인 베르나르 리유가 중첩되는 순간도 있었다. 역사가 아닌 역사소설임에도 이 작품을 통해 슬픈 역사에 따스한 위로가 스미는 느낌이다.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장군이 깨어나 이 작품을 읽는다면.... 그 역시 위로받으리라. ‘칼의 노래’가 있어 다행이고, 늦게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결국 두 권으로 출간된 책으로 먼저 읽고 문학동네 출간본으로 구입해서 밑줄 옮기는데 시간이 걸렸다. 평론가의 해설을 읽을 수 있어 선물받은 듯 기쁘다.
-나는 기지를 닫았다. 나는 기지가 없고 모항이 없고, 숙영지가 없는 바다로 나아갔다.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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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칼의 노래’는 아주 고급스러운 무협지이다. 늘 그의 문체에 고개를 숙이며 오늘도 감사한다. 그와 동시대에 살고 있음에.
김훈 작가의 책 마지막장을 덮을 때면 늘 시샘이 밀려온다. 글쟁이도 아닌 내가 그의 글 근처라도 가보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그 시샘은 당연하게도 이내 ‘김훈’이라는 작가에 대한 존경과 감사함으로 바뀐다.
오래 전, 나는 김훈 작가를 책이 아닌 TV로 먼저 만났다. 별 생각 없이 켰던 TV속에서 토크쇼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화면을 마주했다. 채널을 돌리려 습관처럼 리모컨을 쥐었다 다시 내려놓았다. 그의 통찰력 있는 이야기에 나는 완전히 매료 되어 넋을 놓고 눈만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김훈 바라기’는 그가 집필한 책을 찾아 읽고, 기사를 읽고, 그가 쓴 짧은 글들을 모아 읽는 것으로 이어졌다. 지금으로 치면 ‘덕질’ 제대로 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아둔해서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본다. 지금보다 젊었던 그 때는 늘 그의 글이 혈기 왕성하게 느껴졌다. 서슬 퍼런 칼날 같은 푸른빛이 좋아 늘 그 칼에 아슬아슬하게 베이고 싶었다. 절대 뒤돌아보지 않을 것 같은 그의 글처럼 나도 좀 멋지게 살고 싶었다. 마흔이 넘어 다시 읽는 김훈은 나에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건 나의 간사함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흡사 산에서 풀뿌리만 캐먹고 살았을 거 같은 아저씨가 알고 보니 아침마다 고급 에스프레소를 내려 마시고, 2019 팬톤 컬러를 잘 소화해낸 스카프 하나쯤 하고 스마트하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랄까. ‘ 어찌 이리 오감을 잘 사용할까.’라며 감탄했던 그의 문장은 여전하지만, 거칠고 거친 세상에 하산해서 부모님의 원수라도 갚고 오라고 외치는 거 같았던 그의 글들은 이제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해 준다. 뛰어 내려가면 돌부리에 걸린다고. 깡총 깡총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산하라고. 그러다 보면 꽃도 보고, 풀도 보고, 새 소리도 듣고, 나무 냄새도 맡고. 그러다 보면 어느 새 해질녁이니 한 숨 자는 것도 좋다고 말이다. 날카롭게만 느껴졌던 그의 사색이 사실은 사물 하나 하나를 통찰했던 것이다. 그 통찰은 모든 것에 대한 연민과 사랑에서 시작된다. 진정한 통찰 없이 뭉뚱그린 책들의 홍수 속에 나는 지쳐 있었나 보다. 오랜만에 다시 꺼낸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 장군이 여러 번 찾던 ‘청정수’를 들이킨 느낌이니 말이다.
징징 거리던 칼의 노래만 쫒던 나에게 이제는 이순신의 울음이 들린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 온전히 와 닿아 새벽 맑은 시간 책을 읽으며 아이처럼 눈물을 훔쳤었다. 이순신의 칼끝이 늘 이순신 자신을 비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도 그 칼을 휘둘러보고 싶었나보다. 그러나 온전히 죽을 자리인 바다를 비추는 그 절절한 칼을, 나는 이제 잡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의 노래’는 나에게 고급스러운 무협지이다. 역사와 위인이라는 틀을 벗어나 한 인간의 ‘날 것’같이 팔딱 거리는 오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아직도 나를 팔딱거리게 하니 말이다.
‘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유명한 첫 문장처럼 그의 글은 한 문장 안에 상반된 두 감정이 세련되게 존재한다. 실제로 공존하는 극과 극의 이 세상처럼 말이다. 시대를 살아간 이순신 장군과 현 시대에 새로이 이순신 장군을 세운 김훈 작가에게 언제나 그랬듯 감사에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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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렇게 유명한 소설을 읽는다는 기대가 컷는지 만족은 하는데 대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한손에 착 감기는 사이즈이고 하드커버가 좀 보기에는 불편하지만 보기에는 좋타 그리고 1칭시점으로 이순신 장군을 잘 표현 한거 같아 우리가 알고 있는 지피지기와 생즉사사즉생 같이 아는 것도 잘 표현 되었다 그런데 비유가 가끔 한번씩 머지 하고 단어도 모르는 단어가 좀 나와서 힘들때가 있었다 이과의 슬픔이가 아님 내가 좀 모자란건가 대체로 잘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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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출간한 김훈 작가님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었습니다. 이 리뷰에는 개인적인 감상이 포함돼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하얼빈을 구매하는 김에, 칼의 노래도 이전에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읽어보려고 샀습니다. 확실히 유명한 작품과 명작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다니 꼭 영화를 본 것 같고 재미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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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수 없었다. 나는 견딜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그 노을 속에서 나는 늘 살아 있었고, 살아서 기진맥진했다. ...적은 죽음을 가벼이 여겼고 삶을 가벼이 여겼다.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적은 죽일 수 있었고 삶을 가벼이 여기는 적도 죽일 수 있었다.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다. 개별적인 살기들을 눈보라처럼 휘날리며 달려드는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이었다. ---p195 아무 일도 없는 바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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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이순신 장군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내적 고민 등의 심리 상태를 위주로 서술이 되어 있는 것이 큰 특징 중에 하나 인데 자신이 겨누는 칼이 어디로 향한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들게 하는 책입니다. 어릴 때 접하고 들었던 이순신 장군과 다른 인간적인 모습의 한 인간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이렇게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작가가 대단하게 느꼈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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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입니다. 이순신이 임금의 명을 거부했다는 죄로 옥고를 치르다가 전세가 기울자 풀려나 삼도수군통제사를 맡게 된 정유년부터, 노량해전에서 적탄을 맞아 영면하기까지 겪은 사건들을 담고 있습니다. 무인 이순신이 정작 전쟁 외의 상황 때문에 겪었을 인간적인 고뇌를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이순신의 고독하고 불안한 내면을 보여줍니다. 문학은 그 사회를 표현한다는 말처럼 살아있는 그 시대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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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다룬 유명작, 김훈 작가님의 칼의 노래입니다. 전쟁이기에 참혹할 수 밖에 없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의 백성의 삶을 들여다 보며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쟁, 적군으로 쳐들어 온 일본, 조선의 조정, 군, 양반, 그리고 백성. 7년 여의 긴 전쟁 동안 방패도 없이 비참하게 내던져진 백성들의 참혹함을 조금이나마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