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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안나 카레니나 3권을 다 읽었다. 이 소설은 올 1월에 읽기 시작했는데, 1권은 겨울에, 2권은 여름방학에, 3권은 이번 겨울방학에 이렇게 세 번에 나누어 읽은 격.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어려워서 혹시나 기억이 잘 안 날까 걱정했는데, 주요인물들은 다 기억에 있는 듯했다.
마지막 7부에서 안나가 죽었다. ㅠㅠ 처음부터 죽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으나 - 톨스토이가 어떤 젊은 여자가 기차역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서 이 소설의 영감을 얻었다니 뭐 할 말 다 했지. ㅠㅠ - 정말로 죽어버리니 좀 허무했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건 그녀가 죽은 이후에도 8부는 이어진다. 안나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그것에 영향을 안 받는 레빈과 키티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살짝 이상했었다. 그러나 후에 역자의 설명을 읽고 정리가 되었다. 원래 이 소설은 제목과 다르게 주인공이 두 명인 셈이라고... 안나와 또, 그녀와는 전혀 다른 레빈, 이렇게 두 명이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요 인물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큰 그림이 보이는 것 같다.
'죽음과 삶'이라는 것을 이 두 인물이 어떻게 대하는가는 정말 천지차이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결말도 마찬가지. 화려한 불나방같이 살다가 한 순간에 삶을 끝낸 안나와, 계속되는 절망과 고민 속에서 나중엔 삶의 이유와 소망을 찾은 레빈. 이 책의 해설에 의하면 레빈은 바로 톨스토이의 분신과 같은 존재라고...
톨스토이의 제대로 된 소설은 이번 '안나 카레니나'가 처음이다. 그래서 뭔가 큰 숙제를 해낸 느낌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의 최고의 소설이 '안나 카레니나'라고 말한다. 우리 학교 교수님들 중에서도 그런 분들을 두세분 봤다. 나는 솔직히 그만큼의 감동을 얻지 못했다. 뭐~ 각자의 인생은 다 다르고, 느끼는 감동도 다 다르니... 혹시 내가 나이가 더 들면 좀 더 이해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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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이 소설을 어떻게 요약해야 할까. 할 수 있을까.
러시아 고전문학. 140여년 전, 톨스토이가 1873년부터 1877년까지 집필. 그가 인정하는 그의 첫 장편소설. 1,500여 쪽(펭귄클래식코리아). 비비안 리, 소피 마르소, 키이라 나이틀리 등이 안나로 영화 출연.
안나 카레니나. 정부 고위관리의 아내. 아들을 사랑하는 엄마. 청년 장교와 사랑에 빠진 여자. 자신에게 필요한 건 사랑과 삶이라는 걸 깨닫는, 그런 순간들마다 광채를 내는 여자.
카레닌. 안나의 남편. 훌륭한 관리.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 아내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남편. 그러나 아내를 개별 인격으로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편. 두려운 것을 자신만의 논리로 합리화 해 회피하는 남자.
브론스키. 잘생기고 의지 있는 부유한 청년 장교. 안나에 대한 사랑에 빠져 그녀를 희구하고 괴로워할 권리를 달라는 남자.
이렇게 간단히 축약해버리면 안나 그 여자, 섭섭하군요, 할지도.
3권으로 엮인 이 방대한 소설에는 안나와 그녀의 남자들뿐 아니라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저마다의 인간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저마다의 인간적 특성’이라 표현한 이유는 인물마다 겹쳐지지 않는 각각의 특성이 있는데 한 발짝 떨어져 보고 있노라면 그 특성들이 모두 그동안 보아오고 들어왔던, 내 안 구석구석 포진해있는 인간상인 까닭이다. 안나도, 그녀의 남편과 내연남과 오빠와 올케와 그 밖의 모든 인물들에게도 거부감과 함께 기시감을 동시에 느끼는 이유가 그 까닭인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의’. 단 한 글자의 이 소유격 조사가 소설의 핵이 아닐까 싶다. 설령 아니라 해도, 톨스토이에게서 내게 전해진 것은 저 한 글자이다. 안나를 비롯한 등장인물 모두가 두개의 세상에서 공존한다.
세상 1)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고 혹은 앞으로 그렇게 살게 될 거라고 여기는 세상 세상 2) 그렇게 여기거나 말거나 실제 그 인물이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세상
1번도 2번도 모두 그 인물‘의’ 세상이다. 그‘의’ 것이다. 그렇기에 안도하고 갈등하고 두려워하고 갈망하는 것일 터, 이 ‘의’는 숙명이자 의지의 대상인 것이다.
그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의’를 어떻게 인지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바꾸어나가는지, ‘저마다의 인간적 특성’을 같은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것이 내가 이 소설을 읽은 독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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