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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안이 벙벙했다. 그저 재미있는 소설일 거라 기대했는데,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에 기발한 상상력이 결합되어 한 편의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세 개의 챕터로 나뉘는 구성도 절묘했다. 클라이맥스로 치솟으며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 이야기는, 절정을 지나 끝내 평온한 일상을 회복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주인공 장은 출근길 약속에 늦어 서둘러 집을 나선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차 문을 열려던 순간, 앞 유리에 놓인 쪽지 하나를 발견한다. ‘트렁크에 넣어두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넣었다는 건지 확인하려 트렁크를 연 찰나, 누군가 장의 차 키를 뺏고 그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장은 느닷없이 깊은 수렁 같은 트렁크 속에 갇히고 만다.
정말로 모르겠어요. 도대체 왜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날 이후로 모든 게 잘못돼 가는 기분만 듭니다. 데보라는 그런 장에게 무심하게 대답한다.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어떤 건 그저 ‘사고’일뿐이라고. 왜 특별히 당신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그녀의 질문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서늘한 화두가 된다.
소설 속 사건들은 실제 우리가 이미 겪었거나 지금도 겪고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세월호,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산재 사고, 나흘째 잠을 못 잔 채 운전하다 인도를 덮친 택배 노동자, 그 차에 받혀 숨진 아이... 그 비극의 파편들이 소설 속에서 ‘말뚝’이라는 기이한 존재로 형상화된다. 말뚝은 억울한 죽음들이 시랍화된 형태였다. 도대체 이 말뚝은 어떤 의미일까. 바닷가에서 출몰한 말뚝이 왜 광화문 광장에서, 회사 로비에서, 심지어 평온한 집 안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 기괴한 형체 앞에서 사람들이 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쏟는지 의문이 생길 때쯤, 실제 겪었던 비극적인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그래,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지.' 하지만 순간순간 그들과 마주칠 때면 잦아들었던 아픔이 다시 고개를 들고 눈물이 흐른다. 해소되지 않은 슬픔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다.
강화길 소설가가 추천사에서 언급했듯, 작가 김홍은 “개인의 불행과 세계의 불행이 만나는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을 뿐, 아픔은 여전히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한 채 말뚝의 형태로 박혀 있었다. 누군가에게 말뚝은 전복된 선박의 선원이었고 부모였다. 바다에 가라앉은 자식이었고, 길에서 죽은 청년이었으며, 정리 해고로 생명줄이 끊긴 노동자였다. 그게 전부 살아남은 사람의 기억으로 쓰여 있었다. 지우는 사람이 기록하는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p.248 흥미진진한 전개 덕분에 마지막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갔지만, 책을 덮고 난 뒤 마음은 묵직해졌다. 불행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떠나지 못한 그들을 애도하고, 살아남은 자로서 기록하고 기억하는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소설은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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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문학상을 만장일치로 받았는데 읽어보니 그리 일치하지는 않다. 이책이 말하고 싶은건 뭘까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인가? 뭔가 전행무진 활약하는것 같은데 허무한 느낌? 그리 재미도 없고 의미도 못찾겠다. 적어도 내 소감은 그렇다. 기대보다 재미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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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 작가의 <말뚝들>의 주인공 장석원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그가 겪는 일은 기이하고 황당한 사건들이며, 연속해서 벌어진다. 평범한 직장인 일생에 납치가 생길 확률이 얼마나 될까? 갑자기 상간남으로 오해받을 일이 있을까. 무엇보다 죽은 사람의 모습이 담긴 "말뚝"이라는 비현실적인 것을 눈앞에서 마주할 일이 과연 있을까. 그 기이하고 황당한 사건들 속에서도 등장인물들의 모습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은 우리 일상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모습이다. 억울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사람, 장석원주인공 장석원은 무언가 억울한 사람이다. 뜬금없이 벌어지는 납치사건부터, 어이없게 이어지는 상간남 오해까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정작 그럴 만한 이유나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 다시 생각해보면 글이 끝날 때까지 납치 범인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상간남의 오해도 풀리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지나간다. 억울하다. 장석원은 때로 주변 사람들에게 만만하게 보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기분과 눈치를 많이 살피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선하거나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선한 편이지만, 때로는 눈치가 없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도 한다. 본부장과의 사건에서 그런 모습이 드러난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장석원이 더욱 현실적인 인물로 다가왔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억울한 일을 겪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며 살아가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어쩌면 이 글의 독자들은 장석원의 모습에서 나 혹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말뚝이 나오는 소설은 판타지 같이 전개되지만, 그 속에 담긴 인간의 모습과 감정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납치와 말뚝, 잃어버린 관계를 찾아가는 과정그렇다면 끝까지 납치범을 알지 못했던 납치사건은 장석원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보면 과연 장석원에게 납치 사건이 없었다면,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납치는 분명 장석원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잊고 지냈거나 외면했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납치를 통해 오래전 잊어버렸던 친구 태이를 떠올린다. 혹시 그놈이 범인이 아닐까 하고. 더 나아가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말뚝을 통해 은행 창구 업무 중 잠시 스쳐갔던 외국인 노동자 테믈렌을 다시 마주한다. 생각해보면 소설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은 단순히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잃어버린 관계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읽을 수도 있다. 태이가 건네준 도박장 칩을 테믈렌에게 넣어주고, 이후 테믈렌의 아들을 만나게 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그저 과거의 관계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가 다시 현재의 현실과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테믈렌과 관련된 USB로 인해 회사가 조사를 받게 되는 사건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기억과 관계 속에 머물러 있던 일이 말뚝의 출현이라는 기이한 사건을 통해 현실의 문제로 확장되는 것이다. 결국 장석원이 겪는 일들은 시랍 모양의 움직이는 말뚝처럼 기묘한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라, 자신이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마주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애도받지 못한 슬픔은 어디로 가는가이 글의 제목인 "말뚝들"은 결국 죽은 이의 미이라 같은 모습이다. 쉽게 상상이 가지 않지만 글 속에서 묘사한 바로는 그러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당연히 죽음을 떠올린다. 그러면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하는가. 충분히 애도받지 못한 죽음이 있다면, 그 슬픔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만약 죽은 사람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충분히 애도받지 못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면, "말뚝"의 존재도 조금은 다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장석원이 대출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50만 원을 건네고 명함을 주었던 일, 그리고 그 명함을 지닌 말뚝이 다시 돌아오는 장면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은행창구 직원인 장석원에게는 잠깐 스쳐 지나간 일이 그 돈을 받았던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남는 기억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은 뜻하지 않게 우연히 맺어진 관계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뚝"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이유는, 어쩌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충분히 (관계된 이들에게) 기억되거나 애도받지 못한 삶이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겪었던 과정들을 돌아보고, 그 삶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일 자체가 애도의 한 방식일 수도 있다. 죽음이라는 결과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고통과 슬픔을 겪었는지 살펴보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애도의 시작일지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울어본 적이 있는가이 글에서 특히 마음에 남았던 표현은 진이 선배와 "같이 울어본 적은 없다"는 말이었다. 진이 선배 입장에서는 나름 챙겨준 후배인데 뜬금없었겠지만 석원 입장에서는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슬픔을 함께 나누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안타까워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고 누군가와 함께 울어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 일을 말뚝들이 해준다. 자신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같이 운다. 그렇게 감정을 함께하고 그게 싫어서인지 계엄이 발동된다. 유일하게 대민그룹의 둘째는 말뚝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슬픔을 표현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말뚝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거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마주하게 만드는 매개체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 사람의 삶을 돌아보며, 미처 나누지 못했던 슬픔을 함께 나누는 모습을 알려주는 연상물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정말 당연한가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정말 당연한 것인가?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호의를 쉽게 잊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슬픔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하기도 한다. 관계가 끊어지는 일이나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혀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당연한 일일까. 장석원이 겪는 억울한 사건들을 정작 그것을 수사하는 경찰은 시큰둥하게 받아들인다. 경찰에게는 그저 매일 발생하는 납치사건의 하나로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장석원에게는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 다른 이에겐 아닌 것이다. 장석원이 은행창구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한 것은 그에게는 일상이었지만 그날 창구에 온 외국인노동자에게는 아닌 것이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말뚝과 납치를 계기로 장석원이 잊고 있던 사람들과 만나는 모습은 우리가 그동안 무심코 당연하게 생각하며 지나쳐 온 관계와 감정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납치와 말뚝이라는 비현실적인 사건이 오히려 평범한 일상에서는 쉽게 마주하지 못했던 것들을 끌어낸 셈이다. <말뚝들>은 모든 사건에 명확한 답을 주는 소설이라기보다, 독자에게 여러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잊고 지냈던 관계를 다시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누군가와 진심으로 함께 울어본 적이 있는가. "말뚝"의 등장이라는 기이한 사건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삶과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느끼는 슬픔이 결코 우연하거나 당연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깊은 사연이 담긴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이 이 글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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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새 다 읽어버렸다. 흥미진진 그 자체이고 새로움 그 자체이다. 첫줄부터 마지막장까지 숨 쉴 틈도 없이 쉴새없이 흘러나오는 글들이 눈과 머리와 귀를 훑고 가는 듯. 두 번, 세 번 읽어도 같은 재미를 느낄수 있을것 같다. 이런 세상이라도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우리의 모습이 담긴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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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뉴스에서 보여주는 말뚝들이 뭘까 고민하게 했다. 주인공이 납치당하고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이 다시 풀려나고 그리고 그 다음 날 부터 여기저기서 출몰했다가 사라지는 말뚝들 말뚝을 보고 있으면 이유없이 눈물이 흐르고 사람들이 슬퍼진다 이유가 뭘까 말뚝의 미스터리는 점점 깊어져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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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딩파티 우리 나라 사람들이 미국에 불법 체류자로 잡혀 감금되어 있다. 쇠사슬에 팔, 몸통, 다리가 묶이고, 일렬로 버스에 두 팔을 올리고 있는 모습, 미국 경찰들과 건물 내 추격전, 쇠사슬 묶인 발로 좁은 보폭으로 닭장차 같은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 냉방 안되는 곳에 300 여명을 넣고 바닥에는 대소변 물이 출렁이고 복용약도 챙기지 못한다는 기사. 감금되어 있는 건물 내 사정은 볼 수 없으나 잡혀가는 장면은 사진, 영상이 있으므로 사실이다. 유럽인들 락 페스티발 중 하마스에 쫓기는 모습, 5.18 때 버스 앞에서 곤봉으로 맞던 모습이 떠오른다. 숨이 가빠오고 눈물이 난다. 이미 경고 받았으나 개선하지 않았으므로 기업이 잘못한 것이라는 얘기… 그러면 외교부는? 정부는? 우리 나라 외 일본, 유럽 등은 전혀 해당 없는 사항인가? 이 와중에 이 책을 읽는데…케이블 타이로 결박 당하는 장면이 나와서 눈물이 난다. 전국에 출몰하는 말뚝들, 바다에 콕 박혀 있으면 좋을텐데 튀어 나와서 사람들을 울게 하니 꼴 보기 싫어서 제거하려는 정부 시도 때도 없이 보내는 재난 문자 작가는 12월 계엄을 눈 앞에 그려준다. 여기에서 함정. 이 계엄은 그 계엄과 다르다는 점 이 책은 재미있다. 순식간에 술술 읽게 된다. 길게는 수십년 전, 짧게는 바로 오늘까지 우리 사회, 정치 현황을 보여준다. 나루토 댄스 장면은 엊그제 본 쇼를 연상시킨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한다. 한 편…이제 시작인 것 같아 무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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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은 말이 무엇일까에 대해 초반부터 이야기는 제대로 나온다. 다만, 작가가 하고싶은 말이 꽤나 많은 것 같다 이것도 저것도 다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 같다 필력은 좋다 책을 수루룩 읽게 되는 마성의 필력이랄까. 묘하게 계속해서 빠져들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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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 작가님의 작품. 말뚝들을 빠르게 구매하였습니다.ㅎㅎ 주변에서 하도추천을 해서 한번구매를 해서 읽어봤습니다. 무난하게 볼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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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곳곳에 박혀 있는 차별과 편견, 소외의 모습들을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 불편하고 아픈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게 하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담담한 문장 속에 묵직한 메시지가 오래도록 남는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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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납치범과 말뚝의 정체를 밝히는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범인 찾기는 점차 중요하지 않아지고, 대신 다음 질문이 남았다. 우리는 누구의 죽음을 기억하는가? 죽은 사람은 언제 정말로 사라지는가? 살아남은 사람은 그 죽음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말뚝을 보면 울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모습에서, 누구나 마음속에 상실과 후회, 죄책감처럼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무언가를 품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뚝은 죽음 자체보다 애도되지 못하고 잊힌 죽음에 가깝다. 기억하는 사람이 계속 기록하자 지우는 사람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기억은 죽은 사람을 현실로 되돌리지는 못하지만, 그 죽음이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을 막는다. 사고와 참사는 개인이 조심한다고 완전히 피할 수 없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에게 아무 예고 없이 닥친다. 살아남은 사람은 피해를 증명하고, 피해자다운 태도까지 요구받으며 다시 상처받는다. 그래서 애도는 단순히 슬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을 제대로 보내고, 그 죽음으로 드러난 사회의 결함을 고치며, 살아남은 사람은 다시 일상을 살아야 한다.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이 죽은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는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