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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터 웨버 감독이 2003년에 만든 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를 보았다. 내가 골랐다면 다른 영화를 보았을 테지만, 아내가 같이 보자고 고른 것이어서 그냥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볼수록 눈길은 빨려들어가고, 영화에 깔리는 아름다운 소리 덕분에 귀는 즐거웠다. 사랑에 눈 뜨고 그림에 눈 뜨는 아가씨를 잘 그린 영화였다. 깔끔하고 맛깔스러웠다.
2. 그리트(스칼렛 요한슨)는 1665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집안이 어려워 돈을 벌러 남의 집에 일하러 간다. 그 집안 사람들의 끼니를 챙기고, 장을 보고, 집을 깨끗이 치우는 게 그리트의 일이다.
집 임자인 요하네스 베르메르(콜린 퍼스)는 그곳에서 가장 그림을 잘 그리는 사내다. 아내 카타리나(에시 데이비스)와 사이가 좋아 아이를 여섯이나 두고 있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돈이 많은 반 라이벤(톰 윌킨슨)이 사간다.
그리트는 그림방을 치우다 베르메르가 그린 그림에 빠져든다. 제 아버지도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어깨 너머로 배운 눈은 있는 셈이다. 장모인 마리아(주디 파핏)를 빼고는 누구도 집안에서 베르메르의 그림에 눈길을 주는 이가 없는데, 그리트가 제 그림을 알아보자 베르메르는 좋게 생각한다. 그래서 남모르게 같이 그림일을 한다.
3. 이 영화를 만들 때의 감독은 많은 것을 담고 싶었지만 많이 참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갖 것에 대하여 제 나름의 생각을 영화 속에서 말로 풀어 알려주려 애쓰던 우디 알렌 감독과는 많이 달랐다. 거꾸로다. 많이 알려주기보다는 줄여서 적게 나타내었다. 더 나아갈 수도 있는데도 아껴서 참았다. 참는 데는 선수였다. 그게 오히려 가슴에 와닿았다. 구질구질하지 않았다. 넋두리를 늘어놓거나 덧붙이는 게 없어 좋았다.
베르메르가 그리트에게 보내는 사랑도 모자라기만 하다. 기껏해야 물감을 어떻게 하는지,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말할 뿐이다. 손 한 번 스쳤고 입술에 손을 갖다대었을 뿐, 다락방에서 서로에게 끌려 입맞춤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감독은 나아가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마음속은 온갖 생각으로 가득할지 모르지만.
반 라이벤도 마찬가지다. 그리트를 한 번 안아보고 품어보고 싶었다. 돈 많은 장사치라서 걸릴 게 없다. 그렇지만 그리트를 구석에 몰아넣고는 고작 입맞춤으로 끝이다. 옷을 찢어버리고 제 뜻대로 하고 싶었지만 감독은 말렸다. 거기서 그만...
제 옆지기가 하찮은 하녀 따위에게 제 귀걸이를 달게 한 뒤 그림을 그린 것을 알았다면, 그 아내인 카타리나는 그리트한테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머리라도 잡고 쥐어 뜯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눈을 파는 게 성이 났지만 "쟤는 글을 읽지도 못하는 아이에요...내집에서 나가..." 하고는 그리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망치려하지만, 감독은 거기서 그만...하고 끝을 맺는다.
베르메르의 딸인 코넬리아도 감독의 바람에 따랐다. 엄마한테 그리트가 어떻게 하는지 시시콜콜 일러주면서 괴롭힐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리트가 아끼는 접시를 깨뜨리고 빨아놓은 옷에다 흙을 묻히는 것으로 끝냈다.
그리트도 다를 바가 없었다. 베르메르와 같이 그림을 이야기하며 같이 말을 많이 할 것으로 보였지만, 감독은 더 나아가지 않았다. 창가에 있던 의자를 치워 그림이 답답하지 않게 했다는 것만 베르메르한테 말할 뿐.
4. 감독은 말로 나타내기보다는 카메라로 찍은 모습으로 알려주려고 애썼다. 그게 좋았다. 찍은 뒤에 편집을 잘 해서 그렇겠지만, 화면에 빨려들어가게 하는 힘을 지녔다.
그리트가 제 집을 떠나 베르메르의 집으로 일하러 갈 때 어디로 갈지 생각하느라 마을 광장 한 가운데에 섰을 때, 카메라는 위에서 찍었다. 마치 시계 바늘이 어디로 가는지를 비추는 듯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 광장을 지나칠 때도 카메라는 하늘에서 아래로 그리트를 찍어 보여주었다.
그리트 때문에 성이 난 카타리나의 얼굴과 그리트를 보는 베르메르의 얼굴을 카메라는 가깝게 번갈아 가면서 찍어 보여주었다. 사내는 그리트가 마음에 들고, 아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말은 하지 않아도 카메라가 가깝게 잡은 얼굴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트를 훔쳐보는 코넬리아의 모습은 카메라가 늘 멀리서 잡았다. 때론 흐릿하게 잡기도 하고. 뭔가 궁금하기도 하고, 골려주기도 싶은 얼굴을 보여주려는 것이리라.
그리트가 파란 두건을 쓰고 귀걸이를 한 채 앉아 있을 때, 베르메르는 그림을 그리면서 그리트한테 입술을 축여보라고 한다. 아랫입술을 입 안쪽으로 넣어 윗입술로 아랫입술에다 침을 묻히는 모습은 얼굴과 입만 나오도록 찍었다.
되풀이하는 그리트의 모습을 보면서 베르메르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냥 꼴딱 넘어가야 하는데,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림만 그릴 뿐...그리트가 아름답고 마음이 끌리지만, 돌을 보듯 참는다. 카메라는 베르메르가 그림만 그리면서 참아내는 마음을 차분히 담아내었다.
베르메르의 장모는 사위가 그리트를 그리는 줄 알면서도 내버려둔다. 그림이 곧 돈이니까. 카타리나가 나들이를 나간 틈을 타서 그리트한테 귀걸이를 내준다. 그런 뒤 다시 돌려받을 때, 귀걸이를 받고 난 얼굴에 슬픔이 가득 묻어있는 걸 카메라는 가까이 다가가며 잡았다. 돈 때문에 귀걸이를 내주긴 했지만 딸의 아픔을 생각하는 엄마의 얼굴로 돌아왔다. 말은 하지 않아도 얼굴이 말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5. 빛깔도 아름다운 영화였다. 그래서 눈이 즐거웠다. 그리트가 부엌에서 양파를 까고, 무를 썰고, 당근을 자르고, 양배추를 써는 첫 꼭지도 빛깔이 보기 좋았다. 베르메르 집안에서 벌이는 잔치 때의 푸짐한 먹을 거리와 온갖 그릇들도 눈길을 끌어갔다. 베르메르와 반 라이벤의 집안 곳곳에 걸려있는 그림은 두 말할 나위가 없이 눈을 즐겁게 했다. 딸이 쇠사슬에 묶인 아버지에게 젖을 물리는, 루벤스의 그림 <키몬과 페로>도 벽에 걸려 있었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 베르메르와 그리트 사이의 사랑은 보기에 애틋하고 잘못 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푸줏간 임자 아들인 젊은 피터(킬리언 머피)와 그리트 사이의 사랑은 풋풋하고 싱싱해서 볼만 했다.
잔치 때 고기를 갖고 베르메르 집에 온 피터가 그리트한테 "한 번 웃어주면 안 돼?" 하자, 그날 일을 하느라 지친 나머지 그리트는 뿌리친다. "오늘은 싫어요" 피터가 재치있게 대꾸를 한다. "그럼 외상장부에 적어놓죠. 그리트의 웃음 한 번..."
그리트 노릇의 스칼렛 요한슨은 착착 감기는 맛은 적었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 했다. 베르메르와 늙은 라이벤, 젊은 피터까지 사내 셋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베르메르한테 잡혀서 그림방에서 모델 노릇을 할 때, "이러지 마세요... 마님께서 아실 거에요..." 하며 얼굴을 찌푸리며 걱정을 하는 모습은 베르메르를 더 사로잡을 뿐이었다. 왼손으로 부엌칼을 만지거나 걸레로 창문을 닦는 모습은 어딘지 서투르게 보였다. 오른손잡이의 생각일까?
도톰한 입술에 탱탱한 가슴을 가진 '자두처럼 농익은 모습' 그대로인 그리트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반 라이벤을 맡은 톰 윌킨슨이 없었으면 영화는 조금 느슨해졌을지도 모른다. 베르메르가 그린 좋은 그림을 탐내듯 아낙네도 그런 눈길로 보는데,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그리트에게 빨래를 하나씩 제끼면서 다가가는 모습은 먹이를 노리는 짐승처럼 보였다.
베르메르를 맡은 콜린 퍼스는 나로서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치렁치렁한 머리로 웃지도 않고 늘 생각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는 건 그림쟁이가 아니라 철학자인가? 사줄 사람이 바라는 그림을 그리며 살 수밖에 없는 밥벌이의 고단한 삶을 그렇게밖에 나타낼 수 없었을까?
오히려 돈을 벌어야 집안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으므로 그림을 그리도록 사위를 몰아세우는 장모 마리아 노릇의 주디 파핏이 눈길을 끌어갔다.
6. 영화에 나온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하기도 했지만, 감독이 지나치지 않도록 줄여가며 찍은 모습 때문에 영화 속의 그림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슴에 잘 와닿았다.
제가 갖고 있는 신분을 뛰어넘지 못하고 그 틀 속에 사는 게 조금은 답답했지만, 베르메르나 그리트가 1665년에 쉽게 넘을 수 있는 담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림으로만 남은 그들의 애틋한 사랑보다, 그리트와 피터가 나중에 나눴을 사랑이 더 보고 싶다.
나온 지 열 해가 되지 않은 영화라 그런지 디뷔디는 괜찮다. 화면이나 소리가 깨끗하다. 덤으로는 예고편이 들어 있다. 2006년에 8,400원이나 주고 샀는데, 이젠 3,900원이다. 세월이 흐른 값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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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뭔가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뭔가에 몰입하고 집중해서 그 순간만이라도 잡생각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뭔가 집중할 것이 필요해서 계속 찾게 되는데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기존에 좋았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된다. 퇴행 현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암튼... 그러던 차에 jollyman님 블로그에서 [베르메르 vs. 베르메르]라는 책의 리뷰를 보다 무릎을 쳤다. '맞다, 베르메르'
이 영화는 내가 미국 온 첫 해에 보았던 영화다.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마 자연스럽게 영화도 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역시 그랬으니깐.
이런 영화는 뭐랄까? 언제 봐도 좋은 것 같다.
베르메르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이 영화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진주 귀고리 소녀』를 인상 깊에 읽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영화이다. 물론 원작에서 잘 복원해냈던 17세기 네덜란드를 충분히 살려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장점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관계에 집중하고 관계를 부각하고자 이외의 것들은 과감히 생략했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거리가 풍성하다.
베르메르의 작품들이 그림으로 혹은 인물로, 인물이 입은 의상으로 살아난다. 심지어 배역을 맡은 배우들까지도 베르메르의 그림 속 인물들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다. 그림을 영상으로 보는 즐거움이 크다. '아, 저 옷!', '아, 저 그림!' 심지어 배우들의 동선까지도 세심하게 계산을 했다.
그러니 영화에 저절로 빠져들 수밖에.
그림은 등장인물들을 연결해주는 매개도 되고, 등장인물의 욕망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림뿐 아니라 영화속에 등장하는 배경들과 소품들이 모두 그러하다. 감독의 섬세한 손길을 영화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거기에 더해진 빛과 색.
베르메르가 빛과 색에 담은 이야기가 결국은 원작을 지은 작가의 상상력이나 영화를 만든 감독의 상상력도 자극한 게 아닌가 싶다. 그 빛과 색. 그리고 거기에 담긴 이야기.
'Girl With A Pearl Earring'라는 하나의 그림이 원작과 영화를 만든 계기가 된 걸 보면 말이다. 암튼 감독은 매우 충실하게 베르메르의 작품과 그의 삶을 복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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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복원한 소녀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진주 귀걸이를 클로즈업하면서 이 그림 전체를 보여주는데, 스칼렛 요한슨이 분한 소녀는 그림 속 그녀와 매우 흡사하다. 그림의 이미지나 분위기도 잘 살렸고. 아마 이때 당시 스칼렛 요한슨이 스물이 채 안 됐던 걸로 아는데 그림의 이미지뿐 아니라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선도 매우 잘 살린 것 같다. 아직 못 보신 분이 있다면 주말에 꼭 한 번 볼 것을 권한다. 리뷰 쓰려고 검색해보니 예스24에서 겨우 3900원에 DVD를 구입할 수 있다.
[덧붙임] 무슨 리뷰에 핵심인 사랑 이야기는 쏙 빠졌냐 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왜 남녀간에는 사랑 빼면 할 이야기가 없는 건지 좀 속상해하는지라.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고 관계를 맺어가는데 꼭 '사랑'이 개입될 필요가 있나? 뭐 그런. 그러나 영화에서는 화가와 소녀의 관계와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잘 묘사한다.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이나 찰나의 떨림, 그 순간. 인물간의 관계나 감정선도 매우 공들였다는 걸 볼 수 있다. 모든 게 매우 섬세하다. 작은 떨림의 순간, 그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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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책 표지를 봤을 땐 어떤 소녀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 특히 베일로 얼굴과 머리를 감싸고 사는 중동 지역 같은 곳의 억눌린 소녀의 이야기일거라고 내 마음대로 상상하고서 참 갑갑한 이야기겠다, 재미없겠다 생각했다.
두번째로 책방에서 이 책을 만났을 땐 대강 훑어보고 예술가와 그 작품에 얽힌 이야기임을 알게되었고 구미가 당기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책보다 영화로 먼저 접하게 되었는데 책을 먼저 볼 걸 하고 살짝 후회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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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탄생 배경에 대해 작가가 상상한 내용을 책으로 펴내고 다시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따라서 영화 속 내용은 허구이다.
주인공 그리트는 요하네스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요하네스는 화가로 아내와 장모, 그리고 여섯이나 되는 아이들이 있다. 요하네스의 부인은 화가의 아내이나 그림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며 다만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고 요하네스를 구박하고 그의 화실에는 출입조차 하려하지 않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부는 정열적인(?) 관계로 아이가 여섯이나 되고도 둘을 더 낳으니 이건 뭥미? ㅡㅡ;;) 장모의 그림을 이해하는 수준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으나 중요한 사실은 장모 또한 요하네스의 그림 그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얼마의 돈을 벌 수 있느냐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으며 요하네스에게 후견인을 연결하여 후견인이 원하는 그림을 사위로하여금 그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요하네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에 대해 목말랐을 터. 그 때 하녀로 그리트가 들어오게 된 것. 그리트는 화가인 아버지를 두어서 그런지 그림에 대해 폭넓은 식견을 가졌다. 그의 작업실에서 그가 더욱 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창문을 닦아서 빛이 잘 들어오게 하며 그림의 구도도 바꾸어 본다.
그런 하녀를 요하네스는 눈여겨 보게 되고 그림 그리는 법이나 물감 만드는 법 등 이것 저것을 가르쳐 주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감정이 흐르게 된다. 이 영화는 특이한 영화였다. 처음부터 몽환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음악으로 시작해 각 등장인물은 별로 대사가 없고 눈빛과 분위기로 말을 하더니, 두 사람의 감정신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어서 둘이 서로 좋아하는지 아닌지 헷갈리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감정이 확! 표현 되는 것은 영화의 거의 뒷부분 정도라고나 할까. 음탕한 후견인의 요청으로 요하네스는 그리트를 그리게 되는데 (물론 원래의 주문은 후견인과 그 가족들 사이의 그리트를 그리는 것이지만 음탕한 후견인으로부터 그리트를 지키기 위해 요하네스는 그리트를 따로 그린다.) 이 때 모델인 그리트의 귀에 부인의 진주귀걸이를 걸어준다. 그리고 사랑스런 눈빛(?)으로 그리트를 바라보며 그녀를 화폭에 담는다.
자! 부인은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분노한다. 그리고 그림을 보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요하네스는 그녀를 말리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림을 본 부인은.. "차라리 나를 그리지 그랬어요!!" 라고 하며 절규한다...!!!
분노한 부인에 의해 쫓겨난 그리트는 자기에게 추파를 던지던 고깃집 아들을 찾아가 정사를 맺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어? 화가 아저씨 좋아하는거 아니었나?... 나중에 네이버에 찾아보니 화가 아저씨와의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 욕망의 분출구에 의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그림 속의 소녀는 화가가 사랑한 여인이었다는 것이 작가의 상상력의 요지인데 화가와 소녀의 사랑이 참 절제되어있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서로 사랑하는 것인가? 아닌가?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물론. 화가와 소녀가 주인과 하녀의 관계이며 화가는 이미 유부남인것을 감안하면 그들의 사랑이 이해는 간다.) 그리고 그것은 자칫 영화를 밋밋하게 만드는 것이다.(바꿔 말하면 배우들이 절제된 사랑을 잘 연기한 것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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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를 그리기 전, 진주귀걸이를 걸어주기 위해 귀를 뚫는 장면 . 혹자는 소녀가 귀 뚫는 것을 허락한것이 화가에게 순결을 준 것으로 해석하기도. 그러므로 이 장면은 두 사람의 사랑의 절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책으로 먼저 접했다면 두 사람의 그 미묘하고도 오묘한 감정을 보다 잘 이해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후에 영화를 접했다면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겠지.
책 부터 보고 영화를 볼 걸 아쉬운 생각이 든다. 조만간에 책을 읽고 영화를 다시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
|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이 영화를 보게된 이유는 소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덕분이다. 빨려들어갈 듯한 영상과 내용,,물론 난 그림과 같은 예술에 대해 거리가 멀지만 충분히 이해됬고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으로 더욱 이 스토리에 심취할 수 있었다. 재미로 친다면 좀 심심한것도 사실이지만 잔잔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 나는 너무 감명깊게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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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시기 전에 책을 먼저 읽으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상징적인 것들도 많고.. 영화만 본다면 작가의 의도가 뭔지 잘 파악이 안될듯 싶어요, 책을 읽으면서 여러상황과 주인공들의 심경을 잘 파악한 뒤 영화를 본다면 훨씬 이해를 잘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소녀와 화가와의 드러날 듯 말듯한 애정, 침묵이 주는 숨막히는 긴장감, 소녀를 필사적으로 지켜주려는 화가, 그를 향한 소녀의 사랑,욕구.. 책을 읽으면서 상상한 장면들을 영화가 그대로 보여주는 것같았어요. 좋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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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퍼스의 빅팬으로 오랫만에 잔잔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할수있어 행복했다. 네델란드의 국보급 페인팅이라 국외전에도 절대 내보내지 않는다는 작품.. 그림속의 여인과 스칼렛 요한슨은 많이 닮았다. 이런 클래식한 느낌이 나는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 영화를 통해 세계사에 조금씩 관심도 가지게 되고.. 특별히 노출신이 없어도 느껴지는 애틋함.. 그런 영화가 요즘은 별로 없는것 같다. 영화내내 대화는 별로 없지만, 아름다운 색감의 영상이 좋았다. 클로징 부분이 약간 아쉽긴 했지만, 콜린퍼스의 연기를 너무 사랑하고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도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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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20살... 친구들치고는 엄청난 영화를 봐왔던 영화광이다... 그러나 이 영화만큼은 잊을수없다... 이 영화의 매력은 미술에있다... 이 영화를 보고는 몇일동안 내가 정말 그시대에 살았던 사람인양 느끼게만들었고 그 여운은... 이루 말할수없을정도였다... 내용자체에서도 매력적이지만 이영화의 매력은 여배우의 빛나는 외모와 소름끼칠듯한 미술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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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지금 나를 숨막히게 하는 건 바로 그 시선이다. 누군가, 언젠가 그녀를 쳐다보았겠지. 그토록 사랑스럽게 그토록 뜨겁게........ 그런 애틋한 시선을 한번도 받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살아 있다는 것의 기쁨과 허망함이 내 안에서 교차된다. 아쉽고도 안타까운 순간이다. 이 그림의 모델은 누구였을까? 그러나 지금은 그녀도 죽고 그도 죽고......... 오로지 화가의 따뜻하면서도 잔인한 시선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최영미의 <화가의 우연한 시선> 중, 베르메르의 ‘연애편지’ 중에서 필자가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Johanness Jan Vermeer를 알게 된 것은 최영미의 서양미술감상 에세이집에 관한 서평을 쓰면서부터다. 그 때에도 그의 그림에 관한 에세이가 책의 제목으로 뽑혀 있는 것 이상의 관심은 없었다. 최영미의 친절한 해설대로 그저 유럽의 중심과는 다소 동떨어진 북구의 풍습과 복식, 베르메르 작품의 기하학적인 구성에 대한 이해를 얻는 정도였다. 그 뒤로, 나와는 별개의 영역으로 생각되었던 미술의 영역과 감상의 취미를 몇 권의 책을 통해 얻어가는 과정에 있었지만 여전히 베르메르는 금새 잊혀진 화가일 뿐이었다. 그런 필자가 이 지면을 통해 다시 베르메르를 언급하는 것은 엊그제 본 한 편의 영화 때문이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피터 웨버Petter Webber 감독,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 원작)가 그것이다. 필자는 영화가 끝나도록 이 영화의 제목이 베르메르의 불후의 걸작 제목인 것을 몰랐다. 미개봉영화라는 호기심과 주인공의 복식이 어디에선가 본 듯한 친근함으로 선택하여 보게 된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나의 기억은 영화의 유사성을 쫓아 자연스럽게 베르메르를 떠올리게 하였고 화가가 주인공임을 알게 되면서 그 제서야 이 영화가 화가 베르메르의 안타까운 삶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부리나케 검색창을 두드렸다. 그리고 나서야 내 짐작대로 마지막 장면의 그림이 베르메르의 걸작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임을 확인하였다. 17세기 북구(北歐)에서 피어난 안타까운 사랑 내일모레(9.3)면 이 영화가 개봉되는 것으로 안다. 미리 보는 영화 한 편, 사전이해를 가지고 바라보는 영화감상은 꽤나 유익할 것이라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영화의 역사적 시대적 배경은 17세기 네덜란드의 델프트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해상무역의 강국으로 성장 중이었다. 칼뱅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역사상 최초의 공화국에서는 혈기왕성한 신흥 부르조아들이 사회 전부문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였다. 다른 글을 통해 여러 번 언급하였듯이, 문학 혹은 미술을 비롯한 예술의 발전은 상업자본주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여서 당시에는 대규모의 공공미술을 주문할 강력한 군주도 귀족도 추기경도 없었다. 도시의 부유한 상공인들이 귀족과 교회를 대신해 주요한 미술 후원자로 등장하였고 이런 후원자들은 자신들이 새로이 획득한 지위에 걸맞은 세속적인 미술을 요구하였다. 종교화와 역사화의 수요는 줄어든 반면 집단 초상화와 풍속 그리고 정물이 미술의 주제로 각광을 받았다. 이 당시 네덜란드 같은 신흥 부르조아의 나라에서 많은 위대한 화가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아무튼 그 17세기의 네덜란드가 영화의 시대적 장소적 배경이다. 램브란트의 뒤를 이어 시민적-프로테스탄트적 바로크를 대표하는 베르메르는 미술품 거래상이자 여관을 경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 군주와 교회로부터 자유를 얻은 대신에 화가들은 가난을 껴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기에 할스Hals나 얀 스텐Jan Steen의 경우처럼 여관을 경영하는 화가들도 있었다. 베르메르 역시 장모의 도움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신세였고, 일설에 의하면, 말년에는 빚에 몰려 화병으로 죽었다고 전해진다. 영화에서 탐욕스런 장모로 등장하는 인물의 분장과 표정 연기는 그대로 베르메르에게는 무거운 마음의 짐이자 고통이었음이 느껴진다.
![]() 그런 베르메르의 집에 ‘그리트(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 분)’라는 하녀가 들어온다. 그리트는 가난한 집의 살림살이를 위해 하녀가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자본이 지배하는 새로운 계급 간의 불평등이 이미 등장하는 것이다. 군주와 신하 그리고 백성으로 정해진 신분의 대물림과 계급 간의 고형적 불평등은 사라진 대신에 부를 매개로한 새로운 신분질서가 베르메르와 그리트를 주인과 하녀로 만나게 하는 것이다. 주인집의 남자는 화가이고 마님은 많은 아이들이 귀찮기 만한 사치스런 여인이다. 섬뜩한 감시의 눈길을 보내는 마님의 어머니는 그 집의 실질적인 권력자다. 사위의 그림을 가지고 후원자인 ‘라이벤(톰 윌킨스 분)’의 비위를 맞추는 수완 좋은 사업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처소(부엌에 딸린 지하방)처럼 어두컴컴한 생활 속에서 청초한 그리트에게 희망이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을 보러 다니며 만나게 되는 푸줏간집 아들 피터를 만나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주인마님은 쌀쌀 맞기 그지없고 그 어머니의 시선은 징그럽기만 하다. 마님의 큰 딸은 심술궂게 그리트를 골탕 먹이며 알 수 없는 적개심을 그녀에게 드러낸다. 갑갑하고 고단한 삶은 계속되고 좀처럼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변화가 우연처럼 찾아든다. 마님조차 들어가기를 꺼리는 화가의 화실에서 사건은 시작된다. 그리트는 왠지 모르게 그 화실이 편안하다. 묘한 분위기가 그녀를 끌어당긴다. 화실의 유리창을 닦던 그녀를 화가는 바라본다. 화들짝 놀란 그녀에게 화가는 그윽하고 깊은 시선을 던지며 그녀를 훑어본다. 마침내 주인과 하녀는 화가와 모델로 새로운 신분관계를 맺는 것이다. 화가는 그리트를 그리게 되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에게 이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화가의 조수가 되어 물감을 타고 색을 만드는 일이란 부엌의 허드렛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만함을 준다. 화가는 그녀를 자신만의 공간인 다락방으로 이끈다. 그녀의 처소는 지하에서 가장 높은 꼭대기로 바뀐다. 아침을 열며 들어오는 밝은 햇살, 그 곳에서 화가를 위해 물감을 섞고 만드는 그리트, 삶은 아름다워진다. 사랑이 그녀에게 찾아든 것이다. 화가 또한 그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에는 현실의 장애가 너무나 많다. 주인과 하녀라는 신분의 벽, 이미 아내가 있는 화가와 처녀인 그리트, 낌새를 눈치 챈 마님과 장모의 감시의 눈초리, 화가의 의중을 알아차린 딸의 적개심, 화가의 주인인 후원자 라이벤의 그리트를 향한 끈적끈적한 애욕의 시선. 그러니 그들의 사랑은 더욱 애틋하고 안타깝다. 그럼에도 화가를 향한 그리트의 애틋한 사랑은 멈출 수 없다. 사랑이 깊어지면 질수록 그녀는 불안하다. 자신의 의지로 제어되지 못하는 사랑에 초초한 그리트는 피터를 향해 달려간다. 그녀를 거의 유일하게 미소 짓게 만드는 피터를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의 순결을 처음으로 주는 것뿐이다. 사랑하는 화가에 의해 그림으로 그려진 자신을 보는 것이 어느새 유일한 희망이 되어버린 그리트. 그녀는 창을 닦고 있는 자신의 그림에서 의자를 치운다. 화가는 그녀에게 묻는다. “왜 의자를 치웠지” “답답해 보였어요, 왠지 갇혀 있는 느낌이 싫었어요” 그녀는 자유롭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과 하녀, 화가와 모델이 아닌, 아무런 제약과 방해를 받지 않고 화가에게 다가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그리트의 사랑을 알기에 화가 또한 흔쾌히 의자를 치웠을 것이리라. 이제 적어도 정신의 교감과 마음속에 갈무리 한 사랑의 영역에서는 그들은 한껏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화가와의 사랑이 찾아들기 전, 피터는 그리트가 모자를 벗길 원했었다. 그녀는 피터에게도 허락하지 않은 모자를 화가를 위해 벗는다. 그리트의 하얀 모자는 처녀의 순결성이다. 그 모자를 그리트는 화가의 한마디에 벗어 던진다, 그를 사랑하고 있음으로. 모자 속에 감추어져 있던 처녀의 사랑이 마침내 화가의 사랑에 의해 탐스런 금발로 드러나는 것이다. 모자를 벗은 그리트에게서도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음을 화가는 고민한다. 바로 자신과 그녀를 가로막고 있는 신분의 벽 현실의 담벼락은 의자를 치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화가와 소녀의 사랑은 진주귀걸이의 영롱한 빛으로 영원하다. 화가는 더 이상 그리트를 향한 사랑을 애틋한 연민을 포기할 수 없다. 그녀의 귀에 진주목걸이를 걸어주고 싶은 것이다. 이 때의 진주귀걸이는 단순한 장신구 혹은 보석이 아니다. 화가와 그리트를 대등하게 해주는, 하녀와 주인 간의 단절을 이어주는, 이어지지 못하고 막히어 있는 그들의 사랑의 문을 열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열쇠다. 그리트는 진주귀걸이를 함으로써 마침내 그동안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던 신분과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화가의 진정한 동반자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뿐이다. 그리트가, 영악한 장모의 묵인과 공모에 힘입어 마님의 진주귀걸이를 할 수 있는 때에만 그리트와 화가는 사랑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의 눈빛은 안타깝고 처연하다. 그들의 슬픈 사랑은 곧 끝이 날 것임 알기에 애틋하다. 화가 역시 슬프고 처연한 숙명을 안다. 콜린 퍼스Colin Firth의 애잔한 눈빛 연기를 극찬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파국은 바로 찾아온다. 극도로 분노한 마님의 히스테리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어머니의 장신구를 숨겨 그리트를 곤경에 처하게 한) 딸의 모함으로부터, 후원자 라이벤의 집요한 요구로부터도 그리트를 보호해주었던 화가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 천으로 덮혀진 그림을 향해 마님은 소리친다. “저 천을 걷어내, 치워버리란 말이야” “왜 내게는 보여주지 않는 것이야” 화가는 대답한다. “당신은 그림을 모르잖아, 이해하려고도 않잖아!” 그렇다. 화가의 영혼을 이해하고 사랑한 사람은 그리트가 그 집에 들어서기 전까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장모에게 그림은 돈일 뿐이었고 라이벤에게는 자신의 부를 치장하는 도구일 뿐이었으며 마님에게는 자신의 사치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그리트만이 화가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사랑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화가는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가슴 저미는 사랑은,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였으나 누구보다 깊게 신뢰하고 교감한 화가와 하녀의 사랑은 진주귀걸이가 마님의 손에 돌려졌을 때 끝이 났다. 그들의 사랑은 이제 그림 속의 처연하고 애틋한 시선 속에서만 존재한다. 영화를 본 우리는, 그러나 그 진주귀걸이의 진정한 주인은 그리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은 비록 현실의 높은 담벼락 밑에서 깨어졌으나, 그와 같은 이유 때문에, 오히려 영원하고 빛나는 사랑으로 태어났다. 필자를 비롯한 우리는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베르메르의 걸작 속에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시선을 던지고 있는 그녀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안타까운 사랑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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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유명해서 그렇지..사실 영화의 장르를 굳이 말하라하면....예술영화같다. 명화를 소재로 해서 더욱 그렇지만, 네덜란드라는 배경 때문인지 무채색의 안개자욱하고 수로가 많고...1665년의 시대를 화면가득 채워준 흔치않은 영화같다.
튀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은 배우들의 연기와, 밋밋한 듯 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내용전개.... 여러번 봤는데 여전히, 비슷하지만 강한 느낌의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