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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광고에도 나오지만 이 작가는 정말 천부적인 재능이 아닌가 한다.
자기 경험을 적어도 이렇게 술술 나오지는 않을 듯 하다.
더구나 여자 작가가 남자 주인공의 정서를 이렇게 솔솔 풀어내다니...
(뭐 태산이 무너지는 실연에 남녀의 디테일이 얼마나 크겠냐마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정서공감이 아닐까?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은, 한번이라도 매몰찬 헤어짐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소설 속 주인공처럼 눈물로 잉크를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아, 정말, 슬프다.
40살의 유리가 아이같고 20살의 이소가이는 어른스럽다고 주인공 이소가이는
생각하지만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나 상황은 역시 유리가 어른이고 이소가이는
안절부절 아이와 같다. 그것이 남자와 여자의 사랑막음의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둘의 이별의 통보와 정서는 역시 버려진 이소가이가 가여운 아이로만 보인다.
전화는 온도다!
원래 여자를 믿지 않는 이소가이가 스폰지처럼 녹아든 사랑. 스무살 연상의 유리짱.
정리가 되지 않을 즈음 사랑의 상처는 커지고 이소가이는 믿지 않아 헤어져도 의연하고 싶었던 자신의 태도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그런 것이다. 사랑에 어찌 예방접종이 있겠으며 전영록도 아니고 연필로 쓴다는 게 쉬운 것인가.
이 짧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오래 가슴에 남는 이유야말로 이 작품의
장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방접종은 안되더라도 사후 처방전은 될 듯.
[인상깊은구절] 여자는 믿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1년 정도 사귀었던 여자애가 있었지만, 그녀에겐 나 말고도 다른 남자친구가 있어서 결국 내 쪽이 채이고 말았다. 물론 그 정도 경험으로 사랑이란 걸 알게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얼마나 상처 입게 되는지 깨닫게 됐다. 여자들은 다른 사람을 도와 주거나 하지 않는다. 기분이 시도 대도 없이 바귄다.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한다. 그런 주제에 '너를 생각해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반하고 말았다면 함께 있기는 하지만 절대 믿지는 않는다.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늘 할 수 있는 배려를 해 주면서도 강한, 갑자기 혼자가 되더라도 태연할 수 있는 강한 마음을 지니고 사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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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2001년 제 41회 문예상을 받았다는 작품이라는데, 다 읽고 난 후에 느낌은 "뭐지?"였다. 특별히 눈에 띄는 갈등구조도 없고, 재미를 유발하는 커다란 사건도 없다. 그저 평범하기만 한 일상의 이야기랄까? 10살이 넘는 연상연하 커풀의 사랑이야기라는 소재와 선생과 제자라는 인물간의 관계는 독특하기는 하지만, 그게 다다. 얇은 책 두께만큼 간결한 이야기의 전개는 허무하다고 할까, 한 때 유행했던 "쿨"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1인칭의 주인공 시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담담하다 못해서 건조하기까지 하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시점이라기 보다는 3인칭 시점의 화자가 아무 감정 없이 건조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듯하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라는 직설적인 표현에 문장에만 감정을 이입해서 이해를 한다면, 화가 난 청춘이 세상에 항변하는 듯한데, 오히려 역설적으로 무미건조한 느낌의 소설이다. 내가 문화 평론가도 아니고 문학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라, 작품을 좋고 나쁨보다는 내가 가지는 느낌과 감정이 책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지만, 과연 이 작품이 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품인지 의심이 갔다. 차 안에서 급하게 읽은 책이라 내가 잘못 이해하고 느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시 읽어보았다.
다시 읽어도 저자가 전해주는 건조함이랄까 담담함은 변화가 없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조금씩 보인다. 여기서 "섹스"라는 단어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나 철학 또는 생활관이랄까? 사람의 은밀한 비밀이라기 보다는 각자가 가지는 개성과 사생활이랄까? 아무튼 한 단어로 표현하기 힘들다. 저자는 남자 주인공의 눈과 가치관이라는 필터를 통해 투영되고 평가된 사람들의 이야기한다.
차이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첫 걸음이 눈을 통해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것인데, 주인공은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이나 연령대를 가진 사람은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연상녀의 가치관은 이해 못한다. 세대차이에서 오는 간격일까? 세대차이라기보다는 단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면서 관대한 인간의 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비슷한 가치관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평가와 비평을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난도질하는 것이기에 그냥 쉽게 이해해 버린다. 반면,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해와 공감하려는 노력보다는 판단하고 평가하려 한다. 그래서 쉽게 타인의 이야기, 즉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쉽게 입에 올리고, 좋고 싫음과 선과 악을 쉽게 판단해 버린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이야기보다 타인의 이야기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안주거리나 대화의 중심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비웃는 우리를 향해서 말하고자 한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말라"고. 소위 뒷담화라고 하는 것들로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우리들을 향한 일침을 놓는다. 사람 저마다의 삶과 가치관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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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소설의 타이틀을 검색하니 성인인증이 떠서 황당했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를 설명하는 필수적인 수식어는 '타이틀과는 다르게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다'라는 것이 아닐까? 식상하지만 나도 그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의도하고 방임한대로, 제멋대로 짐작한 독자들에게 다소의 배신감(?)과 더불어, 씁쓰레한 사랑의 잔상을 가득 안은 채.
39세의 미술 전문학교 강사인 유부녀 유리와 사랑에 빠진 19세의 풋내 나는 학생 미루메. 이 흔해빠진 불륜의 코드를 에쿠니 가오리였다면, 섬세한 문체로 아련하게 그려냈을 것이고, 무라카미 류였다면 사회문제로까지 변질되는 치정극으로, 와타나베 준이치라면 처절하기까지 한 신쥬(동반자살)로 풀어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야마자키 나오코라는 사랑과 실연의 과정을 담백하고 담백하게 그려가고 있다. 김빠진 맥주마냥.
유리는 시원찮은 그림을 그리고, 늙수그레한 남편과는 썩 사이가 좋지 못하고, 예쁘기 보다는 딱 그 나이 때의 다소 느슨한 몸매를 가진 중년여성이다. 일상적인 일에는 마냥 서툴기만 해, 가끔은 신경질이 날만큼 손이 많이 간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돌봐주고 싶은 욕구 때문에 불안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자꾸만 안고 싶고, 그저 그런 섹스를 해도 좋기만 하다. 이런 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미루메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랑을 해 보면 이상형이라는 게 따로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모습에 마음이 빨려들고 만다. 그런 것이다. 내 이상형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 있는 그 사람의 모습에 내 마음이 빨려들고 마는 것이다.(p 47)
도덕성이나 상식적인 잣대로는 도무지 가늠하기 힘든 유리와의 사랑이 일방적으로 끝나버려도, 미루메는 도무지 유리를 놓을 수가 없다. 실연을 당해도, 여전히 유리를 그리워하는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이 청년에게서 영화 <봄날은 간다>의 상우가 떠오른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를 외치던 상우. 그러나 사랑이 변하던, 변하지 않던, 끝이라고 해서 사랑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미루메의 항변에, 정말로 타인의 사랑을 비웃을 수가 없다.
지난 해 일본에서 개봉하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던 바 있던 동명의 영화는, 정말 40대에 가까운 나가사쿠 히로미(1970년생)가 유리로 열연하는데, 원작과는 다르게 너무나 귀엽고 깜찍한 매력이 철철 넘쳐, 마치 트루먼 카포티의 헤로인을 보는 것 같았다. 마루야마 켄이치(미루메), 아오이 유우(엔짱)등이 나오는 호화 캐스팅이었지만, 원작 특유의 사랑의 서늘한 온도차를 미묘하게 살리지는 못했다. 130분이 넘는 버거운 러닝타임 내내, 여기저기 무게중심이 너무나 많이 삽입되어 있어, 산만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100페이지도 채 안 되는 중편이지만, 강렬한 타이틀과 대비를 이루며 시종 차분하게만 전개되는 쌉쌀한 사랑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사랑이 변해가고 끝나버린 이후일지라도, 또 다시 찾아들 다른 사랑에게서는 발견해낼 수 없었던 어느 정수를 간직한 채, 그래도 삶은 계속되는 흐름 속에 몸을 맡기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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