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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주말 파트 사역 자리를 구하다 알래스카에 위치한 교회에 교육 전도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가고 싶었다. 당시 한국 사회 구조에 굉장히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때라 우리나라가 아닌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한참 갈등했다. 더욱이 알래스카는 예전부터 꼭 가고 싶던 곳 중에 하나였다. 추운 계절을 좋아해서 항상 서늘하고 차가운 나라에 관심이 많았다. 뭐랄까? 사람은 추울수록 따뜻함의 소중함을 알 게 된다고 생각한다. 추우면 서로 더 모이게 되고 감싸 안게 되고 그러다보면 사람의 정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늘 동경해 오던 곳 알래스카. 정말 가려고 여기저기 수소문 해 봤다. 하지만 선교단체사역을 시작하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다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가을이 되면 조금 이상해진다고 한다. 가을을 탄다고 하던가? 뭐, 그런 말에 별로 신경을 쓰진 않지만, 항상 가을이 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리고 대부분 내가 어딘가로 떠났던 시기가 다 가을이다. 왠지 한 곳에 있고 싶지가 않다.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내 모습을 배우고 싶다. 밖에 나가면 안에서 보던 나와 다른 나를 볼 수 있다. 알래스카는 그런 면에 있어 내 지평이 더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광활한 대지 위에 쌓은 눈 그리고 몇 안 되는 사람들, 고요하면서 차갑고 따스할 것 같다. 종종 나와 비슷하게 생긴 일명 홍인족이라 불리는 에스키모들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우리보다 순수함이 있는 사람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그런 모습을 보고 듣고 싶다. 어쩌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지 모르겠다. 그곳도 팍스 아메리카 지역인데, 이미 내 생각보다 현대 문명이라고 하는 것에 찌들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예, 기대라는 것 자체를 하지 않고 가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땅과 하늘은 거짓말을 하지 않겠지. 찬바람을 맞으며 그곳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 이 책에는 그런 매력이 끌리는 점들이 자세히 묘사되어 그려져 있다. 많은 사진들 속에 생생하게 그곳의 풍경을 느낄 수 있다. 친절하게도 작가는 아주 세밀하게 알래스카에 대해 묘사해 준다. 때로는 개인적인 견해로 때로는 객관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알래스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내 호기심을 십분 자극시킨다. 작가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나 역시 저 속에 들어가 저들의 삶에 함께 묻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 개인적으로는 지난 어린 시절 겨울날의 추억이 많이 사진 속 그들의 모습이 동떨어져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아련했던 내 삶의 일부분을 보고 있는 듯하다. 아름답고 무척 그리워지는 곳이다. 비록 문화와 환경은 다르지만 정신적으로 마치 어렸을 적 고향을 보는 듯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하면 그곳의 풍경들이 내 앞에 펼쳐진다. 마치 티브이에서 종종 보는 과거 여행을 하는 것처럼 실제 체감이 되는 듯하다.
물론 일반 여행수필집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모습들을 이 책에서도 볼 수 있다. 어디서든 나오는 자연의 아름다운과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인간 향취. 하지만 알래스카라고 하면 다른 곳과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가? 하얗게 뒤덮인 눈꽃세상, 그곳에는 어렸을 적 읽던 동화책 속의 얼음여왕이 살 것만 같다. 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오로라, 마치 환상의 세계를 온 듯 착각이 들지 않을까? 생각 만해도 가슴 벅차는 설렘이 느껴진다. 보온을 위해 온 몸을 꽁꽁 옷으로 둘러싸고 배꼼이 얼굴만 보일테니지만 그 안에 느껴지는 인간미, 이 모습은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 사는 향기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 듯 싶다. 그래서 오히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눈으로만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보면 작가 역시 그런 감동을 느낀 듯 싶다. 언젠가는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하지만 알래스카를 생각하면 마음 아픈 점도 있다. 북극의 빙하가 점점 녹아 그곳이 원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예전 MBC에서 했던 북극의 눈물을 보면 에스키모들이 더 이상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고 있다. 알래스카가 너무 따뜻해져 눈이 녹아 농사를 질 수 있는 기후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꽝꽝 얼었던 얼음이 다 녹아 더 이상 썰매가 필요 없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다양함을 볼 수 있었던 한 문화가 또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인간의 책임, 거기서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곳에 살고 있던 여러 동물들도 점점 개체 수가 줄어들고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으니 이 역시 인간이 얼마나 자기들만 생각하는 존재인가를 느끼게 한다. 더불어 북극이 얼마 있지 않으면 모두 녹아 버린다고 하니까, 쇄빙선을 타고 관람을 하러 오는 관광객에 씁쓸함이 느껴진다. 물론 평생 한 번 볼 수 없을 지도 모른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한다마는 행동은 정말 철없이 보인다.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웃고 즐기며 관람하는 모습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세상이다. 하지만 세계 힘을 쓰는 권력들이 전혀 변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이 안타까운 상황을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떠도는 말마따나 누구 하나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 전에 제발 우리에게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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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9살이 된 호시노 미치오는 헌책방이 늘어선 도쿄 간다거리의 서양원서 전문서점에 들어선다. 호시노 미치오가 접어든 알래스카 사진집, 그 사진집 하나를 집어들고, 그 자연일색인 사진들에 매료된 그는 알래스카를 가고자, 그 마을의 읍장에게 편지를 쓰고, 1년후에야 그 읍장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알래스카를 향하게 된다.
<쉬스마레프 마을 -호시노 미치오가 이 사진을 보고, 편지를 쓰게 된다> '호시노 미치오와 알래스카를 연결시켜 준 사진집같은 것이 내 인생에 있었나?' 라고 생각하게 한다. 경제적으로 급진적이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의 한복판인 도쿄에서, 도시화로 인해 자연보다 건물이 가득한 그곳에서, 호시노 미치오는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은 감격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그 젊은 청년은 자연에 대한 동경이 가득찬 상태였을 수도.. 삶이란 혼자서 책임지는 것이지만 그의 부모들이 낮선 자연의 땅으로 그를 허락한 것 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
난 무엇에 열망하고 있었나?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날 엄두조차 할 수 없었던 소심한 나에게 있어서 19살에 생각하고 열망했던 것은 오로지 대학뿐이었던 것 같다. 남보다 더 좋은 대학 그 뿐이었던 것이었다. 그때 하지 못했던 고민, 그 고민의 해답을 찾고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알래스카의 사진을 보면서, 인간보다 더 큰 자연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그 존재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애써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바꿔가면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뿐이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혹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위하여 숨을 쉬고 있었다"
< 무스가 아름다운 알래스카의 연못에서 유유자적하게 노닐고 있다.>
호시노 미치오는 알래스카의 자연을 보면서, 줄곧 자신 또한 자연으로 돌아갈 존재임을 깨닫았을 수도 있다. 장자가 자신이 죽자 벌레가 먹게 놔두라고 한 것처럼, 죽음이라는 것이 끝이 아닌 순환하는 싸이클의 하나임을 그는 알래스카의 자연에서 느꼈을 것 같다. 누군가는 먹고 살기 위해서 곰을 잡았지만, 그 곰들도 먹기 위해서 인간을 잡아먹는 것, 49살에 그 싸이클의 일부가 된 호시노 미치오는 죽는 순간 그렇게 억울해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만약. 호시노 미치오가 19살에 고서점에서 사진첩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어땠을까? 앨래스카가 아닌 그 보다 위험하지 않은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까? 아니면 사진과는 전혀 다른 것을 동경하고 직업으로 살고 있을까? 난 그의 인생이, 알래스카라는 곳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인류의 마지막 장소이면서, 개발에 위험에 처해있는 곳이라 알리는 전령사의 역활을 담당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책을 보며, 인터넷으로 알래스카 여행을 검색해보는 나를 보며,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버킷리스트에 올려본다. 아직도 손흔들면 서주는 기차가 있을까? 내가 타고 있는 기차에서 무스가 부딪히는 자연스러운 사고도 생각해 본다.
"변해가는 생활 속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항상 가르쳐주는 것. 말하자면 고래잡이는 에스키모 사람들에게 그런 것이리라" |
| 9년전 알래스카 캄차카 반도에서 곰에게 물려 죽은 한 야생사진가가 있다. 19세 때부터 알래스카의 자연에 매료되어 20여년간 그 땅을 기록했던 사람 호시노 미치오. 에스키모 어로 ‘위대한 땅’이라는 뜻의 알래스카. 그러나 이 땅은 미국의 개발 계획과 핵기지 건설 프로젝트, 에스키모 부족들의 미국사회 통합 문제 등으로 굴곡 많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런 문제는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입장인 것이고, 그가 들어갔던 알래스카는 달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슴의 일종인 카리부 무리들, 물보라를 내뿜는 고래, 형체 없는 바람의 뒷모습, 백야의 태양…. 이 책은 알래스카의 장엄한 자연 뿐만 아니라 그 땅에서 생명의 존엄을 지키고 있는 에스키모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스케치한다. 사냥을 하는 태도, 소유에 대한 인식, 자연에 대한 마음들을 드러내는 그들의 삶을 들춰보면서, 아름다운 철학과 사고방식이 이미 그들에게는 태생적으로 갖춰져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이들이 주는 감동을 만류할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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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도심의 헌책방에서 알래스카 최북단 마을의 사진을 보고 마음을 빼앗긴 호시노 미치오는 그곳을 찾아가보고 싶은 마음에 사진 캡션에 쓰여진 ‘Shishmaref'라는 글자를 보고 편지를 쓴다. 받는 이 : May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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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여행작가 김남희 씨의 길 위에서 읽는 시 라는 책에서 보고 읽게 되었다.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책방에서 본 알래스카의 풍경 사진에 빠져 알래스카의 한 도시의 읍장 혹은 시장에게 편지를 보낸 저자의 당돌함과 용기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어린 나이에 책을 보고 감동을 받아 알래스카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직접 편지를 보냈을까? 정말 보통이 아닌 사람임은 확실하다. 그렇게 편지를 보내고 약 6개월 뒤 그는 알래스카에서 답장을 받고, 여름 한철을 알래스카에서 보내게 된다. 그 뒤 일본에서 공부한 후 알래스카 대학에 진학하고 알래스카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는 사진작가로 활동하게 되는데.. 그는 알래스카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문화와 생활을 존중하며 기록에 남겨둔다. 그도 호기심이 많고, 열정이 가득한 사람임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고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으리라.. 이 책은 그가 일본의 주간 아사히라는 곳에 저자가 일년간 기고한 원고를 묶은 책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tv 프로그램 취재 작업 중 불곰에게 물려 40대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전부터 그는 야생동물과 조우하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어 책을 읽는 내내 불안감을 조성했다.. 너무 위험하지 않나 하고.. 자연의 생생한 모습을 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작업을 했던 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는 정말 멋진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와 같은 열정과 패기를 가지고 있다면 매일매일이 참 행복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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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가 처음 읽어본 책이다. 예전부터 날씨 좋고 따사로운 날 밖에 나가 나무그늘 밑에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 정말 잘 될 것 같은 생각을 하곤 했는데 드디어 실행에 옮겨보았다. 이번에 집 근처 산책하면서 고른 최초의 책은 호시노 미치오의 책이다.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수 번을 더 읽었지만 정상에 올라가 나무그늘 아래에 바위에 앉아 햇볕을 받고 바람을 쐬며 책을 읽으니 또 느낌이 달랐다. 책 내용도 이러한 자연에 대해 묘사하고 사색하는 부분이 많아 집에서 영화보는 게 아닌 영화관에서 영화보는 것처럼 이렇게 잘 어울릴 수도 없었다. 호시노 미치오의 글을 읽으면 내가 그 글이 묘사하는 풍경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만 같다. 그가 찍은 대자연의 웅장한 사진들, 동물들의 날 것 그대로, 하지만 동물에 감성을 실은 사진들만 봐도 감탄을 금치 못하는데 거기에 글까지 있으니 한 파트 파트 읽는 내내 그의 마음과 그의 느낌이 전해진다. 눈에 보이는 단순한 풍경과 동물 묘사에 그치지 않고 알래스카의 사람들과 원주민들의 이야기도 그려내고 전통신화도 언급함으로써 알래스카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짧지만 수만 년의 시간을 지니고 있는 매우 웅장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 대자연이 풍기는 태초의 기운을 느끼고 그 자연 속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그의 사색과 성찰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다. 인생의 절반을 알래스카에서 살면서 동물들과 대자연을 좋아했던 그는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곰에게 먹혀 죽음을 당함으로써 진짜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음악을 좋아해 음악을 하다 죽는 뮤지션들, 글쓰다 글과 함께 생을 마감하는 작가들, 한평생 자기가 몸바친 것으로 인해 죽게되는, 어찌보면 한 인생 살면서 언젠가 죽는 삶,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통해 죽게 된다면 그보다 멋있는 것은 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호시노 미치오는 너무 빨리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그의 글을 통해 세상은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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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심히 읽었다.
아름다운 사진이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엮인 책이다.
이야기들 하나하나는 극히 소탈하고 담백하다.
모든 것이 절제된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알래스카의 분위기가 글 속에서
느껴진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소위 Big Talk(거대담론이라고 하나)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뜻 읽을 때 시시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환경보존이 어쩌구저쩌구, 지구가 어쩌구저쩌구... 하지만, 작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그런 문제들을 우리의 삶과 관련해서 어쩌면 처절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사진. 사실 사진이 보고 싶어서 이 책을 샀다. 미국 본토로 가는 길, 알래스카의 앵커리에게 착륙했을 때 문득 보았던 알래스카의 풍경이 있었다. 그런 풍경을 보고 싶었다. 그것도 그곳에서 살았던, 그곳을 아주 잘 아는 훌륭한 사진가가 찍은 사진을 보고 싶었다. 알래스카보다 더 알래스카다운 사진을 보고 싶었다. 이 책의 사진은 그런 나의 바람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었다. [인상깊은구절]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생물의 다양성이야말로 무엇보다 소중할 것이다. 이리가 어슬렁거리는 세계가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의식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상상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풍요를 가져다주고, 우리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계속 가르쳐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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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세계적인 야생사진가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날씨가 많이 더웠던 탓이었을까 다른 책을 읽고 있었음에도 빨리 이 책이 읽고 싶어 조바심이 났었다. 살짝 살짝 들쳐본 이 책의 사진들에 이미 마음을 빼았겼으니...
처음 책장을 열면 찬바람이 휘~잉 하고 불어나와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
글을 조금씩 읽어 나가다 보면, 정말이지 아름다운 사진작품과 저자의 마음을 듬뿍 담은 문장들에 푹 빠지지만, ''잘 살아보세'' 명목하에 늘 변함 없을것 같은 아름답고 소중한 자연이 훼손되고 변화되는 것에 대해 아쉬움과 걱정이.. 그리고 저자의 죽음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곱씹게 되고...
... 꼭 한번 타보고 싶다.
매주 한차례씩 페어뱅크스와 앵커리지 사이를 왕복한다던 한겨울의 알래스카 철도를. [인상깊은구절] 1988년 11월, 북극해 연안 에스키모 마을 포인트 배로우 근처에서 세 마리의 참고래가 빙해에 갇혔다. 전 세계 매스컴이 지켜보는 가운데 힘겨운 구출작전이 펼쳐졌다. 그러나 남쪽으로 돌아가던 고래가 도중에 얼음에 갇히는 것은 예로부터 북극해 어디서나 늘 일어나는 일이다. 부근에는 많은 북극곰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들에게 이런 고래 한 마리는 귀한 생명선 이었다. 거대한 자연의 약속이 언젠가부터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한 늙은 에스키모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시절이 변했어.....예전에 이런 고래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었지." ...자연이란 인간의 삶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마저 포괄하는 것이다. 아름답고 잔혹하고, 그리고 작은 것에서 큰 상처를 받는 것이 자연이다. 자연은 강하고 연약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