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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이렇다. 크래프톤에서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를 원작으로 하는 게임 트레일러를 봤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길래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을 기반으로 만드는가 싶었다. 더군다나 외국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게임이니 궁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비록 크래프톤 산하의 스튜디오지만 개발자들도 그렇고 엄연히 외국 회사다. 이렇게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게임 트레일러 영상 하나가 결국은 책을 읽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리즈 후속작인 <피마새>까지 읽게 되었다.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눈마새> 4권, <피마새> 8권을 읽었는데, 결코 질리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 읽은 지금은 더 읽을 이야기가 없다는 아쉬움마저 든다. 그만큼 푹 빠져 있었다는 뜻이다. <피마새>는 <눈마새>에서 반세기가 지난 이야기를 다룬다. 후속작이긴 하나 세계관만 공유할 뿐 전혀 다른 이야기로 구성된다. <눈마새>는 인간 케이건, 레콘 티나한, 도깨비 비형, 나가 륜과 사모, 이렇게 각 종족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면, <피마새>는 이렇다 할 주인공이 없다. 있긴 있지만 이야기 비중이 한쪽에 치우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고 이들의 각자의 시선으로 전개해 나가다 종국에는 하나의 사건으로 모아진다. 전체 분량이 상당한데 이렇듯 다양한 인물들이 나와 지루할 뜸 없었다. 워낙 <눈마새>가 수작이라 <눈마새>의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그에 버금가는 아니 그보다 더 뛰어난 서사를 들려준다. 특히 자주 전쟁 씬이 나오는데, 단순 치고받는 싸움이 아니라 종족 특성을 살린 전략과 전술은 그야말로 혼을 쏙 빼놓는다. 이외에도 소설의 세계관을 확고히 하고 다양한 인물들의 만나 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피마새에게 좀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끝으로 소설에는 수많은 명언이 나온다. 아래 글들은 내가 건진 글이다. 싸우는 이가 쥔 칼, 요리하는 이가 쥔 칼, 조각하는 이가 쥔 칼은 모두 쓰임이 다릅니다. 따라서 칼을 보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별, 부모나 고향 등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것들은 그냥 받아들여야 해. 그것들이 주는 이익과 마찬가지로 손해도. 그런 손해에 괴로워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그 손해를 줄이거나 손해를 이익으로 바꾸는 일을 생각하는 쪽이 낫지. 상황을 타개하려면 먼저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행하지 못하는 일이며, 지멘 또한 분노의 표출 쪽에 더 매력을 느꼈다. 말벌집은 뒤흔드는 것이 아니다. 피할 수 있는 문제를 굳이 떠안을 필요는 없다. 현자는 우자를 경멸하지 않는다. 경멸은 항상 그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지. 벗어날 수 없는 것에는 순응해야 하지. 태양의 움직임이나 계절의 변화 같은 것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나에게 개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은 개뿐이다. 절대적 빈곤 보다 더 괴로운 것은 상대적 빈곤이다. 흥분하여 재잘거렸다. 새소리 비슷했지만 그 소리를 듣고 날아올 새는 없다. 필사적으로 중간 위치를 지켜야 한다. 땔감과 재 사이에 있는 불과 마찬가지다. 그것이 사는 것이다. 바람이 모든 나그네를 밀어 주고 별이 모든 나그네의 길을 인도해 주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나그네는 자신이 갈 길을 알아요. 목수치곤 혀가 매끄럽구나. 원을 그리려면 반드시 중심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중심이 원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막상 칼날이 뽑히면 칼집은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다. 팽개쳐져, 잊히지. 어떤 전망에 대항하고 싶다면 그게 확실하냐고 묻는 대신 더 확실한 전망을 내세워야겠지요. 아라짓 제국의 승리 공식. 첫째, 엘시 에더리가 참전한다. 둘째, 둘째 이하는 없다. 단순화해서 생각해 보자. 살인자와 피살자 중 누가 살아남는가? 살인자다. 후손을 남기는 것은 생존자와 사망자 중 누구인가? 생존자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살인자의 후손이다. 당신의 삶이 행복하다면 당신의 살인자 조상들에게 감사해라. 당신이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태초에 당신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시간 동안 당신의 조상들이 죽느냐 죽이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죽이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단 한 명이라도 선택을 잘못했다면 당신은 태어날 수 없다. 우리는 존재 자체로 허다한 살육의 증거다. 정말 괜찮은 개새끼에요. 세상에 흠결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상 사회란 존재할 수 없기에 이상이다. 무수한 실패는 바꿔 말하면 무수한 경험이다. 모든 승부가 그렇듯이 결국 바둑도 이기기 위해 두는 것입니다. 저는 승리가 최고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부에 임하다 보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승리도 패배도 이기려고 노력한 후에 얻는 것이 가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선을 다한 패배자에게도 승자에게 보내는 것과 똑같은 찬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승리나 패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기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기기 위해 바둑을 둔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결코 신념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신념이 부족할 때가 아니라 신념으로 충만하다고 생각할 때야. 별점: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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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페이지 8권. 눈물을 마시는 새에 이어 20여년만에 다시 시작한 피를 마시는새. 이미 눈마새를 읽었기에, 세계관은 완벽 파악되었고, 대호왕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했기에 금새 몰입할 수 있었다. 분량이 어마어마하기에 등장인물도 사건도 많고, 줄거리 쓰는것도 어렵기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로맨스에 집중하여 리뷰를 쓰기로 했다.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정우와 래콘들이지만, 가장 로맨스 분량이 많았던, 얄미운 커플 스카리와 부냐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부냐의 언니는 니어엘 헨로, 알콜쓰레기이긴 하지만, 엄청난 능력을 지녀 전쟁영웅과 같은 위치에 오른다. 대장군 엘시 에더리의 부위였던 니어엘은 귀족처녀의 표본과 같은 여동생 부냐를 엘시에게 소개시켜주고, 첫 만남에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약혼을 한다. 그러나 높은 작위의 남편을 갖지못해 열등감을 느낀 어머니밑에서 자란 부냐는 허영심으로 군대관련 행사를 다니던중 군법을 어기고 간자의 편지를 반출한 죄목으로 하늘치위의 시체처리소에서 노동을 하게 된다. 엘시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라지만 올곧기만 한 엘시는 자신이 더 충성을 하면, 황제가 사면해주리라 믿고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황제는 엘시를 후계자로 삼고 그에게 부냐 대신 규리하변경백의 딸과 결혼시키려 한다. 발케네공작의 아들 스카리 빌파는 뷰냐늘 사랑했다. 엘시에게 대장군 자리도 뺏기고 부냐도 뺏겼다고 열등감에 빠져 있던중, 엘시가 부냐의 사면에 소극적이자, 자신이 부냐를 탈옥시키고 부냐를 발케네로 데려간다. 부냐의 탈옥으로 인해 황제의 적이된 발케네는 레콘 부대를 앞세워 황제와 싸우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인 발케네에게 불만이 많았던 스키리는 빌파가문의 비기인 도깨비감투를 쓰고 아버지를 죽이고 본인이 공작이 되는데~~ 줄거리만 보면, 스카리는 희대의 로맨티스트 같지만, 책 읽는 내내 그 뻔뻔함과 무식함에 치를 떨게 됩니다.부냐 역시 하는거 없이 뻔뻔하고, 부냐의 어머니까지 합해지니 스카리마저 그 모녀에 질려합니다. 그래서 둘이 불행해지기만을 기다렸는데! 이 바퀴벌레 한쌍은 마지막까지 잘 살았을 듯한 마무리가 ㅜㅜ 그나마 엘시와 정우의 미래가 긍정적이라 다행이다 싶지만, 스카리와 부냐 때문에 갑갑하네요! 권선징악이 확실하지 않은 이영도 작가님! 그래도 존경합니다~ㅋ 스카리 부냐커플! 징글징글하게 오래 살기를~~ 너희들 성격상 불화는 필수니 서로에게 불행을 주는 커플로 장수하기를 바래~~~ 부냐어머니 모디사 여사님~~ 발케네 성에서 오래오래 사세요~~ 절대 다른데 가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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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는 계속 변화를 이야기 한다. 뭔가 계속 변한다.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는 세계관이 고정되어 있는 느낌이 강했다. 레콘은 레콘이고, 나가는 나가며, 도깨비는 도깨비고, 인간은 인간이었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각 종족들이 계속 변한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며 무언가를 향해 계속 달린다. 그래서 재미있다. 그런데 개인적인 느낌에서는 뭔가 아쉬운 점이 있다.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많은데 그 인물들이 살아있는 것이 아닌 작가의 말이 되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에서 말이다. 삼국지와 비교해 볼 때 분명 삼국지의 인물들은 피를 마시는 새보다 전형적인 영웅들이 나온다. 유비가 그런 성격이기에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긴 하지만 읽으면 분명 유비는 살아서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근데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주인공들이 훨씬 개성있는데 큰 세계관에서 변화라는 주제를 향해 누군가의 의도대로 그렇게 움직이는 느낌. 이것은 사실 폴라리스 랩소디에서도 느꼈던 점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좀 더 심하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설명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이 살짝 아쉬웠다. 주인공들이 뭔가 내가 주인공이야 난 이렇게 움직이고 싶다고 외치는 것이 아닌 난 역사의 한 인물이고 운명에 따라 움직이는 말이야. 이런 느낌. 그럼에도 재미있다. 한 번 읽으면 계속 다음을 읽게 된다. 인물의 아쉬움을 이야기의 전개에서 궁금증을 만들어 보완한다. 무슨 사건이 터지려고 이런 인물을 등장시키는 거지? 앞으로 무슨 사건이 터질까? 그리고 인간과 죄에 대해서 계속 나온다. 주인공이 어떠니 죄가 어떠니. 개인적으로 아직 이 부분에서 작가의 메시지 전달은 약했던 것 같다. 계속 그 주제를 중간중간 던지지만 마지막에 가서 확 마무리하는 느낌.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잘 표현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인간과 죄라는 주제에서는 뭔가 2% 아쉬운 느낌이다. 여기까지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삼국지와 드래곤 라자를 합친 듯한 소설이었다. 마지막으로 독을 마시는 새와 물을 마시는 새도 소설로 써주셨으면 좋겠다. 독을 마시는 새와 물을 마시는 새는 읽으면서 엘시와 정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둘의 사랑 이야기로 다음 권을 써주면 좋겠다는 자그마한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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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의 장르 소설 '피를 마시는 새' 8권이 모두 담긴 세트다. 전질의 수는 이전 작품인 눈물을 마시는 새와 비교해 2배지만 크기까지 완전한 2배는 아니다. 둘 다 구매했다면 비치했을 때 보기 좋기도 하지만 필자의 경우 배송 시 다량의 도서와 함께 주문했기 때문인지 처음부터 겉박스가 살짝 닳아있었다. 전작인 눈물을 마시는 새의 속편이다. 따라서 전작의 인물이나 사건들이 언급되기도 하므로 전작을 읽고 읽는 것을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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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서늘한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과 비인간, 권력과 욕망이 얽힌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은 자신의 출신과 정체성을 탐색하며, 점차 강해지지만 그 과정에서 동료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신과 죽음을 겪는다. 특히 중반부에서 중요한 인물이 예기치 않게 희생되는 장면은 충격적이면서도 이야기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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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 빌려 읽다, 우연한 기회로 눈물을 마시는 새 영상을 접하게 되어 옛추억에 또 읽고 소장할겸 전권 구매. 함께 구매한 눈마새 다 읽고 이번 책 2권 펼치자마자...! ㅜㅜ 추가) 2권 다읽고 3권 펼쳤더니 이건 또 무슨................ . |
| 눈물을 마시는 새의 후속작입니다. 눈물 마시는 새에서 시간이 흐른 시대가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영도님 소설 중에서 드래곤 라자도 유명하지만 피를 마시는 새와 눈물을 마시는 새 두 작품 역시 유명한 작품이라 읽었는데 역시나 재밌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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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영도 작가님의 작품 <피를 마시는 새>를 읽고 적는 리뷰글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작품 관련 스포일러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를 완독하자마자 얼른 구매하여 미친듯이 읽어내려간 작품이다. 단단하고 정교한 세계관 속에 역동적인 이야기와 관계를 불어넣은 놀라운 작품이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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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판타지의 걸작 수십년 전 오늘날 회기물처럼 중세 판타지가 범람하던 때가 있었다. PC통신을 통해 온갖 수준 이하의 글타래들이 난무하던 시절, '드래곤라자'를 통해 이영도 작가가 등장했다. '드래곤라자'에서 뽐낸 솜씨를 완성한 작품이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동양과 서양의 관념을 맛깔나게 어울러 창조한 세계, 특히 한국적인 요소를 아낌없이 쏟아부은 여러 개념들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순수 문학으로서의 판타지 장르를 접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봐야할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