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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나는 제목만 보고 서경식 교수의 조선 시대 미술에 관한 책일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전작 [나의 서양 미술 순례]처럼 미술 순례 시리즈겠거니, 하고 반가운 마음만 컸던 것이다. 서경식 교수가 재일동포라는 것에 초점을 더 맞추었더라면 제목에 의문을 품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다. 마침 창비라디오책다방에서 이 책을 다루었다. 서경식 교수가 직접 나왔다. 책 읽기 전에 나는 이 방송부터 들었다. 그제서야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됐다.
이 책의 서문에서 상당히 공을 들여 제목에 대한 설명을 한다. '우리/미술'이라는 개념을 서경식 교수식으로 정의한다. 빗금에 대한 부분도 빼놓지 않는다. '우리'라는 말이 사람을 따뜻하게 품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생각에 금이 가게 되었다. '우리'라는 말 뒤에 '너희'라는 선긋기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이번에 확실히 머릿 속에 새기게 된 거다. 사회학에서도 '우리집단'이란 말에는 배척과 경계짓기가 있다고 다뤘는데도 나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우리'라는 말을 많이 써왔던 것. 우리나라의 특이한 점이기도 하다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나의 딸, 나의 아들이란 말보다 우리 딸, 우리 아들이라는 말을 잘 쓰듯, 어쩜 이건 '우리'라는 개념을 떠나 관습적으로 내려온 가족주의적인 말로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선, 또는 '우리'가 되어보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선 그 말이 가시처럼 콕콕 살갗을 찔러왔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책에서 서경식은 '우리 미술'을 말하고자, 여기에 속하는 '우리'에 대한 정의를 서문에 미리 내리고 있다. "공통의 언어와 미의식, 나아가 '혈통'이라는 관념으로 뒷받침되어온 '우리'가 아니라, 근대사의 과정 속에서 식민지 지배를 경험하고, 지금도 분단과 이산이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를 말한다."(12p) 서경식은 '우리'란 개념은 변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어떠해야한다는 고정이 없다고 본다. '우리'에 대해 독자들이 다시 생각해보기를 바라는마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그는 '우리 미술'이 아니라 '우리/미술'로 표기했다. 우리끼리의 미술이 아니라, 우리의 미술, 대한민국의 흐름 속에 근대적 의미가 담긴 미술, 그리고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은, 한 교양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미술 순례길을 기록하고자 한 것이다.
미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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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서 문득, 서경식 선생의 목소리가 궁금해졌다. 서경식으로 검색했더니 창비 트위터에 팟캐스트가 연결되어 있었다. 재생시키고 잠시 다른 일을 하는데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서경식 선생님이, 바로 프리모 레비를 한국에 소개한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이다. 나치즘으로 비롯된 인류의 비극에 대한 '증언 문학'으로 유명하다. 레비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존엄성이 짓밟히고 희망조차 없는 곳, 그는 거기서 인간의 밑바닥을 보았다. 살기 위해 나치에 협력한 다른 수감자들, 처벌받는 것이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 느꼈던 잠시의 안도감은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에게 무거운 짐으로 되돌아왔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고 전복된 그의 인생은 결국 투신자살로 끝난다. "내가 하는 말은 증언이 아니다. 목격자는 그 때, 그 가스실에서 죽어간 사람들이다." 레비는 이 비극적 사건의 증언불가능성, 재현불가능성을 얘기한다. 목격자들이 가스실에서 사라진 지금,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비극은 생존자의 증언에 기대어 추정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생존자들의 주관적 기억에 대한 신뢰성과, 청자가 그 증언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같은 사과를 먹는다 할지라도 각자가 느낀 맛이 다를진대, 하물며 경험하지 못한 일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이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이해는 그들의 상상에 달려있지만, 문제는 이 상상마저도 제한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감히,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범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 『쇼아Shoah』는 생존자, 관련자들의 증언으로만 9시간의 러닝타임을 채움으로써 비극의 재현불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대두되는 문제는 과연,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인류의 비극'을 미학화할 수 있는가이다. 타인의 고통을 허구적인 장르로 다루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피해자가 생존하며, 사건의 여파가 현재진행형인 '실제로 일어난 역사'를 말이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읽을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이 말은 서정시를 쓰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서정시를 읊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어떤 결과를 불렀는가 생각하면, 우리는 서정시를 쓰되 비극을 기억하고 상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재일한국인이라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은 서경식 선생이 주류가 아닌 '민중 미술'에 관심을 갖게 한다. '넋이라도 있고 없고'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재일한국인. "한국인이면 다 알아"라던가, "재일조선인은 일본인 아닌가?"라는 말은 그를 슬프게 한다. 때로는 문화적 콘텍스트를 이해할 수 없지만, 결국 끊임없이 공부하고 소통하는 것에 답이 있다는 서경식 선생님. 일본에 살면서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그는, 주변화된 이들에게 끌릴 수 밖에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조국의 민주화에 휩쓸린 두 형의 옥살이, 여권발급조차 쉽지 않았던 시대를 건너 서경식 선생은 『나의 조선 미술 순례』를 통해 조선의 피를 이은 이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라는 말을 삶의 맥락을 같이 해온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공통점 있는 사람들이라 정의하고 싶다는 그는 주변인, 경계인의 특성으로서 '객관화'를 꼽았다. 주류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를 정확하게 꼬집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예술가 중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이는 정연두가 유일하다. 이쾌대는 월북작가라 남은 자료도 얼마되지 않으며, 심지어 신윤복은 조선시대 사람이다. 책이 작가와의 인터뷰로 구성되었음을 볼 때, 이를 드라마 『바람의 화원』 작가 인터뷰로 교체한 것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가장 흥미로웠던 작가는 다층적 디아스포라인 미희=나탈리 르무안이다. 김별, 기무라 별로도 활동하는 그녀는 부산에서 벨기에로 입양된 이였다. 궁금해서 구글링했더니 직접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와 유투브 채널이 나왔다. 거기서 96년쯤 출현한 방송에서 송지나와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최근 업로드한 『hairy』라는 영상 작품도 보았다. 행복하지 않았던 벨기에의 어린 시절. 한국으로 와 엄마를 찾았는데 나의 반은 일본인의 피를 이었더라는 배경을 알면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될까? 서경식 선생은 경계인,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작가들에 접근하고 있다. 신윤복 같은 경우, 그가 성 소수자였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인터뷰가 시작한다. 설득력이 있는 가정이다. 소개된 작가들의 디아스포라는 다음과 같다. 광주의 증거자, 주부로 살다 예술가가 된 여성, 입양아, 성 소수자, 파독 간호사, 월북 작가 등… '우리'라는 범주를 조금 더 확장해 볼만한 것으로, 서경식 선생은 분류의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일본에서 미술서를 썼더니 작가가 재일한국인이니 그 서가로 가라 합니다. 해당 서가로 갔더니 미술서가로 가라고 하죠. 이것은 분류의 폭력입니다." 프랑스 서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작가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베트남사람이 프랑스어로 쓴 소설이 프랑스문학이 아닌, 제3세계 문학서가에 꽂힌 것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어로 쓰인 책이, 작품 혹은 작가의 국적에 따라 분류되어야만 했을까? 반대로 프랑스어로 쓰인 책은 무조건 프랑스문학으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일까?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가 사미즈다트, 지하출판의 형태로 소련을 떠돌다 결국 파리에서 첫 출간되었다해서 우리가 그 작품을 프랑스문학으로 분류하는가? 작품 주제와 작가의 정체성이 서적 분류에 중요하다면 재미교포 작가인 김은국의 『순교자』는 어떠한가. 6.25라는 민족의 비극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그린 작품은 영미소설로 분류된다. 영어로 쓰였지만 한국적 소재를 다루고 있고 작가의 국적은 미국이지만 이 외 작품에서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투영된다. 왜 한국문학이 아닌가? 내용과 상관없이 영어로 쓰였기 때문에 영미소설이라면, 같은 작가의 『잃어버린 이름들』은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썼다. 서가 어디에 분류되어야 할까? 입양아 문제를 보면,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이 된 플뢰르 펠르랭 경우를 통해 '우리'의 범주를 논할 수 있겠다. 그녀는 프랑스 가정으로 입양되어, 재능을 눈여겨본 아버지의 전폭적 지원으로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그이가 올랑드 정권의 첫 아시아계 장관으로 임명되자 대한민국은 다큐멘터리까지 찍어가며 그녀가 같은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정작 펠르랭은 자신이 프랑스인이며, 친부모를 찾을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엉뚱한 곳에서 '우리'를 외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경식선생은 자신이 일본어로 쓴 글을 일본인들이 멋대로 이해하는게 싫다고 말한다. 단지 일본어로 쓰였기 때문에 재일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자신의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존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과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그것도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의 언어를 통해야 더 또렷하게 전달되는 아이러니가 슬프다. 이 나라의 민중미술이 퇴색되고 그 가치를 사람들이 잘 모른다며 안타까워하지만 결국, 서경식 선생은 선배의 뒤를 잇는 후배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 방식은 다를지라도 인간을, 소외된 이를 바라보며 사회를 되새기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한국과 일본의 주변부에서 보낸 노교수의 '조선'을 이해하는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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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이 다루고 있는 어떤 종류의 '외로움'은 '가족'과 '민족'을 '문맥'으로서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할 때 피해갈 수 없는 감각이다. 오히려 그 '외로움'의 끝에야말로 사람과 사람의 새로운 유대에 관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 그는 이 '외로움'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형상화해나갈까? 지켜보는 나의 마음을 '아들의 앞길을 염려하는 아버지와 같다.' 라고 말한다면, 내가 스스로에게 금하고 있는 비유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 본문 정연두에 관한 글 중에서 p.123
화가들의 예술적인 성취와 삶의 모습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그림에 대한 심미안도 있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역사의식이나 정치의식도 필요하다는 것이 내가 매번 서경식의 글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공부라고 하는 것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온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책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수작이다. 각 화가들을 이야기할 때 깊숙하게 들어가서 취재하고 만난 오랜 시간의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 책 제목에서도 저자의 시각이 상당히 드러난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본 독자들은 조선의 미술이라고 오판하기 쉬울 것이나 우리나라 미술이라는 용어를 굳이 한정지어 틀 안에 가두고 싶지 않다는 작가정신의 산물로 "조선이라는 말을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더 넓은 차원에서 바라보 총칭으로 사용"해서 더 넓은 차원으로의 개념으로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곧 우리는 누구인지를 묻는 작업이라고 것이었다.
당시 신선생은 전남대 교수였다. 계엄군이 포위하고 있었어도 직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택과 대학을 오가고 있었다. 총을 들고 도청으로 들어가지 못했기에 자신이 본 것도 진실과 는 거리가 있다고 했다. 도청에 들어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자만이, 아니 극단적으로 말해 죽은 자만이 진정한 목격자이자 증언자인 셈이다. 이런 생각이 시간이 30년 이상 흐른 지금 골목 어귀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신 선생의 술회는 프리모 레비를 떠올리게끔 했다. 아우슈비츠의 강제 노동을 참아내며 살아 남은 그는 생환 후, 문학가가 되어 40년 이상에 걸친 증언활동을 이어오다가 지친 나머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5.18을 겪은 사람이면서도 정작 자신이 본 것은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는 신경호의 고백은 정신적으로 큰 울림을 주고 생생한 충격을 주었다. 우리 미술의 풍성함을, 그 근원을 이 분을 포함해서 이 책에 실린 많은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역시 민음사는 이런 책의 출간과 편집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서경식이라는 저자의 이름으로 된 책은 무조건 사서 볼 필요가 있노라고 학생들에게도 누누히 이야기했다.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으로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을 책이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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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점을 앞에 두고 본다. 그림이 좋다, 좋은 그림이다. 그러나 뭐라 딱 꼬집어 좋다고 말할 수 없다. 그저 좋은 그림이려니 한다. 이렇게 속으로만 좋다하면서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둘러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다. 저자다. 이 책의 저자 서경식이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는 이미 이 그림을 그린 화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 그가 그림의 작가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단다. 그런 말에 내 귀가 솔깃하다. 들어보자. 어차피 작가를 만날 기회는 나에게 오지 않을뿐더러, 설사 내가 작가를 만난다 할지라도 무엇을 물어보나? 바탕이 되어있지 않은데, 무엇을 물어 볼 것인가? 또한 일껏 해서 질문 거리를 찾았다 할지라도 그 대답을 내가 십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지 못할 바에는 이렇게라도 이야기를 듣는게 훨씬 낫겟지! 그러한 기분으로 서경식을 따라 나섰다. 그가 걸어간 순례의 길에 그저 따라 나섰다. 그가 말한 바처럼, “나는 이 책을 통하여 과연 ‘우리’란 무엇이며 ‘미술’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둘러 싼 폭넓고 깊은 대화를 독자와 나누고 싶다”(13쪽)는 그의 발언에 혹하여 덩달아 나선 꼴이 되었지만, 그가 전해주는 폭넓고 깊은 이야기에 저절로 빠지게 되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해서 386쪽의 길고긴 대화 속으로 들어갔다. 1. 피터르 브뤼헐 신윤복 편을 먼저 보았다. 그렇게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신윤복이 풍속화를 그렸다는 것을 말한 다음에 서양의 풍속화 이야기로 접어들 무렵이다. 즉, 250쪽이다. <서양의 풍속화는 16세기 플랑드르 지방에서 발달했다. 그 대표적인 화가가 피터르 브뤼헐이다.> 그 순간 ‘브뤼헐’, 그 이름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브뤼헐’이란 이름이 흔하지 않은데! 바로 내가 알고 있는 화가였다. 그는 누구인가? 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을 그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렇게 소개되는 화가이다. <바벨탑은 매력적인 주제였기 때문에 많은 화가들이 그렷다. 하지만 16세기 중반 브뤼헐이 그린 그림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53쪽) 그렇게 브뤼헐을 소개한 다음에 그가 그린 바벨탑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그 장을 다 읽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미술과 미술가에 대한 기초지식 덕분에 그래도 잘 읽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 장을 읽고 나서 다시 앞으로 돌아와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지금 이 책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가? 미술 작품에 대한 감상을 말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그 어떤 것을 말하기 위해 미술 작품을 거론하고 있는 것일까? 2. 프란시스 베이컨 그런 의문을 지닌 채 책을 읽어가는 도중에 내가 아는 인물을 만난 것이 무척 도움이 되었다. 다음 만난 인물이 바로 ‘프란시스 베이컨’이다. 내가 아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두 명이다. 한 명은 철학자 베이컨이며 다른 한명은 미술가 베이컨이다. 이쾌대 편에서 저자는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린 ‘프란시스 베이컨 전’을 보러 갔던 일을 언급하고 있다. 거기에 언급된 베이컨이 미술가 베이컨이다. 그 전시회에서 저자는 베이컨의 작품 <초상을 위한 습작>을 보면서 그 제작연도를 떠올렸고, 그 제작연도가 1949년이어서 자연스럽게 그 해 <군상>을 발표한 이쾌대를 떠올리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하나의 실마리는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해서 베이컨은 이쾌대가 되고, 이 쾌대는 저자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가는 것이다. 한국의 굴곡진 근,현대 미술사가 먼저 떠오르는 화두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한국인 유학생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압축적 근대’의 구도(192쪽)와 더 나아가서 체제 저항적이던 일본인 학생과 체제에 들어서지 못할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인 유학생들이 보여주었던 서로 다른 '콘텍스트의 교차와 갈등'(195쪽) 등을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을 철학자로만 알았던 것이 아니라 미술가 프란시스 베이컨을 또한 알았던 관계로 이쾌대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러니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한 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진리임이 분명하다.. 3. 앵포르멜 <인터뷰 자리에서 엥포르멜이라는 용어를 이런 식으로 만난 것은 나에게 의외의 일이었다.> (155쪽) 저자는 윤석남과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말하고 있는데, 엥포르멜이란 용어를 만난 것이 저자에게만 의외의 일이 아니다. 독자인 나도 앵포르멜이란 단어를 여기서 만나다니! 의외의 일이다. 내가 앵포르멜이라는 단어를 접한 것은 진중권의 <현대미학강의>에서다 그 책에서 진중권은 앵포르멜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앵포르멜은 1950, 6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난 예술운동이다. 외부세계의 재현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차가운 기하학적 추상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액션 페인팅과 같은 추상표현주의와 비슷하나 액션페인팅은 그림이 그리는 것의 행위성에 주목하는 데 반해 앵포르멜은 그것이 남긴 ‘물질적 흔적’을 중시한다.> (142쪽) 이어서 진중권은 앵포르멜과 데리다의 동형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진중권은 앵포르멜을 미학적 관점에서, 미술사적 견지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반하여, 이 책에서는 그 앵포르멜에 대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이어가면서 그것이 이 땅에서 어떻게 변형이 되고 있는지를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앵포르멜이 그저 교과서에 설명된 개념이 아니라,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살아있는 개념을 보게 되는 셈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앵포르멜 화가들은 거의 형태를 잃은 인간상을 그림으로써 인간 자체에 대한 부정을 포함한 치열한 투쟁을 펼쳤다. (중략) 이러한 점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앵포르멜은 본디 저항의 예술이다. 적어도 내가 가진 상식에서는 그렇다. 그런 엥포르멜이 현대 한국에서는 본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양식으로서 수용되었고, ‘저항’이 아닌 ‘권력’으로 전화했다는 말이다.> (156쪽) 그런 논의는 왜 중요할까? 그 다음 말이 바로 그 점을 짚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미술이라는 테마를 생각하기 위하여 피해갈 수 없는 문제 중 하나가 이 지점에서도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156쪽) 그 문제점이란 무엇일까 저자가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 미술’이라는 개념이 형식화되고 고정되어 권력으로 변하는 바람에, 그 ‘우리’ 안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한정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저자는 ‘우리/미술’이라고 그 사이에 빗금(/)을 그어, 그 범위 안에 지금까지 배척된 미술/미술가를 집어넣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기성미술계가 배척한/ 배척하고 있는 미술가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 예로 월북작가 이쾌대와 입양인 작가 미희이다. 그래서 그런 작가들과의 인터뷰에서 저항의 상징인 앵포르멜이 오히려 권력으로 작동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속내를 저자는 드러내고 있다. 4. 이 책은 단순하지 않다. 그렇게 저자는 곳곳마다 그런 모습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질문을 던지고, 그래서 그 편협한 한계를 깨부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그려내 보이고 있다. 그것은 그의 가족사로 인해 더한층 진솔하게 다가온다. 과연 진정한 우리가 누구인가? 그런 질문을 가지고 독자들과 폭넓은 대화를 해보겠다는 그의 의도(13쪽)는 그래서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책은 단순한 그림 해설이라든가, 미학 강의가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민족과 역사의 문제까지도 성찰하게 만드는 귀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5. 몇 개의 아포리즘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에서 길어 올린 명문장, 그리고 아포리즘이 많이 보이는데, 그 중 몇 개 소개하련다. <누가 나에게 ‘예술가란 어떤 사람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상으로부터 20센티미터 정도 떠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너무 높으면 자세히 볼 수 없고, 현실 속에 파묻히면 좁게 볼 수밖에 없다.> (137쪽) <예술이 예술 자체로 승화되는 것도 물론 중요한 과제지만, 그 사회에 대해 작품을 통해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제 생각입니다.>(137쪽)
<오히려 아름다운 것만 그려야 한다는 것, 아름다워야 미술이라는 관념 때문에 억압도 있었겠죠>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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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으로서 그가 느끼는 조선의 미술, 왜 조선인가? 글을 읽으가면서 왜 조선미술순례인지 알수 있다. 단순히 미술을 다루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의 전근대역사를 통해서 그시대의 아픔을 나눈 미술가들을 따라가면서 디아스포라 서경식선생에 눈에 비친 우리의 역사를 만날수 있다.
광주민주 항쟁과 민주운동을 그림으로 나타내어 살아있는것이 죄인듯한 아픔을 보여주는 미술을 이야기하는 신경호 작가
꿈을 잃어버리고 꿈을 찾으려고 하고 세상이 계급화되어가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만들면서 단순한 그림이 아닌 사진과 그림의 중간쯤을 보여주는 정연두 작가
우리엄마, 그리고 식민지시대 아픔을 겪어야했던 우리의 여인들 ,정신대할머니의 삶을 미술로 보여주어 우리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윤석남 작가
식민지시대에 일본에서 교육을 받고 서양식화법과 조선의 민족적 묘사법사이에서 갈등했던 이쾌대 작가
드라마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성별이 의심될정도로 조선시대의 여인들의 삶을 그렸던 신윤복
벨기에로 어린나이에 입양되어 떠돌이삶을 살았야 했던 그래서 더욱더 한국적 아픔으로 다가오는 그녀 미희 작가
제목의 미술순례지만 단순히 미술순례가 아닌 우리의 아픈 역사의 순례라는 생각이 든다. 식민지의 설움, 그리고 정신대할머니들의 아픔, 그리고 분단으로 나뉘어져서 상상때문에 미술의 평가를 제대로 하지못했던 시간들
그리고 근대화,세계화라는 명목으로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수많은 아이들을 해외입양으로 보내야했던 우리의 부끄러운 시간들
그것들을 통해서 미술을 통해서 그아픈시간,부끄러운 시간들을 제대로 바라보라는 서경식선생의 바램이 담겨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간간히 일본의 미술사가 나와서 조금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이순례를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은 나 또한 그역사를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동질감 또는 사명감마저 들었기 때문일까?
이책을 통해 모든것을 깨닫고 알게 된것은 아니지만 그시대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시각적으로 느낄수 있는 책을 만났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생각이 들면서 서경식 선생의 다음 순례지가 어딜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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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그녀와 이야기하는 게 어려울까? 그렇지 않을 게다. 그렇다면 그/그녀가 만들고 보여주는 미술 작품은? 정녕 모른다면 친구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동시대 미술(우리에겐 현대미술)을 보고 감상하지 못한다면, 그건 미술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우리 시대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즉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주위를 돌아볼 겨를 조차 없이 무언가에 쫓겨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옳은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자주 전시장을 찾고 자기 자신에 대해 보다 솔직해지고(심지어 자신의 아픔, 상처와 대면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진다면, 현대 미술은 감상하기 어려운 분야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마치 이 책의 저자, 서경식 교수처럼. 그는 태생적 아픔으로부터 두 형의 구속 등 그의 인생 자체가 바로 한반도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만, 그는 이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미술 순례 시리즈의 시작점이었을 지도. 서경식은 미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공감을 가지고 있으나, 전문적인 식견으로 파고 들어 분석하는 이가 아니다. 그리고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 그는 현대 미술 작가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그들의 작업과 작품에 대해 소개하면서도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고 도리어 감동적이고 내가 우리 미술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구나 하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마음을 울리는 작품 앞에서, 그 작품과 그 작품을 만든 작가와의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감동은 커녕, 위선과 위악으로 가득찬 작품 도판을 책에 실고 갖가지 이론을 들이미는 책들을 보면서, 나는 '예술 작품의 감동 앞에선 그 어떤 이론도 무용지물인데'라고 중얼거리곤 한다.(아, 이 중얼거림이란!) 이 책에서도 다소 어려운 단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가령 윤석남에 대한 챕터에서 길게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든지 ..., 하지만 페미니즘은 그저 시류처럼 흘러 지나가고 여성 작가로서의 윤석남에 대하여, 윤석남이 만드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그것을 보다 풍성하게 해주는 곁다리 이야기였을 뿐이다. 현재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신경호, 정연두, 윤석남, 미희, 홍성담, 송현숙, 그리고 월북작가 이쾌대, 조선 시대의 신윤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쉽게 읽히나 가볍지 않고, 진지하고 심각하지만 울거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마치 그런 일들이 있었나 할 정도로 담담하게 서술되고 있다. 아마 그건 이 책의 저자도 이미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피해자였으며,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작가들이 바로 그런 현대를 살아온 이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여러 예술 서적으로 탁월한 에세이스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서경식의 신작 <<나의 조선미술 순례>>도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도리어 작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서 더 좋았다. 2015년, 이 책으로 시작해도 나쁘지 않으리라. **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을 짧게 메모해보았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해 그는 '한국'이라는 단어 대신 '조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한국'은 그 범위가 작아 자기 같은 재일한국인이나 미희와 같은 해외입양아 등 우리 민족 전체를 보여주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단어라 생각했으며, 동시에 '조선'이라는 단어 속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경호, 넋이라도 있고 없고: 초혼 1980, 1980 집에서 그렸을 거예요. 광주항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그렸던 그림이죠. 광주 상황이 끝나고 나니까 거지와 넝마주이, 구두닦이가 하나도 안 보이는 거예요. 그 기간에 다 사라져버렸죠. 그들은 대부분 고아였거든요. 찾거나 신고하는 사람도 없었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들이 언젠가는 광주로 돌아올 텐데 하는 마음으로 그렸던 그림입니다. - 신경호 (63쪽) ** 정연두는 피사체가 되는 일반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작품을 만든다. (84쪽) 정연두, 상록타워 Evergreen Tower, 55×80×32, 사진, 2001 예술가는 사회적인 리더도,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려운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관찰자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기보다 예술 자체가 하나의 좋은 매개체가 되는 것 같아요. 이해하기 힘들어도 "아아, 이건 예술이니까, 아트 프로젝트니까 ... ..." 라면서 관대히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 정연두(85쪽) ** 신윤복, 미인도, 114.2cm * 45.7cm, 비단에 채색, 간송미술관 바로 이런 인상이다. 나 역시 '미인도'에서 같은 인상을 받았다. 남성이 지닌 시선의 폭력에 갇혀 긴장하는 모습도 없고, 거꾸로 거기에 아양 떨며 자신을 상품화하려는 생각도 없이, 정녕 '자연체'인 것이다. 한 마디로 '미인도'의 여성은 '기호'가 아니다. 자신을 그리고 있는 화가가 동성인 여성이거나, 혹은 어쩌면 자기 자신이기에 가능한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282쪽) ** 최근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저는 단지 외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디아스포라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디아스포라가 된 배경에는 어떤 식으로든 강제성이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경제건, 전쟁이건, 혹은 입양 제도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억지로 갈라지고 헤어진 경험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 미희(325쪽) ** 홍성담, 욕조: 어머니 고향의 푸른 바다가 보여요, 1999 섬에서 자란 인간이라서 제게 물은 생산의 이미지입니다. (중략) 힘들 때마다 고향의 푸른 바다를 떠올리면 힘이 났습니다. 그런데 남산에 있는 안기부 지하실에서 그 생산과 생명의 물, 생업으로서의 물, 나의 희망으로서의 물이 하필이면 나를 고문하는 도구가 될 줄 어떻게 예상했겠습니까? 안기부 놈들이 이른바 나를 물과 맞서게 했고, 결국 그 물에게 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날조한 대로 저는 북한에도 두 번이나 왕래한 간첩이 되어버린 거죠. 감옥에서 나왔지만 그 후로는 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되살아나서 완전히 폐인처럼 살았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도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물에 대한 공포를 계속 껴안고 살아갈 것인가? 세계를 이루는 원초적 개념 중 하나인 물에 공포를 가진 채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물과 정면대결하자고 생각했어요. - 홍성담 (33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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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경식 선생은 1951년 일본 쿄토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이다. 1920년대에 살 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간 할아버지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불러 들였고, 선생은 일본 패전 6년 뒤 태어난 것이다.
한편 선생은 70년대 군사독재 시절 형들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힘겹게 보냈다고 한다. 이제는 달라진 상황(그렇다고 별반 나아지지는 않은!)에서 자신의 미적 탐구를 온새미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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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1993) 이후 20년만에 서경식 교수가 낸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읽게 되었다. 사실 서경식 교수는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로 이전에 접했었는데, 쉬워보이지 않아 책들을 읽어보지 못했다. 이번 신간은 사실 '미술'이라는 단어에 호기심이 생겨서 였는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내가 생각하던 내용이 아니었다. 우선 '조선미술'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그러나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에서 '조선미술'의 함의는 그런 닫힌 뜻이 아니다. 나는 '조선'이라는 말을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더 넓은 차원에서 바라본 총칭으로 사용했다." (8쪽에서) 라고 이야기 한다. 재일한국인으로서 대부분 일본에서 살며 다른 근대를 접했던 그의 시선은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더 나아가 이 책의 제목을 지을 당시 '우리 미술 순례'라는 제목을 떠올렸으나, '우리'를 의문의 여지가 없는 전제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 맞지 않아 사이에 '빗금(/)'을 넣은 '우리/미술'로 표기하려고도 생각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정통파 미술평론이나 미술사와는 꽤 거리가 있다. 다른 저서에서 나는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영향 아래, 주류의 이야기에 대항적인 이야기를 대치하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이 책 또한 동일한 입장을 취한다."(12쪽에서) 처음 가진 생각과는 달랐으나 이 책은 내게 무척 인상적인 책이 되었다. '디아스포라' 서경식 교수의 삶과 어떤 의지는 책에 잘 담겨 있었다. 1980년 광주를 미술로 표현해온 신경호 작가를 시작으로 40대에 전업주부로서의 일상을 벗어던지고 미술을 시작한 1세대 여성주의 미술가 윤석남, 벨기에에 입양돼 현재 전 세계를 떠돌며 작품황동을 하는 예술가 미희 등 개인적으로 낯선 작가들이 등장하며 그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주변부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 이 책에서는 그렇게 서경식 교수가 보는 '나의' 순례이다. 무척 새로웠고, 기존의 단일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이 시대, 이 사회에 대해서는 다른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아픔과 상처, 환부를 드러내더라도 그것이 지금의 문제를 넘는 방법이 되리라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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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목해야 할 ‘디아스포라’ 시작부터 착오였다.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인 조선시대 미술에 관한 책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조선’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좁혀 생각해 온 탓이라 자책하더라도 이 책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이 없다. 고조선, 조선, 그리고 지금의 조선이 담고 있는 의미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 민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굳이 우리라는 단어 대신 조선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분명해 진다. 우리가 포괄하기에는 다소 머뭇거려지는 것들에 대한 나름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서경석은 재일조선인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일본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속에 늘 민족과 우리라는 정체성의 문제가 함께 한다. 그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20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서승·서준식’의 동생으로 국가주의적 폭력의 생생한 증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민족과 우리’라고 하는 범주에서 약간 벗어난 존재다. 이 벗어난 존재이기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이 ‘디아스포라’일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 인을 이르던 말에서 유래된다. ‘민족과 우리’라는 범주에서 그 주변을 맴도는 삶과 생각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서경석의 이러한 사고의 결과물이 ‘나의 조선미술 순례’다. 미술을 통해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 속에 담겨진 이야기를 대담을 통해 얻고 저자 서경석의 생각을 담았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현재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있다. ‘긍지 높은 촌놈-신경호, 완고한 맏아들-정연두, 우아한 미친년-윤석남, 분열이라는 콘텍스트-이쾌대, 성별조차 초월한 이단아-신윤복, 이름이 많은 아이-미희=나탈리 르무안에서 사람이 아름다웠다-홍성담, 그녀의 붓질-송현숙’에 이른다. 모두 어느 경계에 서서 그 이곳과 저곳을 이어갈 무엇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신경호에게는 5.18를 중심으로 민족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나, 애착과 객관성의 미묘한 균형으로 본 정연두, 여성과 재일조선인이라는 관점에서 공유함으로써 독특한 관계가 설정되는 윤석남, ‘군상’과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의 이쾌대에게서 월북한 작가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포함하는 다중성의 출발이다. 저자가 신윤복에서 찾는 것 역시 시대상황에서 용납되지 않을 수도 있는 그 작품세계를 통해 본 다중성일 것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디아스포라’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가 미희다. 해외 입양아로 아버지를 일본인으로 확신하기에 더 중첩된 의미가 있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는 한국과 전 세계를 활동무대로 하는 미술가들을 찾아내 그들과 대화를 통해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작품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미술가들과의 대화 속 공감대를 형성하는 매개로 서양 미술과의 비교는 동 서양을 시대비교를 통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기촐르 제공해 주고 있다고 보인다. 우리 민족이라는 범주에서 현 시대가 요구하는 의미의 확장이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재일 조선인, 중국동포, 20만 명이 넘는 해외 입양아에 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과 그 자손들. 여기에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외국인들과 그 후손에 이르기까지 이미 민족과 우리라는 범주에는 그 의미가 확장될 수박에 없는 요소들이 넘쳐난다. 이런 현실이 저자 서경석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디아스포라’에 주목된 것으로 보여 진다. 그 관심사를 미술을 통해 밝히며 의미의 확장을 시도해가고 있다. 우리가 애써 인정하기 싫거나 머뭇거리는 사이 현실이 된 문제에 대해 직시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크다고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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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미술을 재음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확실히 흡족한 일인엇 같습니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라는 도서의 제목을 본 순간 이 책을 통해 조선이 지닌 가치관과 조선의 사람들이 지녔던 인생관 등이 그림을 통해 낱낱이 해부되어 우리들에게 다가올 듯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자 하는, 조상들의 삶의 현장 속에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근원을 탐구해 보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큰 도움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감사하게 읽힐 책같인것 같아서 너무나 긴장을 하면서 이 도서를 한장한장 읽었답니다. 작가가 문장 속에서 말하듯이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더 넓게 바라본 큰 뜻으로 조선미술 순례라고 사용했습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일본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아온 자신이기에 조선은 학대받은 호칭"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작가는 재일교포 2세로써 한국인으로써는 모를 일본 사람들에게 차별을 겪고 모진 세월을 보내왔기에 더욱이 그렇게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표지를 보았을 때, 여백의 미가 잘 살아있다고 생각이 들었고, 포근한 느낌마저 나를 사로 잡았답니다. 이 책의 안에도 모든 사진들과 재질이 컬러로 되어 있어 정말로 고급스럽게 느껴졌습니다.작가를 보지 않고 제목만 보면 조선시대 미술에 대한 미술 서적이거나 에세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데 전반적으로 조선민족미술가들과의 대담과 작품을 통해 저자와 각 미술인들의 생각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도서의 후반부에는 신윤복의 작품들도 소개를 해주면서 나름 조선시대의 미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미술이라는 것은 시대상을 담는 다고 배워왔지만 아직까지 미술들을 감상하면서 그러한 것까지 생각을 하면서 느끼질 못하는 나로써 그저 그림에만 치중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다수의 미술가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깊은 통찰력이 있어 그림과 예술 속에 담아 왔다니 그저 놀라웠습니다. 인터뷰 형식의 글과 저자의 글들이 조합되어 나오기 때문에 지루하지도 않았고 신선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록안의 설명들을 포함해서 총 여덟 명의 미술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저 각 그림들에 대한이론설명이나 어떻게 그려졌다거나 하는 것이 아닌 각각의 미술가들이 살아온 시대상황과 맞물려서 그들의 작품들이 탄생하게된 역사까지 세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들을 통해 역시 인산은 환경과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그 사람에 의해 예술과 역사는 만들어지고 탄생되는 것이기에 사회와 인간, 그리고 예술의 관계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토속 그림에 대한 생각을 해본것이 고등학교 때지 였던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미술이라는 것에 많은 문외한이었던 제가 이 도서를 통해 우리나라 토속 그림에 대해 잘 이해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된것 같아서 너무나 가회가 새로웠고 좋았습니다. 조선과 미술 그리고 작가와 출판사가 연결되어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던 정말로 귀한 <나의 조선미술 순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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