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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 중국 무성영화 시대 중국 관객을 사로잡았던 전설의 여배우, 완령옥. 영화 <완령옥>은 완령옥에 대해 나누었던 배우들과의 대화를 담은 다큐와 완령옥이 실제로 출연했던 영화의 필름, 그리고 장만옥이 완령옥을 연기하는 허구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이 뒤섞여 이어져 나가는 독특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의 맨 처음, 완령옥이 출연한 실제 영화의 스틸 사진이 몇 컷 이어지고 바로 장만옥의 얼굴이 등장한다. 완령옥이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해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며 장만옥이 자신이 연기할 인물에 대한, 말하자면 연기에 앞서 캐릭터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완령옥의 연기, 영화, 남자, 인생, 자살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장만옥은 점차 완령옥이 되어간다. 완령옥이 초기에 출연했던 작품들은 대부분 필름이 유실되어 있어 우리는 장만옥이 재연하는 무성영화 시대의 여배우 연기를 보며 완령옥을 상상하게 된다. 이후부터는 장만옥이 연기하는 완령옥의 연기, 그리고 실제로 완령옥이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를 나란히 보여준다. 이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장만옥을 온전한 완령옥으로 생각하고 몰두하는 것을 방해한다. 영화 중간중간에 장만옥이 과장된 30년대 영화 화장을 지우고 너무나 눈부시게 예쁜 모습으로 나와 웃으며 완령옥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 장면들은 실제와 허구를 뚜렷하게 구분을 하며 영화를 보게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영화는 완령옥에 대한 영화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장만옥이라는 배우에 대해 말하는 영화가 되기도 한다. 영화를 찍을 당시, 1991년의 장만옥보다도 지금의 장만옥의 세계 영화계에서의 입지라면 당시 완령옥이 중국에서 누렸을 인기나 스타성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서 완령옥이라는 미지의 인물(적어도 내겐 생소한 배우였다)에 대해서, 그리고 장만옥이라는 배우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 '화양연화'를 목격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이렇게 실존했던 한 배우를 연기하는 배우, 오래된 영화 속 연기를 그대로 따라하는 작업,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해 덧붙이는 작업, 그 필름들이 흑백에서 컬러로, 또다시 흑백으로 뒤섞여 이어질 때, 작품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맨 마지막 장면 자살한 후 관 위에 누워있는 완령옥, 아니 장만옥은 감독의 '컷' 소리가 들리자마자 눈을 뜨며 숨을 몰아쉰다. 곧바로 카메라는 실제 완령옥이 관 위에 누워있던 모습을 같은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비춘다. 이쯤 되면 살아있는 장만옥이라는 배우의 현존성과, 육신은 죽었으나 은막 속에 영원히 이미지로 살아있는 완령옥의 존재성이 혼합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감독은 집요하게도 완령옥에게 장만옥의 모습을 투사하려는 듯, 장만옥에게 완령옥과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면 자살하겠느냐거나 앞으로 50년이 지나도 완령옥처럼 대중이 기억하는 배우가 되고 싶냐는 등의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를 찍은 뒤 50년이 지난 후 또 다른 어떤 배우가 완령옥을 연기했던 장만옥을 연기하는 영화가 나온다면 재밌지 않을까. 이 영화가 유달리 보이는 지점은, 최근 들어 빈번해진 여자 연예인들의 자살건에 대한 조명으로 비치기도 한다는 점이다. 완령옥의 연기에 대한 열정, 프로의식, 선한 심성은 그 누구도 의의를 제기할 수 없었으나 복잡한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온전한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두번째 애인과 동거 하고 있던 중이었던 완령옥은 영화에서 맡은 역할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고 첫번째 (못난) 애인의 시기와 투정 때문에 재판에 설 위기에 처한다. 재판에 서기 바로 전 날, 완령옥은 파티에 모인 지인들에게 차례대로 볼에 키스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그날 밤 음독자살을 한다. 그녀의 유서 내용 중 일부는 '죽는 것이 뭐가 무섭겠어요, 하지만 소문은 무서워요.'였다. 자신을 비난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비방이나 수군거림을 견디기 힘들었던 25살의 여배우가 삶보다 자살을 택한 것은 비단 오늘날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도 옐로우 페이퍼에서 추저분하게 거론되는 각종 스캔들과 루머, 가십들이 젊은 여배우의 삶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배우의 삶이란, 특히 젊은 여배우의 삶이란 명성과 맞바꾸어야만 하는 인생에 있어서의 고난의 크기가 너무나 치명적인 듯. 대종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손예진이 수상소감에서 말했던 '27살 여배우의 삶이 버겁다'는 말 역시 어느정도 비슷한 맥락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장만옥의 미모와 연기력, 허구와 실제를 유려하게 넘나드는 관금붕 감독의 편집, 한참 화려했던 1930년대 상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상과 세트들을 보여주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화. 특히 몇몇 중국영화 특유의 (진가신의 <퍼햅스 러브>에서 본 듯한) 뽀얀 질감이 한결 영화를 낭만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또 화면에 비치는 장만옥의 모든 게 반짝거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