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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루시 LUCY, 2014 감독 : 뤽 베송 출연 : 스칼렛 요한슨, 모건 프리먼, 최민식 등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작성 : 2015.04.29.
“그래서 인류는 새로운 진화에 도달하였을까?” -즉흥 감상-
‘주말에 맛본 영화’라는 것으로, 다른 긴 말은 생략하고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작품은 세포가 분열해나가는 모습은 살짝, 강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유인원을 보이며 시작의 문을 엽니다. 그리고는 ‘10억 년 전에 생명을 선물 받은 인류는 지금까지 무얼 하였나?’와 같은 내레이션에 이어, 중국의 어느 건물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커플에게 이야기의 바통을 주는데요. 남자 대신 서류가방을 ‘미스터 장’에게 전달하게 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여정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마약 배달’이었는데…….
간추림을 보니까 이야기만 들어서 알고 있던 것과는 뭔가 다른 작품 같다구요? 음~ 그것은 과도한 생략이 부른 참사(?)라고 해두겠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적어보면, 마약을 배달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합니다. 그 결과 그녀의 뇌 사용량이 급격히 올라가게 되고, 한바탕 난리가 발생하는데요. 좀 더 자세한 것은 직접 작품을 만나시어 감상과 생각의 시간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영화에 보면 ‘인류 최초의 여자 이름이 루시’라고 하던데, 그게 정말이냐구요? 으흠. 제가 ‘인간사전’이 아니다보니 인터넷에 문의해보았습니다. 그러자 [과학백과사전]에서 ‘고인류학상 최고원인(最古猿人)의 한 개체의 속칭.’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 유례를 설명하고 있었는데요. 제가 덧붙이자면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여성 표본’이 되겠습니다.
정말 뇌 사용량이 늘어나면 영화에서의 일이 발생하냐구요? 음~ 영화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그것 어디까지나 ‘이론’이자 ‘가설’입니다. 그렇다보니 너무 사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하는데요. 영화는 영화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것 명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실제의 사례를 알고계신 분 있으시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작품으로 감독이 얼마나 한국을 나쁘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구요? 으흠. 영화 ‘제5원소 The Fifth Element, 1997’의 국내 20분 가위질 상영과 이후의 영화 ‘택시 Taxi, 1998’에서 연출된 한국인 비하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인터뷰를 통한 해명이 있으니 따로 찾아봐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동양의 모습’에 대해 생각의 시간을 선물 받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외국 작품에서 한국의 멋지고 우수한 면만 찾기보다는 왜 그들은 한국을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다시 적으면 ‘우리가 좋은 모습으로 알려졌다면 영화에서 일부러 악당처럼 묘사되었을까?’인데요.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의 의견이 궁금해지는군요.
네? 혹시 이 작품이 ‘블랙 위도우의 프리퀼’이냐구요? 으흠. 사실 저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는 건 비밀입니다. 하지만 결말에 도달하면서 그런 접점이 없었다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어 볼 수 있었는데요. 아무리 루시를 연기한 배우와 블랙 위도우를 연기한 배우가 같아도, 세계관이 달랐다는 점을 적어봅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또 한편의 영화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이야기를 통해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선 인류의 모습을 그려주셨으면 한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TEXT No. 23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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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LUCY, 2014 영화감독 뤽 베송 님은 〈루시〉라는 영화를 찍으려고 양자물리학을 어느 만큼 살피거나 배우거나 헤아리거나 알아보면서 이녁 마음에 담았을까? 이 영화 〈루시〉를 보는 사람은 양자물리학을 어느 만큼 알거나 배웠거나 새로 알거나 배우려고 할까? 한국에서는 이 영화를 ‘액션’ 갈래로 나누는구나 싶은데, 영화 〈루시〉는 ‘액션’ 영화일까? 액션으로 보고 싶으면 액션으로 보아도 된다. 다큐 영화로 보고 싶으면 다큐로 보아도 되고, 공상과학으로 보고 싶으면 공상과학으로 보아도 되고, 드라마로 보고 싶으면 드라마로 보아도 된다. 어느 갈래에 넣든 대수롭지 않다. 대수로운 대목은 오직 하나이다. 이 영화가 밝혀서 보여주려고 하는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루시’라는 가시내는 영웅이 아니다. 그저 수많은 지구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다시 말하자면, 루시가 아니어도 우리 누구나 ‘루시와 똑같이 뇌를 100퍼센트 쓰는 몸’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우리 가운데 이처럼 뇌를 100퍼센트 쓰려고 훈련하거나 공부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 훈련과 공부를 하는 사람조차 뇌를 어느 만큼 쓰는가를 제대로 읽거나 아는 사람은 몹시 드물다. 왜 모를까? 왜 알 수 없을까? 실마리는 아주 쉽다. ‘스스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수수께끼를 풀 수 없다. 스스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살듯이, 스스로 죽으려고 하는 사람이 죽는다. 루시는 처음에는 ‘이제 죽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자, 이때에 루시는 어떻게 될까? 말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주먹잡이 사이에서 죽음길과 똑같이 뒹군다. 루시는 이 다음에 ‘반드시 살겠다’고 생각을 고친다. 자, 이때에 루시는 어떻게 될까? 루시는 그냥 죽을 몸이었을 테지만 그냥 죽지 않는다. 스스로 살아남는 길을 갈는지 아니면 몸이 조각조각 찢기면서 죽는 길을 갈는지 모르나, 루시는 ‘나 스스로 바라보기’를 한다. 이리하여 뇌를 꽤 많이 연다. 스스로 죽음으로 가다가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어느 만큼 떨친 루시는 ‘웃음도 눈물도 없는 고요한 넋’이 된다. 그러나, ‘뇌가 열리는 흐름’을 느낀 뒤, 이 뇌는 끝까지 열릴 수밖에 없구나 하고 알아차리는데, 끝까지 열리는 길에 어떤 일이 생길는지 아직 모른다. 이리하여 이 한 가지 두려움이 있고, 이 한 가지 두려움을 모질게 겪고 난 뒤(몸이 조각조각 나는 일) 비로소 고요한 마음을 되찾는다. 고요한 마음을 되찾은 루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을 ‘할 수 있어’도 ‘어떤 것’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아직 모른다. 아니, 알기는 알지만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이러니, 굳이 ‘루시처럼 뇌를 연 사람보다 똑똑하지 않은 과학자’한테 찾아가서 묻지. 스스로 할 일을 알면서도 아직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니까 과학자한테 물어 볼밖에 없다. 스스로 다 아는 것을 남한테 묻는다. 루시는 뇌가 많이 열렸어도 아직 스스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아마 우리 가운데 거의 모든 사람들도 루시와 같으리라 느낀다. 뇌가 제대로 열리는 줄 알아채고, 제대로 된 슬기를 받아들여서 몸과 마음이 새롭게 거듭나더라도 이를 옳게 느끼거나 받아들이지 못한 나머지 바보스러운 짓을 일삼을 수 있다. 그리고, 뇌가 어느 만큼 열리면 ‘순간이동’쯤 손쉬울 테지만, 이런 대목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사회의식에 갇힌 지식이 아직 몸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루시는 100퍼센트로 뇌를 열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어디에나 있다’를 깨닫고, 이를 손전화 쪽글로 보낸다. 루시는 처음부터 ‘어디에나 있’었으나 그동안 이를 못 보았다. 책이나 영화나 삶이나 모두 매한가지이다. 흐르는 대로 쳐다본대서 알 수 없다. ‘쳐다보기’와 ‘들여다보기’와 ‘바라보기’와 ‘살펴보기’는 모두 다르다. 이 모두 ‘보기’이지만, 어떤 눈길과 마음과 생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사뭇 다르다. 그러니까, 그저 쳐다보면 제자리걸음이고, 넋을 잃은 채 멍하니 쳐다보면 뒷걸음이다. 생각을 새로 지으며 바라보면 첫걸음이다. 새로 지은 생각을 마음에 사랑으로 심으면서 들여다보면 두걸음이다. 내가 손수 지은 생각이 마음에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자라도록 돌보면서 살펴보면 ‘새걸음’이다. 이 얼거리를 우리가 스스로 배우고 헤아리면서 책이나 영화나 삶을 마주할 수 있으면, 어떤 책이나 영화나 삶을 마주하더라도 가장 깊고 넓은 ‘고요누리(제로포인트)’까지 깨달을 수 있다. 그러니까, 루시도 깨달아서 철이 든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고, 우리들 누구나 깨달아서 철이 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약물 힘을 빌어야만 깨닫지 않는다. ‘약물’은 우리가 스스로 수수께끼를 내고 실마리를 푸는 온갖 ‘길(가능성)’ 가운데 하나이다. 어떤 사람은 밥을 먹다가 깨달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길을 걷다가 깨달을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죽음을 보고 깨달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새나 나무를 보고 깨달을 수 있다. 아무튼, 철이 들어 새로운 숨결로 거듭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굳이 ‘1차원 세계에 있는 몸뚱이’를 붙잡을 까닭이 없다. 1차원 세계 몸뚱이는 가만히 내려놓고, 모든 차원을 홀가분하게 넘나들면서 날아다니는 ‘까만 씨앗’이 되어 ‘하얀 바람’을 타고 다닌다. 영화 〈루시〉를 보는 사람들이 적어도 ‘양자물리학’은 공부하기를 바라고, 양자물리학을 웬만큼 공부했다면 ‘람타’도 공부하고서 이 영화를 새롭게 볼 수 있기를 빈다. 4348.4.1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영화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