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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선행으로 한 일에 나는 죽게 되고 상대가 살게 된다면 나의 가족은 나대신 산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게 될까?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통해 알게 되어 그 마음을 짐작하기도 했지만... 이렇듯 나의 선행에 의해 누군가는 살고 나는 죽게 되었을 때 남은 가족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수연은 휴가를 맞아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를 찾았고 그곳에서 바닷물에 휩쓸려 빠지게 된다. 동규는 수연을 구하고 바닷물에 빠져 죽게 된다. 아들의 죽음 앞에 진숙은 수연과 함께 같이 죽자고 달려들고, 사람들에 의해 저지 된다. 이후 3년이 지나 수연은 자신을 구하다 죽은 동규를 위해 그 바닷가를 찾아 종이배를 띄운다. 그곳엔 동규의 동생 동하가 자신의 형을 찾아 꽃을 띄운다. 두 사람은 첫눈에 호감을 느끼고 다시 만나게 되면 차를 마시자고 한다. 동하는 ‘행복을 주는 가구’에서 가구를 만드는 사장으로 방송에 가구 협찬을 하러 방송국을 찾고 그곳에서 수연을 만난다.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동하의 엄마는 그들을 찬성할 수 없다. 그들은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설정자체가 솔직히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아들을 놓지 못해 아파하는 진숙이나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힘들어하는 수연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수영을 잘 했던 동규가 바닷물에 휩쓸려 죽을 줄이야.. 더군다나 그 동생과 사랑에 빠지게 된 동하의 마음은 또 얼마나 마음 아픈 것이었을까? 그럼에도 만나야할 사람은 만나게 되고 사랑해야할 사람은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착하기만 한 수연과 동하는 그래서 서로에게 끌린 것은 아닐까? 서로에게 힘든 사랑이지만 그들은 그 사랑을 지켜낸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끼며 서로에게 힘이 된다. 아마도 그들의 사랑은 그런 시련덕분에 더 단단해졌는지 모르겠다. 사랑이란 이름은 그래서 더욱 오묘하다. 복수를 꿈꾸지만 복수해야할 상대를 사랑하기도 하고, 절대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던 사람도 한 번 가슴 안에 들어오면 빠져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수연과 동하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다.
수연을 미워하고 동규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진숙도 이젠 새로운 사랑을 축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연을 구하고 죽었던 동규의 선한 마음까지 퇴색되지 않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