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와이 하야오, 하루키를 만났던 그 사람의 이름이었다. 융 전문가이자 상담가답게 그 대담에서도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청소년들의 문제행동을 많이 언급하곤 했는데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책에서도 ‘나쁜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가 나쁜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하는 이 때에 나쁜 아이가 세상을 바꿨다는 제목만큼은 많은 이로 하여금 이 책에 손을 뻗게 했겠지만 참신했을 수도 있는 제재가 그 깊이의 얕음과 번역의 미숙함으로 인해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 적어도 하루키와의 대담에서 보여주었던 사회 문제에 대한 무게감 있는 해석을 다시 찾기가 쉽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래도 열심히 주제라는 것을 찾아내 본다면 제목과 연관이 깊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가 말하는 나쁜 아이란 흔히 말하는 문제아들을 지칭하는 것이고 세상을 바꿨다는 것은 그 문제아들이 성장하여 보여준 창의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일본에서 창의력을 발산하며 도처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 10명과 이야기를 하며 찾아낸 공통점이 그들은 어린 시절에 ‘나쁜 아이’였다는 것이다. 그는 아동, 청소년들이 ‘거짓말, 비밀, 성’에 대해 보여주는 어른이 문제행동이라고 규정한 행동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이들은 그러한 행위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기도 하고 성장에 꼭 필요한 무언가를 얻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미 하루키와의 대담에서도 언급된바 있는데 특히 평화헌법을 가진 일본에서는 누구나 ‘평화’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때문인지 아이를 키울 때 평화에 반하는 것과는 일체 격리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삶에 선한 것들만 있지는 않다. 삶의 반대편을 이루고 있는 공격성, 죽음처럼 악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들을 성장 과정에서 어떻게든 경험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결국 분출해도 되는 공격성의 한도를 모르는 아이들이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하는 집단 따돌림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읽는 내내 박병기 교수님께서 강의 시간에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가면 덩치 큰 아이가 그네를 독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네를 타고 싶어 하는 다른 아이들은 그네 주위를 맴돌면서 그 아이가 자리를 내주기를 기다린다. 그 모습을 보는 어머니들은 참지 못하고 아이들의 일에 개입한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그 또래끼리 배워야할 사회성을 배울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과연 요즘 어른들은 보호라는 이름 아래 지나친 개입과 간섭을 일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적으로 키우겠다면서 방임하는 것도 또 한 편의 문제겠지만 말이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배제하는 영교육과정을 통해서도 아이들은 배워야 할 것이 있다. 가와이 하야오나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한 것이 그런 것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