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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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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적은 군시절 낡은 도서관 후미진 곳에서였습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눈물까지 날 정도였죠. 허전하고 공허한 저의 마음을 이 책이 감싸주었기 때문입니다. 절판되었지만, 언제나 목록에서 이 책이 다시 나오길 기다렸는데, 이렇게 멋진 표지그림과 함께 발매되어 제가 오히려 설레이기까지합니다. 스스로 의미를 찾아낼줄 아는것, 스스로 만족할만한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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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적은 군시절 낡은 도서관 후미진 곳에서였습니다. 솔직히 이 책을 읽고 눈물까지 날 정도였죠. 허전하고 공허한 저의 마음을 이 책이 감싸주었기 때문입니다. 절판되었지만, 언제나 목록에서 이 책이 다시 나오길 기다렸는데, 이렇게 멋진 표지그림과 함께 발매되어 제가 오히려 설레이기까지합니다. 스스로 의미를 찾아낼줄 아는것, 스스로 만족할만한 목적을 찾아낼줄 아는것이 바로 진짜 교육의 핵심이란 사실을 이 책은 말합니다. 과거 소크라테스에서부터, 지금의 이반일리치까지 학교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지만, 그들은 축소는 커녕 계속 비대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그랬던것처럼 우리는 진짜교육을 모르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지금의 학생과 교사들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E.라이머의 [학교는죽었다]와 연관되는 부분이 많으니 참고하면 좋을것 같네요.

[인상깊은구절]
사실을 말하자면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명령을 따르는 법 말고는 진짜로 가르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66p
g*******1 2005.08.24. 신고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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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 문제제기, 엉터리 해답, 그리고 잘못된 지식
"그럴듯한 문제제기, 엉터리 해답, 그리고 잘못된 지식" 내용보기
이 책의 문제제기는 그럴듯 하다. 근대의 학교제도가 갈수록 사람들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고 그렇다고 사회적 통합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현상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는 바보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왜? 저자는 그 이유를 단지 학교라는 제도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수준에서 제시하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 책의 메세지는 "학교는 왜
"그럴듯한 문제제기, 엉터리 해답, 그리고 잘못된 지식" 내용보기
이 책의 문제제기는 그럴듯 하다. 근대의 학교제도가 갈수록 사람들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고 그렇다고 사회적 통합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현상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는 바보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왜? 저자는 그 이유를 단지 학교라는 제도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수준에서 제시하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 책의 메세지는 "학교는 왜 바보를 만드는가? 이 제도가 원래 옛날 프러시아 지배자들이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서 통치하려고 만든 제도기 때문에" 이렇게 된다. 그렇다면 해결책도 간단하다. 학교를 없애면 된다. 그럼 학교를 없애면 교육은 어디서 하는가? 여기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역시 간단하다. "가정에서" 혹은 어디에서 가르치던지 간에 그것을 부모가 결정하게 하자. 그러니 이 책을 간단히 요약하면 학교를 폐지하고 가정교육, 혹은 부모가 주도하는 교육을 하자. 즉 교육의 주도권을 국가에서 가정으로 되돌리자라는 것이다. 얼른 들으면 그럴듯한 이 주장이 얼마나 순진무구한 것인지는 거꾸로 근대 공교육이 시작된 이유중 하나가 "무지한 하층민들의 자녀가 그 무지함을 재생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음을 감안하면 명백히 드러난다. 학교가 만능이 아니듯 가정도 만능이 아니며 교사가 학생에게 최선이 아니듯 부모도 아이에게 최선일수만은 없다. 오히려 이기적인 학부모의 욕망을 차단하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을 키우는 것, 동시에 개개인의 타고난 소질과 품성을 개발하는 것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교육의 끊임없는 과제였다. 저자가 그토록 비판하는 근대 공교육은 이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한 분투속에 형성된 것이지 정치지배자의 국민 통치수단으로 제조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저자는 ''공동체''라는 말이 들어가는 일체의 것, 독일과 관계된 일체의 것에 증오를 가지고 있다. 물론 프러시아의 왕실이 그런 학교를 만들고자 했고, 피히테 역시 그런 주장을 했지만, 정작 독일 교육학을 정초시킨 헤르바르트나 프뢰벨은 개인의 내발성을 중요시하는 루소의 노선을 채택했다. 정작 헤르바르트나 프뢰벨 같은 독일 교육학자들의 이론을 변질시켜 통제와 조작의 교육학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미국인들이다. 즉 독일 교육학이 바보 학교를 만든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뿌리없는 현실주의, 속물주의가 헤르바르트나 프뢰벨의 철학은 삭제하고 방법론만 이식하여 오늘날 같은 괴물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실제 오늘날까지도 도야론, 정신과학, 현상학, 해석학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독일 교육학과 엄격한 공학, 과학의 모습을 하고 있는 미국 교육학을 비교해 보면 독일인들 때문에 통제와 조작의 바보학교가 만들어졌다는 저자의 주장은 적반하장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호레이스만, 스텐리 파커, 존 듀이 같은 학자들에 대한 저자의 무지와 저주에 가까운 근거없는 모함은 부도덕하기까지 하다. 존 듀이가 "단어를 어절, 음소 단위로 가르치지 말고 통째로 외우게 해야 학생의 사고력이 마비되어 통제하기 쉬워진다", 혹은 "똑똑한 아이는 개인주의자가 되니까 억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는 저자의 주장은 이미 곡해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실제로 존 듀이의 대표작이 ''민주주의와 교육''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 사이의 균형을 비판적 사고력의 함양을 통해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듀이의 책을 조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실 듀이 생전에 그를 가장 격렬하게 비판했던 집단이 기독교 근본주의 교육을 강조하던 사람들(예컨대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교사 해직을 요구하던)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이 책의 저자가 학교를 공격하고 급진적인 모습을 가장하고 있으나 기실 주장하는 바는 이른바 미국적 가치의 본령인 교회와 가족에게 교육권을 돌려달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여기에 슬그머니 학교를 폐지할 수 없다면 교회, 가족, 지역사회, 그리고 학교가 마치 시장처럼 경쟁하자는 신자유주의를 집어넣었을 뿐이다. 그러나 듀이가 이미 지적했듯이 학교가 무의미한 바보상자가 되어버린 것은 낡은 시대의 교육을 고수하느라 현재, 즉 현실과 학교가 유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탈근대 시대를 위해 근대의 교육제도인 학교를 폐지하고 미국 개척 초창기식의 교육인 가정, 교회, 지역사회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가정은 이미 해체되어가고 있고 지역사회는 싸늘하게 식었으며,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물론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그래서는 안된다고 절규한다고 해서 변해버린 세상이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과연 해체된 가정, 기업화된 교회가 학교에 대한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만약 아니라면 저자는 이것도 독일탓이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저자, 그리고 저자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진짜 속마음이 "지적이고 부유한 나는 내 자식을 저 무지한 민중들의 자식들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은밀한 욕망은 아닐지 다시 반문하고 싶다. 결론. 근대의 산물인 공교육 학교제도가 낡은 틀이고 이제는 질곡이 되고 있음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 해법은 학교의 개혁, 민주화에서 찾아야지 사실상 이미 추억의 산물이 되어버린 가정, 지역사회, 교회따위에서 찾는 향수어린 주장에는 반대한다. 따라서 이 책은 가장 과격하고 급진적인 목소리로 쓰여진 가장 보수적인 책이다.
YES마니아 : 로얄 h****7 2006.12.11. 신고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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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 바보 만들기 ]
"추천 [서평]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 바보 만들기 ]" 내용보기
이 책은 1992년에 초판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교육 전문가나 학계의 석학, 박사가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26년 동안 재직한 현직 교사가 발간한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의 학교, 교육 이야기보다 생동감이 있고 구체적이다. 저자 존 개토는 삼십 년 가까이 미국의 심장부에 있는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고, 심지어 뉴욕 시, 뉴욕 주 ‘올해의 교사’ 상을 연거푸 받았
"추천 [서평]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 바보 만들기 ]" 내용보기
이 책은 1992년에 초판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교육 전문가나 학계의 석학, 박사가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26년 동안 재직한 현직 교사가 발간한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의 학교, 교육 이야기보다 생동감이 있고 구체적이다. 저자 존 개토는 삼십 년 가까이 미국의 심장부에 있는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고, 심지어 뉴욕 시, 뉴욕 주 ‘올해의 교사’ 상을 연거푸 받았다. 학교제도에 대한 직격탄에 가까운 이 책의 주요 내용은 공교롭게도 그 상을 받는 자리에서 연설하기 위해 저자가 밤을 새워 쓴 것들이다.
저자의 이야기의 대부분은 현재 우리 제도교육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1970년대 이반 일리히가 출간한 <학교 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를 저자가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교육 철학은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

저자는 주로 미국의 학교교육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미국의 제도교육은 우리나라가 지난 일 세기 동안 받아온 학교교육의 뿌리이기에 전혀 낯설지 않다. 국민 통합을 위해 미국이 프러시아에서 빌려온 학교제도를 미국과 일본이 모방하고 그것을 그대로 우리 교육에 이식하면서 서구의 근대교육은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교육 문제의 진짜 뿌리는 거기, 즉 서구 교육제도에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학교를 거치는 동안 대부분의 아이들이 생기를 잃어버리고 가능성을 매장당한 채 그저 밥벌이나 하면서 살아가는 어른이 되는 현실은 근대화 과정을 거친 국가들이라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이 겪는 비극인 셈이다.
 
"아이들과 교육 사이를 갈라놓는 장애물들과 여러 해 동안 씨름해 오면서 저는 국가 독점 교육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교육제도는 그 핵심적 신화들이 까발려지고 버려지면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 제가 가르쳐 온 것은 이 교육제도를 지탱하는 신화들, 계급제도에 근거한 경제체제를 떠받드는 신화들을 뒷받침해 주는 보이지 않는 교과서였던 것입니다.(p.22)"

 

저자는 교사들이 학부모들의 돈으로 12년간 학교에서 하는 몹쓸 짓 7가지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혼란, 교실에 가두기, 무관심, 정서적 의존성, 지적 의존성, 조건부 자신감, 숨을 곳이 없게하는 것'입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학교의 필요성으로 제기하는 읽고 쓰기나 덧셈 뺄셈에 대해 학교의 기능을 비판한다. 실제 아이들이 읽고 쓰고 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가정에서 100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이 의욕만 있다면 가르쳐 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배우려는 마음이 식기 전에 가르쳐 주는 것"이 요령이라는 것..(실제 미국에서는 의무교육 전에 2%에 불과하던 문맹률이 1990도에 9%까지 증가했다고...헉!)
따라서 저자는 학교의 숨겨진 교육과정이 사실은 ‘바보 만들기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학교교육을 더 많이, 더 잘 받은 엘리트일수록 실제로는 남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착각하고 살면서, 자신이 궁극적으로 무엇에 봉사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물신의 제단에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이 말은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조금씩 현실화되기 시작했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마약, 자살, 이혼, 폭력, 잔인성 등이 유행하는 현상, 그리고 미국에서 사회계층이 계급으로 굳어지는 현상도 모두 중앙통제의 강황에서 파생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비인간화되고 개인과 가정, 지역사회의 의미가 퇴화되는 것입니다. 대형 의무교육기관이 이런 성질을 갖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이 기관들은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p.38)"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길은 어디 있을까? 저자는 민주주의로, 개인의 세계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독려적인 학습방법, 지역사회에서의 봉사활동, 모험과 경험, 충분한 개인 시간과 혼자 있기, 온갖 종류의 견학과 견습.. 저자는 이런 것들이 모두 진정한 학교제도의 개혁을 위한 강력하고 값싸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손상받은 아이들과 손상받은 사회를 회복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교'의 개념을 열어젖혀 가정을 교육의 주된 동력원으로 받아들여야"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가리키는 그 길은 어려운 길이 아니다. 돈이 더 필요한 길도 아니다. 교육 예산이 늘어난다고 해서 우리가 맞닥뜨린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답을 찾는 지름길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말 잘 듣는 아이를 길러내기 위한 근대 학교의 근본 패러다임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전미 가정교육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6월 현재 미국 홈스쿨링 인구는 약 204만명, 전체 학생의 3.8%에 달한다.)

 

"교육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든 그것은 독창적인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지, 틀에 맞춘 인간형을 찍어내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아이들에게 커다란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창의성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자기 인생에 지표로 삼을 가치관을 세울 수 있게해 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이 있는 장소, 자신이 함께 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정신적 풍요로움을 키워 주어야 합니다. 세상에 중요한 일들이 어떤 것들이고, 사람이 살고 죽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p.118)
 
우리나라도 교육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교육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무한입시경쟁과 학벌독점만능주의, 대학서열화, 사교육 광풍 등 '교육제도 내부'의 문제만을 들여다 볼 뿐이다. 무한입시경쟁과 학벌독점만능이 한국보다 심하지 않은 미국 제도교육이 저자의 주장처럼 100년간의 국가독점교육체제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사회문제로 발전된 것이라면 우리 역시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검토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2012년 8월 23일 ]
c****n 2012.08.2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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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큼이나 파격적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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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 조금은 파격적인 문구의 표지 제목만큼이나 표지만큼이나 내용이 참신하고 경종을 울릴만했다 1992년에 씌여진 책이니 2007년인 지금과는 시간적 간극이 있지만 놀라우리만치 현재 한국 공교육이 지닌 병폐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개토는 공교육은 사라져야 한다고 보고있다 근대 공교육이라는것 자체가 19C 프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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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 조금은 파격적인 문구의 표지 제목만큼이나 표지만큼이나 내용이 참신하고 경종을 울릴만했다 1992년에 씌여진 책이니 2007년인 지금과는 시간적 간극이 있지만 놀라우리만치 현재 한국 공교육이 지닌 병폐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개토는 공교육은 사라져야 한다고 보고있다 근대 공교육이라는것 자체가 19C 프러시아로부터 시작이 된다고 보면 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에서 의무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교육이라는것은 단지 국가에 복종하고 충성하는 군대를 양성하는데서 출발했다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을거다. 이러한 독일의 공교육이 미국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독일물 좀 먹지 않고서야 정부의 고위 관료나 교육계 거장이 될 수 없는 미국의 당시 사회적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들 중 한 사람이었던 미국의 엄청나게 유명한 교육자 듀이의 사회성마저도 민주시민의 자질을 육성한다는 미명하에 사회에 복종하고 융화되는 인간을 기르는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창의성이나 인간 개인의 고유성과 개성은 깡그리 사라져버리기 딱 좋은 제도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 한 술 더떠 당국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이러한 공교육 학교 제도가 가지는 폐해를 인정하려 하기보다는 하나같이 이러한 공교육을 더 강화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나 그 이면에는 학교를 통해 자신들을 더 살찌울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을 부추기는 학교풍토때문에 학생들은 점점 더 사회 병폐를 일으키며 죽어가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이들을 치료하기 위한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 각종 심리치료사, 사교육 관계자 등이 그 예라고 보면 되겠다. 게다가 공교육 제도 하에서 작가를 비롯한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7가지 가르침이자 죄의 항목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지경이다. 그 첫째가 연관성이나 의미따위는 없는 분절된 형태의 가르침을 말하는 ''혼란''이고, 번호와 나이등의 항목에 묶여 제자리를 지킬것을 강요받는 ''교실에 갇혀있기가 그 두번째이며 지나친 관심은 문제의 소지일 뿐이기에 강의의 주도자인 교사에게만 집중하게끔 하는 ''무관심''이 셋째이다. 정해진 체계속에서 권위자에 따르도록 하는 ''정서적 의존성''과 역시 전문적 지식을 전수시키는 권위자에 따르도록 하는 ''지적 의존성''이 그 넷과 다섯번째이며 권위자의 판단 즉 성적처리 등에 따라 자신의 진로와 미래를 결정하게끔 만들어 버리는 ''조건부 자신감''이 여섯번째, 마지막으로 감시자로서의 교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숨을곳이 없다''가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법한데 TV와 학교의 폐해로 나타나는 학생들의 양상 8가지를 꼬집어 내는데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1.어른들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2.아무런 호기심도 없을 뿐더러 자신이 선택한 일에도 오랫동안 주의를 집중하지 못한다. 3.미래의식이 약하며 현재를 살 뿐 ''순간''이 그들 의식의 한계이다. 4.역사의식이 없다. 5.서로 잔인한 짓들을 하며 타인의 불행을 동정할 줄 모른다. 6.친근한 관계나 솔직한 태도에 불안해한다. 7.물질주의를 떠받든다. 8.의존적이고 수동적이며 새로운 상황에 부딪치면 겁쟁이가 된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국민간의 치열한 토론을 벌여 탈학교 운동으로 전환하고 가정이 가진 교육적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 알게 하는것이 모든 진정한 앎의 근본임을 다시금 깨닫고 독립적인 공부 시간을 많이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 둘째이다. 제도화된 국가교육과정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자성과 자립정신을 키워 낼 기회를 갖는 교육과정이 필요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남을 돕게하는 경험 즉 사회봉사활동의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개인의 세계 그리고 가정으로의 회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행복은 곧 돈으로 살 수 있는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던 교육의 논리도 정당성을 잃었고 3R을 위해서라는 논리도 이는 제대로 가르치면 100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연구결과에 의해 설 자리를 잃었다. 제도화 된 공교육은 사람을 가르고 계층별로 분류하고 있으며 경쟁에서 이기면 경제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고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적 목적이 과연 이것이던가? 스스로 만족할만한 목적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것,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것이 진정한 교육의 의미가 아니었던가 개토도 인정하고 있지만 이미 공교육 제도는 너무도 거대해지고 너무도 발전해버렸기 때문에 이를 근본적으로 흔들어대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가 꿈꾸는 교육이 100% 다 옳다고 보기도 힘들지만 이렇게 타성에 젖어있던 이제 겨우 경력 만 2년을 바라보는 나같은 공교육 제도의 테두리의 안에서 안주하며 타성에 젖은 교사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책임에는 틀림이없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테두리속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하는지는 제시되지 않았지만 크나큰 방향을 제시해주었다고 믿는다.
f*****7 2007.01.0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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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교육 (바보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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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29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교육― 바보 만들기 존 테일러 개토 글 김기협 옮김 민들레 펴냄, 2005.7.7.  나는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삽니다. 책 만드는 일은 으레 지식이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 여기는지, 이래저래 일 때문에 바깥에서 사람을 만나면 나더러 “몇 학번이냐?” 하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면 나는 “1975년에 태어났습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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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29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교육

― 바보 만들기

 존 테일러 개토 글

 김기협 옮김

 민들레 펴냄, 2005.7.7.



  나는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삽니다. 책 만드는 일은 으레 지식이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 여기는지, 이래저래 일 때문에 바깥에서 사람을 만나면 나더러 “몇 학번이냐?” 하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면 나는 “1975년에 태어났습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그래도 학번을 또 물으면 “나는 대학교를 안 다녀서 잘 모릅니다.” 하고 덧붙입니다. 이런 말을 듣고 나서 “미안합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래도 학번으로 따지면 몇 학번인지 알 수 있지 않느냐?” 하고 되묻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이때에는 참으로 더 할 말이 없지만, “그렇게 잘 아시면, 그해에 태어난 사람이 대학교에 어느 때에 들어가는지 셈을 하셔요.” 하고 말한 뒤 입을 꾹 닫습니다.


  이제 나는 시골에서 삽니다. 1975년에 태어나 1995년에 군대에 가기까지 도시에서만 살았고,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강원도 멧골짝에서 보낸 뒤, 다시 도시로 돌아와서 2003년 8월까지 일하다가, 이때부터 2007년 3월까지 충청도 멧골짝에서 이오덕 님 책과 글을 만지면서 시골살이를 했는데, 2007년 4월에 도로 도시로 돌아가서 마을도서관(사진책도서관)을 열어서 꾸리다가 2010년 가을부터 새롭게 시골로 보금자리를 꾸려서 지냅니다.


  시골에서 사니까 나한테 학번을 묻는 이웃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그저 나이만 묻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묻습니다. 도시에서 만나는 이웃은 으레 학번을 묻더니, 시골에서 만나는 이웃은 으레 고향을 묻습니다. 그래서 시골에서 사는 요즈음은 “뿌리를 내려서 살면 그곳이 고향이지요.” 하고 대꾸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그래, 여그서 살면 여그가 고향이지.” 하고 말하는 분이 있지만, 끝끝내 “그라도 태어난 곳이 있을 거 아닌가?” 하고 늘어지는 분이 꽤 있습니다.


  이웃이 되고 싶은 이들은 무엇을 알고 싶을까요. 이웃이 되려면 서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나이를 알면 이웃이 될까요. 고향을 알거나 ‘다닌 대학교’를 알아야 이웃이 될까요.



.. 아이들을 나이에 따라 분류해서 감방에 처넣는 대신 온전한 삶을 살게 해 주면 아이들이 읽기, 쓰기, 셈본을 배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내용이 자기들 주변에서 펼쳐지는 현상들 속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기만 하다면 말입니다 … 마을의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며 자라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가르칠 줄 알게 된 곳, 어린아이 때부터 제 몫의 의무를 책임지는 습관을 통해 일하는 방법을 가르칠 줄 알게 된 곳, 그 강과 그 강가에 사는 사람들을 비롯한 일상적인 환경에서 스스로 모험을 빚어내고 찾아낼 줄 알게 되었던 곳..  (44, 61쪽)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대학교에 살짝 들어가기는 했습니다. 대학교라는 곳을 다섯 학기 다니면서, 이곳에서 나한테 가르쳐 줄 수 있는 대목은 ‘교수한테 잘 보이고 숙제 잘 내고 집회에 나가지 않으면 학점을 잘 받을 수 있고, 교재 아닌 책을 보지 않으면서 달달달 암기능력을 선보여서 실기점수를 높이고, 시험을 치를 적에 교수를 속이는 훔쳐보기를 잘 해내면 학교를 마친 뒤에도 큰 회사에 들어가서 돈을 많이 벌기 좋다’ 말고는 더 없다고 느꼈습니다. 대학교에서 첫 학기부터 바지런히 모든 강의를 빠지지 않고 들으면서 배우려고 애썼으나 남학생보다 여학생한테 높은 점수를 주는 전공 교수‘꾸러미’를 보고, 교재 베껴쓰기 숙제를 하나라도 안 내면 학점을 한 단계씩 깎는 교수를 보며, 보고서에 한자를 드러내어 일부러 어렵게 써야만 ‘작문’을 잘했다고 북돋우며 점수를 잘 주는 교수를 보았습니다.


  한 학기를 마친 뒤 성적표를 받고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런 데가 대학교였는가? 이런 대학교에 들어오려고 그렇게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시험공부 미치광이’가 되어야 했는가? 이런 바보짓을 일삼고 겪으면서 다시금 ‘입사시험 미치광이’ 노릇을 해야 하는가?


  대학교 1학년 2학기부터 전공수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교재 한 권으로 한 해를 가르칠 뿐 아니라, 기껏 내는 숙제는 교재 베껴쓰기뿐이니, 나 혼자 이 교재를 읽으면 될 뿐입니다. 혼자서 교재를 읽고 익힐 때에 훨씬 빠르고, 베껴쓰기 숙제 때문에 막상 내 공부를 더 깊거나 넓게 하지 못하는 일은 달갑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두 학기째 다니고 보니 돈이 너무 아깝습니다. 대학교 등록금이면 책을 몇 권이나 살 수 있나 하고 헤아려 봅니다. 대학교 등록금을 이곳에 바치느니, 이 돈으로 내 마음을 살찌울 책을 하나하나 알뜰히 살펴서 장만하자고 느낍니다. 강의보다 ‘강의 뒤에 마실 술’에 눈이 먼 선배와 동기를 쳐다보기 싫습니다. 아예 강의를 빼먹으면서 학교 잔디밭에서 낮부터 술에 저는 선배와 동기를 만나기 싫습니다. 나는 대학교 강의는 젖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 ‘대학교 둘레 헌책방’을 찾아나서기로 하고, 다른 대학교 둘레에 있는 헌책방에 깃들어 여러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장만하고 읽고 장만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 스스로 의미를 찾아낼 줄 아는 것입니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목적을 찾아낼 줄 아는 것, 이것이 진짜 교육의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학교제도를 통해서는 빈부를 막론한 모든 사람이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비물질적 가치에 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없습니다 … 학교에서 측정하는 것은 학생의 유순함이고, 이러한 측정은 상당히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누가 고분고분하고 누가 그렇지 않는가를 아는 것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일까요? ..  (88, 97, 142쪽)



  한국을 보면, 초·중·고등학교는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고 시험 성적이 높은 아이가 사랑받습니다. 대학교는 이런 학생도 사랑을 받지만 집회에 잘 나가는 선·후배도 사랑받고, 얼굴과 몸대를 가꾸어 짝짓기놀이를 잘하는 아이도 사랑받으며, 어디 놀러가서 춤 잘 추고 노래 잘 부르는 사람도 사랑받습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려는 사람’은 참말 사랑을 못 받습니다.


  대학교에 와서 ‘도서관에서 시험 공부나 토익 공부를 안 하’고, ‘교양도서나 인문도서를 찾아서 읽’으려는 사람은 사랑을 못 받습니다. 강의를 듣다가 궁금한 대목을 물으면서 ‘교재 진도를 막’는 사람은 사랑을 못 받습니다. 보고서를 다섯 장 써서 내라 하는데, 열 장이나 스무 장까지 써서 이녁 생각을 펼치려고 하는 사람은 사랑을 못 받습니다. 술자리를 마다 하거나 담배를 피라고 내미는데 안 피우는 사람은 사랑을 못 받습니다. 금요일 낮 강의부터 빼먹으면서 주말에 놀러가서 밤새 술을 먹자고 하는 모꼬지에 안 가겠노라 하는 사람은 사랑을 못 받습니다. 술과 짝짓기놀이가 어우러지는 모꼬지에 안 간 사람은 다음부터는 아예 따돌림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1학년을 마치던 해 겨울에 일찌감치 ‘입영 신청서’를 냅니다. 하루 빨리 이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술자리에 안 가겠다고 하면 멱살을 잡고 주먹다짐을 하거나 얼차려를 시키는 선배한테서 벗어나고 싶어서 군대부터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술자리에서 빠졌으니 오늘은 반드시 술자리에 와야 한다고 윽박지르면서 거친 말을 내뱉는 선배는 더 보고 싶지 않아서 아예 학교 문턱에는 들어가지 않고 도서관에 새벽처럼 들어갔다가 첫 강의를 할 때에 슬그머니 나와서 다른 대학교로 찾아가 그곳 둘레에 있는 헌책방에서 마지막 강의가 끝날 때까지 책을 읽다가 ‘대학교가 없는 동네(용산)’에 있는 헌책방에서 ‘인천으로 가는 전철 막차’가 떠날 때까지 책을 읽다가 집으로 갔습니다.



.. 시험과 성적, 통지표의 가르침이란 아이들이 자기 자신이나 부모를 믿기보다는 자격증을 가진 권위자들의 평가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도 남이 가르쳐 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 인간사의 복잡다기한 여러 측면에 전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한 유일한 길임을 ..  (27, 71쪽)



  군대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진작 그만두려 했지만 집에서 아주 싫어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너무 크게 싫어하셔서 한 해만 더 다니기로 합니다. 나는 이때부터 집을 나옵니다. 더 일찍 집을 나오고 싶었지만, 군대에서 생각을 추슬러서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나는 군대에 가기 앞서 대학교 앞 신문사지국에 들어가서 신문배달을 하며 책값을 벌었습니다. 이제 ‘대학교 2학년 복학생’이 된 나는 집을 나와서 학교 앞 신문사 지국으로 다시 들어가서 새벽마다 신문을 돌리면서 학교를 다닙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술 안 마신다고 하면 멱살 잡는 선배’가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선배가 되었고, 게다가 복학생이니까요.


  그런데, 선배가 되어 후배한테 ‘나는 너희한테 술 먹일 생각이 없다’고 하니, 후배들이 제 둘레에 안 옵니다. 후배들은 ‘술을 사 주고 신나게 놀자’고 하는 선배한테만 붙습니다. ‘대학교에 와서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짝짓기놀이도 할 만하지만, 삶을 배우고 생각을 짓는 하루를 보내고서 놀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래 구슬리고 저래 달래도, ‘대학생으로서 책방마실’을 하거나 ‘대학생으로서 도서관마실’을 하는 일을 반기는 후배는 찾아보지 못합니다.


  군대를 마치고 돌아간 대학교에서 아예 전공수업을 안 듣기로 합니다. 한 해만 더 다니고 그만두기로 한 만큼, 바보스러운 전공수업을 들을 까닭이 없습니다. 어떤 수업을 들어야 이 비싼 등록금이 안 아까울까 하고 살피다가 ‘고졸 학력으로 기자가 되는 길’을 뚫으면 재미있겠다고 느낍니다. ‘신문배달 고졸 학력으로 기자 시험을 뚫고 들어가’면 참으로 새로운 길이 될 만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강의계획표를 살펴서 두 학기치 계획을 짭니다. 두 학기에 걸쳐 신문방송학과 모든 수업을 듣기로 합니다. 교수가 뭐라고 따지거나 말거나, 학점이 어떻다거나 말거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여덟 시간을 빈틈이 없이 꽉꽉 눌러서 채웁니다. 신문방송학과 수업이 없는 빈 자리는 교양과목으로 채웁니다. 우리 학과 조교가 내 ‘강의신청서’를 보더니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신청할 강의가 20점이 넘으면 안 된다고, 자그마치 40점이 넘게 신청하지 말라 했지만, “조교야, 난 두 학기만 다니고 이 학교 그만둘 생각이야. 난 학점이나 성적 때문에 강의를 들을 생각이 없어. 난 내가 들을 강의만 들을 생각이야. 그러니 이대로 신청서를 받아. 네가 이 신청서를 안 받아도 나는 그 강의를 들으러 갈 테니 알아서 해.” 하면서 밀어넣었습니다.



.. 아이들은 낡아빠진 과정을 되풀이하며 과학용어를 외웁니다. 텔레비전 상업광고를 따라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공식을 따라 외웁니다. 과학교사는 국가가 인정한 과학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정치적인 진리를 선전하는 사람입니다 … 책은 어떤 선생이 가르치든 어떤 학생들이 배우든 똑같은 것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  (134, 136쪽)



  책만 보고는 버드나무 생김새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책만 보고서는 감꽃이 피고 지는 때와 감을 언제 따서 먹으면 될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책만 볼 때에는 멧골에서 우짖는 멧새가 어떤 새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습니다. 그 어느 도감에도 ‘새가 노래하는 소리’가 어떠한지 못 밝힙니다. 더군다나 도감에서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적어 주더라도, 막상 내 귀로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어 보면 사뭇 다릅니다.


  사진이나 그림만 보아서는 요것이 벼인지 피인지 가려낼 수 없습니다. 사진이나 그림만 보았으면 봄에 올라오는 요 녀석이 보리싹인지 밀싹인지 가려내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그럭저럭 이름이 있는 대학교 졸업장은 ‘대학교를 다니지 못한 우리 아버지’한테는 대단히 컸습니다. 큰아버지인 우리 아버지는 동생 뒷바라지 하느라 대학교에 못 갔습니다. 동생인 작은아버지 세 분은 모두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를 마쳤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이 대목이 큰 짐으로 있습니다. 작은아버지는 우리 아버지가 ‘동생 뒷바라지를 하느라 대학교에 못 간 아쉬움과 아픔’이 어떠한지 하나도 모릅니다. 작은아버지는 우리 아버지한테 “그깟 대학교 안 갔으면 뭐 어때?” 하고도 말하고 “대학교 가 봤자 아무것도 없어.” 하고도 말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이녁이 손수 발을 밟지 못한 대학교이기 때문에 몹시 아쉽고 아프며 서운하게 여깁니다. 우리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감으로 일하면서 저녁에 짬을 내어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초등학교 교장이 된 뒤에도 대학원 수업을 빠짐없이 듣고 숙제를 내시더군요. 그러더니, 교대 대학원을 수석으로 마칩니다. 아쉬움과 아픔을 이렇게 풀어내는 아버지인데, 이렇게 ‘대학원 수석 졸업장’을 가장 큰 보배처럼 집에 붙이시지만, 그래도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 대목을 안타깝게 여기고, 이녁 아들이 ‘대학교 자퇴’를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나는 나입니다. 나는 아버지와 다릅니다. 나는 내가 품을 꿈을 이루는 삶이 대수롭습니다. 나는 졸업장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는 삶을 배우는 길이 대수롭습니다. 나는 나한테 삶을 가르치거나 보여줄 스승이나 길동무나 이슬떨이나 곁님이 대수롭습니다. 나는 나한테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베풀 기관이나 시설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읽을 노릇입니다. 겉모습으로는 사람을 읽지 못합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사귈 노릇입니다. 몸매와 얼굴로 사람을 사귈 수 없습니다.


  대학교에 몸을 두기는 했으나, 나는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의를 빠짐없이 들은 뒤, 대학교 도서관과 구내서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합니다. 하루에 한두 시간만 자면서 ‘대학교 2학년 복학생’ 나날을 보냅니다.



.. 우리 아이들의 삶을 통제하는 두 가지 제도가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학교. 중요한 순서대로 적은 겁니다. 이 두 가지는 진짜 세계, 즉 지혜와 용기, 자제와 정의의 세계를 쥐어짜서 쉴 새 없고 끝없는 추상의 세계로 만들어 놓습니다. 지난 시절, 사람들은 진짜 일, 진짜 사랑, 진짜 모험, 그리고 정말로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쳐 줄 만한 스승을 찾아다니는 일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 학교는 일하는 사회에 대한 기생충 노릇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온통 훑어보아도 아이들을 창고에 몰아넣고 공익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일체 주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일그러진 이 사회뿐입니다 ..  (45, 53쪽)



  내 다짐대로 한 해만 더 다닌 대학교를 그만둡니다. 1998년 12월입니다. 이해 시월에는 한글학회에서 ‘한글공로상’이라는 상패를 나한테 주었습니다. 군대에 있을 적과 대학교로 돌아온 뒤 틈틈이 하루를 쪼개어 ‘우리 말 소식지’를 주마다 한두 가지씩 펴내어 둘레에 돌렸는데, 이런 일을 두고 한글학회에서 젊은이를 이쁘게 보아주었구나 싶습니다.


  스물서너 살 젊은이가 ‘한글공로상’을 받았다고 하니 여러 신문사에서 취재를 하자고 전화가 옵니다. 이때 나한테는 손전화가 없고 삐삐만 있습니다. 학과방이나 학과실에 전화가 오지만 일부러 전화를 안 받고, 신문배달 자전거를 몰아 책방마실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용케 〈조선일보〉 기자는 내 발걸음을 좇아서 내가 ‘숨은’ 헌책방까지 찾아옵니다. 〈조선일보〉 기자한테 나는 이녁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다 말합니다. 사진도 찍지 말라고 말합니다. 〈조선일보〉 기자는 이런 말을 고분고분 들어줍니다. 그러더니, 내가 엮은 소식지를 몇 부 어디에선지 얻어서 스스로 기사를 써서 신문에 싣습니다. 참 대단한 기자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취재를 하려면 이렇게 취재를 해야 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취재 거부’를 했더니, 〈조선일보〉 기자는 스스로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해서 ‘알찬 기사를 만듭’니다. 이와 달리 〈한겨레〉 기자는 두 시간 즈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정작 알맹이가 빠진 ‘빈껍데기 기사를 만듭’니다. 〈한겨레〉 기자는 받아적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서 기사에 잘못 적은 대목까지 있습니다.


  1998년 한글날 아침에 아버지는 깜짝 놀라셨다고 합니다. 나는 〈조선일보〉 기자한테 내 사진을 준 적도 찍힌 적도 없지만, 참말 어디에선지 내 증명사진을 얻어서 기사에 넣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녁 아들이 이녁이 날마다 보는 신문에 떡하니 기사로 난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셨고, 저녁에 신문사지국으로 전화를 걸어 “종규야,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겠다. 축하한다. 애썼어.” 하고 짤막하게 한 마디를 합니다.


  나는 아버지가 들려준 짤막한 말에 힘입어 이해 겨울에 씩씩하게 자퇴서를 냈고, 당차게 ‘대학교 도서관 앞에 자퇴 대자보’를 석 장 써서 붙였습니다. ‘자퇴 대자보’는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누군가 갈기갈기 찢어서 바닥에 흩뿌렸지만, 다 괜찮습니다. 대학교에 다닐 사람은 다니면 되고, 졸업장을 가지고 싶은 사람은 가지면 됩니다. 그리고, 대학교를 떠날 사람은 떠나면 되며, 졸업장 없이 살고 싶은 사람은 이렇게 살면 됩니다.


  그런데, 이러고 보니, 나중에 내가 들어갈 만한 일터가 없더군요. 그래서 나는 오로지 신문배달만 합니다. 〈한겨레〉에서 나를 ‘한겨레신문 홍보 모델’로 써서 〈한겨레21〉이나 〈씨네21〉에 이런 홍보 사진이 나오기도 했고, 신문사에서 나를 ‘특채’로 뽑아 주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학력제한 없는 입사시험 제도’가 없으면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을 여쭈면서 손사래를 쳤습니다.



.. 저는 조직이 가정을 대신할 수 있다는 기본 전제에 강력히 반대합니다 … 조직이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 해도 사회와 가정의 생명력을 뽑아 가는 성질이 있습니다. 조직은 인간의 문제에 대해 수량으로 파악되는 기계적인 해결책을 제공합니다 ..  (45, 53, 71쪽)



  국민학교 3학년 무렵에 겪은 일이 있니다. 이날 마침 담임교사가 학교를 비워서 양호교사가 하루를 맡았습니다. 양호교사는 교과서 수업을 하기 어려워서 하루 내내 ‘다른 수업’을 했습니다. 양호교사는 이날 하루 내내 “내 꿈 이야기하기”를 했습니다. 양호교사는 우리더러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마음껏 적어서 모든 아이가 교탁으로 나와서 말하라고 시켰습니다.


  한 반에 예순 아이쯤 있으니, 모든 아이가 앞으로 나와서 말을 하자면 참 오래 걸립니다. 하루를 꼬박 들이니 겨우 모든 아이가 “내 꿈”을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나는 일부러 내 자리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면서 “내 꿈 발표”를 미루었습니다. 거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더 미룰 수 없어서 겨우 “내 꿈 발표”를 합니다. 동무들은 1분이건 10분이건 30분이건 마음껏 “내 꿈 발표”를 할 수 있었고, 한 번 들려준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이야기를 해도 되었습니다.


  꽤 많은 동무들은 “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하고 말하는데, “나는 대통령 비서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 대통령이 된 아무개(동무 이름)를 똥통에 빠뜨려 죽이고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요……(깔깔깔)” 하면서 놉니다. 차분하게 꿈을 말하는 동무가 여럿 있었다고 떠오르지만, 거의 모든 아이들은 장난으로 때우려 했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무렵 나는 그야말로 엄청난 개구쟁이여서 ‘어떤 장난을 치면 동무들을 더 웃길 수 있을까, 뭘 꾸미지?’ 하고 머리를 굴리고 뒷통수를 긁적였습니다. 이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발표를 마지막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한 줄을 종이에 썼습니다.


  “저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어른이 되는 게 꿈입니다.”


  이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동무들은 책상을 치고 걸상을 끌고 긁고 뒤로 자빠지고 앞으로 엎어지고 웃어대었습니다.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 해냈구나 하고 느끼며 같이 웃기는 했지만, 동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좀 많이 지나치지 싶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양호교사도 웃음이 새어나오는지 웃음을 못 참다가 제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더니 “장난치지 말고, 다시 말해요.” 했습니다. 나도 따라서 웃다가 꿀밤 맞은 머리를 긁으면서 곧 얼굴빛을 바꾸었습니다.


  “제가 어른이 되고 싶은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참말로 어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는 커서 진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다음 말은 어디에서 샘솟았는지 나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내 입에서 이런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왔습니다. 이 말은 모든 아이들을 잠재웠고, 양호교사도 “그래, 그렇구나. 아까 꿀밤 먹여서 미안하다.” 하고 말했습니다. 양호교사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잘했다.”고 덧붙였습니다.



.. 자기에게 맞다고 생각되는 교육의 종류를 학생들이 선택하는 겁니다. 독학도 선택의 한 갈래가 될 수 있겠죠 … 조직은 더 좋아지지도 않고 더 나빠지지도 않습니다. 목적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 본질이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의미의 발전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  (37, 78쪽)



  국민학교 3학년, 그러니까 내 열 살 적이나, 마흔 살이 넘은 오늘이나, 내가 품는 꿈은 ‘어른 되기’입니다. 나이로만 어른이 아니라 마음으로 어른이 되고, 짝을 지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른이 아니라,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고 당차며, 옳은 일에는 옳다 말하고 그릇된 일에는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일이 꿈입니다.


  ‘어른 되기’란 ‘사람 되기’입니다. 누구나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정작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는 사람은 드뭅니다. 학교에 얽매이거나 사회 얼거리에 짓눌립니다. 도시에서 회사원 톱니바퀴가 되거나 독재정권 나팔수가 되기도 합니다. 지식장사꾼이 되는 사람도 있고, 종이 되거나 꼭둑각시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 지식이 모자라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내 지식이 모자라다면 새롭게 배워서 채울 노릇입니다. 다만, 내 마음이나 생각이 옳지 못하고 그릇된 길로 간다면 땅을 치면서 뉘우쳐야 합니다. 참다운 지식은 앞으로 내 나이가 몇 살이 되더라도 꾸준히 익혀서 얻어야 합니다. 참다운 지식은 참말 스스로 애쓰면 언제가 되든 얻을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올곧고 올바른 마음가짐과 몸가짐은 어릴 적부터 몸에 붙이지 않으면 얼마나 기나긴 나날이 흐르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하기 일쑤라고 느낍니다. 어릴 적부터 삶을 삶대로 맞아들이면서 누릴 때라야 비로소 참사람이 되고 참어른이 된다고 느낍니다.


  나는 2003년 여름에 도시를 떠나 충청도 멧골짝으로 삶자리를 옮겨 이오덕 님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이오덕 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곳에 와서 이녁 자취를 하나씩 더듬으면서, 이녁 참모습이 어떠한가를 살피면서, ‘이제껏 나한테 스승다운 스승은 없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참 그랬어요. 그렇다고 이오덕 님이 내 삶길에서 스승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이오덕 님이 남긴 어마어마한 글과 책은 나한테 ‘스승이란 무엇이고, 스승이란 누구인가?’를 일깨웠습니다.


  스승은 무엇일까요? 숲입니다. 스승은 누구일까요? 나입니다.



 … 메인 주 해양박물관은 배 만들기, 밧줄 만들기, 새우잡이, 돛 만들기, 물고기 잡기, 해양 건축을 가르치는 데 몇 달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학교교육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습니다. 학기가 짧은 홍콩은 모든 과학이나 수학 경연에서 일본을 능가합니다. 학기가 긴 이스라엘이 전세계에서 가장 짧은 학기를 가진 벨지움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  (37, 78, 129쪽)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며 배운 대목은 ‘내 밥그릇 잘 챙겨서 돈 잘 벌어서 도시에서 살기’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느낍니다. 학문을 깊이 파헤치거나 살피는 일은 꼭 대학교를 나와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대학교를 옳게 다니고, 제대로 나오는 사람도 많고, 옳고 바르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수도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 대학교 얼거리(조직)는 젊은이를 젊은이답게 키우거나 길러내지 못합니다. 제 한 몸뿐 아니라, 이웃사람 몸을 아울러서 헤아리도록 가르치지 못합니다.


  내가 보기로 대학교는 ‘조직’이거나 ‘공장’이지, ‘배움터’나 ‘삶터’가 아닙니다. 배움터는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뿐 아니라, 학생한테서 교사가 배우는 곳이어야 합니다. 학생이 교사한테 배울 뿐 아니라, 학생이 교사를 가르치는 곳이어야 배움터이면서 삶터가 된다고 봅니다. 대학교라는 곳에 몸담은 사람한테만 도움 되는 대학교가 아니라, 대학교를 다니지 않는 사람한테도 도움이 되는, 아니 대학교에 갈 수 없고, 대학교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한테까지 제대로 도움이 되어야 비로소 대학교라고 봅니다.


  《바보 만들기》(민들레,2005)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을 쓴 존 테일러 개토 님이 말하는 ‘의무교육 문제’ 고갱이는 여기에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받는 초·중·고등학교 의무교육은 ‘대학교 바라기’일 뿐인데, 윽박지르고 짓누르면서 바보로 만드는 공장살이나 감옥살이입니다. 다른 곳으로는 가지 말고 오로지 대학교만 바라보게 하는 ‘통제와 획일’이 바로 우리네 의무교육입니다. ‘일방통행이오니 이 길 말고 다른 길로는 가지 마시오. 다른 길로 가면 그대는 이 사회에서 내동댕이쳐질 테니까!’ 하고 으름장을 놓는 비틀린 교육 얼개와 사회 얼개인 한국입니다.



.. 우리가 학교교육에 쏟아붓고 있는 돈을 도로 가정교육으로 돌린다면 약 하나로 두 가지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회복시키면서 동시에 가정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가능하며 거기에는 아무 비용도 들지 않습니다 … 교육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든 그것은 독창적인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 하지, 틀에 맞춘 인간형을 찍어 내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  (49쪽)



  한 해에 80만이나 되는 수험생이 나온다고 하는데, 이 아이들이 모두 대학교에 가야 한다면, 이 아이들은 모두 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해마다 80만에 이르는 아이들이 저마다 제 삶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돈을 써서 대학생이 될 노릇이 아니라, 돈을 들여서 ‘숲집’을 가꾸고 ‘배움터’와 ‘보금자리’를 일구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생각이 제대로 박힌 어버이라면, 이녁 아이가 대학교에 쏟아붓는 ‘네 해 오천만 원, 또는 네 해 일억 원’으로 시골자락에 땅을 장만해서 숲으로 가꿀 노릇입니다. 생각이 슬기롭게 자라는 어버이라면, 이녁 아이를 대학교에 보내기까지 초·중·고등학교에 집어넣어서 시험기계로 길들이며 쓰는 ‘일 억원, 또는 이억 원’에 이르는 돈을 일찌감치 시골자락에 땅을 마련해서 숲으로 일구는 일을 할 노릇입니다.


  돈이 없다는 말은 핑계입니다. 죽자 사자 돈을 벌었으면 이 돈을 제대로 써야 합니다. 죽자 사자 번 돈으로 학원비나 교재비로 쓰지 말고, 이 돈으로 시골자락에 땅을 사야지요. 그리고 이 땅을 아름다운 숲으로 일구어서 ‘자급자족’을 하는 길을 열어야지요. 바로 이 길만이 아이를 살리고 어버이를 살립니다. 아이가 살면 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낳을 아이도 살립니다.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모든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 가운데에는 모든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많습니다. 숨 쉬기, 물 마시기, 밥 먹기는 누구나 해야 마땅하지만, 이런 일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아주 마땅한 일, ‘본능’이라고만 여깁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배울 것은 ‘숨(바람)’과 ‘물(빗물과 냇물)’와 ‘밥(해와 흙)’입니다. 여기에 ‘집(숲과 나무)’과 ‘옷(풀과 꽃)’입니다. 하나를 덧붙이면 ‘말(이야기와 글과 책)’입니다. 숨과 물과 밥과 집과 옷이 있어야 사람이 몸과 마음으로 사는데, 여기에 말이 있으면 날마다 오순도순 재미나게 어우러집니다. 말이 있기에 노래와 춤이 잇달아 태어납니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셔요. 대학교에서 무엇을 보여줄까요?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무엇을 할까요? 이 모든 학교와 시설과 교육과 복지 가운데 어느 하나도 ‘숨·물·밥·집·옷·말’을 살피지 않습니다. 어느 학교와 학원도 ‘숨·물·밥·집·옷·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교사와 교수와 작가와 지식인과 기자도 ‘숨·물·밥·집·옷·말’을 다루는 이야기를 글로 쓰지도 못하고 책으로 내지도 못합니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무턱대고 학교에 집어넣는 일이란, 아이를 시험기계로 만드는 짓일 뿐 아니라, 바보로 만드는 짓입니다.



.. 스웨덴의 학교에 입학을 하면 학교당국은 아이에게 세 가지를 묻습니다. (1) 왜 학교에 다니려고 하는가? (2) 그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얻기를 원하는가? (3) 네게 흥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고 나서는 이제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집이나 배를 지을 줄 아십니까? 당신은 채소를 키우고 옷을 만들고, 우물을 파고, 노래를 부르고(당신 자신의 노래), 당신 자신의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당신 주위 일상의 세계로부터 온전한 삶을 이루어 낼 수 있습니까? 아니라고요? 당신은 그렇게 할수 없다고 말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제 아이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130쪽)



  대학교 입시 문제를 풀지 않고는 중·고등학교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문제를 풀지 않고는 초등학교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문제를 풀지 않고 유치원과 어린이집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졸업장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큰 돈과 이름과 힘을 얻는다는 이 팍팍하고 바보스러우면서 메마른 사회에서 아이가 아이답게 사는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는 ‘사회 경험’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삶을 사랑스럽게 누리는 꿈을 지으면서 하루를 맞이하는 기쁨’으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대학바라기’를 버려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대학교를 없애야 합니다. 아니면, 올바로 뜯어고치든지요. 아이를 대학교에 넣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를 초등학교에조차 넣지 말아야 합니다. 어버이라면, 아이를 시험기계 되는 구렁텅이에 몰아넣지 말고, 아이를 온몸으로 사랑하고 아끼도록 어버이 스스로 아이를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집이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집이 보금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집이 마을’로 되어야 합니다.


  학원을 하나라도 더 보내고, 과외를 하나라도 더 시켜서 점수따기를 잘하는 기계로 만드는 바보짓은 멈추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책’이 아닌 ‘입시교재’를 사서 안기는 바보짓은 그쳐야 합니다.


  바보스러운 짓에 돈을 하나도 안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다운 길에 돈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고 아름답게 가꾸면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 나라 얼거리도,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온갖 나쁜 법을 없애고 고치는 실타래도, 차별과 불평등이 곳곳에 넘친 이 사회를 아름답고 고른 사회로 다독이는 응어리도, 지식인이 엉터리 말과 글로 지식 공해를 일으키는 골칫거리도, 경제와 수출만이 살 길이라며 시골과 숲을 무너뜨리는 못난 짓도, 그야말로 얼토당토않는 온갖 말썽거리도 술술 풀릴 수 있습니다. 어른은 숲을 가꾸어야 하고, 아이는 숲에서 놀아야 합니다. 어른은 숲을 가르쳐야 하고, 아이는 숲을 배워야 합니다.



.. 사실을 말하자면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명령을 따르는 방법 외에 진짜로 가르치는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 도서관에서는 연령별로 격리된 아이들이 아니라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선지 도서관은 독자들을 나이별 또는 독서 능력이라는 수상쩍은 기준으로 격리하지 않습니다 … 도서관은 학교처럼 공공연히 창피를 주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독자와 나쁜 독자들을 등급을 매겨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써붙이지 않습니다 ..  (40, 148, 149쪽)



  《바보 만들기》는 한국에 1994년에 처음 나옵니다. 2005년에 새 옷을 입습니다. 이 책은 ‘지식으로 삼는 책’이 아닙니다. 길잡이로 삼는 책입니다. 삶을 짓는 길이 무엇인지 돌아보도록 길잡이로 삼아서, 내가 스스로 나를 가르치는 길을 그릴 노릇입니다.


  내가 내 삶을 짓지 않으면 내 삶은 무너집니다. 내가 내 삶을 그리지 않으면 내 삶에 사랑이 깃들지 않습니다. 바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바보가 되면 됩니다. 바보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꿈을 그려야 합니다. 바보를 만드는 사회와 학교에 아이를 맡기고 싶으면 그대로 맡길 일이고, 슬기로운 사랑둥이를 돌보면서 어버이 스스로 사랑스러운 슬기둥이가 되고 싶다면, 이제부터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스스로 ‘숲집’을 짓고 ‘숲노래’를 부르면서 ‘숲책’을 써야 합니다. 4338.4.12.불/4347.12.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h*******e 2014.12.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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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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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순간,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으면 절대 학교를 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다. 누구도 이 책을 읽고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거다. 그런 말도안되는 생각말라고 말할거라면 그냥 그 사람은 자신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냥 학교를 보내면 된다. 그렇게 하면 될 뿐이다.   저자인 개토는 오랜 교사생활을 하며 느낀 교육의 악을 이 책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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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순간,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으면 절대 학교를 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다.

누구도 이 책을 읽고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거다.

그런 말도안되는 생각말라고 말할거라면 그냥 그 사람은 자신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냥 학교를 보내면 된다.

그렇게 하면 될 뿐이다.

 

저자인 개토는 오랜 교사생활을 하며 느낀 교육의 악을 이 책을 통해 고백/고발하고 있다. 아무런 의심따위 없이 정책에 의한 교육을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에게 진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자세한 내용은 꼭 책을 읽어보시길!

 

교사들의 일곱 가지 죄

1. 혼란

2. 교실에 갇혀 있기

3. 무관심

4. 정서적 의존성

5. 지적 의존성

6. 조건부 자신감

7. 숨을 곳이 없다

 

학교 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은 비판하는 생각을 할 줄 모르고 올바르게 토론할 줄을 모르는 겁니다.

 

프러시아식 교육법은 지성도 마비시키지만 도덕 의지까지 마비시킵니다. .....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은 거의 키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주 위험하다고 봐야죠.

 

아이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다면, 여러분은 아이들을 어렷을 때부터 진지하게 대해 주고, 책임감을 심어주며, 솔직하게

얘기하고, 저만의 자유 시간을 주며, 중요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읽고 생각하도록 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나는?

*진지하게 대했는가? 아이들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진지하게 존중해 주지 못했다.

*책임감을 심어주었는가? 잘못한 것을 지적만 할 뿐 진정한 책임감을 심어주지 못했다.

*솔직하게 얘기했는가? 먼저 나 자신이 솔직하지 못한 어른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다.

*저만의 자유 시간을 주었는가? 통솔하고 통제하기 바빴을 뿐 그들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읽고 생각하도록 했는가? 정답만을 알려주고 그 외의 답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2년여간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를 돌아본 뒤 답을 한 것이다. 정말... 많은 후회가 된다. 알지 못해 아이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 것까지도 결국 나의 잘못이다.

 

 아이들의 삶을 통제하는 두 가지 제도는 텔레비전학교라고 말한다. 이 두 가지는 진짜 세계, 곧 지혜와 용기, 자제와 정의의

세계를 뭉그러뜨려 쉴 새 없고 끝없는 추상의 세계로 만들어놓는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을 보면 경제편에서 우리를 지배한 미국의 교육에 대한 고발이 드러나있다. 사실 이 책을 보면 미국 또한 독일에

의해 너무도 끔찍한 일들을 당한 것을 고발하고 있고, 그 결과가 지금까지도 지배하고 있는 것을 보고있지 않은가? 이 책을 쓴 저자가 책을

낸 때는 이미 오래 전이다.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되기 훨씬 전에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너무도 답답한 현실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에 대해서 똑같은 절차를 밟으며 어쩌면 그들보다 더 한 고통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본다면 아마 작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저

비뚤어진 눈으로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비판하기에만 급급한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글 하나하나 놓쳐서는 안될 부분들이 많아 이 곳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진정으로 고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난 더욱더 내 꿈을

빨리 이루어야겠다 다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보면서 이 나라에 모든 사람들이 꼭 보고 알아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정말로 교육에 대해

이제는 변화시켜야 함을 느낀다.

 서두에서 말했던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냥 학교를 보내면 된다'라고 말한 것은 내 본심이 아니다. 세상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내 아이들과 내 자손들이 함께 살아갈 그들도 알아야 하기에... 모든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 

q******l 2011.03.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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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라는 사업을 개인의 일로 바꿔라
"교육이라는 사업을 개인의 일로 바꿔라" 내용보기
존 테일러 개토는 30여 년 동안 뉴욕의 공립학교에서 자신의 독특한 게릴라 학습법으로 학교 제도에 모래를 끼얹었다. 그러면서도 뉴욕시 ‘올해의 교사’ 상을 세 차례나 받았고, 뉴욕 주 ‘올해의 교사’상을 받기도 했다. 학교 제도에 대한 직격탄인 이 책의 주요 내용이 그 상을 받는 자리에서 연설한 글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개토가 보기에 교사들은 7가지 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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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테일러 개토는 30여 년 동안 뉴욕의 공립학교에서 자신의 독특한 게릴라 학습법으로 학교 제도에 모래를 끼얹었다. 그러면서도 뉴욕시 ‘올해의 교사’ 상을 세 차례나 받았고, 뉴욕 주 ‘올해의 교사’상을 받기도 했다. 학교 제도에 대한 직격탄인 이 책의 주요 내용이 그 상을 받는 자리에서 연설한 글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개토가 보기에 교사들은 7가지 죄를 짓는다. 가르친다는 일은 장소에 따라 다른 내용을 가지는 일이다. 그러나 할렘에서 할리우드까지 어느 곳에서나 보편적으로 가르치는 일곱 가지 교과 내용이 있다. 첫째는 관계의 단절이다. 만사의 연관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단절된 사실만을 가르친다. 둘째는 교실에 가두는 것이다. 학생들을 교실에 가두고 말썽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셋째는 무관심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을 하다가도 종이 울리면 즉각 중지하게 한다. 넷째는 정서적 의존성이다. 동그라미와 곱표, 미소와 찌푸림, 상과 벌, 표창 따위로 아이들이 정해진 지휘 체계에 따르도록 가르친다. 다섯째는 지적 의존성이다. 모든 중요한 선택은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섯째는 조건부 자신감이다. 시험과 성적, 통지표를 통해 권위자들의 평가에 따르도록 한다. 일곱째는 감시이다. 끊임없는 감시와 개인 영역의 박탈은 숙제라는 이름으로 집에까지 연장시킨다.


아이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그들의 모든 시간, 성장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몽땅 빼앗겼다. 대신에 아이들은 추상적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 모든 시간을 쓴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에 무관심하고, 아무런 호기심도 없으며, 미래의식이 약하고, 역사의식이 없으며, 서로에게 잔인한 짓을 하고, 친근한 관계나 솔직한 태도에 불안해하며, 물질주의를 떠받들고,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며 새로운 상황에 부딪치면 겁쟁이가 된다.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는 것이다.


학교는 어떤 교육을 하더라도 독창적인 인물을 만들어 내야지 틀에 맞춘 인간형을 찍어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커다란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창의성을 심어 주어야 한다. 자기 인생에 지표로 삼을 가치관을 세울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이 있는 장소, 자신이 함께 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정신적 풍요로움을 키워주어야 한다. 세상에 중요한 일들이 어떤 것들이고, 사람이 살고 죽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개토는 제도적 학교를 해체하자고 주장한다. “교사자격 제도를 없앱시다. 가르치고 싶은 사람들이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 재주껏 가르치게 합시다. 교육이라는 사업을 개인의 일로 만듭시다.” 그리고 학교의 개념을 열어젖혀 가정을 교육의 주된 동력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가정이라는 교과과정은 모든 훌륭한 삶의 알맹이이기에.


모든 조직의 숨겨진 첫 번째 목표는 자체의 생존과 확장이지, 명목상 표방하는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학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보수를 받는 학교 조직은 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사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개토는 공립학교 교사로서 학교 제도에 모래를 끼얹고 있으니 이단아, 또는 자유인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자유로운 개토의 영혼에는 독립식 태도를 견지했던 할아버지의 삶과 고향인 모농가헬라가 주요한 바탕을 이루고 있다. 한 인간이 성장하는 데 ‘가정’과 ‘고향’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제 마음은 모농가헬라를 영원히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배우며 자라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가르칠 줄 알게 된 곳, 어린아이 때부터 제 몫의 의무를 책임지는 습관을 통해 일하는 법을 가르칠 줄 알게 된 곳, 그 강과 그 강가에 사는 사람들을 비롯한 일상적인 환경에서 스스로 모험을 빚어내고 찾아낼 줄 알게 되었던 곳.(82쪽)

YES마니아 : 로얄 g*******g 2012.04.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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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제보 사건, 교실에서 왜 이런 일이?
"황당한 제보 사건, 교실에서 왜 이런 일이?" 내용보기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거친 단어와 욕설을 쓰는 경우가 늘었다. 대화를 해보면 친구들이나 형들이 종종 쓴다고 한다. 자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 들이라 왜 문제인지 모른다. 엄마들은 걱정이다. 장난처럼 쓰기 시작한 욕설이 습관이 되면 어쩌나, 자칫 그런 언어습관이 인성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또래들끼리 서로 따라하다가 반 전체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어
"황당한 제보 사건, 교실에서 왜 이런 일이?" 내용보기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거친 단어와 욕설을 쓰는 경우가 늘었다. 대화를 해보면 친구들이나 형들이 종종 쓴다고 한다. 자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 들이라 왜 문제인지 모른다. 엄마들은 걱정이다. 장난처럼 쓰기 시작한 욕설이 습관이 되면 어쩌나, 자칫 그런 언어습관이 인성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또래들끼리 서로 따라하다가 반 전체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어떡하나라는 걱정들이다.

 

여러 엄마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던 끝에 담임 선생님께 상의를 드리기로 했다. 아이들의 언어습관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 같아 우려가 되니 잘 지도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선생님은 충분히 공감하신다며 더 세심하게 아이들을 지도하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전혀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제보하세요!"...아이들은 긴장했다

 

"요새는 어떠니? 요즘도 친구들끼리 욕도 하고 그래?"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어요. 000는 욕 해서 선생님한테 '주의'도 받았어요."
"그랬구나. 친구끼리 나쁜 말을 하니까 선생님이 야단을 치셨나보네."
"네, 선생님이 제보를 시키면 우리가 손 들고 제보를 하고, 걸리면 주의를 받거든요. 지금까지 주의를 가장 많이 받은 애는 000이예요."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툭 튀어나온 '제보'라는 단어에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단어이기도 하거니와, 학교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단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말을 듣고 재구성한 상황은 이렇다. 선생님은 날마다 아이들에게 '제보'를 시킨다. 뛴 아이, 욕설을 한 아이, 쓰레기를 버린 아이, 때린 아이, 놀린 아이 등 제보의 내용은 다양하다.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제보를 하고 지목을 당한 아이는 선생님으로부터 '주의'를 받는다. '주의'의 단계에 따라 체벌의 수위가 결정된다.

 

우리 아이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 아이는 제보 시간만 되면 긴장된다고 했다. 자신이 지목받을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한 아이는 억울하다고 했다. 친구로부터 지목을 받았지만 자신은 절대로 하지 않았단다. 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주의'를 받았다면서 울었다. 또 다른 아이는 친구들로부터 '고자질쟁이'라고 놀림을 받는 통에 전학가고 싶다고 했다. 평소에도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편인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누구보다 열심히 제보를 한 결과였다. 어떤 아이는 제보를 했다가 그 친구가 자기를 원망하는 소리를 듣고는 다시는 안 하기로 했다고 한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아이들은 '제보'로 인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학부모들은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 아니나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선생님이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졌다하더라도 교육적으로 적절치 않은 방법임은 분명하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인격적 성장을 이뤄가야 할 학교의 현실은 여전히 씁쓸하다. 존중과 배려, 자율과 협력을 가르치기보다는 효율과 통제, 관리에 더 익숙한 학교 문화가 좀체로 바뀔 것 같지 않다.

 

학교는 총체적 관리도구, 제도 자체가 '미치광이'

 

미국의 저명한 교육운동가로 뉴욕시 '올해의 교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존 테일러 개토는 오랫동안 '학교'로 대변되는 국가교육체계의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해왔다. 그는 책 <바보 만들기>에서 "제 가장 뛰어난 동료 교사들 중에도, 그리고 제가 만나본 가장 훌륭한 학부모들 중에도, 교육이 다른 방법으로도 이뤄질 수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이 몇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대규모 학교에서 국가독점 의무교육이 거둔 위대한 승리를 보여준다"(38쪽)고 개탄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명령을 따르는 법 말고는 진짜로 가르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수없이 많은 선량하고 열성적인 사람들이 학교에서 교사로, 직원으로, 보조원으로 일하고들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 사람들의 개인적인 노력이 제도 자체의 추상적인 논리에 파묻혀 버리는 것입니다. 교사들이 아무리 정성을 쏟고 열심히 일해도 제도 자체가 미치광이입니다. 양심이 없는 제도죠. 한참 시를 짓고 있던 젊은이도 종이 울리면 바로 공책을 덮고 다른 교실로 달려가 인간과 원숭이 같은 조상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을 외울 준비를 하게 하는 그런 제도니까요" (64쪽)

 

'우리는 왜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라는 도발적인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학교의 총체적인 관리 아래서 성장이란 불가능하다"(156쪽)고 일갈한다. 학교가 스스로 배움의 과정을 통해 독자성과 자립성을 키우기보다는 순응하고 의존하는 아이들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삶터와 괴리된 채 교실에 갇혀 시간과 과목을 쪼개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사회성, 공동체성을 익힐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제도화 된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아도 지역사회에서 의미있고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면 그 교육은 잘못된 것이고 시간 낭비일 뿐이다.

 

"교육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든 그것은 독창적인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야지, 틀에 맞춘 인간형을 찍어내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아이들에게 커다란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창의성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자기 인생에 지표로 삼을 가치관을 세월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이 있는 장소, 자신이 함께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정신적 풍요로움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세상에 중요한 일들이 어떤 것들이고 사람이 살고 죽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120쪽)

 

학교 탄생의 불편한 진실

 

저자는 획일화, 표준화 된 교과과정과 관리 매뉴얼에 따라 운영되는 학교교육의 문제를 학교의 기원에서 찾는다.

 

'국민학교'라는 이름의 현대 의무교육제도는 1819년 프로이센에서 시작됐다. '예나 전투'에서 프랑스 나폴레옹에게 패배한 프로이센은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의무교육제도를 만들었다.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문건에서 중앙집권화한 학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피히테는 학교가 길러내야 할 인간상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제안했다.

 

1.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2. 고분고분한 광산 노동자
3. 정부 지침에 순종하는 공무원
4. 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일하는 사무원
5. 중요한 문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는 시민들

 

당시 프로이센 아동 92%를 교육하는 국민학교의 목표는 강한 독일을 만들기 위한 복종과 순종의 사회화였다. 훗날 독일이 나치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되어 세계사적 비극을 남긴 것도 이 같은 교육제도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로이센의 학교교육체계는 미국으로 수출됐다. 일본도 이 교육시스템을 따랐고 군국주의적 교육철학에 바탕을 둔 교육제도를 식민지 조선에 이식했다.

 

"학교란 특정한 사회공학 모델을 지탱하는 긴요한 부속품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모델은 사람들로 하여금 통제력의 뾰족한 정점을 떠받드는 피라미드 안에서 여기저기 자리를 지키는 돌멩이 노릇을 하게 합니다. 학교는 이런 피라미드 모양의 사회구조가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책략입니다...(중략)...이 어느 것도 필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어느 것도 벗어던질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을 어떤 방법으로 키워낼지 우리에게는 사실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단 하나만의 올바른 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라미드가 가진 환상의 힘을 우리가 깨뜨릴 수 있을 때 이 사실은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41~42쪽)

 

학교 개혁에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나서야 하는 이유

 

학교교육체계의 뿌리와 바탕이 이러하니 선한 교사의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학교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상황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지금의 교육체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변화는 필연적이고 혁신은 불가피하다. 이것이 학교 교육 혁신에 교사 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학교의 해독을 중화시켜주는 것은 가정과 지역사회"(110쪽)라고 충고한다. 학교의 혁신과 회복, 지역사회 내 교육자원들이 선순환하는 교육생태계 구축 등 굵직한 과제들을 실현하기 위해 학부모와 지역이 참여하고 소통해야 한다. 학교와 마을의 경계를 허물고 민주적 소통과 협력적 관계속에서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데 학교 혁신의 길이 있다.

 

"'교육이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중요한 질문에 개인과 가정, 지역사회가 저마다 나름의 의미를 떠올리도록 하십시오...(중략)...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전문가가 여러분 대신 해준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150쪽)

 

 

 

YES마니아 : 플래티넘 x******0 2018.05.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도서] 바보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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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따르면, 교육이란 그림보다는 조각과 비슷한 것이다. 그림이란 표면에 물감을 덧붙임으로써 형상이 만들어지는 것임에 반해 조각이란 재질의 일부를 떼어냄으로써 재질 안에 내재하던 형상이 풀려 나오는 것이라 한다. 그런 관점에서 교육이란 아이들의 머리통에 전문 지식을 채워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내재적 재능의 구현을 가로막는 요인들을 제거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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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따르면, 교육이란 그림보다는 조각과 비슷한 것이다. 그림이란 표면에 물감을 덧붙임으로써 형상이 만들어지는 것임에 반해 조각이란 재질의 일부를 떼어냄으로써 재질 안에 내재하던 형상이 풀려 나오는 것이라 한다. 그런 관점에서 교육이란 아이들의 머리통에 전문 지식을 채워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내재적 재능의 구현을 가로막는 요인들을 제거해주는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 같은 교육의 명제가 확산될 경우 위험을 느끼게 되는 것이 국가 독점 교육제도의 사회학적 특성이라 한다. 확산될 경우 제도교육의 성립 근거가 되는 핵심 가설들이 이단적인 사고에 의해 위협받을 수 있다. 특히, 경제체제의 안정성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한다. 젊은이들이 비판적 사고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지금 우리 학생들이 받아들이고 공헌하도록 교육받고 있는 경제 체제는 한 세대도 못 가서 무너져버리고 말 것이다.

학교의 교육제도는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하고 있다. 21세기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빈부를 막론하고 어떤 일에든 오랫동안 집중할 능력이 없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감각이 빈약하다. 결손 가정의 어린이처럼 친근한 관계에 편안하지 못하다. 부모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해온 결과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된 셈이다. 아이들은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 물질주의에 빠져 있고 의존적이며 수동적이다. 난폭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일 앞에서는 겁쟁이가 되고, 의미 없는 일에 몰두한다. 이런 갖가지 버릇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조장되고 확대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학교가 감춰진 교과과정을 가지고 인간성의 바람직한 성장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공포심과 이기심, 미숙함을 이용하지 않고는 현재의 학교가 살아 남을 수 없다. 학교에서 비판적 사고의 도구가 되는 변증법이라든가 발견학습법처럼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들이 쓰는 무기를 아이들 손에 쥐어줬다가는 오래 안가 학교가 풍비박산 날 것이다. 학교제도를 전면적으로 제고할 경우 그 비용이 지금 우리가 쓰고 잇는 것보다 너무나 적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이해관계가 얽힌 세력들이 가만히 상황을 지켜볼 수 없는 것이다.

 아이들의 삶을 통제하는 것은 학교 말고도 텔레비전이 있다. 학교와 텔레비전 이 두 가지는 진짜 세계, 곧 지혜와 용기, 자제와 정의의 세계를 뭉그러뜨려 쉴 새 없고 끝없는 추상의 세계로 만들어 놓는다. 지난 시절, 사람들은 진짜 일, 진짜 사랑, 진짜 모험, 그리고 정말로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쳐줄 스승을 찾아 다니는 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친구를 만드는 일, 사랑을 나누는 일, 자기 사회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탐구하는 일, 가정을 꾸리는 법을 배우는 일, 이처럼 온전한 인간이 되는 데 필요한 수십 가지 일들에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있었다. 30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학교가 파한 뒤에 이런 것들을 배울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텔레비전, 스마트폰, 인터넷 등이 그 시간의 대부분을 먹어 치웠고, 맞벌이 가정이나 이혼한 가정의 긴장감이 가정 시간이라는 것을 삭막하게 만들어버렸다. 현재 아이들은 완전한 인간으로 자라나기에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너무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독립된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것만이 스스로의 앎을 얻게 할 수 있는 길이다. 오래가는 가치를 갖는 것은 오직 스스로의 가르침뿐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아이들을 진짜 세상과 접할 수 있게 해서 자신의 시간을 추상화된 관념이 아닌 진짜 일에 쓸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 부잣집 아이들뿐 아니라 가난한 집 아이들도 효과를 볼 수 있다. 공부 내용을 짜 맞추는 것은 학교에서 하더라도 그 공부를 하는 곳은 제도화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하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자기만의 독자성과 자립정신을 키워낼 기회를 갖는 그런 교과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공평한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대량교육이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까닭은 그 일상적인 일이 엉터리 경쟁과 억압 그리고 강박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교 제도를 통해서는 빈부를 막론한 모든 사람이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잇는 비물질적 가치에 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없다. 그 구조가 포상과 징벌, 당근과 채찍의 교묘하고 복잡한 역학관계로 지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혜택과 성적, 그리고 복종을 위한 그 밖의 미끼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교육과는 관계가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자유가 아닌 굴종의 장식품이다.

 결국 이 책은 학교제도의 근본적 문제와 그에 따라 발생한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저자도 이 문제가 쉽게 바뀌지는 아닐 거라 지적한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의식하고 있고 점점 그 수가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다 한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학교제도에 따라 이득과 혜택을 보는 교육 마피아들이다. 아무리 학교제도의 문제에 대한 의식이 퍼지더라도 그들이 건재한 이상, 쉽게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힘들다. 특히, 이미 사회에 박혀 있는 고정관념을 바꾸리란 쉽지 않다. 오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변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학교 제도의 문제를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나열한 것만으로도 굉장한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학부모와 학생들의 필독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w******1 2017.06.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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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링을 생각하는 분들의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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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공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분명 공교육의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제점에 대한 말들이 있는 이유는 그 문제점들이 별거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존 테일러 게토라는 미국의 교사가 쓴 책이다. 2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지고 훌륭한 교사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공교육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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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공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분명 공교육의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제점에 대한 말들이 있는 이유는 그 문제점들이 별거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존 테일러 게토라는 미국의 교사가 쓴 책이다. 2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지고 훌륭한 교사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공교육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학교라는 곳이 바보를 만드는 곳이라고 말이다.
저자의 세세한 모든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내용은 매우 동의하는 바이고 홈스쿨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거의 교과서와 같은 책이라서 읽게 되었다.
그 내용들을 조금 공유하려고 한다.

"전체주의 교육의 목적은 신념을 키워 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념이라도 만들어 낼 능력을 박멸하는 데 있다." 사회철학자 한나 아렌트

[공교육의 문제점]

저자는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혼란, 교실에 갇혀 있기, 무관심, 정서적 의존성, 지적 의존성, 조건부 자신감, 숨을 곳이 없다>는 이 7가지를 가르치는 죄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교육, 근대교육이라는 것이 이권계층의 필요에 의해 질서와 규칙을 지키도록 가르쳐, 누군가의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필요한 지식들만 학습하는 것을 목적으로 세워졌다고 말한다.
이러한 교육으로 아이들의 개성과 호기심, 이로 인한 지적 능력, 창의력 등이 말살되어 왔고, 점점 학교는 바보를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수천년 간 지속되어 온 유럽의 엘리트 교육은 '스스로 알게 하는 것이 모든 진정한 앎의 근본이 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도해 왔다. 때로는 고독을 이겨 낸다는 것이 그 풀어야 할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이 과정을 '스스로'의 '생각'을 통해 해 낸 아이들은 필요한 내용을 머릿 속에 주입시키는 교육을 받은 아이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결국 이들이 다른 이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해결방법]

학교가 바보를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는 곳이 아니라 정말 교육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아이들에게 독립적인 공부를 맡기는 것이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자기만의 독자성과 자립정신을 키워 낼 기회를 갖는 그런 교과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도록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 혼자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둠으로써 책임감과 자기주도성, 문제해결력 등 현 교육의 목표라고 말하는 능력들을 키워줄 수 있다. 이를 위해 아이에게 아이가 하고 싶은 것 물어서 아이 스스로 커리큘럼을 짜게 하는 것도 정말 좋은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추천한 또 다른 방법으로 독립적인 학습방법, 지역사회에서의 봉사활동, 모험과 경험, 충분한 개인 시간과 혼자 있기, 온갖 종류의 견학과 견습 등을 들었다.

[짧은 감상]

결국 현재 대한민국 교육제도의 문제는 문제해결력, 자기주도성, 비판적 사고력, 책임감, 창의력 등등 저자가 말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독립적인 학습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커리큘럼과 교육 환경을 전혀 조성해 주지 못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읽고 나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였다. 어디가 문제인지도 알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도 아는데,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없는 방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아마 많은 부모님들이 홈스쿨링을 시작하는 것 같다. 그게 너무 이해가 된다. 완전히.

YES마니아 : 골드 y******3 2021.12.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