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조금은 무의미한 요즘이다. 이런때 내가 선택하는 것은 책으로의 도피이다. 하루하루가 스스로에 대한 경멸을 강요할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다.
'마흔 아홉 통의 편지' 손석춘씨의 소설이다. 학생 시절 그의 책들은 언론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그때 당시에는 상당한 자극이었던거 같다. 너무나 단순하게 세상을 바로보는 나에게 자극을 준 것이다.
그러나 손석춘씨는 나에게 그의 소설들로 다가온다. '아름다운 집', 아직까지 문득 문득 나에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아직까지 그 소설의 첫구절 '나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란 구절은 잊혀지지가 앉는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내 가슴속에 수많은 분노와 슬픔과 그리고 삶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힘을 얻게 하는 소설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아름다운집의 그 진한 의지와 힘을 가져오지는 않지만 이 소설은 그 보다는 슬픔과 아픔을 가져오게 했다. 아름다운 집이 슬픔과 아픔이 분노를 동반해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져오게 하는 아픔이었다면 시 소설의 아픔은 조금은 침전해가는 아픔과 슬픔이었다.
손석춘씨의 소설에 대한 평가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 그의 소설은 살아가는데 있어 힘이 되는 소설이다. |
| 죽은이에게 지내는 49재라는 의미를 나의 어릴적 선생님은 이렇게 표현했다. 행운의 숫자 7이 7번 더해져서 만들어지는 축복과 만남의 의미라고.... 아름다운 집, 유령의 사랑 이후 완결편 격인 마흔아홈통의 편지라는 책을 손석춘씨는 들고 우리에게 찾아왔다. 홍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에 입양되었던 여성은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게 되고 빨치산이었던 부모님의 과거에 대해 알게되는 줄거리이다. 아름다운 집을 맨 처음 읽었을때 주인공 이진선이라는 사람이 실제 인물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마흔아홉통의 편지를 읽으면서 주인공 홍수련과 아버지 최천민등이 실존 인물일까 하는 궁금증은 더이상 생기지 않았다. 북조선에 대한 수련의 생각과 빨치산 영웅 이현상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 최천민의 투쟁적 삶등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집, 유령의 사랑, 마흔아홈통의 편지가 관통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볼때....... 과연 손석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가?? 그가 우리에게 주는 이념적 좌표는 무엇이고 실천적 목표는 어떠해야한가에 대하여는 조금더 고민해야할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