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실히 이상한 작품이다.
한국의 경우, 사업을 추진할 어떤 명분이 생기고, 좌절시 도저히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 싶을 정도로 체면의 문제가 일정 '진도'를 넘어서버리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종국의 이익이 몇 푼 남건 혹은 본전을 까먹건 불문하고, 그 일은 해치워져 버리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흔히 볼 수 있다'는 게 사실 본래가 흔한 일은 전혀 아니다. 예전 '우리의 1년은 세계의 10년'이라는 표어가 좀 과한 빈도로 대중의 코앞에 들이밀어진 적도 있었지만, 최근 유시민이도 '조선왕조오백년이 대한민국50년과 맞먹는...'운운하며 표절성 명언 제조에 나선 거 보면 우리의 발전(최소한 변화)상이란 정말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그런 종류인 것이 분명하다. 한 20년 전 故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펴낸 자서전 제목이 '오직 이 길밖에 없다'라는 다소 무식한 포효인 것만 봐도, 과거, 그리고 작금의 우리가 얼마나 유별난 풍토의 공동체에 살고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그렇게 빠른 템포로 변하는 사회에 살다 보니, 그 흐름에서 낙오된 루저들의 찌질거림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기이한 유형으로 독버섯처럼 돋아나는 것 아닌가,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다.
일본의 경우, 이번 원전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듯, 정해진 구조에 의존해 매뉴얼대로 그저 문제를 해결할 뿐인 극히 안정된 시스템이라서,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파멸적인 재해를 맞닥뜨리고도 참 '한가하게' 대처한다 하는 느낌이 내겐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저런 식, 정부의 속수무책격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면 총리대신까라(ㅎㅎ) 집권당 일체가 광화문 네거리에 끌려 나와 능지처참 당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소관 부서는 물론 도쿄전력이나 심지어 자위대도, '안 되는 건 그저 안 될 뿐'이라며 일정 선을 절대 넘지 않는 방관의 태도, RED TAPE의 형식주의, 썩어빠진 책임 회피 마인드를 대담하게도 노출할 뿐이었다. 저게 우리가 알고 있던 그 혼연일체의 야마토 정신 아래 목숨도 초개같이 버리는 그 일본이 과연 맞단 말인가? 더군다나 더 충격인 것은 어느 자민당의원의 말이었는데, "(총리가) 민간 회사인 도쿄전력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건 옳지 않다."는 멘트가 그것이다. 세상에.... 과거 어느 시기, 파시즘의 파멸적 집단주의가 동양, 그 중에서도 고립도서국의 극단적 폐쇄성과 결합하여 탄생한 어느 제국주의가, 근린국에 끼친 위험과 폐해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누구보다도 우리 민족이 잘 아는 바인데, 그런 기형적 totalitarianism이 그나마 긍정적인 한 단면을 나타낼 수 있는 그 위기의 스테이지에서, 외려 정반대의 퇴폐한 원자적 개인주의가 창궐, 만연하는 진정 엉뚱한 결과만이 발현하는... 후.. 50년이면 물론 긴 세월이긴 하다. 그러나 그들 밑에서 진정 호되게 당한 우리는 어느 정도 생계의 문제가 해결된 지금까지도 속도와 능률의 강박에 시달리는 반면, 그 원조인 셈인 저들의 그 강건하고 소박한 기풍은 대체 어디로 실종했는지 보이질 않으니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 미국은 어떤가? 두말할 일이 없지만, 그들이야말로 철저한 개인주의에 의거한 스탠스를 유지하되, 다만 일정 여건에서 순전히 자존에 기초한 프로페셔널리즘의 발현으로(남을 위해 뭘 하는 게 아니라 지가 급하고 필요해서 자발로 나선다는 말), 'my own business'를 세련된 협동으로 해결하는 점이, 우리 그리고 일본의 경우, 즉 동원과 체면, '왕따'에 대한 공포에 의해 통제되는 기제와 큰 차이가 있다, 그리 생각한다. 그래서 대외적으로 큰 체면이 걸린 문제라고 해도, 결국 참여한 개인 간에 이해가 상충한다, 혹은 사업 자체가 불발탄이라 결국 이문이 없다 싶을 때에는, 그냥 모양 없이 폭삭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모습을 지난 08년 리만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의 전개를 통해 국외자로서 우리는 충분히 구경할 수 있었던 것.
'슈퍼맨' 시리즈라는 게, 그 2편에서 주인공이 성조기를 들고 창공을 활강하는 그 장면이 잘 보여주듯, 그게 단순히 한 오락영화에 불과한 단기 파트너십이 아니라, 미국의 자존심이 걸린 한 상징의 성패가 달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었는데, 그게 이 영화의 운명에서 보았듯, 정말 모양새없이 쫄딱 망하고 만 것이다. 더군다나 그 과정이라는 게 이런 결과를 빚기에 충분할 정도로 부실함이 이미 프로덕션 과정에서 훤히 드러나다시피했는데도, 이미 상당한 재력가였던 크리스토퍼 리브나 진 해크먼 등이 기를 쓰고 막으려 들지 않았다는 게, (앞서 말한 그런 의미에서)우리 눈에는 참 놀랍게 보이는 것이다. 배우들이 과한 개런티를 받았기에(달리 말하면 사업의 전망에 비해 과하게 비싼 배우들을 썼기에), 특수촬영 등 이후 발생하는 제반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 지금 우리가 보듯, 또 당시 관객들이 그 결과로 실망해대었듯, 거대한 fiasco가 망신스럽게도 펼쳐지고 말았다 이 소리.
사업의 추진도 그렇고, 위난의 극복도 그렇고, 어느 집단이 문제를 해결할 때 어느 패턴에 의존하느냐 하는 것은 이처럼 각양각색이다. 누구 하나가, 혹은 소수의 집단이 영웅의 선봉을 치고 나오면, 너도나도 wanna-be가 되어 국외자가 보기에 놀라운 단결력을 보이는 그런 패턴이 있고(1998년의 금모으기 방식이라 명명할 수 있다), 타인의 영역에 끼어들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건설적인 협화음을 보이는 성숙한 개인들의 방식이라는 게 또 있겠다. 만화는 대개 comic이라고 하고, 또 슈퍼히어로물 자체가 본래 판타지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 고려할 때, 사실 '슈퍼맨 방식'은 미국에서라면 꿈도 안 꾸는 그런 메카니즘이라고 단정해도 큰 무리는 없다(역설적이긴 하지만). 슈퍼맨 최종편이 이런 식으로 망한 건 그런 의미에서 거의 필연이라고 한다면 좀 우스운 이야기가 될까? ㅎㅎ 아, 물론 '수퍼맨 리턴즈' 등 최근의 기획은 지난 시대의 황당한, 좁은 의미에서의 '슈퍼히어로 판타지'와는 이미 큰 이격으로 궤도를 수정했으며, 현재 나오는 작품들은 하나의 고급 우화라고 파악해야 한다(다크 나잇 같은 걸 보면 알 수 있다). 슈퍼맨을보고 열광하는 부류는, 특정정치인만 숭배하면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믿는 무능한 찌질이밖에 없다는 진리(아닌척은 죽어라고 한다)... 슈퍼히어로 하나가 느닷 나와 세계와 인류를 구원한다는 설정은, 이미 그들의 생리에 맞는 것이 아니기에 짧은 수명을 지닐 수밖에 없었고, 4편이 저런 식으로 '비존엄사'한 것은, 다시 말하지만 '사고'가 아닌 '외과수술적 정교함'이 깃든 폐기처리이고, 리만 사태 역시 그런 식의 이너써클, 유태자본의 손털기였다고 생각하면 섬찟해지는 면마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한줄요약 슈퍼맨은, 만약 지구에 오면 미국놈들이 죽여버린다. 돈이 안 되니까.
|