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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찾기 힘들 것이다. 때론 진리 마냥 여겨지는 견고한 법칙마저도 절대적이진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들, 인간은 그 변화를 창조하는 주체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변화하는 환경 안에서 살아야만 하는 존재이다. 삶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시간에 의해 우리의 하루하루는 제약을 받고 있다. 인간과 환경, 양자간에 이루어지는 오묘한 소통에 따라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는 이루어지고 있다. 며칠 혹은 몇 달이라는 짧은 시간은 이 변화를 느끼기에 충분치 못하다. 하지만 시간이 쌓여 이룩해낸 몇 년 혹은 몇 십 년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이루어냈는지, 세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모든 이들이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려 드는 요즘이기에 젊음이 가져다준 혼란함을 뛰어넘어 세상 전체를 조명하는 지혜를 터득한 이들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못하고는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지혜는 그들에게 시간이 가져다준 것이기에 어느 시대에나 통용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케임브리지의 교수라는 직위를 떠나 한 아이의 할아버지로서 자신의 손녀딸을 위해 써 내려간 애정 어린 이 편지가 가치 있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Some books are to be tasted, others to be swallowed, and some few to be chewed and digested.'라는 문장처럼 책은 종류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다르다. 사랑과 우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삶과 죽음, 몸과 마음 등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저자가 이미 언급하였듯 어느 주제에서부터 읽어도 된다. 읽는 이의 흥미에 따라 좀더 관심이 가는 주제는 정독을 하고 그렇지 않은 주제라면 건너뛰어도 된다.
한 주제, 한 주제 읽어나갈 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하나의 조각과 만나게 된다. 호주에서 태어난 영국 국적을 가진 소녀 Lily 의 짧은 삶으로는 결코 읽어낼 수 없는 세상의 법칙이 한 노인의 눈을 통해 그려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어렸던 시절, 자신이 경험한 영국이나 호주와는 다른 세계를 손녀딸에게 들려줌으로써 세상의 법칙들이 상대적임을 이야기해주고 싶어했다. 네팔, 중국, 일본 등 서양인의 눈에서 보았을 땐 보편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 역시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며, 그곳에서의 삶 역시 영국이나 호주에서의 삶과 같은 삶임을...
노인의 혜안은 실로 어마어마한 영역에 걸쳐 있었다. 특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정상/비정상으로 나뉘어지곤 하는 성적 소수자 문제에 이르렀을 땐 열린 마음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은 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세상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기 힘들다며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자신의 말이 손녀딸에게 또 다른 절대적 존재로 부각되진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을 듯 싶다.
300페이지가 조금 넘어가는 분량을 읽는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하루에 하나 혹은 두 개의 주제를 읽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나의 더딤에는 이유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책은 느리게 읽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노인이 가져다주는 푸근함이, 손녀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빠름과는 어울리지 않음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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