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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면서 생각하는 게 하나 있다. 내가, 남편과 내가 죽고 나면 내 아이들은 전쟁 같은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라 말하지만, 어른들은, 부모들은 인생이라는 커다란 터널 속에서 실패와 좌절보다는 일단 이기는 법을 가르치고자, 공부 잘하는 아이를 만들려고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공부 잘하는 것’은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으니까. 어릴 때는 그나마 부모의 의도대로 아이들이 따라오지만 사춘기가 되면 달라진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수많은 ‘왜’가 떠돌고 있으니... 부모의 말대로 따라오지 않은 것이지. 부모가 말하는 것처럼 잘나지도 않았고, 부모가 말하는 것처럼 똑똑하지 않음을 알아가는 아이들은 폭발 직전의 화산 같다. 어디로든 폭발하고 싶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자신보다 못하고, 못났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그 화살이 돌아가는 것이겠지. 병원에서 깨어난 소년. 소년은 그날을 기억하는 증표처럼 교복 안주머니에 유서를 간직하고 있다. 그날.. 친구 서찬희가 옥상에서 떨어지던 날 마주한 학교 대표 태권도 선수 안승범. 서찬희를 괴롭혔던 안승범과 그 누구도 그런 학교 폭력에 대항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던 아이들. 소년은 병원에서 알게 된 산이 누나와 함께 체육관에서 복싱을 배운다. 싸우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소년과, 소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연을 지닌 산이 누나. 그리고 안승범과 싸우기 위해 미치도록 운동하는 소년. 그리고 그날.... 잊으려했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다른 아이들의 눈에서 나는 폭력에 대한 혐오와 회의를 보았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 되면 직접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가해자를 꺼리는 마음은 있을 것이다. (53)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의 악랄함은 나이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개새끼는 열일곱 살을 먹든 여든 일곱 살을 먹든 개새끼다. 나쁜 놈은 언제나 나쁜 놈들인 것이다. (56) 정작 본인들도 서로 쉽게 어울리지 못하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애들은 전부 다 친구들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싸잡아 버린다. 그렇게 엉성하게 묶어 놓은 테두리 안에서 얼마나 역겨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가 짐작이나 해 봤을까? (80) 싸움이 무작정 나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는 쪽의 변명에 불과해. 싸움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아무리 몸을 사려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다 싸워야 할 때가 오는 거야. (99) 모두의 잘못이라는 건 다시 말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거라는 말과 같다. 너나 나나 똑같이 잘못했다는 건 너도 나도 벌을 받지 않기 위해 꺼내는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171) 어른이 된 우리도 열일곱, 열여덟의 그 시기를 지나왔지만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친구끼리는 그러는 거 아니야,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사실 이런 말은 약자에게 독과 같은 말이다. 그런 말로 인해 교묘하게 약자는 괴롭힘 당했을 테니까.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기에 아이들의 수법은 더 악랄하고 교묘해지는 것 아닐까?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 그렇다면 그 잘못을 책임지는 우리 모두가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때문에 계속해서 아픔은, 왕따는.. 그 위에 속절없이 더욱 커지는 것 아닐까? 친구를 죽게 한 안승범과 싸우기 위해 복싱을 배우는 소년. 때린 놈보다 강한 자에 붙어 그래도 한 때 친구였던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 그리고 끝에 가서... 멍해짐을 느낀다. 읽는 동안 생각해라.. 소년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아는 순간 소름이 끼칠 것이다. 큰 아이가 복싱을 배운다. 중학교에 올라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복싱을 배우는 일이었다. 단체 운동을 좋아한 아이가 갑자기 복싱을 배우겠다고 말하기에 의문을 가졌지만, 묻지 않았다. 그리고 1년이 넘었는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춘기 남자아이들은... 나름 서열을 만들고 그 서열 안에서 행동하게 되는데 우리 아이는 운동을 잘해선지 아이들 틈에서 치이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싸우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과 치고 박고 싸우는 일은 없더라도 인생이라는 큰 경기장 안에서... 싸움 없이 편안하게 살 수는 없는 거라고. 그렇다면 싸우지 말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싸움이 내게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알려주는 게 맞지 않을까? 싸우면서 큰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싸우면서 큰다는 의미가 누군가를 죽음에 몰아넣는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 아이가 귀하면 남의 아이도 귀하다는 사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것이... 이 세상의 인생사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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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하나의 투쟁'이라던 어느 작가의 말을 떠올렸다. 우리 모두는 제각기 어떤 싸움을 하고 있다는, 그땐 고개를 갸우뚱했더랬다. 그리고 수 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읽으며 ‘투쟁’이라는 격렬하고도 한편으론 주체적인 삶을위한 힘찬 의지를 대변하는 이 단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잘 생각보니 내 삶에 ‘투쟁’혹은 ‘싸움’이라고 제목을 붙일만 한 일들은 몇 없다. 처음엔 '싸움'이나 '투쟁'이라는 격렬한 요동 없이 살아온 내 인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문득, 서글퍼진다. 살면서 한 번 쯤은 내 자신을 위해서, 혹은 정당하고 옳은 무언가를 위해서 주먹을 힘껏 내지를 수 있는 용기따윈 없었나 싶어서 말이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땐 단순히 왕따와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청소년 소설인 줄만 알았다. 그도 그럴것이 친구의 죽음에 분노해 안승범이라는 태권도 선수이자 소위 짱이라 불리우는 절대권력에 도전하는 과정이며, 친구가 자기 때문에 다쳤다는 죄책감에 링 위의 처절한 싸움터에서 여자 복싱선수로 활약 중인 오산이의 모습이 뻔한 스토리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지난한 과정이 단순히 힘을 기르고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함이 아닌, 스스로의 나약함을 넘어서고 정당한 것을 위한 용기임을 알게되자 내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워졌다. 이 책의 주인공은 '권투'라는 스포츠를 통해 단순히 얼마나 강한'잽'을 날리는가가 아닌, 삶을 사는 데 있어 옳은 것과 정당한 것을 위해 '잽'을 날릴 줄 아는 용기가 얼마나 멋지고 가치있는가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권투장을 찾았을때 그를 받아주며 주관장이 이런 말을 한다. "한번 도망치면 계속 도망쳐야돼. 니가 이미 싸우기로 결심했고 어떻게든 싸워볼 생각이라면 포기하지마. 이게 내 조건이야." 살면서 얼마나 도망쳤나. 불의에 질끈 눈 감는 대신, 혹은 평화주의자를 거들먹거리며 내 안에 푸른 용기를 꺼버리진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나라가 여러모로 싱숭생숭하다. 최순실과 박근혜가 보여준 모습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당연해질 때, 사람은 병신같아 지는 거야"라고 말한 주인공의 말마따나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당연함이 불러온 참상이다. 그리고 이 참상에 맞서 5주동안 이어지고 있는 ‘촛불집회’를 떠올렸다. 이렇게 온 국민이 청와대라는 절대권력같던 존재에게 주먹을 내지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난한 노력이 모이고 모이면 '잽'이 아닌 강력한 '훅'이 될 것이라 믿는다. 불의에 굴하지 않고 내지르는 주먹은 언제나 멋지고 강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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