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책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그런 기준이 있기나 한가. 활용할 지식이 많이 담겨 있는 게 좋은 건가,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긴 게 그런가. 사람마다 책을 읽는 의미가 다르듯 사람마다 좋은 책에 대한 기준도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책이 있다. 읽어서 보람을 느끼면 좋은 책이다. 대학 후배가 지난주 책을 보내왔다. 그래 책에 대한 호감을 표하는 것으로 답례했다. "<아름다운 노년=""> 참 좋은 책인 거 같다. 후딱 읽어보고 방송에 소개해야겠다." 돌아온 후배의 반응이 약간 어이없다. "형, 그건 별 내용 없는 건데요. 그것보단..." 그러고 보니 후배의 말이 전혀 틀린 것도 아니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노년="">(지미 카터 지음/ 김은령 옮김)에는 별 내용이 없다. 그저 카터 부부와 그의 가족들이 몇십년간 계속하고 있는 가족여행에 대한 기록일 뿐이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차차 그게 아니라는, 그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 책은 어느 부르조아 노부부의 단순한 여행담이 아니다. 여행담은 여행담이되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일테면 이런 것들. 인생의 의미, 가족의 소중함,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한 자기확신과 신념의 위대함, 다름을 인정하는 것의 중요성,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 등등. 예의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문체 속에 담겨있는 '카터의 인생론'이 책의 전편에 녹아 있었던 것이다. 지미 카터. 그가 대체 누구인가. 내가 기억하는 카터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그가 우리 사회에 조깅열풍을 불러왔다. 1979년 6월, 그러니까 박정희 정권 막바지에 방한한 그는 당시 국내에 심각한 긴장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러한 긴장조성은 그가 박정희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고 한다. 결국 긴장감 조성의 장본인은 박정희 정권이었던 셈이다. 아무튼 당시 청소년이었던 내게 신기하게만 보였던 건 매일 새벽 일군의 수행원들과 함께 서울 시내를 달리고 있는 미국대통령의 모습이었다. 두번째 기억 역시 한반도의 안보상황과 결부된 것이었다. 1994년의 전쟁위기. 클린턴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카터가 김일성 주석의 중재제의를 받아들여 북한을 방문, 휼륭한 중재력을 발휘, 한반도를 전쟁위기에서 모면하게 한것. 당시 남북정상회담이 구체적으로 계획되었다는 사실, 김일성 주석의 돌연 사망으로 정상회담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얘기 등등. 지금 들어도 안타깝고 전율스러운 얘기들이다. 셋째, 해비타트 운동과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한 기억. 덧붙여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전직'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는 모습. 이것이야 말로 이 책의 제목 '아름다운 노년'에 가장 부합하는 기억이기도 하다. 특히나 하나같이 일그러진 모습의 전직들만 있는 우리로선 아름다운 전직 카터의 존재가 마냥 부러울 수밖에. 카터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 책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고 약간의 시각교정을 통해 알찬 지식으로 재정리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좋은 책'이라 말하고 싶은 이유는 두 개의 문장 때문이다. 책 한 권을 통해 겨우 두 개의 문장을 발견한 게 뭐가 그리 대순가 하고 반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땐 500여쪽이 넘는 책을 읽고도 이렇다할 문장 하나 건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으니, 문장 두 개면 그리 나쁜 결과가 아닌 셈이다. 그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옮긴이의 말에 들어있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이 책을 옮기면서 나이 드는 것은 여행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를수록 숨이 차지만 시야는 점점 더 넓어진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 애쓸 필요 없이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일은 변화시키고 변할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다."(옮긴이의말) 다음은 뒷부분에 나오는 문장. 지미 카터와 50여년을 함께 했던 반려자 로잘린 스미스 여사가 방송과의 인터뷰 도중 했던 말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지를 남겨두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지요." (부부 금슬이 좋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아름다운>아름다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