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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작가의 역량은 어디까지인가?? 끝없이 이어지는 작가의 번뜩이는 상상력을 감히 따라잡기 조차 힘들다.
[머큐리]...... 많은 남성들은 왜 아름다운 여인 앞에서는 꼼짝을 못할까? 특히, 추남이라고 일컫는 남자들에게선 그러한 현상이 더 두드러짐은 종종 문학에서 텍스트로 사용되기도 했다. [머큐리]도 '미녀와 야수', '노트르담의 곱추' 처럼 생에서 한 번도 멋져본 적이 없는 남자가 바라 보기만 해도 탄성을 자아내는 두 여인 아델과 하젤을 속이고 그녀들을 죽음의 경계라 불리는 외딴 섬에 철저하게 감금한다. 두 여인의 30년 시간차를 두고 그 남자는 아델은 자살로, 하젤은 남자의 자살로 잃게 된다. 특이하게도 [머큐리]에는 두 가지의 결말로 끝이난다. 작가가 밝혔 듯,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 현상이고 처음의 해피엔딩에 도달한 후 또다른 결말을 쓰고 싶은 절박한 욕구에 실달렸다고 말할 정도로 미를 바라보는 인간의 심리상태의 복잡함에 당황했던 것일까.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외딴 섬에 칠순이 넘는 노인 롱쿠르 선장과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자신이 괴물이라고 믿고 있는 하젤이 살아간다. 어느 날, 하젤의 병간호를 부탁받은 간호사 프랑수아즈가 그 섬에 도착하고 그 둘 사이의 묘한 관계를 알게 되면서 하젤을 구하기 위해 필사젹인 노력을 하게 된다. 하젤을 보는 순간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놀라게 되고, 롱쿠르 선장으로부터 자신의 얼굴이 전쟁의 폭격으로 망가져 괴물로 변해버렸다고 5년 동안 믿고 살아가는 하젤의 모습에서 한 남자의 사랑이 가져올 수 있는 섬뜩한 결과를 보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아즈의 노력과는 엇갈리게 노인은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끝까지 하젤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정당화하기 위해 간호사마저 그 섬에 감금하게 된다. 결국, 두 가지의 결말로 소설의 끝은 마무리 된다.
프랑스와즈가 롱쿠르 선장의 비열한 짓을 말할 때, 아멜리 노통브의 특유의 현란한 대화체를 읽을 수 있는 매력에 빠지게 된다. 세 치 혀로 어떻게 그렇게 신랄하게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건지. 이 작가가 아니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아주 매력적이라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머큐리] 에서도, "문학에는 해방의 힘 이상의 것, 구원의 힘이 있어요. 문학이 절 구해 주었어요. 책이 없었다면 전 이미 오래전에죽고 말았을 거예요" 프랑스와즈에게 하젤이 전하는 말로 아멜리 노통브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하고 문학을 공부한 천재적인 작가답게 이 책에서도 수많은 책들을 소개해 주고 있다. 작가의 방대한 독서와 끝없이 이어지는 상상력에 감탄사만 절로 쏟아진다.
'美'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편견으로 자칫 행하게 되는 잘못된 행동을 작가는 여지없이 깨부수고 있는 듯해서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통쾌했다. 또한, 아름다움이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또다른 누군가를 잘못되게도 만들 수 있는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아름다움에 대한 소망이 없다는 뜻은 아님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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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 않은 아는 작가 중에 아멜리 노통브를 가장 좋아하는데, 네 번째로 읽은 그녀의 이 작품도 특유의 스타일이 잘 살아 있었다. 매우 길지만 그리 긴지도 모르고 읽는, 지루하지 않은 작품 속 인물 사이 논쟁들이 어김없이 있었고, 책을 읽는 동안 거의 쉴새 없이 여러 상징과 암시 등을 생각하게 했다. 작가가 작품을 쓰면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로 단어나 문장 몇몇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제목과 전체 이야기 구조를 짤 때부터 그런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작품 전체에 배어 있는 유기적 짜임새가 마음에 쏙 든다. 그러므로 어느 한 점에 멈춰서 생각에 잠기거나 앞으로 돌아가 보지 않고도 어려움 없이 재미에 빠져 술술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복잡한 것도 아니고, 옮긴이의 말에 나온 말들에서 내가 혹시 놓치고 지나온 게 있는지 점검도 해볼 수 있어 찜찜함도 남을 일이 없다.
작품 제목을 비롯해 배경이 되는 섬 이름, 늙은이의 두 여자 이름, 등 프랑스어의 묘미를 살렸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흔치 않게 두 결말이 있는데, 해피 엔딩과 그렇지 않게 대비되는 게 아니라, 표면적으로 둘 다 비슷하게 끝맺는다. 그러나 둘 다 내게는 뱀이 이브를 꼬드긴 것이 마찬가지로 보인다. 읽는 도중에는 스톡홀름 증후군을 떠올리며 간호사에 주로 공감했지만, 다 읽고 나니 그게 뭔가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무래도 동성애 분위기가 확실히 나긴 한다. 어이쿠! 또 뜯고 들어가자면 할 말이 더 있지만, '각 독자가 저자'가 될 수 있어 좋은 책 같다.
147쪽에서 "정신 차려요! 기절 같은 건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후에나 해요." 이런 문장은 심각하던 와중에 나도 모르게 킥킥거리게도 한다.
'열린책들'에서 낸 전에 본 <오후 네 시>와 마찬가지로 실로 꿰매어 제본하는 정통적인 사철 방식으로 만들어져 오랫동안 보관해도 손상되지 않는단다. 또 이상해 옮긴이도 전부터 마음에 든다. 요즘 얼마나 엉터리 번역을 자주 봤기에 이 책은 번역이 멀쩡하다는 말을 해야 하나 안타깝기도 하다. 이런 말을 할 일이 없어진다면 좋겠다.^^ |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 [Narcissus]는 자신의 아름다운 용모에 반한 숱한 처녀와 요정들의 사랑을 거절 함으로써 그들에게 사랑의 고통을 주었다. 그것에 분한 에코[Echo]의 부탁으로 복수의 여신인 네메시스 [Nemesis]가 그 부탁을 들어 주어, 목이 말라 샘으로 다가 간 나르키소스 [Narcissus]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샘을 떠나지도 못하고 자신의 모습만 바라보다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한다. 나르키소스 [Narcissus]가 태어 났을 때 테베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Teiresias] 는 “자기 자신을 모르면 오래 살 것”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상 네이버 펌- 여자에게 거울이 없다는 것은 무얼 의미 하는 것일까? 아니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은?..아마도 미모와는 상관없이 그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나르키소스 [Narcissus]가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죽는 것이나 매 한가지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경계>라는 섬에 폭격으로 얼굴에 화상을 입은 23살의 여자 하젤이 있다. 그런 그녀를 구해 주고 그녀의 모든 아픔을 사랑 한 77살의 남자 롱쿠르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에는 무언가 음모가 있다. 하젤을 간호하러 섬으로 온 간호사 프랑수아즈는 그들의 묘한 관계 속에서 '그 섬에서 누군가가 내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고 생각하기로 마음 먹는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노통브는 예외없이 이 책에서도 신랄하고 끝없이 물고 늘어지는 대화 방식을 써 내려갔다. 간격을 주어 그녀의 책을 읽게 된다면 그 대화방식에 무한한 재미를 느끼리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슬슬 지겨워지기도 한다. 노통브의 책을 소화할려면 간격을 두어라..^^ 이 섬에는 거울이 없다. 하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호하기 위하여 롱쿠르가 거울이나, 거울 대용이 될 만한 것은 다 치워버렸고 반입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뭔가의 음모를 눈치 챈 프랑수와즈가 하젤에게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체온계이다. 이 책의 또다른 제목을 뜻하기도 하는 머큐리[Mercury]. 어쩌면 처음부터 결말이 눈에 보인다. 첫 장을 읽어내려가는 순간부터 하젤이 롱쿠르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납치 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해 주니 말이다. 그렇다면 노통브의 소설이 아니겠지. 이 책에는 두가지의 결말이 있다. 언젠가 TV프로그램에서 했던 두 가지의 결론을 두고 이야기를 꾸미는 것과 같은..하젤은 두가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나르키소스 [Narcissus]가 되어 나르시즘에 빠질것인가? 테이레시아스 [Teiresias] 의 예언처럼 '자기 자신을 모르고 오래 살 것' 인가? 나로서는 두 번째의 결말에 손을 들고 싶은데 그 영향이 아마도 노통브에 있지 않나 싶다. 그녀의 스타일로 봐서는 말이지.. <공격>보다 흥미진진하였으나, 스토리는 약간 진부함. 노통브식의 결말이었을 경우(내 생각으론 두 번째) 그 반전에 치가 떨리면서 약간의 쾌감을... 그녀의 또 다른 이야기를 기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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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경계라고 불리는 외딴 섬 모르트프몽티에르에는 일흔이 넘은 롱쿠르 선장과 폭격으로 인해 얼굴이 망가진 젊은 여성 하젤이 함께 살고 있다. 하젤은 곧 스물세 번째 생일을 맞는다. 하젤을 사랑하는 롱쿠르는 그녀가 건강 이상 증세를 보이자 하젤을 돌 볼 간호사 프랑수아즈를 집으로 부른다. 모르트프몽티에르에 도착한 프랑수아즈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하젤을 돌보기로 한다.
자신의 망가진 얼굴로 외부와 접촉하지 못했던 하젤은 프랑수아즈의 간호를 환영하고, 그녀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늙은 선장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털어 놓는가 하면,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삶을 비관한다. 한편, 프랑수아즈는 집 안에 거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상한 낌새를 느끼며, 외딴섬에 갇혀서 사는 이 두 사람의 관계의 비밀을 밝혀내기 시작한다. 마침내, 프랑수아즈는 모든 사실을 알게되고, 하젤을 섬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위험을 감행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읽을 때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문학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파르마의 수도원>, <카르밀라> 등. 작가는 섬 안에 갇혀서 책으로 세상을 보는 하젤의 입을 빌려 문학에 대한 찬양을 한다. 심지어 대화에서 말한 대로 문학이 프랑수아즈와 하젤에게 해방과 구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전작에서도 대화에서 열거되는 수 많은 문학 책을 보며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머큐리> 역시 문학이 내용 전개에 있어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머큐리>는 내용 면에 있어서도 흥미롭지만, 결말이 두 개라는 점이 독특하게 와닿는다. 작가 노트에 따르면, 해피 엔딩으로 첫 번째 결말을 끝내고 나서 다른 결말을 쓰고 싶은 욕구에 결국 둘 다 썼는데,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둘 다 싣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두 개의 결말이라니! 나는 첫 번째 결말이 더 마음에 들었다. 두 번째 결말은 나쁘지 않았지만, 동성애 스멜이 풍기는 것이 책에서 등장한 <카르밀라>에 더 영향을 받은 듯 하다. 이 책은 아멜리 노통브를 통과하는 세번째 책이다. 역시나 특유의 신랄한 대화체가 책의 전반을 가득하게 차지한다. 숨가쁜 호흡의 빠른 전개와 탄탄한 구성이 노통브의 매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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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통의 ''적의 화장법'' 을 읽고 다른책들도
읽어봐야지..했었는데...
이책은 추천받아 읽게 되었다..
역시나...나에겐 너무나도 좋았다..
노인의 한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에서 조금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책을 끝까지 읽고 난 후..거부감은 사라졌다..
주름살 가득한 다 늙은 노인의 외모...
일흔이 넘었다는 노인의 나이...
평생 쓰고도 남을 정도로 넘쳐나는 노인의 재산...
사랑에 있어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들..
그것들 전부가 사랑앞에 부질없다는 것을 명백히
일깨워주는 책인듯 싶다..
진심어린 사랑은...
언어가 아니더라도 전달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어떤 누구라도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사랑해준다는 것을 느낄때면..
사랑은 아름답게 이뤄지는것 같다...
이책의 과정이...
그렇다고 결말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그 젊은 여자의 노인에 대한 마음..그것이 아름답다..
노인에게서 젊은 여자를 구하려는 간호사의 노력에도
고마워하지 않고 오히려 노인을 위한 변호를 하는
젊은 여자의 마음을...나는 백번 천번 이해한다..
이토록 애절한 사랑이..
아픔이 깃든 사랑이..
눈물이 감춰진 사랑이.. 나는 좋다..
책속 젊은 여자의 생각..하나 하나가
내가슴을 수도없이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또한번 진심어린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광녀를 만나
매우 기쁠 따름이다...
사랑의 힘은...위대하고도 위대하다..
지금으로썬 내인생에...가장 뜻깊은 책이 될 듯... [인상깊은구절] "전 그가 저에 대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 먼저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요.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숱한 잘못들을 저질렀죠. 하지만 제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어요. 그가 날 사랑하고 있다는 것." "정말 멋지군" "그래요. 그렇게 애절하게 사랑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에요. 이 집에서 전 제가 너무나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너처럼 아름다운 여자라면 어떤 남자라도 미친 듯이 사랑했을 거야."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큰 사랑을 할 수 있는 남자는 그리 흔치 않아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여기 오기 전에는 경험이 전혀 없었으면서." "전 그 점에 있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아요. 사랑이 인류의 전공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 위해 위대한 학자가 될 필요도, 오래 살 필요도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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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통브의 다른 책들에서 보여지는
고약하고 뒤틀린 문체나 스토리라인에 지쳤거나, 질려버렸다면,
후회해도 좋겠다-
누군가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이
왜 불가능하지?
누군가를 파괴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
왜 불가능하지?
뒤틀린 사랑으로,
어쩌면, 뒤틀린 방법의 사랑으로
진짜 사랑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훌륭한 장사는 없겠다고 해야 할 듯-
흔히들 말하는,
관용적으로 되어버린,
"모르는 편이 나았어"라는 말을
해야할 때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너무 아프다, 힘들다-
모르는 편이 나았지?
심리적인, 물리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책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인상깊은구절] 누군가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이 왜 불가능하지? 누군가를 파괴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 왜 불가능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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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의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머릿속을 뒤지고 싶을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많은데요, 이 책도 읽으면서 아아아아! 이여자는 대체!!! 하면서, 한 섬에 갇혀있는 소녀, 그리고 그 소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늙은 선장. 그리고 그 소녀를 간호하기 위해 온 간호사. 이 세사람의 묘한 사랑과 우정, 그리고 애증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이야기가 진행이 됩니다. 소녀는 자신을 구해준 선장을 사랑하면서도 증오하고 있어요. 간호사는 이런 소녀에게 무한 동정심을 느끼구요. 얼핏 들으면 별로 흥미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아멜리 노통브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도 흥미있게 이끌어갑니다. 읽는 내내 요 책도 또한, 놓지 못하고 계속 읽었답니다. 추함을 마음에 안고 사는 소녀와 그런 소녀를 바라보는 간호사와 선장. 그들의 묘한 삼각관계가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펼쳐집니다.
나름 반전도 기다리고 있어서, 읽으면서 저도 흠칫! 했답니다. 흐흐. 재미있는 소설이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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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에는 늘 가해자와 희생자만이 존재 해왔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고 주인공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주변인물이 아닌 '서로' 이다. 대립관계인 중심인물들의 대화가 소설의 대부분이며 공간 역시 한정적이다. 연극무대에 올려도 부담이 없을만큼 배경의 변화가 거의 없다. 어쩌면 그 공간의 답답함에 더 숨막히고 긴장된 대화를 이끌어낼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큐리에서의 공간 역시 한정적이다. 헌데 인물의 구도가 대립관계가 아닌 삼각관계이다. 제 3자의 등장이라...
죽음의 경계라는 고립된 섬. 거울은 물론 형태를 비추는건 뭐든 절대 반입될 수 없는 외딴 섬에 자신을 괴물이라고 믿는 아름다운 여인 하젤이 살고있다. 소설속에 묘사된 그녀의 모습은 흡사 구스타프 클림트의 이브를 연상시킨다.
성적 매력이 온몸을 휘감듯이 흐르는데 어린 아이같이 순수한 이브. 이제 막 탄생한듯한 이브. 그런 이브가 아담에게 독이 되었지 아마..
하젤은 롱쿠르 선장의 (도움을 가장한) 음모로 이 섬에서 살게되고 선장 노인네는 추잡하게 일흔일곱의 나이를 잡숫고도 이 여인을 범한다.
하젤의 병 간호를 위해 이섬에 발을 들인 간호사 프랑수아즈. 하젤과는 또다른 매력을 지닌 그녀는 두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진작에 느끼고 하젤을 구할 방법을 모색한다. 그 과정에서 선장의 비열한 과거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 광적인 집착의 실체가 보여진다. 외딴섬의 야수에게 잡혀있는 공주를 구하러 가는 왕자님. 프랑수아즈의 이미지이다.
과연 그녀는 괴물로부터 미녀를 구하는 기사역할을 해낼수 있을까?
동화같은 배경과 설정이지만 하젤과 선장이 잠자리를 한다는 내용의 전개나 동성애적 분위기가 짚게 풍겨지는 프랑수아즈와 하젤의 관계, 이들 인물이 나누는 대화의 깊이는 성인용이다.
적의 화장법과 살인자의 건강법이 아멜리 노통브 자신의 뇌와 심장을 열어보여준 느낌인데 반해 머큐리는 그녀의 머리가 지어낸 이야기, 만들어낸 이야기 라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까칠한 프랑수아즈와 느글거리는 선장의 대화에선 노통브 특유의 은유와 비유가 그득해 목구멍이 간지러울만큼 즐겁다.
이 소설에는 두 개의 결말을 보는 재미가 있다.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결말이 더 아멜리 노통브 답다는 느낌이다. 왠지 그녀의 소설에 넓은 세상 이라는 공간이 추가되는건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도 두 번째 결말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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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감금되어 박해와 사랑을 동시에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소. 그런 일이 당신에게 일어났다면, 당신도 젊은 처녀들이 비극적인 연출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거요.」
1. 줄거리 。。。。。。。
이 소설에는 따로 줄거리를 말하기보다 그냥 책에 실려 있는 한 대사를 인용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그 내용은 이렇다.
「왜냐고? 네 생각에는 왜일 것 같아? 낯선 집에 도착해 젊은 아가씨 하나를 만났는데, 그 아가씨가 늙은 간수한테 학대받고 있다고 하소연을 해.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녀가 그 큰 눈망울로 애원하듯 바라보며 내가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말해. 순진한 촌 여자인 나는 그야말로 큰 충격에 휩싸이지. 나는 내 목숨을 걸고 그 가엾은 아가씨를 도와주러 와. … (중략) … 그리고 마침내 감금까지 당하는 처지가 되지. 목숨을 위험에 빠트려 가며 탈출한 나는 헤엄을 쳐 달아나지 않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호랑이 굴로 다시 들어와. 그리고 드디어 그녀에게 그녀의 보호자가 주입시킨 가증스러운 거짓을 폭로하지. 그런데 그 결과가 뭔지 알아? 그 멍청한 여자가 그 빌어먹을 늙은이한테…… (후략)」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의 냄새가 짙게 묻어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중후반 오직 대화로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모습은 『적의 화장법』이나 『시간의 옷』 등에서 익숙한 기법이고,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한 과장된 천착은 다른 자전적 소설들 -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공격』 등 -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또, 철저하게 자기논리로 무장된 완고한 노인이라는 설정은 『살인자의 건강법』에서도 나왔던 것들이고, 저자 자신을 소설에 넣는 시도는 『로베르 인명사전』 등에서 볼 수 있었던 방식이다.(나도 이 작가에 대해선 제법 많이 읽었나보다.)
이렇게 여러 작품들에 등장했던 도구들이 다시 등장하면, 한편으로 지루할 것 같은 예상도 들지만, 아멜리 노통브의 장점은 그 모든 것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물론 분위기 상의 비슷함은 어쩔 수 없지만) 그리고 그 새로운 이야기는 놀랄 만큼 흡입력이 있어 단숨에 읽어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빠른 대화 위주의 전개는 스토리를 긴박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한다면 역시나 ‘멀티 엔딩’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결말이 책 후반부에 붙어 있다. 갑자기 떠오른 두 개의 엔딩을 어떻게 처리할 수 없어서 결국 둘 다 쓰기로 했다는 저자의 고백이 미소를 짓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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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다른 책인 [공격]과 쌍을 이루는 책이라고 한다. '하나의 주제에 대한 두 개의 변주'라고 표현을 했으니 [공격]이라는 소설도 비슷한 주제나 소재를 다룬듯하다. 1998년작이지만 우리나라에는 2005년 처음 소개되었다. [적의 화장법]과 [살인자의 건강법] 이후 그녀의 작품들을 눈에 띄는 족족 손에 잡고 있지만, 첫 작품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인지 다시 그만큼의 전율을 느껴보진 못했다. 그 소름끼치는 전율. 그것이 처음이 주는 신선함 때문일수도 있다고 생각할 무렵,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적의 화장법]이나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었을 때만큼의 큰 충격을 준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앞의 두 작품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의 말마따나 [미녀와 야수]나 [노트르담의 곱추]를 연상시키는 구도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두개의 다른 결말을 통해 보여주는 아멜리 노통브식의 미녀와 야수의 사랑. 야수가 왕자로 변하지 않고, 곱추의 지고지순한 희생과 사랑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변태적이라고도 보여지는 '야수'의 사랑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해할 수 없는 '미녀'의 태도. 짧지만 (그녀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이 이 책도 문고판 크기로 200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강렬한 이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던지는 화두는 분명하다. 언제나 그렇듯 그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아 있지만 말이다. 나에게 있어 그녀의 작품을 읽는 것은 마지막 반전을 기대하며 서스펜서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더 강한 자극을 원하며 기대하며 책을 집어들고 실망하며 책을 내려 놓는 일을 반복한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도 예견하고 있는 그 '실망'의 책임을 작가에게 전가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그녀의 소설이 아직도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난 무엇보다 네가 내 기억에서 자유롭기를 원한다. 네가 날 죽이면, 난 그만큼 더 생생하게 네 기억 속을 떠돌거야. 기나긴 내 삶에 있어서 사람을 죽인 일이 나에게도 있었단다. 그래서 나도 살인의 묘한 효력을 알고 있지. 살인은 기억을 증진시켜. 내가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과거의 동료들은 여러 이유로 해서 내 손으로 직접 죽인 자들이야. 나를 죽임으로써 너는 나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 행위 자체가 날 네 기억 속에 영원히 각인시켜 놓고 말거야.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