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철학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입만 산, 뭔가 좀 깨우쳤다고 다른 사람에게 잔소리나 해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묶어놓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지나친 생각인듯 하지만 공자왈, 맹자왈은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하고 제자들이 그를 신처럼 숭배하며 떠받들며 적은 책 일뿐. 그들의 말에는 뜬구름 잡는 실행 불가능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만이 옳고, 그에 맞지 않으면 틀리다 하는 편협하고 속 좁은 사람으로까지 보였었다. 사람의 다양성은 무시한채 일방적인 인, 충, 효와 예 만을 얘기하는 그들에게 지쳤달까. 그나마 노자의 도덕경을 보고 이런 괜찮은 사람도 있구나 했지만, 여전히 동양철학은 나와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알려하지도 않은 나의 무지를 조용하고 강하게 꾸짖는다. 한 가지 말을 들은 백 명은 저마다의 식으로 그 말을 해석한다. 고치고 더하고 충분히 자신의 안에서 굴린 다음에야 비로소 세상에 나와 빛을 본다. 옛 사람으로부터 나온 사상은 시대와 많은 사람들을 거치면서 현실에 맞게 바뀌어갔고, 때론 굽히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그 안에서 신념과 지혜와 용기를 얻었다. 지금까지 융통성이 없다는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수많은 예를 통해 보여준다. 자신의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거침없이 실행하고 주위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를 가졌다. 말 뿐이 아닌 자신의 철학을 행동으로 옮기고 때에 따라서는 스승에게도 반(反)하는 융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배경, 집을 보지 않고 재능만으로 인재를 등용하기도 했다. 치욕스럽고 죽고 싶었을 때에도 이겨낸 인간승리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출간되고 나서 시끌벅적했다. 지금도 의견이 분분한 책이다. 책은 잃어보지 않았지만 소개를 통해 간간히 접했기에 나 또한 공자를 백성이 아닌 왕을 위한 사상을 펼치는 사람이며, 고려시대에 비해 자유롭지 못하고 여성의 인권이 하락하고 지배계층의 기득권이 드세진 것은 조선이 유교를 들여온 이후이기에 그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그 후로 인문학이나 동양철학 책 들을 접했다. 그 안의 공자는 내가 생각했던 사람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조선이 옳지 않은 방향으로 변했던 것은 기득권들이 자기 것을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빼앗기기 싫고, 권세를 오래토록 유지하기 위해 제 입맛에 맞게 뜯어고친 탓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이 든다. 이렇듯 동양철학에 대해 내가 가져왔던 선입견을 하나씩 깨버렸다. 동양철학도 꽤나 괜찮은 녀석이었음을 약간이나마 느끼게 해주었다. 맹자에서부터 19세기 말까지 책은 쉼없이 달린다. 중국의 역사, 인물이 어우러져 그들의 삶을 통해 동양철학이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보여준다. 가끔가다 인문학이나 철학책을 잃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생소했고 전공자가 아닌 그저 재미로 보는 수준이라 어려운 부분도 적잖이있었다. 하지만 동적인 서양철학과 비교되곤 하는 정적인 동양철학에서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은 신선했고 새로웠다. 내 인생도 동양철학으로 맞짱뜰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
|
제목을 다르게 지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동양철학을 제대로 알게 되고 오래된 구전이나 옛사람들의 이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상황에 맞게 해석해 낸 책의 내용을 희석 시킨다. 왜 동양철학을 알아서 내 인생과 맞짱을 뜨게 해야 하나? 굳이 맞짱을 뜨지 않고 구워 먹고 데워 먹고 삶아 먹고 다시 먹으면서 현실과 일상의 무거움을 이겨내기도 하고 위로를 얻기도 하면 그만인 것을. 일단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했던 동양의 고전, 특히 중국의 오래된 책들에 담긴 정수를 맛보게 된다. 논어, 맹자 같은 책을 하나하나 찾아서 읽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지루한 일인가. 당장 검색만 해봐도 관련된 책이 넘쳐나기는 하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동양철학, 동양고전을 전공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더 영향을 받은 책이나 학자·철학자들을 추천할 테고, 우리는 그 사람들에 의해 한번 각색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그간 동양인조차 오해하고 있었던 동양철학의 정수를 소개한다. 시원하고 거침없다.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 일단 ‘동양철학’, ‘공자·맹자’하면 머리부터 지끈거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권해도 욕먹을 일 없을 책이다.
“‘동아시아 사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쉽게 ‘수양’, ‘좌선’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를 바탕으로 ‘역동적인 변화가 없는 정체된 문화’라는 판단을 내린다. 사람들은 ‘꿈과 모험으로 가득 찬 서구 문화, 복종과 인내를 말하는 동아시아 문화’라는 이분법을 도출해낸다.” (p.395) “「톰소여의 모험」처럼 각종 ‘모험’을 소재로 다룬 서양의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심청전」처럼 각종 ‘희생’을 소재로 다룬 우리나라의 전래 이야기였습니다.” (p.9) 동양과 서양의 비교를 책 두 권으로 하는 논리의 비약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뭐 틀린 말도 아니다. 만화영화를 봐도 그랬다. 만화영화의 원작이 고전소설인 탓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손에 땀을 쥐며 봤던 만화는 대부분 서양의 것이었다. 기껏해야 달려라 하니와 아기공룡 둘리 정도가 있었지, 재미있는 만화영화는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었다. 저자는 중국의 고전을 통해 단지 복종과 인내, 희생과 헌신만이 동양의 가치가 아님을 주장한다.
“도연명은 ‘군주는 만악의 근원이다’라며 ‘무군주론’을 펼쳤던 포경언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 (p.204) 이천년 전, 중국에 ‘무군주론’을 주장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가장 급진적인 이념인 ‘아나키즘’보다 더 대책 없는 주장이라 생각된다. 무국가론도 아니고 무군주론이라니. 왕이나 제후나 하늘이고 신이며,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던 시기에 ‘무군주론’을 주장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은 심각한 도전이고 반역이었을 것이다. ‘무군주론’의 주요 논거가 되는 ‘군주는 만악의 근원이다’라는 주장은 ‘하늘이 땅이다’라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도연명과 포경언의 다른 책들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이 두 명과는 다른 처세를 원했던 자들에 의해 없어졌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이치니까. 아무튼, 책은 이런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동양철학, 중국의 고전들에 담긴 신선한 주장들을 소개한다. 서양과 비교해 더 수동적이고 순종적이며 인내와 덕망만을 강조하는 것이 동양의 철학, 동양의 사고가 아님을 내내 강조한다.
“뛰어난 선비는 주머니 속에 든 송곳과 같아서 끝이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3년 동안 선생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니 뛰어난 점이 없다는 말입니다.” “저를 지금이라도 주머니 속에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만약 일찍부터 주머니 속에 있었더라면 자루까지 보였겠지 그깟 끝만 보였겠습니까?” (p.110) 조나라의 책략가였던 평원군이 적국이던 초나라와의 전쟁 중 협상을 위해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 중 뛰어난 재략가들을 찾던 중에 모수라는 인물과 나눈 대화다. 평원군은 왕의 총애를 받는 제일의 인물이었고 모수는 그런 평원군 곁에 차고 넘치는 흔해 빠진 인물 중 하나였다. 만약 서양의 잣대나 현재 우리들의 짧은 생각대로 동양의 관점에서라면 “저기요”라며 손을 들고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모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질문이지 않나? 하지만 모수는 차고 넘치는 흔해 빠진 인물 중 하나가 아님을 단번에 드러낸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의 배경이 되기도 한 이 대화는 잠깐 번뜩이는 재치로 받아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수많은 인물 중 하나로 평원군 슬하에 있지만 언젠가 올지도 모를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갈고 닦은 노력의 결과다. 대단히 적극적이고 기민한 처세라고 할 수 있다. 손도 들지 않고, 쭈뼛거리고만 있었다면 그저 그런 인물 중 하나로만, 기억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제자백가는 하나같이 자신의 제안대로 한다면 세상의 구원을 이를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상황은 좋아지기보다 나빠졌다.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과 약탈로 신음했고 특히 약자의 고통은 날로 심해졌다.” (p.79) 책에는 제자백가의 예가 많이 나온다. 아무래도 중국 철학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가 이 때가 아니었나 싶다. 제후나 왕들은 자신의 앞일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테고, 나라는 금세 생기고 망했기 때문에 제자백가를 찾는 수요도 넘쳐났을 것이다. 물론,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제자백가는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그저 그런 제자백가를 둔 제후국이나 나라는 금세 없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제자백가가 넘쳐나던 시기에 백성들의 삶은 가장 고달팠고 전쟁과 약탈이 가장 극심했다는 것은 모순이다. 너도 나도 제자백가라 들고 일어나 자리를 얻어 새 세상을 부르짖고 구원을 약속했지만 그들의 말이 옳다면 세상은 수백 번도 더 구원되고 새롭게 태어났어야 한다.
“처음부터 ‘나쁜 조조’에 초점을 맞췄던 유비는 한실을 부흥시킨 이후의 대책이라 할 만한 포스트 이념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비로 하여금 외연 확장을 힘들게 한 요소였다.” (p.178) 제자백가와 한심한 유비를 보면서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을 생각하게 된다. 도무지 무슨 일을 하고 정당의 존재가치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저 정당이 현재 한국의 제1야당이라는 점이 비극이다. 수많은 호재가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정치적으로 성공한 싸움을 하지 못하고 여당에 끌려 다니면서 입만 살아서 외치는 말이 “정권심판”이었다. 하도 들어서 사람들의 귀에 인이 박힐 정도로 반복되는 레토릭이었다. 그 얘기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뾰족한 대안을 내놓는 것도 아니고, 선명 야당의 결기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어설프게 야당 흉내는 내지만 절대로 몸을 던지지는 않는 전형적인 책상머리 서생의 모습, 아니 그보다 더 비겁하고 게으르며 한심한 날건달의 모습이었다. ‘나쁜 조조’는 차근차근 주변을 포섭해 힘을 기르고 자신을 따르는 부하와 백성들에게는 유화책도 쓰면서 입지를 다지는 데, ‘한심한 유비’는 대의와 명분만을 부르짖고 있었다. 2014년 끝 무렵, 한국에도 ‘한심한 유비’들과 ‘날건달’들이 너무 많다.
“순자는 사람마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의견의 시대에 한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기준이 없다면 그냥 떠벌리는 것과 주장하는 것에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 가지 주장을 가지려면 반드시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사안을 주장하려면 반드시 이치를 갖추어야 한다.’라고 보았다.” (p.26) 종편이 생기고 파파라치 사진을 찍어 올리는 회사마저 언론사로 취급받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참 피곤하다. TV를 봐도 스마트폰을 봐도 정보가 넘쳐 난다. 너무 넘쳐 난다. 한가지 사안을 두고도 양쪽의 의견이 너무 팽팽하게 대립된다. 그것이 정치적인 사안일 경우에는 더 심각하다. 정치적인 사안이 아닌데도 굳이 정치적인 사안인 것처럼 몰고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말이 넘치고 논리가 가벼워지다 보니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음모도 넘쳐난다. 늘 그래왔지만 언론 나부랭이들은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태도를 좀처럼 버리지 않는다. 태생부터 그런 찌라시들이 대부분이니 어쩔 수 없는 습성일 수도 있겠다. ‘한가지 주장에 근거와 이치가 따라야 한다.’는 순자의 주장이 머리를 때린다. 내가 중국의 철학자 중 좋아하는 사람이 순자라서 더 머리를 때렸을 수도 있다. 언론 찌라시 나부랭이들과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꼭 되새겼으면 하는 문장이다. |
|
일반적으로 서양을 모험과 도전의 문화로, 동양을 효도와 희생의 문화로 규정합니다. 이 규정이 동서양의 문화를 바라보는 주류적인 시각입니다. 나는 이러한 주류적인 시각에 도전하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즉 동양에도 모험 이야기, 부정과 비판의 철학이 있다는 것을 밝히는 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 '지은이의 글' 중에서
동양 문명의 근본을 찾자
우리는 어린 시절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자랐다. 하나는 <톰 소여의 모험>처럼 각종 '모험'을 소재로 다룬 서양의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심청전>처럼 각종 '희생'을 소재로 다룬 우리나라의 전래 이야기였다. 서양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이는 미지의 세계로 과감히 나아가 괴물을 만나기도 하면서 모험을 마치고 무사히 귀가한다.
반면 동양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이는 모험을 떠나지 못하고 자기 노릇 제대로 못하는 어른을 대신해 생계를 부담한다. 집 안팎에서 살림을 도맡아 삶을 책임지는 등 온갖 희생을 도맡아 하면서 부모님의 기를 되살려놓는다. 이로써 아이는 철이 든다. 희생이 아이를 키운 셈이다.
'동아시아 사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수양'이나 '좌선'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래서 "역동적인 변화가 없는 정체된 문화"라는 판단을 내린다. 또 이것이 정말 진리인지 따져보지도 않고 "꿈과 모험으로 가득 찬 서구 문화, 복종과 인내를 말하는 동아시아 문화"라는 이분법을 도출하고 만다.
하지만 멸망되지도 않고 2000년 또는 3000년 생명을 이어온 동양 문명에 어떻게 도전과 모험의 주체가 없고 순응과 적응의 노예만 가득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는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과연 동양에는 니체의 이성 비판이나 들뢰즈의 서양 철학사 비판을 찾을 수 없을까? 책의 저자 신정근 교수는 이런 편파적인 시각에 도전하기 위해 필을 들었다. 동양에도 도전과 모험 정신 그리고 부정과 비판의 철학이 있다는 것을 밝히려는 것이다.
파괴, 모험, 도전, 독립, 창조, 선언, 기획과 꿈 등의 키워드를 통해 동양철학이 효도와 수행뿐 아니라 진취적인 면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맹자 가라사대 "돈키호테, 나와 닮았구나"
저자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주인공 돈키호테와 전국戰國시대의 맹자가 꽤나 비슷하다고 말한다. 돈키호테는 중세의 기사 이야기에 푹 빠져 실제로 기사 수업을 받고자 ㅏ신의 애마를 타고 시종 산초와 함께 모험의 길에 나선다. 도중에 풍차를 거인으로 여겨 공격하다가 풍차의 날개에 떠받쳐 실패하고서도 풍차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나중에 정식 기사로 변신한 친구와의 결투에서 패한 뒤에야 그는 비로소 무기를 내려놓고 이성을 되찾는다.
맹자는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생명이 죽어나가는 살상의 시대에 성선性善의 기치를 내걸고, 제자들과 함께 주변국을 주유하며 성선의 세계를 만들고자 했다. 제후들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맹자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타당성을 굳게 믿으며 아래로부터의 변혁 가능성을 기대했다.
이처럼 돈키호테와 맹자는 다른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분명히 '참眞'의 세계가 저 어딘가에 있다고 굳게 믿었다. 또한 위기에 부딪쳐도 자신들의 오류와 실패를 시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이 주술과 마술에 걸려 있다거나 현상의 사람이 소체小體의 욕망에 빠져 있다고 보았다.
하늘은 왜 무너지지 않을까?
'기우杞憂'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런데 아무리 글자를 들여다보아도 '기우'와 '쓸데없는 걱정' 사이에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 연결고리를 찾으려면 기우를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기우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기나라 사람의 걱정' 또는 '기나라 사람이 걱정하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나라는 어떤 나라이고 또 어떤 걱정을 말하는 것일까?
은나라가 정권을 장악한 후 이전의 하나라 후손들로 하여금 조상들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명맥을 이어준 나라가 바로 기나라이다. 이들의 걱정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늘이 무너지면 그 아래에 살고 있는 생명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딥 임팩트>처럼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면 실제로 하늘이 붕괴되는 대재앙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나라 사람들이 하늘의 붕괴를 진지하게 걱정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이에 대해 해답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개천설蓋天說과 혼천설渾天說이 나왔다. 개천설에 의하면 하늘은 버섯 모양의 둥근 뚜껑으로 되어 있고 땅은 평평하다는 주장으로 춘추전국시대에 생겨나서 한漢나라에 완성되었다.
혼천설에 따르면 우주는 달걀 모양을 닮았다. 달걀의 흰자와 껍질이 노른자를 둘러싸고 있듯이 하늘이 땅을 둘러싼 모습으로 되어 있다. 즉 하늘의 반은 땅위를 덮고 반은 땅 아래에 있게 된다. 그리고 태양은 하늘의 길을 따라 돌며 일주운동日周運動을 한다. 물론 지금은 더 이상 개천설과 혼천설로 우주를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우에서 비롯되어 하늘의 신비를 맹렬하게 탐구해온 여정임은 분명하다. 기나라 사람은 어리석은가? 지구 온난화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찾고자 우리들은 얼마나 기우하는가?
왕후장상에 무슨 씨가 있냐?
로마의 스파르타쿠스(기원전 109~71년)는 검투사 양성소에서 무예를 익혔다. 기원전 73년, 약 칠십여 명의 검투사들이 그와 함께 양성소를 탈출한 뒤 제국의 최하층인 농노農奴와 빈농貧農 등을 규합했다. 한때 12만 명에 달했던 해방군들은 잇달아 진압군을 격퇴하며 맹위를 떨쳤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분이 발생하면서 강력한 진압군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
진승은 스파르타쿠스보다 약 130여 년 전에 이와 비슷한 행로를 겪었다. 그는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품팔이꾼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어느 날 그는 징집을 당했다. 이동 중 폭우로 길이 진창이 되어 계획한 대로 속도를 내기 어려워 도저히 예정된 시한 내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진승은 힘든 품팔이꾼으로 살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한참 일하다가 밭두둑에서 잠깐 쉬게 되자 함께 일하던 동료에게 한마디 건넸다. "만약 우리가 출세해서 잘 먹고 잘 살게 되더라도 서로를 잊지 맙시다!" 동료들은 그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품팔이꾼 주제에 당신이 어떻게 출세를 할 수 있겠는가?" 이 같은 말을 들으면 대체로 기가 꺾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미래를 믿었던 만큼 기죽지 않고 정면으로 되받아쳤다.
"참새(조그만 새)가 어찌 홍곡(큰 새)의 뜻을 알리오!"
파괴와 창조를 재해석하다
불교와 도교의 세력을 깨뜨리지 않으면 유교가 자리를 잡을 수 없고, 둘의 흐름을 막지 않으면 유교의 흐름이 생겨날 수 없고, 둘의 영향력을 그치게 하지 않으면 유교의 영향력이 뻗칠 수 없다. 도사와 스님을 일반 백성으로 환속시키고, 도교와 불교의 서적을 불태워서 다시 읽지 못하게 하고, 도관과 절을 허물거나 고쳐서 민간의 주거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는 당나라 후반에 크게 활약했던 한유(768~824년)의 주장인데, 불교를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훗날 이 말은 마오쩌둥으로 인해 더 유명해졌다. 마오쩌둥은 이 표현을 활용해 중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즉 '불파불립不破不立'의 귀절을 넣어 사라져야 할 헌 것과 새롭게 생겨나야 할 것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표현했다.
한유는 도교와 불교를 없애야 할 헌것으로 보고 유교를 살려야 할 새것으로 보았다. 반면 마오쩌둥은 유교를 헌 것으로 보고 신민주주의를 새것으로 보았다. '불파불립'이라는 똑같은 맥락을 쓰면서도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역설이라 할 수 있다.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살다 보면 좋은 날보다 궂은 날이 더 많다. 이게 현실이다. 이렇게 치여서 살다 보면 당연히 웃을 일이 줄어들게 된다. 괜히 기분이 무거워지고 표정 또한 무뚝뚝해진다. 대화를 나누고 싶어 친구들을 찾아보지만 겉도는 말에 실망감만 커진다. 결국 누구가로부터 힐링을 받겠다는 생각이 부질없다고 느껴진다.
명말청초明末淸初를 살다간 김성탄金聖嘆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는 길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불역쾌재삼십삼칙不亦快哉三十三則>이다. 오늘날 읽어도 무릎을 치며 "맞아! 맞아!" 하면서 미소 짓게 만든다. 이 글을 읽는 순간만이라도 세상 번뇌를 떨쳐버릴 수 있을 정도다.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수양修養이 결코 복종의 윤리를 재생하는 훈련이 아니다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자신의 확고한 의견도 없이 남의 의견을 그저 따르거나, 기성세대의 권위에 주눅이 들어 이미 굳어진 체제에 순응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동양을 효도와 희생의 문화로 규정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세상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철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불의에 대해선 공분과 저항을 말하고, 새것에 대해선 도전과 창의를 내세우고, 그리고 미지에 대해선 모험과 꿈을 그리고 있다.
맹자는 마음을 길러 호연지기에 이르는 상태를 설명한 뒤 "성인이 다시 태어나더라도 반드시 내 말을 따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과연 복종의 윤리를 논하는 세계에서 할 수 있는 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사상가들도 선배의 이름과 주장을 되풀이하곤 했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숨을 건 용기를 발휘했던 것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나답게 당당하게 살자"
|
|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
동양철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책이 아닌가 싶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에 대한 잘못된 사고와 편견을 바로 잡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도 느껴진다. 두 철학을 재미있게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비교하는 이야기 방식도 재미있고 흥미로웠네요. 삶의 지혜를 넘어 도전의 철학으로 우리의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 서양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는 홀로 집을 떠나 모험의 세계를 그리는 이야기가 많지요. 서양을 모험과 도전의 문화로, 동양은 효도와 희생의 문화로 규정되는 시각의 변화를 위해서 쓴 책이라고 합니다. 동양에도 모험 이야기가 있고, 부정과 비판의 철학이 있다는 것을 밝히는데에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네가 아무리 내 옆에서 옷을 훌러덩 벗고 알몸 쇼를 벌이더라도 네가 나를 어떻게 더럽힐 수 있겠는가?” - 책속에서 맹자를 닮은 서양의 인물에는 돈키호테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발상이 재미있었답니다. 제가 동양철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이렇게 배우면 참 새롭고 흥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죠. 두 사람에 대한 모습을 알려주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자발적 모험과 수동적인 모험에서 우리는 어떤 모험을 즐기고 있는가? 문공의 모험 과정을 통해서 우리도 모험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다. 우리도 이제 즐기는 모험에 능동적인 것만큼이나 예고없이 맞닥뜨린 당한 모험에도 당당하게 마주할 용기를 갖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양에서 집을 떠날 수 있지만 반드시 돌아오게 되는 귀소 본능의 대상이다. 동양 고전에서도 집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삶에서 배울 지혜들이 많이 만난다. 업신여겨도 치욕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일들은 자주 겪는다.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쉽게 업신여긴다. 춘추전국 시대의 송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해지는 이야기 가운데 송견은 업신여김을 당하더라도 치욕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견모불욕을 주장한다. 한번쯤 생각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생기는 다양한 문제 상황을 잘 풀어가려면 물음을 잘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물음을 던진다는 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제대로 알고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피는 것이다. 이제 아는 만큼 보이는 것보다. 묻는 만큼 보인다고 생각하면 조금 현실을 더 편안하게 받아드리지 않을까? 읽는 동안 흥미있고 지혜로운 생각들을 배운다. 이해가 쏙 되었다는 말이 맞겠다. 서평은 21세기북스 출판사의 책을 무료 지원을 받아서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
희생과 복종과 인내를 드러내고 있는 동아시아 문화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동양에도 모험과 도전의 문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작된 신정근님의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뜨다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동양사상이 가지는 삶의 지혜를 넘어 도전의 철학의 면모를 가진 수많은 동양사상을 만나볼 수 있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바로 그동안 제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기우"의 의미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뜻을 넘어선 그 이면에는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기나라 사람의 걱정의 배경지식이 어떤 이유로 그런 쓸데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걱정을 식음을 전폐하고 하게 되었는지 이해했어요.
단순한 기나라 사람의 쓸데 없는 걱정 그 자체의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보다 저의 생각을 뒤흔들었던것은 기우가 쓸데 없는 걱정이라고 어리석은 기나라 사람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만큼 우리는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해결방법은 고민하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식음까지 전폐할 정도로 몰입하고 노력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는 사실이었어요. 장자의 대종사에 나오는 가뭄에 웅덩이에 물고기들이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다라면 그럴 일이 없을 그런 상황이라 생각하며 연대와 소통을 거부한 일화는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는 어떻게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생각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든 소통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욕망인지 처음 자각했거든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손님으로 머문다면 상대에게 뭔가를 요구하지 않고 환대하고 존중하며 만남 그 자체에 목적이나 방향을 집어넣지 않을 수 있음을.. 이 세상속의 방향을 가리키려는 수많은 주인들의 허위의식을 장자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나그네의 세상을 꿈꿨던것은 아닌지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동양사상과 철학에 대한 고정관념에 가까운 생각들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 수많은 동양 사상과 철학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모험으로 대표되는 서양 철학사와 대비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조금 달라지게 해주는 변화를 느끼게 하는 책이었어요. 동양학에서 보이는 도전과 모험 그리고 비판과 부정의 다양한 정신과 모습을 우리가 몰랐던 수많은 이야기와 인물들속에서 만날 수 있답니다. |
|
"철학" 이라는 단어 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겠다 다들 가늠하게 되는데
거기에 동양철학이라.....
서양철학은 오히려 이래저래 많이 접했던 거 같아요.
왜냐면 우리가 사는 이 나라가 동양에 속하고 좀 안다고 생각해서일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속해있지 않은 곳, 미지의 세계에 대해
알고 싶고 동경하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가 갖고 있기 때문에
서양철학에 좀 더 관심을 갖고 탐구했던 것도 있었어요.
아는 것도 아닌데 동양철학에는 그닥 관심을 두지 않았었기에
이렇게 만날 기회가 되어 21세기북스 책으로 만나봅니다.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 제목도 도전적인 신정근님의 이 책은
-삶의 지혜를 넘어 도전의 철학으로- 라는 부제에서 본것처럼
동양철학 하면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중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공자, 맹자, 장자, 순자, 노자......등등 이 있는데
그들에게서 보통 우리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고 늘 말하잖아요.
이 책은 그것을 넘어서서 도전의 철학이라는 말로
"동양" 하면 떠오르는 순종과 효도와 희생의 문화를 넘어서서
"서양" 하면 떠오르는 모험과 도전의 문화로 나아가고자 저자는 역설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이분법적으로 따로 분류해서 보지 않고
같은 가치관을 가진 동양과 서양의 인물을 같이 맞물려서 이야기 하면서
동양 또한 서양 못지 않은 도전과 모험의 문화가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더더욱 이런 구조가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분명히 동양과 서양의 문화는 그 배경이 다를진데, 우리가 잘 아는 인물들을 통해서
우월해보이는 서양의 문화만큼이나 동양문화도 못지 않게
도전적이었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어요.
맹자와 돈키호테의 조합, 사마천과 헤로도토스 같은 동양과 서양의 조합도 있지만
대다수는 동양의 인물들이 서로 같은 입장을 나타내거나 정반대의 입장을 보이는
사람을 엮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실제 그 당시 지도나 인물들의 그림까지 더해지니 더 흥미롭게 느껴져요.
하지만 동양철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의 이야기를 전하다 보니
적잖이 한자도 보인다는 거~~~^^;;
우리가 모르는 중국의 인물들이 꽤 많이 나오는지라
중국어나 중국의 문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인문학 서적이 되어줄거 같아요.
중국어를 전공한 제 동생에게 오히려 더 필요하고
요긴한 책이 될거 같은 생각에 선물을 해주고 싶어지네요.^^
흔히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동양철학" 이지만 동양철학에도
불의에 대해 저항하고, 새것에 대해 도전하고,
미지에 대해 모험과 꿈을 그리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파괴 / 모험 / 도전 / 독립 / 창조 / 선언 / 기획과 꿈 이라는 7개의 키워드를 통해
동양 철학안에 담겨진 비판정신들을 일깨워주는 책이 되어줄거예요.
|
|
철학은 언제나 어려웠다. 동양, 서양을 가를 것 없이 그들의 사상은 현재와는 큰 괴리가 있어 보였고 학창시절에 배운 바로는 그저 암기과목일 뿐이었다. 서양 철학은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른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느니 칸트, 듀이 ,융등이 생각나고 동양철학은 순자는 성악설, 맹자는 성선설,성무성악설 같은 그저 암기 위주 말이다 기억이 좀 가물하지만 윤리라는 과목안에 동,서양 철학을 몇줄씩 넣어놓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조차도 교양과목으로 철학을 선택하지 않았던 내가 어찌된 일인가 하면, 나이가 들면서 철학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저 암기위주의 공부가 아닌 순수하게 삶에 대한 궁금증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철학자들의 사상과 일생을 들여다본다고 내 인생이 단박에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선지자들의 사상과 지혜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책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접했던 신정근 교수의 동양고전이 뭐길래? 를 본 적이 있다.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뜨다와 비슷한 맥락이면서도 어느 정도의 차이점이 있는 책이었다. 어렵기만 했던 동양철학을 보다 쉽게 다가가게 해주는 책이었기에 인생과 맞짱뜨다 이 책도 신뢰가 갔다. 미처 몰랐던 사실은 이 책은 네이버캐스트에서 철학의 숲--동양철학 읽기란 제목으로 40회 연재되된 것을 조정하고 편집해 출간한 책이었다는 것이다. 네이버캐스트가 다양한 분야의 좋은 글들을 엮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책으로까지 나오니 신기했다. 저자는 동양철학을 넘어 동양 문화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나 세계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오래전에 출판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와 같은 책도 유교주의의 폐해를 말했고, 주자의 성리학이든 공자의 유교든 다 장단점이 있고, 세계관과 가치관 자체가 다들 다르다. 서양철학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이런 저런 사상을 가졌다라는 틀에 갇혀 정형화된 생각과 시선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애와 이야기, 사상을 비교해보고 더 나아가 그들이 속한 문화들과 상대적인 다른 문화들을 인정하고 생각하면서 좀 더 자유롭고 다채로운 사고를 지향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을 가져야 겠다
|
|
|
|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뜨다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뜨다"는 일곱가지의 문을 지나갈 수있다. |
|
이 책은 파괴, 모험, 도전, 독립, 창조, 선언, 기획과 꿈이라는 나를 위해 살자! 나는 나를 추천한다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지난 2013년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팀 버튼'전시회에서 감독 팀 버튼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