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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미술관을 찾아 산수를 만나고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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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5월은 생기를 불어넣는 귀한 계절이다.   찰나에 지나가버리는 신록을 오랫동안 붙들어 맬 수 없기에   현재 절심함을 찾아 길을 떠난다.   오래 전부터 간송 전형필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그동안 재산을 털어 마련한   문화재를 보러가는 날은 난생 처음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설렘이   자리하여 마음은 방망이질 속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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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5월은 생기를 불어넣는 귀한 계절이다.

 

찰나에 지나가버리는 신록을 오랫동안 붙들어 맬 수 없기에

 

현재 절심함을 찾아 길을 떠난다.

 

오래 전부터 간송 전형필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그동안 재산을 털어 마련한

 

문화재를 보러가는 날은 난생 처음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설렘이

 

자리하여 마음은 방망이질 속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2010년 5월 16일부터 보름 동안 열리는 조선 망국 100주년 추념전이라는 테마를
 
걸고 고희동, 민영식, 안중식 등이 그린 수묵화가 주조를 이뤘다.
 
1910년 나라의 주권을 잃고 비운의 역사적 운명 아래 은둔의 길을 걷던 이들에게
 
자연물은 또 다른 마음의 위안을 전하는 매개물로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아들과 함께 서울행에 오르기 전 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문화유산 이야기에서는
 

우리 문화재를 되찾는 일에 돈을 아끼지 않았던 모습을 통해 민족의 얼이 배어

 

있는 문화유산에 남다른 애정이 더했던 듯하다.

 

외래 문물에 젖어 민족적 정체성을 잊고 지내기 일쑤인 후손들에게 선생님은

 

꽁꽁 숨겨 준 문화재를 1년에 두 번 대중들에게 선보이며 우리의 뿌리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듯하다.

 

흩어진 우리 문화재를 찾기 위해 거액의 돈을 내걸어 경매에 나설 때면 우리

 

문화재를 홀대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크게 작용하여 문화재 수집에 나서서

 

작품을 한곳에 모아 둔 과정을 사진 속에 담았다.

 

일제 때도 잘 지켜냈던 문화재를 미군들 손에 넘어갔고 그 문화재를 되사들이는

 

과정을 통해 예전의 물건들을 정리하여 보화각에 넣는 과정 속에서도 간송은 어떤

 

원망의 빛도 내비치치 않았다. 이 모든 것을 민족의 운명으로 달게 받아들이며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며 지냈다.

 

따뜻하고 소탈하면서 예술 앞에서는 더없이 엄격했던 간송이었기에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그의 주변에 모이게 되었다.

 

보화각에서 잃어버린 문화재를 사들이느라 많은 돈을 섰고, 보성학교를

 

경영하는데도 많은 빚을 지는 상황에서도 고고미술 동인지를 발간해 우리

 

문화재를 보존하려는 의지를 더했다.

 

                    
경북 문경의 한 절터에 서 있던 오층석탑이 헐값에 팔려 가는 것을 지나치지 않고
 
현금을 바로 건네 간송미술관 들어가는 뜰에 자리하고 있다. 상하의 비례가 더욱
 
아름다워 안정감이 더한 고려시대 전문경오층석탑을 대하니 그 감흥이 더했다.
 
 

물 오른 나무처럼 생생함을 더하는 스무 살 남짓

간송 전형필은 마음을 모아

흩어진 문화재를 찾아 길을 떠났네.

고미술품에 애정이 깊은 오세창 선생을 만나

민족혼을 고스란히 담아 둔 문화재를 소중히 다루며

기와집 스무 채와 맞바꾼 매병

훈민정음 원본을 찾아 일본인들 몰래

안동을 찾아 일만 원을 건네고 소장하게 된 국보 70호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마음은

생의 정점에 이르러 꽃을 피워

우리 문화유산을 한곳에 모아

여럿이 더불어 즐기는 문화를 위해

한 우물을 팠네.

쉰일곱의 나이에 서둘러

세상을 버린 전형필 선생은

이슬처럼 영롱한 빛을 발하며

성북동 산비탈에 자리한

보화각 뜰에 흉상으로 남아

미륵보살 같은 잔잔한 미소로

간송미술관을 찾는 이들을 반긴다.

 

                  


n*****9 2010.05.18. 신고 공감 5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간송]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잘 지켜내야할 우리 문화유산
"[간송]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잘 지켜내야할 우리 문화유산" 내용보기
간송미술관을 찾은 지가 4년인가가 되는 듯 하다.처음엔 우연히 이름만 듣고, 2번째는 첫 전시를 보고 마음 편해하는 아이의 바램으로 인해...그렇게 이어지는 것이 최소 1년 1회의 관람은 기본으로 생각하고 서울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은 도록도 여러 권. 정작 이곳을 만드신 분의 이야기는 뒤로 밀쳐놓은 채로 말이다.간송 전형필 선생은 선택받은 사람이란 생각을 우선 하게
"[간송]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잘 지켜내야할 우리 문화유산" 내용보기

간송미술관을 찾은 지가 4년인가가 되는 듯 하다.
처음엔 우연히 이름만 듣고, 2번째는 첫 전시를 보고 마음 편해하는 아이의 바램으로 인해...그렇게 이어지는 것이 최소 1년 1회의 관람은 기본으로 생각하고 서울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은 도록도 여러 권. 정작 이곳을 만드신 분의 이야기는 뒤로 밀쳐놓은 채로 말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선택받은 사람이란 생각을 우선 하게 된다.
그의 스승인 위창 오세창선생님의 말을 빌어 표현한다면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일은 그 일에 생애를 바치겠다는 굳건한 뜻이 있어야 하네. 아니, 그 뜻만큼 중요한 것이 능력이야. 우리 문화재를 닥치는 대로 사들이는 일본인 수장가들과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일세.' -본문 50쪽
타고난 경제력이 뒷받침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받은 교육들이 간송 선생의 안목을 키워줬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양자로 가게 된 것 역시도 이분에겐 운명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타고난 운명과 자신의 할 일을 빨리 알아채는 것은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법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며, 우리 문화 유산을 찾기에 순응하는 모습은 실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문화 유산에 대한 투자가 아닌, 나라를 잃은 슬픔을 우리 것에 대한 갈증을 직접 푸는 것으로 승화시켰다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간송선생님의 문화 유산을 찾아내고 모으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훈민정음에 관한 부분이다.
이 부분 역시 나의 미미한 표현보다는 본문의 표현을 빌리는 것이 나을 듯 하다.
'그렇게 하시지요. 귀중한 책일수록 필요한 사람들이 손쉽게 보고 공부할 수 있어야지요.'
'영인본 출간의 의미와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이시기에 쉽게 허락을 하시는구나!'
그런데 의외로 쉽게 허락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이겸로는 이후의 간송의 태도에 다시 한번 놀라야 했습니다.
간송은 정성을 다해서 책을 묶은 끈을 풀러, 손수 한 장씩 책장을 해체해 나갔습니다. 마치 책갈피 사이에 끼여 있는 먼지 한 조각조차 소중해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간송은 밤늦은 시간에 작업하던 책을 모두 다시 싸들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나와서 변함없는 태도로 촬영 작업을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본문 119~121쪽
누군가에게 맡겨도 될 일이지도 모르지만, 소중한 유산에 대한 이러한 자세가 지금의 간송미술관을 있게 한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재산에 대한 재투자의 의미가 아닌, 순수한 문화 유산에 대한 애정으로 지켜낸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는 계기가 된 책으로 이 책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간송미술관을 방문하기 전에 그 누구라도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하는, 그리고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집착하지 않은 대범함에 고개를 조아려야할 때이지 않을까.
문화 유산이 준는 의미에 대해 기본부터 상기하면 좋지 싶다.

김동성님의 따뜻한 그림과 글작가의 이야기체의 글이 주는 편안함이 잘 녹아든 책으로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한다. 어린이책이라고 절대로 얕잡아 보지 말기를.
또한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과 탑 등을 살짝 맛볼 수 있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현 간송미술관 실장이신 최완수 선생님의 감수가 사실감을 전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자, 봄과 가을에는 성북동 간송으로 가자. 다른 나라의 그림을 지나치게 많이 보아온 우리 눈에 여백의 미와 편안함을 전해주러. 그리고 다른 전시장과는 다른 자연 채광의 조명 아래서 바라보는 우리 유산을 보러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다지면 더 좋을 것 같다.

a******0 2011.10.24. 신고 공감 2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문화재 지킴이, 간송 전형필
"문화재 지킴이, 간송 전형필" 내용보기
이 책은 평생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고 지킨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의 이야기와 그가 지켜낸 값진 문화재 그림, 사진이 실린 책이다. 그가 문화재 수집가가 된 것은 단지 돈이 많아서도 아니었고, 취미가 고상해서도 아니었다. 독립운동가 오세창을 만나면서 간송은 민족 문화재를 지키는 일에 대해 남다른 소명을 갖게 되었고, 일제 점령기를 거치면서 우리 문화재가 일본으로 넘어가
"문화재 지킴이, 간송 전형필" 내용보기
이 책은 평생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고 지킨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의 이야기와 그가 지켜낸 값진 문화재 그림, 사진이 실린 책이다. 그가 문화재 수집가가 된 것은 단지 돈이 많아서도 아니었고, 취미가 고상해서도 아니었다. 독립운동가 오세창을 만나면서 간송은 민족 문화재를 지키는 일에 대해 남다른 소명을 갖게 되었고, 일제 점령기를 거치면서 우리 문화재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도무지 그냥 바라볼수가 없어서였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는 이건 돈 많은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아무리 훑어봐도 간송이 경제 활동을 하여 돈을 힘겹게 번 내용을 찾을 수 없었기에 더욱 먼 나라 사람 이야기로만 들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많이 가졌다고 간송처럼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가 수차례에 걸쳐 힘겹게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노력을 했고, 자기 재산을 아까워하지 않았으며, 문화재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제 값을 쳐 주었다는 장면에서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아직 외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들이 수십만점에 달한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각계각층에서 우리 문화재를 지키려는 노력을 구체적으로 시작하고, 동시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우리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YES마니아 : 골드 j***a 2006.06.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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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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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독서대회에 나간다며 산 책인데 읽어보더니 너무 재밌다고 저에게 권했습니다.우리 문화재 사진과 그 문화재를 다시 찾게 된 일화를 쓴 책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것인데 우리의 것을 많은 돈을 주고 되찾아 왔다는 사실에 참 슬폈습니다.얼마나 우리가 무지했나 싶기도 했습니다.간송 선생님 덕분에 소중한 보물들이 우리곁에 있는 것처럼 아직도 외국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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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독서대회에 나간다며 산 책인데 읽어보더니 너무 재밌다고 저에게 권했습니다.우리 문화재 사진과 그 문화재를 다시 찾게 된 일화를 쓴 책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것인데 우리의 것을 많은 돈을 주고 되찾아 왔다는 사실에 참 슬폈습니다.얼마나 우리가 무지했나 싶기도 했습니다.간송 선생님 덕분에 소중한 보물들이 우리곁에 있는 것처럼 아직도 외국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찾는데 관심을 가져야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아이들이 이런 책을 많이 접해서 우리 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잘 보존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이번 여름방학에 간송미술관에 찾아 가 보기로 약속했습니다.

나라의 문화재가 국민의 자존심까지 올려주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n****7 2008.06.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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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선생님과 보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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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0. 30 오봉초 4학년 최 상철 현재있는 한글의 시초판, 훈민정음. 그 훈민정음은 도대체 어떻게 구해졌을까? 훈민정음은 예전에 보화각이라 불리던 간송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간송 미술관은 전형필 선생님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예전에 훈민정음 원본판이 발견되었을 때, 우리나라 언어를 없애려던 조선 총독부의 눈을 피해 은밀히 구입하여 보관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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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0. 30 오봉초 4학년 최 상철 현재있는 한글의 시초판, 훈민정음. 그 훈민정음은 도대체 어떻게 구해졌을까? 훈민정음은 예전에 보화각이라 불리던 간송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간송 미술관은 전형필 선생님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예전에 훈민정음 원본판이 발견되었을 때, 우리나라 언어를 없애려던 조선 총독부의 눈을 피해 은밀히 구입하여 보관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위대한 자료인 훈민정음을 구했다는 전형필 선생님은 일제시대 많은 일본인에 의하여 엄청난 양의 우리나라 물품을 도둑맞았다. 전형필 선생님은 그렇게 거래되어 사라져가는 우리나라의 물품을 비싼 값을 주고 사들여 잘 전시해 놓는 일을 하셨다. 만약 그분이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국보와 보물이라고 지정해 놓은 유물의 수도 적었을 것이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바쳐 유물을 구하신 간송선생님. 그것도 그 많은 재산을 전부 기증하신 위대하신 분. 나같으면 개인소장을 하여 평생을 간직하려 했을 텐데... 또한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도 그만큼 대단하다. 처음 고려청자를 보고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들여 많은 고려청자를 모았는데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게 되자 단 두개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전부 전형필 선생님에게 팔았다. 전형필선생님의 문제는 돈이 아니라 그것을 구하는 것이였기에, 돈은 비쌀지라도 간송 선생님에게는 매우 큰 행운이였을 것이다. 역시 간송 선생님의 마음은 우리 한국인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간송 선생님의 한가지 단점은, 자신의 조상이 이룬 땅을 전부 팔아서까지 재산을 마련한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를 위하여 한 일이지만 조상과 부모님에게 큰 심려를 끼쳤으니 불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책을 읽고 크게 느낀점이 있다. 일제 시대때는 어떻게든 우리말을 잃지 않으려고 크나큰 노력을 하였는데 지금은 어째서 영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가? 난 그것이 의문이다. 페스티벌, 에어콘, 섬머, 홈쇼핑등 이미 우리나라의 언어가 있는데도 그대로 사용하는 때가 많다. 빵같은 것은 어쩔수 없이 받아들이더라도 우리나라에 이미 존재하는 언어를 바꿔사용하는건 나라사랑에 옳지 못하다.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 나라사랑에 관하여 부쩍 관심이 많아지게 되었다. ------------------------------------------------------------------------------- charliemom 이 책을 내년에 다시 한번 아이가 읽었으면 좋겠다. 아니라면 그 이후라도...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사람에 대한 생각이 너무 강한 것인지...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아내라는 주문만 너무 했던 탓은 아닌지 되짚어 보게 된다. 아이는 그토록 힘든 일을 해낸 간송선생님을 존경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표현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지만 간송 선생님의 고뇌도 읽어 낼 수 있는 눈높이를 기다리며, 지금의 눈높이에서 조금 더 내딛기를 기다리며... 간송미술관이 정말 있느냐는 아이의 반문에 같이 책나들이를 해볼까한다. 오늘 이 책을 통한 간송 선생님과의 만남이 아이의 가슴에 깊게 자리했기를 기도해본다.
YES마니아 : 로얄 s****3 2006.11.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