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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에서 우리는 반성할 점을 찾아 지금과 비교해 봐야 한다.
"조선왕조에서 우리는 반성할 점을 찾아 지금과 비교해 봐야 한다." 내용보기
조선 왕조는 500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그러나 이것이 세계를 통털어서 유례없이 긴 세월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보통 200, 300년이 고작인 각 왕조의 라이프사이클에 비했을 때 조선은 그만큼 다른 형태의, 보통과는 다른 방법으로 왕조가 유지된 셈인데, 가까운 중국과 일본과 비교해 보았을 때도 조선왕조의 특성과 맞물려 그 명맥이 길게 유지된 것이다. 조선은 절대 왕권인
"조선왕조에서 우리는 반성할 점을 찾아 지금과 비교해 봐야 한다." 내용보기
조선 왕조는 500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그러나 이것이 세계를 통털어서 유례없이 긴 세월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보통 200, 300년이 고작인 각 왕조의 라이프사이클에 비했을 때 조선은 그만큼 다른 형태의, 보통과는 다른 방법으로 왕조가 유지된 셈인데, 가까운 중국과 일본과 비교해 보았을 때도 조선왕조의 특성과 맞물려 그 명맥이 길게 유지된 것이다. 조선은 절대 왕권인 중국과, 이름뿐인 일본의 천황제도의 중간 성격인, 임금과 신하가 공유하는 왕국이었다. 후반기에는 신하가 임금을 선택하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절대왕조에서 볼 수 없는 500년 역사가 이어진 것이라 보고 있다. 그 비정상적인 방법은 겉으로 드러난 쿠테타(반정) 이거나, 보여지지 않고 후유증이 적으나 끝까지 의혹이 남는 독살의 방법이라 저자는 주장한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러한 조선의 후예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나라다. 밉던 곱던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배우고 반성하여야 한다. 신하가 군왕을 독살이든 반정이든 선택하는 데에는 작든 크든 그 명분 밑에는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당쟁이 깔려 있다. 사대부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변화를 두려워하는 모습은 우리의 지금 정치와 많이 닮아 있다. 군왕의 성격과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겠으나 조선의 임금은 머리를 조아리는 신하들에게 그리 큰 힘을 가지는 왕은 아니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고 약간은 실망스럽다. 생각보다 조선에는 영민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대왕 감이 많았던 것 인데, 이들은 보통 기득권을 계속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 세를 완전히 누리지 못하여 포부를 펼치지 못했다. 그들이 그것을 눈뜨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왕들이 죽은 시점은 그들이 무엇인가 전세를 역전하거나 새로운 사건이 터져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희망적인 시점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에 의하여 약한 왕권은 결국 지배당하고 만다. 그들이 조금만이라도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면 변했을 조선의 미래,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의 미래가 너무나도 아쉽다. 책의 내용은 정말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 진진하고 재미있다. 아니, 재미있다 못해 속상하고 답답하다. 지금의 정치 사정과 많이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아서 더욱 안타깝다. 또한 어찌 유지되었든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왕조가 우리 내부의 쿠테타도 아니고 외세에 의해서, 그리고 우리 역사의 배신자들에 의해서 한순간에 스러져 버린 것이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우리의 서울에는 여기 저기 큰 빈집이 있다. 그리고 그 주인들은 여기 저기 떠돌며 나라 안에도 머물러 있지 못하고 제대접을 못받고 있다. 그 시대에 친일행각을 한 사대부?들은 넓은 땅과 집, 그리고 기득권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왕조는 백성들에게 결집의 핵심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변해도 백성들의 왕은 고종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한국 국민들에게도 정신적 지주가 있다면 결집하는 그들의 힘은 더욱 커지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더 늦기 전에, 마지막 왕손들에게 적어도 그들의 집을 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들이 비록 왕조를 잇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삶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적 존재로서 조선의 후예들에게 계속 교훈을 주는 의무를 지게 하고 우리들도 물려받은 조선의 문화와 역사에서 배우고 반성하며 기리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강하게 생각해본다.

[인상깊은구절]
이는 또한 단순히 조선이란 과거의 왕조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한국을 연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비록 36년간의 식민지 통치 기간이 중간에 개제되어 있다 해도, 한국은 조선을 계승한 나라인 것이다.
m******4 2005.08.05. 신고 공감 34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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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이면.
"역사의 이면." 내용보기
표면에 드러나는 역사가 있는 반면, 드러나지 않는 이면의 역사도 있다. 이 책은 조선 왕 8명의 독살설에 대해 다루어 역사의 이면을 파헤치고 있다. 1장 대윤과 소운 그리고 사림파 사이에서 2장 방계 승통의 콤플렉스와 임진왜란 속에서 3장 현실과 명분의 와중에서 4장 사라진 북벌의 꿈 5장 예송 시대에 가려진 죽음 6장 이복형제의 비극 7장 개혁 군주의 좌절 8장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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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에 드러나는 역사가 있는 반면, 드러나지 않는 이면의 역사도 있다. 이 책은 조선 왕 8명의 독살설에 대해 다루어 역사의 이면을 파헤치고 있다. 1장 대윤과 소운 그리고 사림파 사이에서 2장 방계 승통의 콤플렉스와 임진왜란 속에서 3장 현실과 명분의 와중에서 4장 사라진 북벌의 꿈 5장 예송 시대에 가려진 죽음 6장 이복형제의 비극 7장 개혁 군주의 좌절 8장 식민지 조선 백성의 군주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며 우리가 갖는 느낌은 무엇일까. 좋은 모습만 바라보고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정말 좋은 일일 것이지만, 역사에는 항상 그렇듯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이면의 역사가 있다. 조선 왕 26명 중 8명이 독살에 의해 죽었다. 무려 4명중에 1명은 독살당한 것이다. 중국에 있어 왕은 신하들의 무조건적인 충성의 대상이었으나 조선의 왕은 때에 따라서는 조건부 충성의 대상인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또한, 신하들은 왕의 신하이기 보다는 당의 신하였고, 붕당정치로 정국을 자주 어지럽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나라가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었겠는가. 역사의 악순환의 고리에 조선이 어느새 깊이 빠져있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나쁜 모습이든 좋은 모습이든 정확하게 알 수록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크다. 과거를 객관적으로 돌아본다면 진정 나라를 위한 고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인상 깊은 구절: 중세 이후로 천황은 일본 정치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천황이 얼마나 정치에서 소외된 존재인가는, 1467년 오닌의 난에서 시작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 국을 통일하기까지 약 100여년간 계속되었던 전국시대를 보면 알 수 있다.
d****n 2005.08.03. 신고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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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안타까운 죽음들...
"너무도 안타까운 죽음들..." 내용보기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긴긴 세월동안 27명의 왕들이 재위기간동안 무려 8명의 임금이 독살당했다. 우리의 피묻은 어두운 역사이기에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이지만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 정도로 조선에서 숭상했다던 '성리학'의 명분만을 중시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는 사대부들의 극랄한 이중성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사람은 광해
"너무도 안타까운 죽음들..." 내용보기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긴긴 세월동안 27명의 왕들이 재위기간동안 무려 8명의 임금이 독살당했다. 우리의 피묻은 어두운 역사이기에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이지만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 정도로 조선에서 숭상했다던 '성리학'의 명분만을 중시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는 사대부들의 극랄한 이중성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사람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반정에 성공한 인조의 장자 '소현세자' 다. 어떻게 친아비가 친자식에게 왕권의 위협을 느껴서 자신때문에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8년만에 돌아온 소현세자를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모자라 소현세자비도 사약으로 사살했고 그 일가까지도... 또 그의 분노는 극에 달해 어린 친손자까지도 먼 곳으로 귀향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조선역사에 있어서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소현세자는 효종과 다르게 청에 볼모로 있는 동안 청의 선진문물을 흡수하고 인정하면서 이상적인 사회건설을 하리라 했었기에 그가 독살당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역사의 비극은 덜 했을지도 모른다... 연민의 마음이 드는 군주가 있다면 그것은 '광해군'이다 매체를 통해서 광해군은 도덕성을 상실한 폭군으로만 대게 알려져있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해될 수 밖에 없었다. 영조는 욕심많고 아무도 믿지 않고 변덕이 심해서 광해군을 세자로 해놓고도 새롭게 맞이한 계비인 인목대비의 장자 '영창대군'이 태어나면서 늘 광해군의 목숨을 위협했다... 자신이 보위에 오르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세력을 넓힐 수 밖에 없었고 눈에 가시일 수 밖에 없던 영창대군과 인목대비를 해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 역사상 '폐모론'은 없었던 걸로 안다. 임금이 어미를 폐하는 건 있을 수 없으니까... 극단적이지만 않았더라면 인조반정도 일어나지 않았을테고 실리중심의 광해군의 정치는 그 이후의 비극을 막았을런지도 모르겠다.. 추악한 사대부중의 으뜸인 '송시열'이 초야에 묻혀 살았더라면 당쟁으로 얼룩진 우리의 역사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의 생각은 늘 이러했다. 천하의 주인은 임금이 아니라고... 그 말은 백성들도 아니요 자신들 사대부란것을 의미한다. 단지 임금은 정당들에 의해 존재하는 허수아비와 같은 존재라고 말이다. 임금의 정당성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력세습에만 여념이 없었다... 왕권중심의 나라에서 왜 그토록 독살설이 많았을까 사대부들의 당쟁에 의한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왕과 자신들의 갈등이 극대화되면 왕을 갈아치울 수 있다라는 생각이 아무렇지 않게 자리잡혀 있었으니까. 왕의 기강이 무너지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이냐고.. 자신이 살기 위해 상대를 짓밟고 죽이고. 그 역사를 반복해 나가니 조선이 망국의 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음이다.. 이제와서 한탄하면 무엇하랴만은 새롭게 개혁해보려고 의지를 보였던 임금들이 어이없게 독살 당하면서 뜻을 펼쳐보지 못함이 너무도 안타깝다... 모두 읽어서 가슴 치며 한탄하면서 다시는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고 말하고 싶지만 돌아가는 정치행태를 보니 더 안타깝네요...
s******9 2005.08.12. 신고 공감 1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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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조선의 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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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이 일찍 단명하거나 제대로(?) 죽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 책에 나열된 것처럼 이렇게 많은 왕들이 정말 비명횡사에 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거 자체가 비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나열된 것이 어느정도 거짓이 섞여 있다고 해도 약간의 진실이 더 많다면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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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이 일찍 단명하거나 제대로(?) 죽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 책에 나열된 것처럼 이렇게 많은 왕들이 정말 비명횡사에 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거 자체가 비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나열된 것이 어느정도 거짓이 섞여 있다고 해도 약간의 진실이 더 많다면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그들이 이렇게 마지막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조선시대 내내 횡횡했던 당파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들 죽음 가운데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소현세자와 정조의 죽음.. 그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었다면 우리나라가 이런 괘적을 그리면서 나가진 않았을 것이라 본다. 그리도 아들을 죽이는 아버지인 왕들이 너무 무섭다. 때론 이런 부분들이 보여서 남자들이 참 냉정하고 무섭단 생각도 든다. 조선 시대의 역사.. 정말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다.
c********1 2005.09.20. 신고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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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왕들을 죽였는가?
"누가 왕들을 죽였는가?" 내용보기
실록에 자세히 언급되지 않아 항상 의혹을 가져왔던 조선시대 왕들의 의문의 죽음에 관해 주변상황과 사초등 객관적인 사실을 통해 다른관점에서 유추해보고 어쩔수없는 과거사지만 파란만장한 우리역사의 이면에 감추어진 사실을 끄집어내어 보는것도 미래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있어서도 의미 있는일일것이다. 1장 효자 인종 인종의 계모 문정왕후가 자신의 소생을 왕위에 앉히
"누가 왕들을 죽였는가?" 내용보기
실록에 자세히 언급되지 않아 항상 의혹을 가져왔던 조선시대 왕들의 의문의 죽음에 관해 주변상황과 사초등 객관적인 사실을 통해 다른관점에서 유추해보고 어쩔수없는 과거사지만 파란만장한 우리역사의 이면에 감추어진 사실을 끄집어내어 보는것도 미래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있어서도 의미 있는일일것이다. 1장 효자 인종 인종의 계모 문정왕후가 자신의 소생을 왕위에 앉히고자 주다례실시를 핑계로 모종의 약을 사용하여 인종의 비위가 상하여 운명하였다 2장 괴팍한 선조 체질적으로 몸이약한 선조가 나이가 들어 병약해지자 세자가 찹쌀밥을 올리고난후 왕이 기가막혀 위험한 상태가 되었다 3장 소현세자 본국에 온지 얼마안되어 병을 얻고 수일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검은빛이고 모든 구멍 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부왕 인조의 권력욕에 의한 희생양이 었다 4장 효종 어의의 판단실수에 의해 침을 맞고 난후 피가 그치질않아 그날 밤 운명했다. 5장 현종 두차례 예송논쟁으로 심신이 피로해진 현종이 음식에 의한 독살의 징후인 복통으로 끝내 사망에 이르게 된다. 6장 경종 인원왕후 와 훗날 영조가 게장과 생감, 인삼차를 올린후 그날 새벽에 승하하고 말았 다 7장 정조 가슴에 화기가 있어 치료를 받든 정조가 종기치료를 위한 경옥고를 먹고나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가되어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8장 고종 망명을 준비하고 있던 고종이 갑자기 사망한것은 일제의 의한 독살이 가장 유력한 설이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누구에게나 있을것이다. 마치 이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이 조선시대 왕들의 죽음옆에서 있는듯한 착각을 하곤 했다. 우리나라 역사를 바꿔 놓을뻔했던 사건들을 보면서 과거를 되돌릴수는 없지만 되풀이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돌고돈다지만 가슴아픈 기억은 다신 우리역사에 기록되는일이없어야 되겠다 재미나게 읽었지만 좀더 주변상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아쉽게 느껴졌다

[인상깊은구절]
영조가 남긴 금등비서 " 피묻은 적삼이여 피묻은 적삼이여, 동(영조)이여 동이여 누가 영원토록 금등으로 간수 하겠는가. 천추에 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바란다"
s****a 2005.08.08.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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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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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왕이라는 자리가 무섭다. 아니 너무 위태롭고 불쌍할 정도다. 항시 신변에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난 자리. 이 정도였었나? 그럼에도 그 자리에 올라가려고 갖은 애를 다 쓴다. 방해물로 분리되면 사람 목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형제간이라도.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 왜 그리 편들을 갈라서 싸움을 했는지. 소위 배웠다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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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왕이라는 자리가 무섭다.

아니

너무 위태롭고 불쌍할 정도다.

항시

신변에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난 자리.

이 정도였었나?

그럼에도

그 자리에 올라가려고 갖은 애를 다 쓴다.

방해물로 분리되면

사람 목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형제간이라도.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 왜 그리 편들을 갈라서

싸움을 했는지.

소위 배웠다는 양반들이.

참으로 안타깝다.

특히나

소현세자는 왕도 되어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게 가장 딱하고  애달프다.

새로운 문물을 많이 접하고

새로운 의식을 가졌던 분이라

살아서 왕이 되었으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지금은

추측밖에 할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YES마니아 : 로얄 a****1 2010.06.02.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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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많은 '문제작', 그러나……
"문제가 많은 '문제작', 그러나……" 내용보기
이덕일씨는 최근 대중 역사서에서 가장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한 사람이다. 그가 말하는 대부분의 것이 사람들에게는 진실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선생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 면이 적지 않음도 공부를 하면서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일전에『사도세자의 고백』을 강도높게 비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나만 이야기하는 이미 되돌릴 수
"문제가 많은 '문제작', 그러나……" 내용보기
이덕일씨는 최근 대중 역사서에서 가장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한 사람이다. 그가 말하는 대부분의 것이 사람들에게는 진실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선생의 상상에 지나지 않는 면이 적지 않음도 공부를 하면서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일전에『사도세자의 고백』을 강도높게 비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나만 이야기하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이덕일 선생의 상상을 진실로 믿고 있었다. 이 문제는 심각하다.

 

이 책은 '픽션'과 '팩션'의 양면을 모두 지니고 있다 하겠다. 이덕일 선생이나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이 책의 내용 모두가 사실에 근거하여 추리를 해나가는 '팩션'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내용을 '픽션'이라 이야기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명확한 사료 인용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뿐만 아니라 학계에서 독살설이 확실하다고 의심하는 왕들이 몇 있으며, 그 추정하는 근거가 이덕일 선생이 제시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도 적지 않다. 고종 광무제와 소현세자가 그러한 경우이다. 그리고 선조는 독살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도 이덕일씨와 비슷하다.

 

그런데 문제는 경종 독살설과 정조 독살설에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견해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조 독살설의 경우는 사료 인용의 선후까지도 제대로 게산하지 못한 허점을 낳고 있다. 그는『정조실록』을 주요 자료로 인용하면서 정순왕후가 탕약을 들고 정조가 누워 있는 곳으로 들어간 뒤 곡소리가 났다는 내용을 통해 독살설의 혐의를 정순왕후에게 두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기록의 앞부분에 정조가 먼저 대왕대비를 찾았으며, 이미 이 때 혼절을 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비록 간단한 내용은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정순왕후가 들어가서 혼절을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정순왕후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정조는 혼절을 하고 있었으며, 결코 정순왕후가 자기 의지대로 먼저 들어가려 한 것이 아니라, 정조가 먼저 정순왕후를 찾고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덕일씨는 이 사료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사도세자의 고백』에서 보여주었던 사료 인용에서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 말고도 이 책에서는 수많은 오류가 발견된다. 독살설의 의심이 드는 왕들이 독살을 당한 원인을 분석하는 데서 특히 많은 오류가 발견된다. 이덕일씨는 우암 송시열과 사대부의 사대주의, 중화주의를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일본, 월남(베트남)에서도 자신들이 '중화'라고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조선중화주의'가 중국에 굽신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수주의의 대표가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이덕일씨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송시열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덕일씨는 정조의 죽음, 이 땅이 세계의 유일한 주자학 국가로 남은 점, 그리고 송시열의 활약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이것 또한 설득력이 약하다. 정조의 죽음은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으니 더 언급하지 않겠다. 만약 조선이 유일한 주자학 국가였으며 주자학 이외 모든 사상이 배척되었다면, 어떻게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사찰의 80% 이상이 조선 후기에 지어졌으며, 천주교를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청나라에 대한 북학을 외쳤던 수많은 이들이 노론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죽하면 정조가 문체반정이라 하여 주자학 이념을 다시 바로 세우려고까지 했을까. 송시열의 활약이 매우 부정적이라면 정조가 송시열을 최고의 성인으로 위상을 세워주면서 주자 관련 서적의 편찬이 활발히 이루어진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덕일씨는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어떤 해명도 없다. 

 

이 책은 분명 '문제가 많은 '문제작''이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이 책을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몇몇 왕들에 대한 독살설은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제목에 '그러나'를 달지 않으려다 방향을 바꾸어 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아무리 잘못된 내용이 많아도 우리가 하나라도 올바른 지식을 건질 수 있는 책이라면 그 책은 집어야 한다. 그래서 잘못된 것이 많아도 나는 앞으로도 그의 책을 하나 둘씩 집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꼭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읽는 것은 좋으나 맹신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이 책이 전하는 모든 것이 역사적 진실이라는 생각은 버리면서 읽어주셨으면 한다.

 

책의 표지에 덮여 있는 노란 종이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물론 머리말에도 있는 것이지만.

 

 

역사는 모름지기 끝까지 추구해야 그 의미에 도달하게 된다. …… 반성 없는 역사란 미래가 없다. 미래가 없는 역사를 어디에 쓰겠는가?

 

 

그의 말은 지극히 옳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그가 끝까지 추구해서 반성하려 한 만큼 나도 그가 잘못 쓰고 있는 것을 끝까지 찾아내어 반성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k******9 2007.09.25.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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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을 알아야 역사가 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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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종 주다례를 지내고 인종을 탐탁치 않아하는 계모 문정왕후에게 문안을 드리면서 다과를 먹고 3일 뒤부터 이질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사후 조사에서 인종의 손상된 장기는 비위였다 효자였던 만큼 중종의 죽음에 지나치게 애를 태워 비위가 손상되었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비장과 위는 음식물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때문에 또한 비위는 독극물이 투입되었을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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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종 주다례를 지내고 인종을 탐탁치 않아하는 계모 문정왕후에게 문안을 드리면서 다과를 먹고 3일 뒤부터 이질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사후 조사에서 인종의 손상된 장기는 비위였다 효자였던 만큼 중종의 죽음에 지나치게 애를 태워 비위가 손상되었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비장과 위는 음식물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때문에 또한 비위는 독극물이 투입되었을 경우 가장 먼저 반응을 일으키는 장기이기 때문이다 2.선조 제 나라, 제 백성을 버리고 임진왜란때 의주로 몽진했던 치욕의 군주 그 몹쓸 길에 이율곡의 유서대로 정자(화석정) 하나를 태워서 불을 밝혔다 한다 백성들의 돌을 맞은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유달리 의심이 많고 불안정했던 선조는 어쩔수없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지만 그 뒤로도 끊임없이 후회하고 달가와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선조는 인목대비가 낳은 영창대군에 속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다행이도 영창대군이 크기 전에 선조가 사망을 하였는데, 독살설을 퍼뜨린건 다름아닌 인목대비인것이다 선조가 사망하는 날 미시에 찹쌀밥을 올렸는데, 갑자기 기가 막히는 병이 발생하여 승하했다고 하는데 이 찹쌀밥은 바로 광해군이 올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인들이 퍼뜨린 독살설의 줄기는 찹쌀밥이었지만 엉뚱하게도 인목대비는 "고의로 충격을 주었다"고 주장하여 선조의 독살설이 두서없이 전개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3.소현세자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인조는 청에게 그 볼모로 소현세자를 내어주게 된다. 유배나 다름없는 가엾은 아들을 걱정하는것이 아니라, 돌아오면 왕의 자리를 노릴것이라는 뜬금없는 의심으로 결국 아들을 독살하고 만다 소현세자의 귀국 후 두 달 만에 병석에 누운 이유는 인조의 냉담한 반응에 깊은 상심을 얻었고 결정적인 원인은 학질이었다 젊은 나이에 그리고 그당시 학질은 큰 병이 아니었다 어의는 열을 내리게 한다며 침을 놓았는데, 그 후 3일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의문은 그 어의가 인조 측에서 소현세자 귀국 시기와 맞게 특채를 통해 입궐하였고, 소현세자의 시체가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이 까맣게 변하고 눈,코,귀에서 피가 나오는 것은 독약을 먹고 죽은 사람의 시신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조선을 개혁의 나라, 개방의 나라로 만들려던 선진의 그의 꿈은 아비의 의심으로 싹틔우지 못하고 말라죽어버린 것이다 4.효종 조선역사에서 특이하게도 문보다는 무를 더 중시했던 왕 그러나 북벌은 왕 혼자만의 주장이었고 그 당시 당쟁에 빠져있고 일신만 챙기는 지배층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특히 송시열은 겉으로는 북벌을 주장한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북벌에 반대하였다 이는 지극히 시대착오적이고 사대주의의 극치인것이다 그러는 와중, 효종의 머리에 작은 종기가 났는데 이상하게 침을 맞다가 세상을 떠났다 효종을 담당했던 어의는 기가막히게도 수전증 상태였던 것이다 그 상태에서 침이 혈락을 범해 과다출혈로 사망한것이다 시체의 붓기가 너무 심하였고 또한 관의 폭이 염한 시신보다 작았던 것이고 장지문제도 복잡하게 얼키고 설키어 숭숭한 장례가 되었다 5.현종 조선 왕들 중 유일하게 조강지처 하나로 만족한 후궁들을 거느리지 않았던 올바른 사나이 현종 유달리 신중하고 온화했던 왕 현종 국상때 자의대비가 상복을 몇년 입어야 하는지가 발단이 된 1.2차 예송논쟁으로 그 당시 집권세력인 서인 대신에 남인들을 기용하기 시작한것이다 이것에 불만을 품은 서인들이 현종의 독살설 중심에 있게 된 근거가 된다 현종의 병명은 음식에 의한 독살의 혐의가 있을때 흔히 나타나는 복통이었다 만 33살의 건장한 청년이 갑자기 극심한 피로와 복통을 느낀것은 독약이나 몽혼약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갑작스런 사태로 현종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이후, 조선의 정세는 달라졌을 것이다 바꾸려했던 세상은 바뀌지 못하고 여전히 조선은 '서인들의 나라'였던 것이다 6.경종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 경종 어미의 죽음 후 아비의 사랑또한 받지 못했던 비운의 경종 어릴적 충격으로 늘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유달리 유약하고 우유부단하여 노론들에게 놀아났던 경종 후에 왕이되는 이복형제 영조에게 결국 독살을 당하게 된다 어느날 갑자기 병환에 누워버린후, 영조가 전면에 나서서 경종의 병구완을 총지휘했다 문제의 게장과 생감 그리고 인삼이었다 당대 제일의 의사였던 이공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조가 올린 게장과 생감 그리고 자신의 처방과 상극이라고 진단한 의원을 윽박질러가며 올린 인삼차는 독살에 관한 무수한 뒷말을 낳기에 충분한 소재들이다 7. 정조 뒤주에서 죽어가는 자신의 아비(사도세자)를 무력히 보고만 있어야 했던 정조 나의 동정심을 가장 자극한 왕이다 당쟁속에 영조는 자신의 아들을 죽이는 폐륜을 범한다 자신의 색을 밝히지 않고 영조에게 효도하였던 손자 정조는 무난히 세자 책봉에 성공한다 그 후 왕이 된 정조는 규장각과 장용영 그리고 화성을 지어 왕권강화에 힘을 쏟는다 서서히 남인이 성장할때를 기다리게 된다 또한 아비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의 보상으로 묘를 수원으로 옮기고 자그만치 10년 사이 능행을 12번이나 강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조에게도 작은 종기하나가 문제였다 거의 의사수준이었던 정조는 직접 약을 조제하기도 하고 처방하기도 하였다 그것도 안되어 어의들은 '경옥고'를 쓰자고 하였지만 자신의 냉한 체질과 온한 경옥고는 맞질 않는다며 극구 사양했다 그러나 끈질긴 노론들은 결국 경옥고를 먹게 하였고 사도세자의 죽음에 중심에 있는 정순왕후 김씨는 자신이 직접 받들어 올리고 싶다하여 어의들을 물리고 정조에게 상을 올리는데 잠시 후 방안에서 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다 나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가엾은 정조는 그렇게 조선을 개혁하지 못하고 조선 패망의 원인이 된 세도정치의 중심인 정순왕후와 당쟁에 희생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지막 희망이던 정조의 사망은 사실상 조선의 멸망이었다 8. 고종 아비 대원군과 아내 명성황후 사이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늘 수동적인 정치력을 가진 고종 일본과 이완용 등의 친일파에 의해 커피에 아편을 탄 사건으로 아들 순종은 지적장애을 겪게 된다 해외로 망명계획이었던 고종은 그날 밤, 밤참으로 올라온 음식을 먹고 1분도 안되어 사망했다고 한다 명성황후의 죽음으로 을미의병이 일어났고, 고종의 죽음으로 그 해 3.1운동이 발발했으니 아마도 고종 부부는 죽음으로써만 일본에게 복수할 수 있는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a******5 2005.10.06.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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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와 야사사이-조선왕 독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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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선조,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에 세자로서는 소현세자... 조선 왕조에서 왜 이렇게 여러 임금과 세자까지 독살 당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일까? 독살이 가능했다면 누가 감히 만인지상 왕의 독살을 시도했던 것일까?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독살설이 뚜렷하게 정설로 밝혀진 경우는 없지만 실록에 독살로 보이는 정황이 언급돼있고, 당시 세간에는 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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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선조,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에 세자로서는 소현세자...

조선 왕조에서 왜 이렇게 여러 임금과 세자까지 독살 당했다는 의혹을 받는 것일까? 독살이 가능했다면 누가 감히 만인지상 왕의 독살을 시도했던 것일까?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독살설이 뚜렷하게 정설로 밝혀진 경우는 없지만 실록에 독살로 보이는 정황이 언급돼있고, 당시 세간에는 왕이 독살 당했다는 소문이 정설처럼 굳어져 버릴 정도였다니,

불과 30년 전, 우리 현대사에서도 현직 대통령이 총에 맞아 사망했던 사건이 발생했었다. 정상적인 민주시대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었지만, 그 뒤 정국이 얼마나 가파르게 물살을 쳤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경우와 세습 군주제에서 왕이 독살당하는 경우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무리가 있겠지만, 정치적 암살이라는 점은 독살 역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필자 이덕일은 분석하기를 독살설이 생기는 데에는 그만한 개연성들이 있다. 왕들이 독살 당했다는 시점을 보면, 대부분 당쟁이 격화됐던 시기였고, 임금을 강력하게 반대하던 정당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임금의 사후 임금을 반대하던 당이 집권했다는 공통점도 있고. 당연히 왕의 사후 권력구도와 독살설은 무관하지 않은 상황이다.

왕의 죽음으로 정국의 향방이 일거에 뒤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정조 사후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조의 급작스러운 붕어로 실각위기에 내몰렸던 노론 벽파가 재집권하고, 그 뒤 정조가 시도했던 변화의 바람은 일거에 사그라 들었고 조선은 다시 반동의 길로 들어섰다. 만약 정조가 이때 급서만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정조의 급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살설은 후임 왕의 정통성을 흔들어 놓기도 했다. 경종의 뒤를 이어 용상에 오른 영조는 이복형 경종의 독살범이라는 의혹어린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 영조는 경종의 독살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입에 담은 사대부를 국문에 부쳐 죽음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독살에 대한 이야기는 세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도 등장한다. 햄릿의 숙부가 햄릿 아버지의 귀에 독을 부어 살해하고는 그 뒤를 이어 덴마크 왕이 된 것이었다. 클로디어스는 권력욕과 애욕에 눈이 멀어 형을 죽인 거지만, 조선 왕조의 독살설은 이보다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 차례의 독살설이 나와도 그와 관련한 의혹 중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게 없다. 당시 독살로 의심될만한 정황이 발견됐다면 전모를 밝히려고 하는 것이 순서일텐데, 정권을 잡은 측에서 덮고 넘어가려 했다는 점에서 독살설은  묻혀 졌다. 하지만 이런 일 처리가 오히려 세간에 왕의 독살설에 대한 신빙성을 키우게 만든 요인을 제공해 주었고, 결코 우발적이거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독살을 시도한 게 아니라는 심증을 굳히게 만들었다.

이덕일은 독살이 공개적으로 왕을 교체할 명분도 방법도 없었던 조선 사회에서 실각의 위기에 놓인 당인들이 택군(擇君)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론을 관철시키기 위해 임금을 위해했다는 것은 결국 독살설을 조선 정치 체제의 차원에서 봐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독살설은 아직 가능성 있는 ‘설’의 차원에서 언급되지 정사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후기로 내려올수록 독살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것에서 벌써 조선에 망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아니었을까. 암살로 권력 구도에 변화와 정국 돌파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정치 체제에서 벗어난 것이니 말이다.

참, 몇 달 전 '조선왕 독살사건' 이 책이 1,2  두권으로 해서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한 권짜리인 이 책은 절판됐고, 참고하시길..

e****0 2009.12.31. 신고 공감 3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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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제목에 비해 너무 빈약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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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독살 사건'이란 강렬한 제목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인종, 선조, 소현세자,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 이렇게 8명의 왕(또는 왕세자)들에 대해 그 당시의 정치적 배경을 중심으로 시중에 유포된 독살 의혹을 중점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이 책만 읽다 보면 진짜 이들 왕들의 정치적 반대 세력에 의해 독살되어 조선의 역사가 후퇴한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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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 독살 사건'이란 강렬한 제목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인종, 선조, 소현세자,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 이렇게 8명의 왕(또는 왕세자)들에 대해 그 당시의 정치적 배경을 중심으로 시중에 유포된 독살 의혹을 중점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이 책만 읽다 보면 진짜 이들 왕들의 정치적 반대 세력에 의해 독살되어 조선의 역사가 후퇴한 것과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다. 그러나 그건 객관적인 사실이라기 보다는 이덕일 작가의 생각의 주관적 생각이 더 가미된 것 같다. 하나 사족을 달라면, 제목과는 달리, 왕이 아닌 소현세자를 왜 포함시켰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논리라면 독살은 아니지만 사도세자도 포함해야 하고, 폐위된 후 1년만에 죽은 연산군도 포함해야 하지 않을까 ?) 같은 이덕일 작가가 쓴 책인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의 내용을 그대로 재탕하는 부분이 적지 않은 점은 실망이다. (자신의 쓴 책의 재탕은 비단 이덕일 작가의 문제만은 아닌것 같다.) 또한 박영규 작가가 지은 '조선왕조실록' 과 비교해 볼 때, 디테일한면에서 서로 다른 역사적 사실이 나오고 있다는 점도 실망이다. 두 작가중의 한명(어쩌면 둘다)은 불충분한 역사 사료에 기초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역사책을 쓴게 아닐까 ?)
h*****9 2005.11.03.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