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고등학교시절 새교과서를 받으면 집으로 가져와서 제일 먼저 국어교과서를 읽었다. 앉은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고전문학을 빼곤 대부분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소설이나 수필은 너무 재미있었다. 국어 점수가 잘 나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국어를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도 학창시절 좋아했던 소설이나 수필, 시의 좋아했던 일부 내용은 정확히 몇페이지까진 기억못하지만 왼쪽페이지 혹은 오른쪽페이지의 윗쪽,중간,아랫쪽 어느 부분에에 실려있는지 그 위치와 배웠던 계절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국어에 대한 관심? 때문에 문이과 사이에서 고민도 많이 했고, 대학을 합격하고도 교차지원한 국어교육과를 가느냐 마느냐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은 점수가 더 잘 나왔고(물론 수학과 과학을 잘한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국어보다 점수가 나은..), 더 재밌다고 느꼈던(점수가 더 잘나와서 재밌다고 느꼈는지 진짜 재미있었는지 알 수 없는...) 수학, 과학과 연계된 과를 선택했지만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 소설과는 완전한 이별을 했다. 하이탑과 정석은 버리지 않고 지금도 보고 있지만, 이상하게 내가 그렇게 재밌어 하던 국어는 흔적도 없다.
진로 선택 당시 국어교육과에 대한 미련이 계속 있어서 많은 고민을 했었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이게 옳은 길인가란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 미련을 떨쳐내기위해 20살 이후 중고등학교때 좋아했던 한국 소설이나 수필류에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던것 같다. 그러다 대학교시절 과외를 했었는데, 과외하는 아이방 한쪽 벽면의 책장에 가득있는 한국 소설 전집류가 보였다. 그걸 보면서 속으로 우리 부모님께서는 왜 내가 중고등학교때 책을 한권도 사주시지 않으셨을까 원망도 했고, 나중에 부모가 되면 아이의 나이와 과정에 맞는 전집류를 잔뜩 사줄것이라 다짐도 했었다. 그런데 과외했던 학생을 보니까 책장에 한장도 넘기지 않는 새책이 대부분이었고, 책을 읽을 시간도 없는것 같았다...그리고 전집의 출판사를 보니까 편집부분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지 않다 평이 내려진 출판사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부모님께서도 잘 모르시고 홈쇼핑 같은 곳에서 쇼호스트의 말에 넘어가 싼맛에 구매를 하신것 같기도 했다.
창비에서 교과서와 문제집류를 출간해서인지는 몰라도 뭔가 신뢰가 가고, 중고등학생들이 읽기에 좋은 구성인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물론 성인이 읽기에도 좋다. 사실 운수 좋은날, 빈처, 벙어리 삼룡이, 화수분은 중,고등학교시절 읽어보기도하고 문제 지문으로도 자주 봐왔던지라 너무 반가웠었다. 특히 운수 좋은 날은 교과서에 전문이 실려 있었던 단편인지라 더욱 반가웠다. 운수 좋은 날을 배우던 당시 정말 잘 쓰여진 소설이라며 혼자 감탄했던 기억도 난다. 화수분은 선생님께서 꼭 읽어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당시 국어 선생님께선 문제를 풀기위해 접근하는 교육 방식을 비판하셨었다. 그리고 항상 "얘들아, 너희가 시험 공부하느라 바빠서 지금은 읽진 못하겠지만 졸업하면 꼭 읽어봐~"라고 말씀 하셨었다. 그리고 좀 재밌던 기억중에 고등학교 입학날 뽕을 읽고 독후감을 써갔는데, 선생님께서 나에게 "넌 뽕을 읽었니?"라며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드신 기억이 있었다. 당시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대부분의 학생이 그지역 중학교 출신이었다. 타지 학생은 8명?정도 였었다. 타지에서 입학해서 낯선 환경에 적응 못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 덕분에 첫날부터 재밌는 학생으로 보여줬었다. 그 외에도 중고등학교시절 배우고 읽었던 단편이 많이 실려있다. 처음보는 단편도 두세편 있다. 물론 고등학교시절 문제집 지문을 통해 부분 부분 조금씩 본걸 기억못하는거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메일 해설이라 생각한다. 실제 고등학교 선생님과 국문학을 전공하신 분께서 서로 대화를 주고 받듯 편안한 문체로 각 소설에 대한 해설을 해주시는데,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받아 들일 수 있다. 소설만 읽고 덮었다면 몰랐을 사실을 한번 짚어 주시기 때문에 이해도 쉽고 재밌었다. 내가 만약 중3이라면 겨울 방학동안 창비의 20세기 한국소설 전집을 읽을것같단 생각이든다. 고등학교 입학하면 정말 독서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 바뀐 교육 과정을 잘 모르지만 교과서와 문제집을 출간하는 창비가 꼽은 단편이라면 분명 고등학교 들어가서 접하게될 소설들이라 생각한다. 반면 이 책의 단점은 낱말풀이 부분이다. 물론 그림같은게 함께 있어서 이해를 돕는건 너무 좋았다. 하지만 모르는 단어들이 나올때마다 뒤에서 가나다순으로 찾아야 된다는게 단점이다. 낱말풀이 부분이 차라리 1),2)처럼 숫자가 붙어 있어서 순서대로 찾을 수 있게 하던가 각주, 미주 넣기를 했다면 보기 편했을것이다. |
|
20세기의 한국 소설문학 중 주옥 같은 중단편 소설을 엄선해 시대별로 한데 묶은 [20세기 한국소설] 시리즈 중 현진건, 나도향 외 편.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 등 각 작가들의 대표작을 실었다.
간행사 |
|
문학교육을 담당하는 현장의 교사들과 전문연구자들이 작품에 대한 감상점들을 제시하였다. 이들의 도움을 받지만 결국 스스로 작품의 비밀에 접근해가는 독자적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교육은 정답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질문하는 법을 함께 훈련하는 것이 듯이 우리가 직면한 교육의 위기, 문학의 위기를 치유할 지름길일 것이다. |
|
예술가의 삶은 고달프고, 힘든가보다. 다행이도 나의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내가 해달라고 하는건 거의 다 해주셨다. 아빠는 한평생 건축업을 하시면서 착실하게 살고 계신분이시다. 나는 그래서인지 나의 결혼상대자가 아빠 같은 사람이었으면, 하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 속 주인공은 나에게 있어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로인해 주위사람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지 생각해 보았을까? 남자라면 적어도 가장이라면 일정정도 책임감은 있어야 할 텐데. 지금 당장 주인공은 예술의 꿈을 이루기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양산하나, 신발 한 켤레 사기 힘든 삶이란 어떤 삶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극 중에 주인공이라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 보았다. 어느 사람이 부인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지 않을까. 정말 가슴 아픈 삶 일 것 같다. 친한 친구 중에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화가이다.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다른 생업을 하시기보다 역시 예술가의 길인 화가의 길을 걷고 계신다. 친구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하셨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깊은 것이다. 그리고 나도 친구의 이러한 말을 들었을 때 내심 공감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소설의 주인공에 대한 답답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삶이란 정해진 답이 없는 것이기에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주인공의 삶과 마음을 이해해보고 싶다. |
|
바보 같은 인물이다. 멍청한 인물이다. 한결같은 인물이다. 듬직한 인물이다. 착한 인물이다. 내가 소설 벙어리 삼룡을 읽으면서 삼룡 이에 대한 생각의 변화이다. 삼룡이는 참으로 바보같은 인물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시선과 말투에 반응 않고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하는지 말이다. 삼룡이는 주인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도 하는 인물이다 주인아들의 괴롭힘에도 그저 어린아이의 장난으로 밖에 받아들이지 않으니 말이다. 삼룡 이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변함 없는 일물이다. 주인아들의 괴롭힘에도 자기가 살 곳은 주인댁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일한다. 삼룡 이는 아씨를 살리기 위해 불길 속에 몸을 던졌다.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다른사람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소설 속에 삼룡이는 벙어리로 나오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삼룡이를 벙어리 좀 더 심하게 말해 병신으로 만든 것은 마을 사람이고, 시대다. 벙어리라고 해서 생각이 없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삼룡 이에게 ‘너는 벙어리니까’라는 탈을 씌어주고 삼룡 이를 옭아맨 것이다. 삼룡이도 똑같은 사람이다. 생각할 수 있는.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삼룡이 같은 인물은 보기 힘들 것이다. 혹 삼룡이 같은 인물이 있다 하여도 소위 말하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중학교 때의 일이다. 한 친구는 소위 말하는 ‘왕따’ 였다. 그 친구는 늘 상 말이 없었다. 주위 친구들이 못살게 굴어도 반항하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나 역시 그 친구는 원래 그렇게 따돌림을 받았던 친구, 말을 하지 않는 친구로 인식하고 방관하게 되었다. 그 이후 고등학교에서 우연히 만난 그 친구의 모습은 중학교 때와는 달리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 친구가 당한 그대로 다른 친구에게 하는 모습은 나에게 충격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주위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혹 삼룡이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배려의 손길과 관심의 손길을 보내보는 게 어떨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