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어울리지도 않는 영어 나부랭이로 글머리를 장식하며 [블레이드 러너] DVD 리뷰를 시작해 본다. 며칠 전 베란다에서 담배를 태우며 밤바다를 보고 있는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란 영화의 한 장면이 뜬금없이 생각났다. 레플리컨트의 리더인 로이 (룻거 하우거)가 데커드 (해리슨 포드)를 구해 주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특히 로이가 글머리에 쓴 영어 대사를 읊조리는 장면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 칠팔년 전에 구한 대여용 비디오 테잎이 있긴 했지만 원체 낡아서, 요즘 맛들인 DVD를 구해볼 요량을 내본다. 힘들게 구한 DVD. 역시 DVD는 다르군. 화질… 죽인다. 음향… 역시 죽인다. 근데… 어라?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진 레터박스로 처리되어 있더니, 정작 본편이 시작하자마자 4:3 TV 배율로 바뀌었다. 분명 자켓에는 레터박스로 처리된 Widescreen Version이라고 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아무 이미지도 없는 공 CD 같은 디스켓을 이리 저리 돌려봤더니, 한 면은 Standard Version 이고 다른 한 면은 Widescreen Version 이란 걸 알게 되었다.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해서 반대 면으로 아주 선명한 화질과 음향, 그리고 레터 박스로 처리된 화면 배율의 [블레이드 러너]를 감상했다. 역시나 로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의 비장함은 네멋에서 느꼈던 감동과 맞먹는다. 로이의 은발머리로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줄기와 로이의 물기어린 목소리, 그리고 고개를 떨군 로이의 머리위로 퍼지는 반젤리스의 신디사이저. 그런데 2000년에 제작된 것이어서인지 서플먼트가 너무 부족하다. 영화 본편과 출연진, 그리고 언어 선택 뿐이다. 인터뷰나 메이킹 다큐 같은 게 전혀 없으니까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 스필버그가 연출한, 당 영화와 같은 원작자인 필립 딕 K의 다른 단편 [마이너리티 리포터]는 원작만 읽어보고 영화는 안 봐서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원작 매니아들로부터는 그리 좋은 평을 못받았다고 한다. 이 영화는 원작은 절판된 상태라 읽어보지 못하고 영화만 봤지만, 그리 소설 매니아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원작의 제목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이 영화는 감독의 출세작인 79년 작 [에일리언] 이후 3년 만에 제작한 영화로 1982년에 개봉했다. 개봉 결과는 쫄딱 망했다고 한다. 여기엔 2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스필버그의 ET랑 같은 해에 개봉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작사측에서 흥행결과를 염두에 두고 이 영화를 멋대로 재편집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해리슨 포드의 지루한 나레이션과 뜬금없는 해피엔딩으로 인해 엉망이었다고 한다. 제작사 편집판은 본 적이 없지만, 영화음악을 담당했던 신디사이저의 대가 반젤리스가 이런 제작사측의 횡포에 항의하여 OST 출시를 반대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라니 제작사가 당 영화를 엉망으로 만들긴 했나 보다. 그러다가 10여 년이 지난 뒤 리들리 스콧 감독과 주연이었던 해리슨 포드의 강력한 주장으로 결국 [블레이드 러너]는 감독판으로 재개봉될 수 있었고, 드디어 이 영화의 가치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남들이 걸작이라고 혹은 졸작이라고 평하건 중요한 건 '이 영화는 나에게 어떤가?'가 아닐까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 이 영화는 신학적인 은유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의문을 제기해 준 영화였다. 창조자와 피조물, 원죄,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사유론에 대한 반증은 이십대 철없는 치기로 가득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어 주었던 기억이 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지만, 이 영화는 사람 마음을 참 비장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
| 감히 사람들한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1순위라고 말하는 영화. 일단은, 1977년작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봐도 살짝 촌스러운 정도(?)라고 말할 정도로 앞선 시대 감각이 좋다. 음악, 영상....특히 감독은 77년에 무섭게 성장할 일본의 경제력을 예감했던지 하얗게 화장한 전통적인 일본여성의 광고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이상한 일본어와 곁들어 괴상한 최면효과까지 있다.아울러 뒤에 나올 나른한 음악과 곁들어 몽환적인 느낌도 준다. 영화에 몰두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시대를 앞서는 반젤리스의 전자음악과 곁들어 역시 시대를 앞서는 영상은 이 영화를 ''단순히 잘만들어진 sf영화''로 착각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존재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물음과 고찰은 이 영화가 단순한 sf영화가 아님을 보여준다. 감독의 메시지는 매우 교묘해서, 처음 어눌한 발음으로 말하는 엑스트라의 말과,정지화면처럼 보이지만 동영상인 사진, 그리고 주인공 해리슨 포드가 계속 반복적으로 꾸는 유니콘의 꿈 사이사이에 언뜻언뜻 스쳐지나가게 만든다. sf라는 장르는 무척 매력적인 장르인 것 같다. 감독의 메시지가 철학적일 수록,웅장할수록, 비장미가 있을수록 감독의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밤 다시한번 블레이드 러너나 곱씹어 봐야겠다. |
| 어두운밤, 현란한 네온사인과 전광판에 비치는 기모노를 입은 여자와 코카콜라의 광고. 그 앞을 지나가는 미래형 하늘을 나르는 자동차. 블레이드러너에서 보여주는 미래의 풍경은 조금은 암울하다. 반젤리스의 몽환적인 전자음악이 더욱더 이영화의 음울한 분위기를 살려준다. 그리고 이때 까지 봤던 다른 공상과학영화와는 다른 인간의 대한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감겨있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은 리플리컨트을 만들었고 리플리컨트는 과연 인간의 피조물인가 아니면 각각의 자아를 가진 개인적인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을 주 내용으로 삼고 있다. 주인공인 데커드 형사는 리플리컨트와 사랑에 빠지면서 그 답을 제시 해준다. 나에게 가장 인상깊게 남은 배우는 룻거하이드...초반에는 터미네이터처럼 강인하고 기계적이고 잔인한이미지로 나오는데 그의 마지막 대사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존재였음을 말해준다. |
| 최초의 3분을 기술하는 법.... 100억광년밖 천체의 구성물질을 기술하는 법.... 비공간의 탈공간성을 정의하는 법.... .... 태고적부터 그림자 같았던 인간의 의식자체를 규명하기 힘든.... 유기체의 사고활동에 관한 어떠한 명제도 참임을 증명할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 그토록 부족한 시대에 우리는 커다란 밑그림을 그리기위해 준비하고 있다.... .... 나와 네가 같다면.... 나와 개와 풀과 돌과 물과 쇳조각과도 같은것.... .... 누군가가 나와 같이 생각하고 나와 같이 행동하는것을 결코 스스로는 인지할 수 없듯.... 우리의 어떤것이 저것은 우리와 다른것이라는 강박관념을 발현하게 했는가.... .... 부지불식간에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순간 절대적으로 겸허해져야할 것.... .... 로이 베티는 결코 우리가 만들어낸 열등한 존재가 아님을 각인해야할 것.... 그저 우리와 다른 존재임을 마음에 새겨야할 것.... .... 의식의 유기체 전용이 확증되지 않는 한.... 모든 체계는 부정과 비판이 아닌 ''다름''의 수용에 침착해야할 것.... .... 안드로이드가 전기양의 꿈을 꾸는지 전혀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는.... 입을 다물고 있는 상대가 다정한 한마디를 전하기 전까지.... 우리는 내 가족, 내 친구, 내 원수가 비맞는 꿈을 꾸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음을.... .... 침묵은 수천가지 말을 한다.... 웅변의 열등이 침묵이 아님을 인지.... 그저 다른 존재라는걸 마음으로 인정하게 될 때.... 기계가 생각할 수 있다면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스스로'' 상상의 소산으로써 세계의 질서를 규정해버리려는 자만에 가득찬 물음은 해답을 얻을것.... .... 바라볼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의 눈으로 이면을 바라보려 하지말자.... 타자의 체계는 그저....나와 다를 따름.... |
| 얼마전에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를 본적이 있다. 'A.I' 와 '아이로봇' 이디. 둘다 감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의 로봇이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리플리컨크도 비슷한 존재이다. 비록 인간을 공격하는 반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반란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생명은 무엇이고 어디까지가 생명이 아닌 것일까. 애완용동물은 어디까지일까. 개는 먹어도 되는 것일까. 고양이는 죽이면 안되고 바퀴벌레는 죽여도 되는 것일까. 생각은 이렇게 끝없이 전개될 수 있다. 사람모양을 하고 사람의 감성을 가진, 그러나 4년이면 죽을수 밖에 없는 유한한 생명. 그러나 4년을 사는 것과 100년을 사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 또 산다는 것돠 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차이일까. 이 영화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