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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초6때 읽었다. 시사중학영어 테이프 시리즈는 당시 학생들에게 '완전정복', '마스터수학' 등과 더불어 필독서에 가까운 위상이었다. 새 학년으로 올라가면 반드시 그 두툼한 박스를 하나 구입하고, 미리 예습하며 단원의 내용을 입에서 줄줄 암기할 정도가 되어야, 매월 치르는 시험에서 영어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교재의 맨 뒤에 보면, 이 영어문고 시리즈와 영한대역 전권에 대한 광고가 꼭 실려 있었다. 영한대역은 말 그대로, 왼쪽에 영어 텍스트, 오른쪽에 한국어 번역과 간단한 각주가 실려 있는 형식이었고, 영어문고는 영어텍스트와 한국어 각주만 제공되었다.
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나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하나는, 나보다 훨씬 공부를 못 했으나, 대단한 혈연을 배경으로 가진(내게 그리 짐작되는) 아이가 이 책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만 해도 '책'을 다른 애들한테 소개 받는 일이 극히 드물었던 나였는데, 일단 '별로 중요하지 않음'으로 치부하고 넘어간 아이템을 새삼 소개받고, 그 내용을 확인해 본 결과 '아 이거 절대 그냥 넘어갈 게 아니었구나'하는 충격을 받기까지 했던 것.
그 친구는 -지금까지도 그 담화의 구체적인 배경, 내역은 확인이 안 된다, 이제는 친구 이름조차 잊었으니 - 영어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감히 나한테), 영어 공부는 이렇게이렇게 해야 한다는 '썰'을 쉼 없이 늘어 놓고 있었다. 매너가 좋은 나는 '응', '응' 같은 무성의한 간투사를 연발하고 있었지만, 당장 눈으로 드러나는 점수가 형편 없는 그의 말에 진지한 신경이 쏠릴 리가 없었다. 그런데, 진지하게 수용하거나 일정 트리븃을 보내지는 않더라도, 그 말하는 내용의 핵심은 귀에 당연히 들렸고, 상당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여기다 일일이 적진 않겠으나, 어린애한테 (흔하지도 않은) 그런 고급 방법론을 가까운 누가 이야기해 줬다는 사실은, 이 아이가 집안 배경이 상당했음을 (지금 와서 돌이켜 봐도) 유추 가능하게 한다. 그 아이가 그 방법론을 실천에 옮기고 아니었고는 중요하지 않다(걔한테야 중요했겠지, 하지만 나한테는 아니란 소리). 세상 어느 한 구석에는 시사중학영어가 가르쳐 주지 않은, 대단한 고급 정보를 입수하고 실천에 옮기기까지 하는 누군가가 있었고, 내 눈에 보이건 아니건 그런 라이벌이 존재한다는 건 충분히 증명된 셈 아닌가? 바로 그 점이 당시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사실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혁신적인 영어 교재라며 아이를 둔 부형들을 홀리는 교재는 수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나와 있고, 그 화려한 외관도 눈이 부실 정도다. 하지만 내 보기에, 어린이에게(그 말랑말랑한 두뇌, 무엇이라도 섭취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머리에) 진정 도움이 되는 알찬 컨텐츠는 지극히 드문 것 같다.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렀건만, 허술한 쌈짓돈을 노리는 장사치는 많아도, 진정 유익한 정보와 방법론을 제공하는 책은 과거나 지금이나 양적으로 증가한 것 같지가 않다는 말이다.
이 책은, 그 당시의 커리큘럼이 요구하는 바는 소화하고도 남았다며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나에게, '세상에 습득해야 할 지식이란 끝도 없었구나'하는 아찔한 절망감을 안겨 주었다. '걸리버 여행기'라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마스터했다고 생각한 텍스트. 그런데 그 창작 배경의 실질은 토리-휘그의 정쟁에 대한 풍자였고, 아일랜드인의 피가 흐르는 작가 스위프트의 성향이 이 작품을 독해할 때 어떻게 고려되어야 하는지까지를 알게 되자, 어린 나의 정신은 순간 유입된 감당불가의 무게로 휘청였다. 어린 그 시절 한번 잘 접종된 예방 주사 덕에, 나는 지금도 next level thing이다 싶은 공학, 수학 지식을 접해도 웬만해서 당황하지 않는다. 올바르고 유익한 책은, 그 독자에게 최소한 세 가지 방향에서 올바른 계도를 행한다(뭔지는 알아서 생각해 보기). 진리는 가장 소박한 외관 속에 숨어 멍청이들의 쓸모없는 손길을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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