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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그런 순간과 마주한다. 이게 진짜 내 생일까 하는 의구심. 그러니까 모든 게 꿈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든다. 깨어나야 하는 게 깨지 않는 건 아닐까. 자각하지 못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 존재하는 나는 실제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꿈을 자주 꾸는 내가 싫다. 어떤 꿈은 너무 잘 맞아서, 어떤 꿈은 너무 무서워서.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유디트 헤르만의 에세이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에세이』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다. 이 책은 시학 강의록으로 쓰기와 말하기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고 유디트 헤르만, 작가 자신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라 할 수도 있다. 하긴 뭐가 중요하겠는가. 읽는 동안 그에게 빠져들었고 나는 이제 유디트 헤르만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어쩌면 나는 이처럼 잡을 수 없는, 몽환적이고 몽환적인 글에 매료되는지도 모른다. 그의 단편집 『레티파크』에서 느꼈던 분위기, 그 소설에서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 조금 알 것 같고 이 에세이를 통해 모호했던 것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의 가족, 친구, 지인, 정신분석가, 그가 좋아한 공간에서 보낸 시간, 그곳에서 보낸 여름에 대한 이야기.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과 운명처럼 만난 특별한 이들(선택가족)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 그 모든 것을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정작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쓰고자 노력하고 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이야기에는 첫 문장이 있다. 책 속 이야기가 시작하는 문장이 아니라, 내 머릿속 이야기가 시작하는 첫 문장 말이다. 가끔은 어떤 이미지 또는 순간, 무언가를 향하거나 무언가에서 떨어지는 시선. 하지만 대개 그것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말하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을 듣고, 불과 몇 초일 뿐이지만 그동안에 명확하고 몸에 바로 와 닿는 감각을 느낀다. (45쪽) 이 에세이는 이상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연결돼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것은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이 되기 때문이다. 쓰고 보니 내 글은 멍청하다. 작가에게 연결, 영향, 소설은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정신분석가와 작가에게 그를 소개한 친구 ‘아다’와 세상을 떠난 ‘마르코’ 가 에세이를 지배한다고 느꼈다. 그들이 함께 보낸 여름은 자유롭고 명랑하고 선명하다. 여름의 그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모든 규율은 사라지고 그들만의 규칙으로 채워진 시간들. 아직 읽지 못한 『여름 별장, 그 후』이 더욱 궁금하다. 에세이를 읽기 전 읽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나는 이후에 읽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정식 분석을 받는다고 하면 상담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유디트 헤르만이 들려주는 건 그가 의자에 누워있고 박사는 그 뒤에 서 있는 게 전부다. 대화라기보다는 말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레티파크』의 「꿈」의 모습이다. 에세이에서 상담을 끝낸 후 오랜만에 우연히 그를 만나 나눈 이야기.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자신의 소설을 읽었냐고, 그러니까 단편 「꿈」에 대해서. 『레티파크』 속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의 이야기 「시」도 마찬가지다. 모두 실제라는 것. 그녀의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보낸 시간, 폐쇄 병동으로 아버지를 면회 가던 시절, 그리고 아버지에게 시를 읽어준 일. 아버지는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한 가장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직장에 다녔고 그녀를 키운 건 할머니였다. 어머니가 벌어온 돈으로 담배, 책, 가구를 사고 그것들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 아버지. 그런 부모가 고독과 불안을 안겨줬을 건 분명하다. 평생 우울증을 앓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놀라운 일을 벌인다. 그것은 부모가 살던 거리의 모든 집이 팔렸고 사람들은 이사를 나가고 그녀의 부모가 마지막 세입자였을 때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위해 누군가 이사 온 것처럼 꾸민다. 그러니가 가짜 명패와 희미한 불빛, 발코니의 식물들. 어머니의 안정을 위한 아버지의 아이디어는 다정하고 살뜰하다. 쓴다는 건 결국 나를 꺼내는 일이며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누군가를 향한 애도이자 그리움, 거짓과 진실을 오가는 마음, 왜곡된 기억과 사진으로 남은 선명함 같은. 그게 소설이든 에세이든, 혹은 일기나 메모든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자꾸 ‘말하지 않은’으로 읽은 ‘말해지지 않은’ 것들은 무엇일까? 정확하지 않은 기억일까. 아니면 비밀일까.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말, 닫히고 감춰진 말들일지도. 잘 모르겠다. 아니, 영영 알지 못할지도. 어떤 문장은 현실에 너무 가깝다. 그것들은 현실에 속하며, 현실과 분리할 수 없다. 그것들에는 비밀이 없다. 그것들은 명백하고, 진실이며, 이 문장들에는 뒤흔들 것이 없다. 하나의 이야기 안으로 인도하는 문장들은 중간 세계에서 오고, 불투명하고, 해석 가능하고, 바꿀 수 있으며, 이는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세계를, 나의 세계를 이야기를 통해 바꿀 수 있다. (82쪽) 여전히 모르겠고 나는 닿을 수 없다. 다만, 삶을 쓴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사실. 무엇을 쓰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쓰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 무의미한 글이 나를 존재하게 만들고 어느 순간 의미 있게 다가오기도 하니까.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열리게 되는 순간이 올 테니까. 물론 말해지지 않아도 상관없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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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받았습니다. <레티파크>의 진실이 담긴 유디트 헤르만의 첫 자전 에세이! ⠀ ⠀ 유디트 헤르만의 글을 읽다 보면, 언어가 닿지 못하는 어떤 깊은 순간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에게 침묵은 단순한 말의 부재가 아니다. 오히려 말이 멈춘 자리에서 더 많은 것들이 태어난다. ⠀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존재의 결이 그 고요속에서 서서히 떠오른다. ⠀ ⠀ 나는 그런 침묵을 오래 바라보는 그녀의 태도에 마음이 머문다.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사유, 언어의 여백에 깃든 본질. ⠀ ⠀ 그녀는 그 여백을 경청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 나 역시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어떤 기척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더 가까워지는 진실이 있다고 믿기에. ⠀ ⠀
#제작비지원 ⠀ ⠀ #말해지지않은것들에대한에세이 #유디트헤르만 #바다출판사 ⠀ ⠀ ⠀ 1부는 한 정신분석가와의 뜻밖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그 낯선 대화 속에서 오래전 친구들—아다와 마르코—와 함께했던 젊은 날의 풍경을 천천히 꺼내 놓는다. 그 시절의 공기, 말하지 못했던 감정, 그리고 흩어진 기억들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 2부에 들어서면, 저자의 시선은 유년 시절로 향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놓여 있던 풍경들, 그중에서도 할머니와 아버지의 존재는 기억 속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저자는 그 시절의 공기와 침묵을 더듬으며, 어린 날의 자신을 다시 바라본다. 말보다 먼저 다가오는 감각들, 그 안에 머물던 사유들이 조용히 피어난다. ⠀ 3부는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삶을 다시 살아내는 방식이라는 듯. 저자는 언어의 여백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그 침묵을 경청하며, 삶과 글 사이의 미세한 결을 조심스럽게 짚어간다. ⠀ ⠀ <레티파크>를 먼저 읽고 에세이를 본 나로서는 화자의 목소리에 깊이 몰입하기보다는, 어느새 곁에서 바라보기를 하게 된다. 일상 속에서 누군가를 아무 목적 없이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드문 경험인가. 유디트 헤르만은 바로 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가능하게 하는 작가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옆에서 그저 지켜봐 주는 시선만으로도 얼마나 고요한 힘이 될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 그것은 마치 삶을 조금 덜 다그치고, 있는 그대로의 순간을 받아들이는 연습과도 같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녀의 문장에 매료된다. 모호함을 모호함으로 남겨두고도 그 속에서 안도감을 얻게 되는 경험, 그것이야말로 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특별한 선물이다. ⠀ ⠀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에세이> 에서 건져올린 문장은 노트에 고이 담아내려한다. 그리고 스탠딩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원소윤 이 추천한 #여름별장그후 는 어떨까. 유디트헤르만의 다음 책은 이걸로. ⠀ ⠀ #이키다가추천해요 #반한에세이 #천천히읽어요 #우려내야제맛 #에세이추천 ⠀ ⠀ ⠀ ⠀ 나는 나에 대해 쓴다. 나는 스스로의 삶을 따라서 쓰고 다른 글쓰기는 모른다. ⠀ ⠀ 하나의 문장을 채택하는 모든 결정은 무수한 다른 문장들을 배제하는 결정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채택하는 모든 결정은 무수한 이야기를 쳐낸다. 하나의 단어는 다른 단어를 없앤다. 글쓰기란 지우기다. ⠀ ⠀ 글쓰기는 삶을, 사물들의 사라짐을, 영속적인 뒤쳐짐을, 불명료해짐을, 이미지의 소실을 모방한다. ⠀ ⠀ 저속 촬영 영상 같은 깨달음 수년에 걸쳐 서서히 이르는 깨달음보다 조금 더 특별한 깨달음,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네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깨달음. ⠀ ⠀ ⠀ ⠀ 하지 않음은, 원래 늘 그렇듯이, 요점일 것이다. ⠀ ⠀ 어떤 것들은 당신에게 닿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가. ⠀ ⠀ 내가 나 자신을 심문하는 것으로. 나의 글쓰기는 이 유년기와 관련이 있다. 당시의 인상들, 느낌들, 생각들, 예감들. 내 가족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 ⠀ 삶의 한 가운데에서 나온 꿈. 놓쳐 버린 것과 놓치 않은 것, 말해진것, 마해지지 않은 것을 저울질하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다는 사실. 우리는 그렇다. 끊임없이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 ⠀ 행복이란 늘 그 이후의 순간이라고. 당신이 소위 행복을 이겨 내고, 행복을 모면하고, 행복이란 게 무엇인지 깨닫고 행복을 다시 잃어버리고, 놓아주고 던져 버린 순간. 이것이 마지막이다. 혹은 달리 표현하면, 이것이 내가 글을 쓰며 도달한 지점이다. 그렇다면 분명커, 그 이전이든 그 이후든 결국 그냥 똑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