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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이 책의 자히르를 보르헤스의 작품 <자히르>를 보고 썼다는 말에 보르헤스의 단편 <자히르>를 읽고 말았다. 아주 짧은 단편이다. 자히르는 무엇인가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인 모양이다. 그런데 여기에 어떤 자히르가 있는지 모르겠다. 주인공이 어느 시점에서부터 자히르를 잃어버렸듯이 작가도 자히르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자히르가 그렇게 쉽게 잃어버리고 잊혀 질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절대 아니다. 자히르는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나는 자히르가 무엇인지 모르고 경험한 적도 없다. 하지만 종교적 의미로든지 아니면 다른 어떤 정신적 의미로든지 자히르는 코엘료가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자히르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분은 <알렙>에 수록된 보르헤스의 자히르를 보시기 바란다. 거기에는 자이르라고 나와 있다.
이 작품 이전에 나는 한 여자가 말도 없이 남편 곁을 떠났던 작품을 읽었다. 그 작품은 마르흐리트 더 모르의 <쥐색 흰색 푸른색>이다. 이 작품이 더 인간적이다. 여기에서도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갔다가 몇 년 만에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온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이 자히르인가? 아니다. 그건 단지 일탈일 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각각의 주변 사람들과 남편의 반응은 보편적이다. 그래서 그 보편적인 것 가운데 나는 또 다른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독자가 무언가를 느낄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생각할 기회 조차 주지 않는다. 완전히 단절된 작가만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도 한 얘기 또하고 한 얘기 또하는 술 취한 사람같은 느낌의...
작가의 작품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고 알고 있었지만 읽을수록 허무해진다. 뭔 말이 그리 많은 지... 돈은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다 해봤고 양손 가득 모든 것 쥐고 났더니 그래도 허무하더라 이 말이다. 결론은... 그래서 여자는 종군 기자로, 중앙아시아로 떠나고 남자는 그 여자를 찾아 떠나고... 산다는 게 그리 편하고 만만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화가 났다. 못 사는 어느 나라 사람들은 아파도 약 살 돈이 없어 가짜 약이라도 먹으려고 애를 쓰는데, 전기세를 못 내 어느 여중생은 촛불 켜고 자다가 불이 나서 죽었는데 모두 가졌더니 그게 아무 것도 아니더라는 책을 쓰고 싶은지...
작가가 자히르에 대해 쓰고 싶었다면 유럽에서 그것을 가장 잘 실천하는 작가의 책에서 말하는 것에 의하면 말이지만, 집시에 대해 썼어야 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유태인보다 더 많이 학살당하고도 어떤 주목도 받지 못한 이들 말이다. 그러면서 자유롭게 방랑자의 생활, 도시에서 유목민의 생활을 하는 그들 말이다. 사라져가는 먼 나라의 유목민을 찾아가 양탄자를 짜는 게 아니라. 그런데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럽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사람들이니까. 등장인물로는 안 어울린다. 책이 안 팔릴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한 거 아닌가 싶다.
표지만 겁나게 예쁜 작품... 그 표지의 반만큼의 알맹이도 없는 내용... 마지막의 만남이 압권이다. 그게 자히르란 말인가. 사랑이란 말인가.
이 책을 읽느니 나는 차라리 오승근의 노래를 듣겠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가까이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작가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면서도 뭘 여러 가지로 둘러싸서 뭐가 있는 듯이 보이게 하려고 애를 쓰는지... 간단하게 말하면 될 것을...
참, 그래도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맨 처음 아내가 실종되고 남편이 경찰서에 잡히는 장면때문이었다. 경찰이 등장하니 추리적인 면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그 옛날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그리 쉬우면 이리 오랜 세월 알려 질 수 있었을까. 말을 하기 쉬우나 행동이 어려우니 장자는 도를 말하고 누군가는 단순하게 살아라라는 책을 쓰고... 그러는 거 아닐까. 사랑을 이리 어렵게 만들면 속인은 어찌 사누... [인상깊은구절] p286-287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것들을 그냥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그것들에서 해방돼라. 관계를 끊어내라. 속임수를 쓰기 위해 표시해놓은 카드로 게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때로는 따기도 하지만 때로는 잃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뭔가를 되돌려주기를, 너의 노력을 인정받기를, 사람들이 네 재능을 발견하기를, 사람들이 네 사랑을 이해하기를 바라지 마라. 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이유가 자존심이나 무능이나 교만이어서는 안 된다. 네가 그 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이젠 네 삶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문을 닫아라. 다른 음악을 틀어라. 집을 청소하고, 먼지를 떨어내라. 지금까지의 너이기를 그만두라. 그리고 너 자신이 돼라. |
| '자히르'는 이슬람 전통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18세기경에 등장 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랍어로'자히르'는 눈에 보이며,실제로 존재하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일단 그것과 접하게 되면 서서히 우리의 사고를 점령해나가 결국 다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어떤 사물 혹은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신성(神聖)일 수도, 광기일 수도 있다. -포부르 생 페르,[환상백과사전],1953년- 이야기는 아내가 갑자기 사라지고 내가 즉각 혐의를 받고 구금되면서 시작한다. 그 시간의 행적에 대해 진술을 거부한 게 이유였다. 그러나 아내가 사라진 그 시간의 행적에 대해서 나의 애인인 아내친구가 진술을 해주어 풀려나게 되었는데 나를 풀어주던 당직 경찰관이 유치장 문을 열어주면서 이야기 한다. 선생은 이제 자유입니다. 자유는 구속만큼이나 큰 대가를 요구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꺼이, 웃으면서 그 값을 치른다는 점이다. 비록 눈물 젖은 웃음일지라도. 사라진 아내로 인하여 자유를 부여받은 나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녀와의 대화를 생각해내고 그 대화 속에서 그녀가 날 떠날 준비를 했었는지, 그녀에게 나도 모르는 남자가 있었는지, 그녀가 혹시 날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지, 온갖 추측과 가설을 적어가며 왜 떠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내가 떠나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그로인해 내가 상처받게 되지 않길 바라면서... 이 책의 처음에 '이타카'라는 시와 작가가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가 나온다. 그 시와 헌사는 이 책이 무얼 이야기 하려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있는 페넬로페를 찾아가는 여행과 주인공인 내가 아내 에스테르를 찾아 카자흐스탄의 스텝으로 가는 과정이 닮아 보인다. 어쩌면 이 책은 소설형식으로 된 구도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내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미처 알지 못한 일들을 깨닫게 해주고, 믿음과 사랑, 용기와 삶의 의미까지, 모든 중요한 것에 대한 이야기 인 것이다. 결국 그 과정은 내 인생을 되돌아 보는 것이었고, 내게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는 시간이였던 것. 인간이 사랑하는 법에 눈뜰 때, 비로소 참된 세상이 이루어집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사랑을 안다고 생각하면서 살겠지만, 사랑을 있는 그대로 대면할 용기는 갖지 못할 겁니다.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는 힘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통제하려 할 때, 그것은 우리를 파괴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가두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이해하려 할 때, 사랑은 우리를 방황과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지금 내 삶에 대한 회의가 느껴진다면, 내 옆에 있는 남편이나 아내를 향한 사랑이 이제는 식어버려 '우리도 예전에 뜨거웠었지' '예전엔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따위의 생각들이 머리 속을 꽉 채우고 있다면 한 번쯤은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어쩌면 해답이 있을지도... |
|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책의 내용을 보지 않고 무조건 사게 되는 보증수표 작가가 된 파울로 코엘료의 최신작이다. <오 자히르>는 '아무도 아니다'라는 주인공이 부인 에스테르의 실종으로 시작된 사건을 발단으로 사랑에 대한 의미와 자기 자신을 찾아 나가는 모험 이야기이다. <오 자히르>는 많은 부분에서 <연금술사>를 닮았고, <11분>과 비슷하며,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와도 떼어낼 수 없다. 그러면서 읽는 중간 중간에 어디까지가 파울로 코엘료의 본인이의 이야기인지,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종합하면, <오 자히르> 역시 너무나도 코엘료스러운 이야기이다. '아무도 아니다'라는 성공한 작가(이 일 저 일을 방황하다, 작사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며 결국 전세계 베스트 셀러가 된)의 아내 에스테르가 실종된다. 에스테르는 종군기자이기 때문에 신변에 항상 위험이 있고, 더욱이 미하일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와도 연관이 되어 있는 듯 하다. 작가는 결국 그리움과 고통을 다스리려고 노력을 하고, 마리라고 하는 또 다른 헌신적인 사랑을 만나 자신의 삶의 '평화'를 찾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작가는 에스테르가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자히르'가 된 것을 느끼며 작가의 모든 사고를 점령하여 다른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때부터 시작된 '자히르'를 제어해 보려고, 책을 쓰고 (또 다시 베스트 셀러가 된다) 미하일의 일행과 생활 하는 등 많은 모험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코엘료는 특유의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메시지를 전달 한다. 하지만, 이러한 철학적인 내용뿐 아니라, 코엘료의 특기인 사실적인 공감 메시지 역시 빛을 바란다. 특히 3페이지 짜리 잡지 원고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방에서 에스테르와의 대화 내용) 내용은 정말 코엘료만이 잘 집어낼 수 있는 현실적인 대화가 아닌가 생각 된다. <오 자히르>는 어떻게 보면 <연금술사>와 같이 산뜻한 철학과 투명한 이야기의 모험은 아니며, <11분>이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와 같은 현실 철학이나 진한 감정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코엘료의 종합 선물 세트와도 같으면서, 농도는 조금 옅은 읽기 좋은 소설인 것 같다. 조금더 짧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지만, 어째든 한번 잡으면 놓기 힘든 코엘료의 흡익력은 여전하다. |
| 베스트셀러-포비아(bestseller-phobia). 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개 그런 증상을 지니고 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왠지 베스트셀러라는 머리표가 붙은 책에는 손이 잘 가지 않고, 어쩌다가 읽었더라도 남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이건 아마도 난 그들과 다르다, 그들보다 좀더 수준 높은 독서를 한다, 단순히 반짝하는 인기가 아니라 고유의 내 취향에 따라 책을 골라 읽는다는, 어찌보면 조금은 자만심, 자부심, 우월감에서 비롯된 증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남들이 좋다고 재미있다고 한 책을 읽고서는 너무 식상하다, 뻔한 스토리다, 알맹이가 없다 등등 그 책을 폄하할 거리를 찾게 된다. 반면 자신의 선택으로 고른 책에 대해서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일반인들의 눈엔 그 심오함임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얘기하게 된다. 자신만의 독서를 한다는 아주 좋은 장점이 있는 반면 몇가지 나쁜 단점도 있는 그런 증상... 코엘료 아저씨가 베스트셀러 작가 목록에 든지 3-4년쯤 되었나. 연금술사의 대히트 이후 줄곳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연금술사는 훨씬 더 이전에 나왔지만(처음엔 '꿈을 찾아 떠나는 양치기소년'이란 제목으로 나왔던 것 같다. 10년쯤 전에), 어느 순간 갑자기 인기를 얻었고, 그 전에 발간되었던 책들이 재판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새로 발간되는 소설들도 전작의 후광을 입어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대부분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만들어져 나가는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형식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위에서 말한 베스트셀러-포비아를 지닌 사람들이 특히 그런 경향이 심하다. 나 역시 그들중 하나인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그의 책을 읽게 된다. 베스트셀러-포비아이면서 동시에 전작주의를 지향하려고 하는지라. 코엘료 아저씨의 소설을 이해 하는게 좀 벅차다. 피에트라 강가나 베로니카, 미스 프랭 같은 책들에선 솔직히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 약간은 뜬구름 잡는 듯한 신비주의적 요소가 가득한 말들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다. 전적으로 내 이해력부족 때문이겠지만. 그나마 최근작 11분에서는 작가가 무얼 얘기하려고 하는지는 알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물론 읽은 뒤로 다 까먹었지만. 11분보다 이번책 자히르가 더 좋았다는 느낌이다. 연금술사와 맥락을 같이 하는 소설이다. 꿈을 찾아 떠나는 양치기 소년이 아닌, 사라져버린 아내를 찾아,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나는 작가의 이야기이다. 작가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마도 코엘료 소설 중 처음인 듯 하다. 소설은 소설일뿐이라지만, 소설이란 결국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될 수 밖에 없는지라, 이 책을 읽으면서 코엘료 아저씨에 대해 더욱 많은 것들을 접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코엘료 아저씨의 가장 중요한 화두인 사랑에 대해,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고 신비로운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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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혹은 동양권에서의 사랑과 서구에서의 사랑은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는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이어야만 함께 사는 것은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갖는 중요성이 더 크다고나 할까. 아니면 현실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해서일지도... 하지만 서양에서는 내가 배우자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함께 사는 것은 자신의 삶이 거짓이라고 여기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 영화에서 특히 그런 것들을 많이 보았다. 이 작품에서도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면 현실에 안주해선 안되고 반드시 그것을 찾아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선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현실을 넘어설 수 없는 한계때문에...오히려 작가와 작품의 관계가 더 관심을 끌었다.
작가는 자신이 쓴 작품을 다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쓴것을 반드시 실천하며 사는 것도 아니다. 작품 속에 그런 언급이 나온다. 사람들은 이 작가는 세상살이에 대한 모든 답을 아는 사람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 자신이 현시점에선 아내를 잃고 아내의 존재가 자히르가 되어 그를 지배하고 있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며 답을 얻고자 애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거짓을 말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작품은 작가의 인격을 넘어서 그 자체로 완성된 세계를 이루고 독자는 각자의 방식대로 작품세계를 탐험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어떤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고찰. 사람들은 자유를 추구한다.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아무런 구속도 없게 되면 과연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까? 사람들에게 만일 돈 때문에 더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으면 거의가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한다. 여행은 여유를 상징한다. 돈이 많지 않아도 자신의 형편에 맞게 여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행을 일상이 아니라 특별한 것으로 여기며 계속해서 그 시기를 연기한다. 그런데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것이 아닐까? 만일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싶은 것을 안다면 그는 삶의 답을 얻은 것이리라. 결국은 내가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색을 하면서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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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부터 인생이란 살아가는 도중에 무수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삶을 살아가는 동안 많지는 않지만 순간순간 꽤 괜찮은 인생의 성찰을 느낄때도 있다. 그 순간이라는 것이 다양한 계기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별것 아닌 일상속에서도 진실된 인생의 참뜻을 깨달을 때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많은 깨달음 속에는 인간 존재에 관한 것도, 본질적인 외로움에 관한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진지한 성찰도 존재한다. 특히 사랑이라는 말과 사랑이라는 것의 의미는 삶의 매 순간마다 새롭게 그리고 절실하게 인간의 심연에 닻을 내린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오 자히르'는 바로 사랑을 통해서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찾아가는 주인공 '나'의 짧지만 긴 삶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결코 가볍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관념적이지 않고, 산만하지 않으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사랑과 인생 그리고 인간의 존재에 관한 진지한 고찰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근래에 보기드문 작품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아내, 유명작가의 아내이면서 종군작가인 그녀, 끊임없이 진정한 사랑과 함께 자신의 꿈을 쫒던 에스테르가 사라진 후 주인공 '나'는 사랑하는 아내의 부재를 계기로 사랑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깨달음을 얻게 된다. 유명작가로서 성공하였고 충분한 부를 누리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나'를 떠난 에스테르는 자신의 남편이 스스로의 긴 여행을 통해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카자흐스탄의 한 작은 마을에서 기다린다. 주인공은 에스테르가 남긴 메신저인 미하일을 통해 자신이 얽매였던 구태의연한 사랑과 복잡한 현실관계를 깊이 있게 성찰하게 되고 결국은 에스테르와의 재회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우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두가지 대립개념이 존재한다. 첫째로 프랑스 파리를 위시한 유럽의 각 도시들과 대립하여 카자흐스탄의 스텝속에 존재한 작은 마을들, 둘째는 각박한 도시생활속에서 과거의 의미에 매달려 고통받는 현대인과 대립한 과거에서 자유롭고 오직 현실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는스텝의 자유분방한 유목민들, 그리고 셋째는 현대사회에서 파편화 되고 정형화된 사랑에 대립한 에너지가 넘치는 순수한 사랑이라는 개념들이다. 진정한 사랑의 길잡이로 대변되는 카자흐스탄 출신의 미하일의 입을 빌어 작가가 말하는 사랑이란 구속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면서도 절대적으로 사랑의 에너지가 충만하게 그리고 그 에너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말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사랑이란 결혼후 몇년이 지나면 지독히 사회적인 관계로 변하고 만다. 오로지 남들 보기에 정상적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저 필요에 의해서 같이 살게되는 피곤한 사랑을 하며 평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에스테르 또한 '나'라는 남편의 정형화된 사랑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사랑을 찾기 위해 그리고 진정 사랑하는 남편을 인도하기 위해 스텝으로 떠났을 것이다. 현대인들의 마음과 온 정신 그리고 육체를 지배하는 자히르는 그 종류가 무척이나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자히르 중에 가장 많이 차지 하는 것은 역시 사랑일 것이다. 주인공인 '나' 또한 아내의 부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통째로 쥐고 흔드는 자히르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결국에는 그 자히르에 의해 자신의 길을 찾고 자신의 사랑을 찾고 아내 에스테르를 찾게된다. 그 과정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기도 하고 또 힘이 되게도 하는 자히르의 힘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나자신도 어느정도 공감한다. 내가 어떤사물이나 사람에 혼을 빼앗겼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히르의 개념이 아니었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인간이란 삶의 각 과정마다 다양한 자히르를 경험하고 있는것 같다. 이 책에서 자히르는 에스테르인 동시에 사랑이라는 개념이었지만 말이다. 에스테르를 찾아가는 여정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 '나'는 스텝에서 초원의 영적인 기운을 느끼게 된다. 결코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기운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경험을 통해 그가 찾는 사랑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사랑의 에너지를 본격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 '나'는 자신을 비우고 에스테르를 만나게 된다. 스텝에서 주인공이 자연과 영적이 접촉을 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이약기 하는 부분이 있다. 그때 그가 정한 자신의 이름은 "아무도 아니다"라는 이름이었다. 결국 인간이란 자연속에서는 아무도 아니라는 것이 정답일런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사랑 또한 내 자신이 아무도 아니라는 자세로 스스로를 버릴때 눈앞에서 그 진정한 실체를 드러낼것이다. 현대인들에게도 사랑이란 그리 쉬운 내용의 개념이 아니다. 소유해야 하는 것인지 아님 자유로와야 되는 것인지 사랑이란 정말이지 살아있는 에너지 덩어리인것 같다. 사실 책을 다 읽은 상태인데도 자연스럽게 사랑의 에너지를 충만하게 하라는 메세지의 진정한 의미를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문학적 감수성이 거의 전무하다 싶은 내가 이정도 이해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말이다. 자히르와 사랑 그리고 인간 존재에 관한 성찰....결국은 이 책은 직접 읽어봐야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영적인 메세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
| 음, 전체적인 내용상으로는 사랑은 위대하다. 맞다. 그러나 만일 내 아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면서 연락도 없이 어느날 훌쩍 떠나버리고 나서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떠났다고 해서 나중에 찾아보니 남의 아이나 임신중이인 상태라면? 물론, 소설이기 때문에 독자에게 충격을 주려하거나 교훈적인 메세지를 줄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봐서는 나름대로는 성공했다. 문제는 내가 이상한 남자인건지? 책장의 마지막을 덮으면서 은근히 치밀어로는 부아는 뭘까? 연금술사도 무슨 애들 장난하는거 같기도 하구. 연금술사를 차라리 동화라고 분류했으면 좋았었을걸 하는 커다란 아쉽움이 남았는데, 즐겁기위해 책을 읽었지만, 도저히 내 관념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메세지라 전혀 즐겁지 않았다. 이책도 역시나 남들이 추천하기는 하지만, 본인은 비추다.! 절대로. |
| 이 책에서 나는 성공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 성공을 누리며 살고 싶어하며, 성공을 누리고 있는 다름 사람들처럼 명예를 지키기를 원하고, 정말 사랑하는 아내가 있지만 다른 여자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 작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를 보다못해 에스테르는 그에게 글쓰기를 종용하고 그는 아내의 말에 따라서 글을쓰게 되고 또 성공도 하게 되자만, 아내는 그에게 이야기도 없이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나는 아내가 없는 그런 자리에서 아내가 자히르임을 깨닫고 그녀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모험을 감행하고 되고, 그러는 와중에 아내 자체가 자히르가 아니고, 자히르는 자기자신 내면의 목소리임을 깨닫게 되고, 아내는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를 떠나게 되었음을 알게 되는것이다. 나는 이 책 오 자히르를 보면서 코앨료가 이전에 썼던 연금술사나 11분을 보면서 느꼈던 인생과 삶 자체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과연 나는 내 인생에서 어떤 자히르를 갖고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 과연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은 단순히 잘먹고 잘살기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다시한번 코앨료는 이 책 오 자히르를 통해서 삶과 인생에 대한 그의 생각을 나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시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우리 아니 내 자신의 자히르는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가 죽을 때가지의 영원한 의문일것 같다. 지금의 나에게는 말이다. |
| 파울로 코엘료. 전작 연금술사를 읽으면서는 왜 여자는 남자가 여행을 떠나있는 동안 기다리는 걸까. 사막의 여자들은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고? 낭만으로 현실을 가리고 싶은 거냐? 몇몇 장면들이 너무 눈에 거슬렸다. 결국 오 자히르에서도 피상적인 여성에 대한 묘사는 변하지 않았다. 마지막의 둘의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결국 하나도 변하지 않은 남자. 그런 남자를 기다렸다는 여자. 물론 삼류 연애소설로 치부하기엔 미덕이 많은 책이지만, 진리를 묘사하고자 공을 들인 책이지만, 치기어린 말투나 순간 순간 엿보이는 백인 남자의 감수성이 약간 부담스럽기도. 탈종교의 태도로 진리를 묘사하는 소설이라는 점은 굉장히 드물어, 결국 그 정도로 정의내려지는 소설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역시 줄거리 내외에서 느껴지는 일탈하고자 하는 욕망이, 이 사람의 본주제인 것 같은 안정감과 뒤섞여 느낌이 상당히 복잡한 책이다. nomad. 유목민. no mad. 미치기를 거부하는. 미치지 않은 사람들. 수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 오직 나로 인한 안정감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그건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실험을 계속하는 것은. 부디 이 작가의 다음 책은, 좀 더 나아가기를. 빌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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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 이라고라! "2005 네티즌 선정 올해의 실망스런 책"이 아니고라! 책의 표지가 아깝다. 혹은 책의 표지가 사기다. 책의 내용과 표지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다. 코엘료의 책 중 내가 읽은건 연금술사 밖에 없다. 연금술사의 감동이 너무 컷던 것일까? "오 자히르" 이런 책을 정말로 코엘료가 썻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다분히 몽환적인 주제와 자신의 경험담을 섞어 놓은것 같은 내용에 클라이막스나 감동마저도 없다. 왜 이런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것인가? 책 마지막 다시 찾은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 나의 한국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 주인공이 여러 여자와 관계를 맺는 과정을 나열한 것은 마치 작가 자신의 신변잡기를 이야기 하는것 같아 진부해 보인다 화려한 책표지와 훌륭한 리뷰를 보지 않고도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능력이 여러분에게 강림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