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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전 투니버스에서 <이누야사>란 작품을 아들애와 처음 봤을 때, 작가의 사물적 상상력에 놀랬었다. 작가는 어느 날 우연히 스쳐지나가다가 우물을 보았을 것이고 그 우물을 보면서 만약에 저 우물이 지금 이 장소가 아니고 다른 세계, 다른 시간대와 연결되었다면 어떨까,라고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것이다. <이누야사>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우물이 남들에게는 일상에서 언제나 보던 사물에 지나지 않지만, 루미코에게는 우물이란 작은 사물적 상상력에서 이야기가 출발한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글쎄, 그거야 어디까지나 나의 엉뚱한 발상이여서 실상은 모르는 일이지만) ![]() 그런데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떤 매개를 통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는 사물적 상상력은 루미코도 잠깐 빌려온 상상력. 시초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최초의 여자아이를 등장시켜의 저 너머 다른 세상에서 짜릿한 모험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저 너머 다른세상이라... 모리스 센닥, 자신의 삼부작중에서 마지막 작품인 여자아이의 모험이야기를 그린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오즈의 마법사>, ![]() 닐 게이먼의 사물적 상상력은 벽이었으며 벽을 통해 outside over there가 있었다. 그의 그림책에 대한 거부감과는 달리 <코랄린>은 상당히 재밌게 읽었었고, 이런 시공간을 초월한 모험담은 언제나 나에게 자극을 준다. 물론 닐은 안정적인 완결로 끝냈으며 그러한 결말은 동화에서 건드릴 수 없는 터부 아니겠는가. 영화<코랄린>은 책보다 볼거리가 많은 엔테테이먼트적인 요소가 강했다. 닐의 아이디어는 번뜩였고 셀릭은 이미지로 구체화 했다고나 할까나. |
| 집은 내 집과 똑같은데 못 보던 물건이 하나 있고, 옷장에는 다른 옷들이 걸려 있고, 결정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생긴 것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행동을 하고, 다른 말을 하고, 아주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면?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이 이웃,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가족, 특히 부모라면? 이 낯선 새 부모가 내가 네 다른 부모라고 주장하며 내 진짜 부모가 사라진다면? 아이들에게 이 이상의 공포는 없을 듯 하다. 아이들에게 부모란 원래 있는 것, 원래 나를 보호해야 하는 것. ( 그래서 원래 있어야 한다는 그 부모가 없을 때 우리는 그 아이들을 각별히 보살피고, 보호해야 할 부모가 그 구실을 제대로 못 할 때 더 그 아이들을 감싸안고 싶어지는 법 아니던가.) 탐구심이 강하고 집 주변 탐사를 좋아하는 여자아이 코랄린에게 어느 날 벌어진 일이다. 이상한 공간에 끼어 들어갔다가 겨우 다시 진짜 공간으로 와 보니 부모가 없다. 부모를 구하려면 싫어도 그 이상한 집으로 다시 가야 한다. 그리고 다른 엄마라고 주장하는 여인과 대결을 벌여야 한다. 내 영혼을 뺏기지 않으려고, 부모를 구하려고 벌이는 코랄린의 전투. 날개를 쫙 펼치고 입에서 불을 뿜는 용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기괴한 괴물들이 잔뜩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무서운 벼랑과 짐승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은 제대로 된 공포를 맛보게 한다. 책 구성도 아주 깔끔하고 문장도 단정해서 읽는 재미가 있고, 한번 잡으면 쏙 빨려 들어갈 정도로 재미가 있고 흡입력이 있다. 가족을 구하지만 너무 거창하게 웅변을 하며 가족을 부르짖지 않아서 좋다. 그저 이 아이에게 부모를 다시 찾는 건 중요한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아이가 문득 엄마를 한번 뒤돌아봐주는 정도. 그 정도의 절제력이 마음에 든다. 다만 결말, 인물의 성격, 사건 전개 (특히 결말!) 등이 다소 전형적이라 별을 하나 깎았다. 그래도 꽤 마음에 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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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닐 게이먼의 단편집을 봤을 때 그가 썼던 서문이 기억난다. 그는 그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그때 읽었던 책들이 그를 다양한 세계로 데려갔지만, 가장 깊이 남았던 감정은 공포였다고 했다. 척추 깊숙히 새겨진 공포는 그 후에도 그대로 생생이 남아 혼로 있게 되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고 했다. |
|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이 책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고로 스토리의 중심이 아이들에게 걸맞게 건전하고 다소 진부하다. 그러나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는 이유는 바로 이 진부한 사실-가족의 소중함-을 주인공이 깨달아가는 과정이 무척 독특하기 때문이다. 사실 닐 게이먼의 소설들이 대개 이런 독특한 상상력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그의 상상력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든 어른을 대상으로 한 책이든 예외가 없나보다. 코랄린에서 눈여겨봐야 할 첫번째는 바로 주인공의 이름(코랄린)인데, 보통 서양에는 코랄린(Coraline)이라는 이름은 없고, 대신 캐롤린(Caroline)이라는 이름이 있다. 캐롤린의 ''a''와 ''o''를 바꿔치기 한 셈인데, 이 이름이 사실상 내용의 전부를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어딘가 비슷한 듯 하면서도(아랫집 할머니들과 윗집 아저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코랄린을 캐롤린이라고 부른다. 이름이 비슷한데다 보통 캐롤린이라는 이름을 쓰기 때문에 착각하는 것이다.) 묘하게 어긋나 버린(코랄린, 캐롤린. 비슷하지만 어긋난 이름이다.) 세상에 주인공인 코랄린이 뛰어들게 되면서, 그곳에서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성장을 이룩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이 책은 꼭 읽어주고 싶다. 건전한(?) 주제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상상력을 키우기에도 좋을 것 같고, 스토리에 등장하는 다양한 상황들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나누기에도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