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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드라마에서 불치병 여주인공의 이야기가 대세인 때가 있었다. 또는 출생의 비밀이 있거나 재벌집 남자와 가난하지만 당찬 여자가 만나 사랑을 이루는 캔디형 신데렐라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힘이 들 때 자신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를 소원한다. 자신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부모님을 보며 돈 많은 진짜 부모가 짠 하고 나타나기 바라고 돈 많은 남자가 어디서 자연스런 만남을 꿈꾸기 원한다. 하지만 그런 꿈도 현실을 살아가다보면 이야기에 까맣게 잊게 된다. 아니 오히려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 싶다. 이렇게 평범하게 살다 죽을 것 같고 초라하게 살아갈 것만 같은 시점.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가 더 이상 새롭게 각색될 수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주혜 작가는 소설 『여름철 대삼각형』에서 묻는다. 과연 그럴까? 이 이야기는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 스스로 움직이며 길을 가고 때론 변모하기도 하는 주인공이라는 뜻이다. 『여름철 대삼각형』 에서는 세 명의 여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 번의 유산 후 바람난 남편의 애원으로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는 태지혜. 부모님께 버림 받고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그 이후 동아리 선배와 결혼 해 20살 딸 시오를 키우고 있는 송기주. 공립고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홀로 된 아버지를 모시고 학원 강사로 살고 있는 반지영. 세 명의 사정은 쉽지 않다. 태지혜는 겨울이면 꼭 문제가 생기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기주는 딸 시오와의 관계가 편치 않다. 반지영은 이제껏 대기업 사모님의 운전 기사 역할을 하느라 집안에 충실하지 못했던 아버지와의 껄끄러운 동거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한 때 그들의 삶을 버티었던 이야기들이 있다. 지혜에게는 전남편 성우와 함께 갔던 천문관에서 들려줬던 오리온 별자리의 허리띠. 기주는 할머니와 함께 만들어갔던 빨래터에서 발견한 큰 복숭아에 관한 이야기. 반지영은 셋째 딸 미녀가 야수와 살게 되는 『미녀와 야수』 등등. 좋았던 시절, 그 이야기들은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 기주는 할머니와 함께 매일 밤 큰 복숭아 안에 무엇이 나올까를 꿈꾸었지만 시간이 지나 딸과의 관계 및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외로움을 느낀다. 태지혜는 오리온 별자리와 함께 전남편 성우의 청혼을 받았지만 끝내 허락되지 않았던 엄마로서의 축복과 남편의 배신이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에 이야기를 만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반지영 또한 야수의 성에 갇힌 미녀의 신세처럼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지만 필요로 인해 아버지를 떠날 수 없는 자신의 신세가 답답하다. 과연 그들의 이야기는 다시 쓰여질 수 있을까? 『여름철 대삼각형』 에서 세 여성의 이야기는 별다른 희망이 없어 보인다. 현상유지도 버거워보이는 그들은 팍팍한 현실의 삶 속에서 스스로 비극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가게 된다. 옛날 공부만 잘 하면 희망이 있던 시절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새 '개천이 말랐다'라거나 '금수저' 와 '흙수저'라는 신조어들을 만들어내며 우리의 이야기가 재창조되어가는 것을 막는다.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씌여져 있지 않은 시대가 되며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쓸 용기를 내지 않는다. 아니 까맣게 잊어 버린다. 엄마를 떠올린다. 늘 자신이 비극의 희생양처럼 말씀하시는 엄마는 자신을 그 이야기에서 새롭게 쓰실 생각을 하지 않으신다. 두고두고 자신의 인생을 비극으로 만든 우리를 원망하신다. 나 또한 한 때 그랬다.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양가에서 도와 줄 여력도 되지 않는데 덜컥 쌍둥이가 생긴 현실이 버거워 나의 이야기를 고쳐 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고쳐 쓰지 않는 이야기는 끝내 비극이 되고 만다는 걸 늦게 알게 되었다. 『여름철 대삼각형』 을 읽으며 별자리의 의미를 다시 알게 된다.
이야기는 덧붙여 왔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는 계속해서 덧붙여 오고 새롭게 만들어 간 역사들에 의해 변해왔다. 지난 12.3 내란 비상계엄 선포 때 대한민국 국민은 1980년대 비극의 역사의 주인공의 역사를 거부하며 또 다시 바꿔 나간 그 이야기를 끝으로 작가는 말해준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우리의 이야기는 고쳐 쓸 수 있다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