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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적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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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은 우주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한 두레박의 물   내게 김명인은 동두천 시인이고 동두천은 김명인 시인을 연상시킨다. 경북 울진 바닷가에서 태어난 시인을 두고 내륙 북부 지역 시인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이가 동두천에서 교직 생활을 했거니와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쓴 첫 시집 제목이 『東豆川』(1979년)이라면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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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은 우주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한 두레박의 물

 

내게 김명인은 동두천 시인이고 동두천은 김명인 시인을 연상시킨다. 경북 울진 바닷가에서 태어난 시인을 두고 내륙 북부 지역 시인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이가 동두천에서 교직 생활을 했거니와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쓴 첫 시집 제목이 『東豆川』(1979년)이라면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첫 시집은 강렬한 충격이었다. 기지촌에서 국어를 가르친 경험을 담은 시집에는 태어나서 죄가 된 혼혈아들과 포주집 아이들이 조폭처럼 패싸움을 벌일 뿐만 아니라 기지촌에서 몸을 파는 누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어느덧 30년의 세월. 시인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관심사도 바뀌었다. 어느덧 이순의 나이,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시간에 대한 성찰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다. 두어 달 ‘바닷가 시골집에서 야산의 고사목을 잘라 군불 지피며 갯바위에 올라 낚시나 하면서 살’(「시인의 말」)기도 하고 목숨에 대해 관조하기도 한다.

 

 

우물 
 
한 두레박씩 퍼내어도
우물을 들여다보면
덜어낸 흔적이 없다

 

목숨은 우주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한 두레박의 물
한 모금씩 아껴가며 갈증을 견디지만

 

저 우물 속으로
두 번 다시 두레박을 내릴 수는 없다
넋을 비운 몸통만
밧줄도 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일 뿐

 

깊이 모를 우물 속으로
어제 그가 빈 두레박을 타고
내려갔다

 

 

# 아직은 풍경을 거둘 때가 아니다

 

죽음에 관한 생각은 ‘블랙홀 저쪽의 캄캄한 어둠이 / 세차게 너를 잡아당긴다’(「구멍」), ‘언젠가 초상집 조등 아래 놓여 있던 / 흰 고무신 한 켤레 / 亡者들은 어째서 신발만은 이승에 남겨놓으려는가’(「신발」), ‘한세상 표백할 수 있다면 / 지상의 남루 따위야 누더기로 걸친들 / 벗어버려서 한없이 홀가분한 것’(「빨래」) 같은 곳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죽음은  ‘연구실 창 아래로 옮겨 심던 자목련 한 그루 / 해묵은 가지마다 연두 초록 눈 / 반짝, 뜨고 있다’(「식목」) 같은 ‘바닥 없는 적요 속으로 피어올랐던 꽃뱀의 시간’(「꽃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체 시집 분위기는 죽음을 맞대면하거나 ‘자욱하게 저물고 있는, 저무는 바다 / 그 파랑 속속들이 헤매고 온 물고기 한 마리 / 한입에 덥석 나를 물어줄 때까지 / 나 아직도 바닷가에 낚시 드리우고 서 있’(「외로움이 미끼」)다. ‘무료한 체류’를 하며 ‘따뜻한 적막’을 누리는 셈이다.

 

 

따뜻한 적막

 

아직은 제 풍경을 거둘 때 아니라는 듯
들판에서 산 쪽을 보면 그쪽 기슭이
환한 저녁의 깊숙한 바깥이 되어 있다
어딘가 활활 불 피운 단풍 숲 있어 그 불 곁으로
새들 자꾸만 날아가는가
늦가을이라면 어느새 꺼져버린 불씨도 있으니
그 먼 데까지 지쳐서 언 발 적신들
녹이지 못하는 울음소리 오래오래 오한에 떨리라
새 날갯짓으로 시절을 분간하는 것은
앞서 걸어간 해와 뒤미처 당도하는 달이
지척 간에 얼룩지우는 파문이 가을의 심금임을
비로소 깨닫는 일
하여 바삐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같은 하늘에서 함께 부스럭대는 해와 달을
밤과 죽음의 근심 밖으로 잠깐 튕겨두어도 좋겠다
조금 일찍 당도한 오늘 저녁의 서리가
남은 온기를 다 덮지 못한다면
구둘 한 장 넓이만큼 마음을 덥혀놓고
눈물 글썽거리더라도 들판 저쪽을
캄캄해질 때까지 바라봐야 하지 않겠느냐

YES마니아 : 골드 g*******g 2010.03.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