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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책무_Writers and Intellectual Responsibility
하하하! 이 책을 옮긴 강주헌 선생의 글이 날 웃게 만들었다.
[''촘스키의 글이 이제는 식상할 때도 됐는데…''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다]는 첫문장. 맞는 말이다. 촘선생의 책을 지난 달에 7권이나 내질렀다. 물론 한 권은 언어학 관련 서적이지만, 막 두 권째를 펴서 30쪽 가까이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A4 5장이면 요약 가능한 책이군! 이었다. 하지만, 지금 책장을 덮고 느끼는 건 그 이상이다. 역시나 사람은 오만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기 마련인가 보다.
이 책은 촘선생과 강주헌 선생이 밝히고 있듯이,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을 상대로 ''글 쓰는 사람과 지적인 책임''이라는 강연을 하고,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모르겠다. 처음엔 굉장히 거창한 제목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우물쭈물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두껍지도 않은 책이었기에 쉽게 샀던 책이기도 했지만, 제목에 압도된 뒤로는 시험공부가 도피처였다.
언젠가 교육철학 에세이를 쓰면서 개진해 나갔던 논리와 비슷할까-싶은 생각으로 읽어 나갔다. 글쓰는 사람들. 문자, 그리고 문서는 그 힘이 대단하다. 특히 법치국가에서 성문법의 힘은 말로 더 해서 뭐하랴.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절대반지가 바로 그것인데. 어쨌든 그 어마어마한 힘을 어떻게 써야할지. 그리고 글장이들에게는 어떤 책무가 따르게 되는 것인지 촘선생은 얘기한다.
1장 지식인의 책무를 펴서 첫14페이지를 넘기고, 15페이지에 눈이 이르면, 이 책의 에센스를 만나게 된다. 촘선생의 책들은 대부분 그런 것 같다. 정의와 선언에서 출발하는 그는 어쩔 수 없는 합리적 이성주의자일까?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다.] 고 말하는 촘선생.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안다. 흥, 쳇.
하고 책을 덮을까? 하는 고민을 하며 읽어 내려간 그 문단의 다음 문장.
[''지식인의 책무''를 좁은 의미로 해석하려 한다. 미학적 차원 등 많은 부분은 논외로 한다.] 뭐랄까. 과학자 다운 깔끔함이랄까, 책임 한정이랄까. 어쨌든 내 흥미를 끌기에 적절했다.
이 책의 대부분은 촘선생의 생각을 전달하고, 그 생각에 대한 논거와 자료들을 나열하면서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있다.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거짓과 위선''에 대해 송곳으로 가차없이 찌르고, 눈과 코 앞에 들이댄다. 보고, 맛보고, 느끼고 그대로 전하라고. 요즘의 지배 사상이 ''돈을 벌어라! 너만을 생각하라!''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 ''인도주의''니 ''복지국가''니 하는 선전의 거품을 걷어 버리고 진실을 ''까발리라''는 것.
한미FTA가 얼마나 불평등한 것인지. 그리고 미국 지도계급이 어떤 방식으로 뇌를 굴리는지. 촘선생이 찔러댄 구멍에서는 피가 낭자하지만, 대중들은 TV앞에서, 쇼핑센터 안에서 시간과 돈을 버리고 있다. ''정정당당한 자유시장''은 그들의 의미로 쓰고 있음을 고발하는 촘선생. 어찌나 절실히 다가오는지. 미국이나 영국 역시 일단 자국 산업을 ''공정한 자유시장''에 내놓아도 경쟁력이 있을만큼 보호무역을 했다. 이젠 됐다 이거지. 세계를 대상으로 이젠 ''공정한 게임''을 하자고 이리저리 치댄다.
촘선생은 무기를 팔아먹는 것도 웃기는 장사라며 일침을 놓는다. 만들어 둔 F16을 여러 국가에 대출을 주면서까지 팔고, 그 이득으로 F16을 업그레이드 해서 팔아먹은 국가들로부터 방위체제를 갖춘다. 대출에 대한 이자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한다. 또 만들어서 남은 재고를 팔고, 다시 업그레이드 하고... 순환! 그렇게 미국의 항공우주산업은 발전하고, 돈도 그쪽으로 흘러가고.
책은 짧다. 읽기 쉽지 않다. 이미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임금 노동자는 임금 노예와 다를 바 없는 현실이고, "엘리트 계급이 복지국가를 위축시키고 폐지하려는 공동의 목표로 결속되어 있고", 워렌 버핏 같은 인간들은 정말 소수다. 나도 걱정된다. 촘선생이 책의 마지막페이지에 써 둔 문장. "내가 지금까지 변죽만 울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촘선생이 변죽만 울리고 말게 되어버린 세상인지, 우리가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인상깊은구절] 미국민은 올바른 일을 하고 싶어하지만 미국의 애타적이고 고결한 자선에 적대적인 세계가 배은망덕하다는 ''변하지 않는 진실''에 세뇌되어 있다. 비슷한 이유로 압도적 다수가 가난한 사람을 더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복지 예산의 삭감을 주장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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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28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29세에 MIT대학 부교수가 되었고, 1955년 ‘언어이론의 논리 구조’라는 논문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은 후 세계적인 언어학자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세계 문제와 미국의 패권주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수많은 논문과 비평을 통해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는 강대국들의 폭력과 인권 유린을 고발함으로써 세계의 양심이란 평을 받고 있다.
진실이 지배하는 세계가 가능할까? 촘스키는 우리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그런 예가 있었다는 사실을 찾아내서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진실을 보려고 애써야 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고 우리를 다그친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11쪽 옮긴이의 글에서).
우리는 정말로 진실이 지배하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거짓말과 위선이 횡행하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더욱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책을 읽어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몇권의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
저자는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적합한 대중에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실을 찾아내 알리는 것이 지식인에게 주어진 도덕적 과제라고 한다. 이렇게 하는 지식인은 아주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지식인에게는 이런 책무가 뒤따르지만, 자유가 억압받는 사회에서 그 책무에 따른 희생은 실로 엄청날 수 있다(15쪽)고 한다.
도덕적 행위자로서 지식인이 갖는 책무는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12쪽).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이런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저자는 우리가 속한 지식인 계급의 기본적인 실천 우너리가 이 기초적인 도덕률조차 거부하고 있다가 질책하고 있다.
우리는 지식인의 책무란 절박한 문제에 대해 따져보았다.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우리지만 새삼스레 말할 것이 많고 대답할 것도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말들이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살아가고 일하는 공동체에 달가운 소리여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속한 학교와 언론계와 공동체에서 우리의 관심사와 행동에 대해 숨김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변화가 있을 때, 그 때야 비로소 우리는 문명 세계에 들어섰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43쪽).
장하준의 책에서도 거론된 이야기기 여기에도 나온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시장 원리를 앞장서서 거부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처음부터 보호주의를 견지했기 때문에 엄청난 부와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112쪽)는 것이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은 처음에는 보호주의를 하다가 자기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시장 자유주의를 외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실이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기만과 왜곡의 그림자를 뚫고 들어가 세상에 대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고 첫 단계다. 그후 민중의 힘을 조직화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과거의 예에 비춰보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선택이 인간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때가 드물게 있었다(178쪽).
요즘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에 대해 마음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이 책의 내용이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오랜 세월동안 일당독재나 일인독재에 시달리고 특히, 왕권에 시달리던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는 것은 진실이 알려진 결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삶은 극적으로 변화시킨 드물게 있었던 예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개발도상국으로 식민지화에 저항한 나라가 특히 눈에 띈다. 일본이었다. 그후 일본은 산업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자체의 식민지를 개척했다. 일본은 점령군으로서 야만적 권력을 휘둘렀지만 서유럽국들과 달리 식민지들을 산업화시키고 발전시켰다(115쪽). 이런 내용은 옥에 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뉴라이트가 하는 소리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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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를 보니 아이티에 미군이 들어간 모양이다. 며칠 전 강진으로 초토화가 된 아이티의 치안 유지를 위한 조치라고 하는데 공항과 대통령궁에 주둔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점령"이라는 표현을 하고, 또 다른 쪽에선 "원조"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점령" 표현에 열을 올리는 쪽은 프랑스 인데 이 사람들이 특별히 그러는 이유가 있는가 싶어서 알고 보니 아이티가 예전 프랑스 식민지였다고.
이번 지진 전까지 아이티는 이름을 들어보긴 했나 싶을 정도로 낯선 곳이었다. 뉴스에 나왔을 땐 어디 남태평양의 휴양지 정도인가 싶었는데 흑인들이 보이 길래 아프리카 어딘가 보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중남미의 작은 섬나라였다. 그것도 도미니카 공화국과 나눠진 섬 한쪽에 있는. 원래 거기 살던 사람들이 아닌데 노예로 끌려 와서 억지로 뿌리를 내린 모양이다. 그간 강대국들 틈에서 괴로웠을 텐데 이번 지진으로 최소 20만 명이 죽었다니 이렇게 불행한 일도 있을까. 텔레비전으로 공지되는 ARS에 전화를 몇 통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런 와중에 강대국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 바쁘니, 거기 무슨 지하 자원이라도 있는 건지.
노암촘스키는 미국인이지만 가장 미국을 싫어하는 지식인이라고 한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다국적기업과 그들의 눈치를 보는 각국 정부를 향한 분노를 숨기지 않는 학자이다. 그의 책은 처음 읽는데 언어학 방면으로도 뛰어난 업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9.11 전후로 사회운동가 이미지가 강해진 느낌이다.
"중요한 사실을 적합한 대중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지식인의 할 일이라는 것이 이책의 주제다. 너무 당연한 소리를 이렇게 길게 하나 싶겠지만 현실은 이런 기본적인 것도 지켜지지 않는 무법의 세계라는 것. 아니 법은 있지만 소수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라고 해야겠다. 각국의 정부, 특히 가장 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정부마저 다국적기업의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일이 일반 대중들에겐 불의한 것인데도 미디어 마저 한통속이어서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사례를 들면서 가장 양심적이어야 할 조직의 파렴치한 행위와 이를 감싸 주는 언론을 비판한다. 특히 미국의 예를 들면서 그간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인권을 지킨다는 미명하에서 벌였던 여러 사건들이 사실은 다국적기업의 이익을 위한 정부의 종 노릇으로, 이들이 손을 댄 곳에는 가난과 전쟁 등의 상처 밖에 남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정해야 할 지식인들 조차 여론 조작에 동참하는 모습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언론의 근본이 힘있는 자들에게서 나온 것이 그 이유라고 분석한다. 뉴욕시의 반서민 정책으로 시민들이 떠나고 있는 상황을 "뉴욕시, 활발한 인구 순환 환경 조성"이라는 제목으로 묘사하는 예를 접했을 때는 얼마 전 미디어법이 통과된 이후의 MBC 보도 상황을 지켜본 나로서는 섬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촘스키는 그래도 중요한 사실이 대중에게 전달 되기만 한다면 이러한 불의는 저지될 것이라고 대중에게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 책은 호주에서의 초청강의를 바탕으로 그간 취합 한 자료를 모아 구성한 것으로 같은 주제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1, 2, 3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이 약하다. 게다가 역자의 기계적인 번역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중간중간 가시가 걸린 것 같아 술술 넘어가진 않는다. 촘스키의 특징이 세계적인 석학답지 않게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것이라는데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영화 "블랙호크다운"에선 독재자를 잡아 주려는 미군에게 소말리아인 들이 좀비 같이 달려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앞뒤 사정은 다 자르고 최대한 객관화 하는 듯한 시점을 유지한답시고 다큐 형식을 빌어 촬영 하니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멍청한 소말리아사람 들에게 분노를 터뜨렸을 것이다. 소말리아는 식민지에서 독립한 직후 독재자에게 오랜 기간 통치를 받다가 정권을 뒤집은 지 얼마 안된 시기에 군부가 서로 경합하는 상황이었다. 이걸 정리해 보겠다고 들어간 미국이 가장 강력한 군부 지도자를 무시하여 잡아 들이겠다고 하면서 많은 민간인까지 죽였는데 이런 상황을 모르는 사람에겐 그저 죽어가는 미군이 불쌍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자기 밥그릇도 없는 밥상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딘 19명의 병사의 목숨이, 외세에 대항하다 사라진 천명의 목숨보다 귀중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소설가 김훈은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독서는 무의미 하다고 했다. 영화 하나를 봐도 이면을 보려는 노력을 하게 된 나에겐 이책을 읽었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