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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 누군가 나를 초대하면 나는 그냥 가서 맘껏 즐기면 된다. 그것은 내가 무슨 노력을 지불해야 하거나 걱정을 해야 하거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차려진 잔치상을 옆 사람과 맛있게 먹어주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다.
우리가 온 삶을 기울여 도달하고자 하는 행복이라는 세계가 어딘가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 아닌 바로 잔치상으로의 초대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행복한 삶은 그런 초대라는 문을 넘기만 하면 된다.
그럼 앤소니드멜로 신부님이 주장하는 초대의 첫 문은 어떻게 넘어야 할까? 성경에서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로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어렸을 적에 나의 부모가 선배가 선생님이 직장상사가 나에게 입혀 놓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아주 많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그것이 생명력을 갖지 못하게 멀리서 관찰할 수 있으면 초대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고 한다.
우선 벗어야 할 첫 안경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지 못하는 우리의 관념들이다. 내가 상대방이나 대상을 바라 볼 때 나는 나의 기대와 과거의 기억과 사회가 만들어 놓은 관념을 입혀놓고 그 옷에 맞지 않으면 미워하고 싫어하고 갈등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부부 사이의 관계다. 어떤 젊은 연인들이 결혼을 앞두면 부모나 선배, 형제자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한마디씩 결혼은 이런것이고 저런것이고 하는 식으로 당사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틀을 만들어 놓는다. 남편은 이래야 하고 아내는 저래야 하는 등 상대방이 지난 가치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이미 마음대로 그려놓은 "아내란 남편이란 이런 사람이어야 해"라는 상대방의 가치에 그가 올라오지 못하면 그를 미워하고 갈등하고 싸움의 과정을 겪는다. 자신이 상대방의 의지와 관계없이 만든 껍질을 벗는데는 5년이 넘게 걸리고 평생 이 옷을 벗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나이든 노인분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행동이나 신체가 어린아이들을 닮아감을 볼 수 있다. 사탕을 좋아하고 놀기를 즐기고 세상의 이치를 거의 깨달아 싸우는 일도 줄어들고 그렇게 그들은 자신이 테어나 걸어왔던 과거 어린아이적 삶을 거슬러 그렇게 자신의 삶을 거두워 들인다. 너무 신기하다. 결국 세상의 삶을 모두 이해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가는 이들의 삶의 순환이 결국 어린아이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행복한 삶으로의 초대의 첫걸음인 것이다.
어린아이는 기억의 데이터가 많지 않고 아직 어른들이 색안경을 씌우지 않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익숙하다. 기쁠 때 온몸으로 기뻐하고 고통스러우면 마음껏 울고 할 수 있는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어린아이들은 어른이 되면서 모든 것을 숨기게 된다. 그리고 항상 행복은 어딘가에 도달해야 하는 지점 같은 것으로 설정되어 늘 끝없는 정상을 향한 등산만을 고집한다. 그냥 내 눈에 보이는 주위에 피어있는 꽃이나 산의 아름다움을 공짜로 느끼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 것들은 경제성의 측면에서는 전혀 생산적이지 않게 때문에 감상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앤소니드멜로 신부님의 말하는 행복한 삶으로의 초대장의 첫 소식은 바로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되는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한다. 어린아이처럼 그냥 자기 옆에 와 있는 것들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그런데 그게 사실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